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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 이야기
베르나르 키리니 지음, 임호경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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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바로 전에 같은 프랑스 소설인 다른 작품을 읽고는 허탈감에 못이겨 슬럼프를 맞이했지만 그럼에도 또 다시 프랑스 소설을 집어든 이유는 그 편견을 깨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프랑스 소설이라면 질색팔색하는 내가 꼴보기 싫어 미리 방어막을 쳐두는 꼴이지 싶다. 수중에 내게 있던 책이라고는 「육식 이야기」뿐이었고, 만약 이조차도 없었다면 나에게 처음으로 책을 읽는 재미는 이런 것이다 라며, 독서라는 것에 발판을 마련해준 프랑스 소설, 서너번은 읽었음직하여 이미 내 손을 떠난 기욤 뮈소의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를 구입해 다시 한번 엘리엇과 일리나를 마주하게 하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책은 프랑스 작가가 쓴 것이 아니라 벨기에 작가가 젊은 프랑스어권 작가에게 주는 보카시오 상을 수상하였다 해서 프랑스 소설로 붙여진 것 뿐, 오롯한 프랑스 소설이 아니었으니 이거 왠지 속임수에 넘어간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 나의 시선은 허공을 가로지르다가 어느 순간 우뚝 멈춰서 버린다. 그렇다면 나는 올해를 통틀어 읽은 것 중 감히 최악이라 평을 내리고픈 바로 전의 책을 마무리하고 이 책을 고른 것이 정녕 잘한 것일까,싶다. 실은 「육식 이야기」라는 이 작품의 - 주관적으로 - 유치하기 짝이 없는 표지는 서점에 가도 눈길이 갔다가도 거둘 만한, 그래서 손길 한번 가지 않을 그런 이 책의 표지는 나를 노려보고 있다. - 실은 책을 다 읽은 지금도 표지만큼은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 첫 단편부터 공포도 아닌 것이 사람을 경악하게 만든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그 이상을 뛰어넘은게다.

 

 

 

사람이란 모름지기 어떤 단어를 나열하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말하라, 라고 한다면 거의 마지막에 말한 단어를 꼽기 십상이고, 전에 그것을 TV의 한 프로그램에서도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험했던 것을 시청한 적이 있다. 그것은 비단 어린 아이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리라. 하지만 나는 아이러니하게 책을 덮고서 첫 단편이었던 ‘밀감’만이 생생하게 나의 머릿 속을 지배했다. 그것 외에 ‘베르나르 키리니’'의 어떤 단편도 그와 같은 영향력을 내게 선사할 순 없었다,고 단언한다. 여인의 피부를 감히 오돌토돌한 오렌지에 비유한 그의 상상력은 내 상상을 가뿐히 뛰어넘어 정확하고 안전하게 착지하여 내가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던 원동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고 말할 수 있음이 내가 이 책에 줄 수 있는 최고의 찬사다. 책 속으로 시선을 던지니 일요일마다 오렌지 주스에 약간의 피를 타마시는 한 남자의 사연이 나의 상상을 농락한다. 새하얀 피부를 지닌 금발의 여인,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는 오렌지 껍질들을 하나하나 벗겨낼 때 맺히는 물방울들을 걸신들린 듯 핥아대며 끝내 그녀를 마셔버린다. 이 정도에서 끝내버리면 이야기는 마무리되지 않은 바느질이고, 작가는 결코 그리 되게 두지 않는다. 그렇다 한들, 그것을 마셔버리고, 끝까지 그 맛을 갈구하는 것에서 끝나게 둔다면 그것 또한 독자에 대한 배려성이 자못 궁금하기까지 하겠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한 사내가 그 성적판타지를 자신에게 적용시킨다는 것. 순간 씁쓰레지는 것이 결국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를 받아들이는 것에 수긍하게 만든다.

 

 

 

‘밀감’ 외에도 ‘아르헨티나 주교’,‘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지금은 모두 죽어버린 몇 작가에 대하여’,‘착각의 나라 (야푸족은 어떻게 말하는가)’,‘기름 바다’,‘뒤섞인 사랑’,‘유럽과 기타 지역의 음악 비평 몇 편’,‘살인청부업자의 추억’,‘수첩’,‘기상천외한 피에르 굴드’,‘희귀조’,‘영원한 술판’,‘육식 이야기’의 총 열네 편이라는 베르나르 키리니,라는 브랜드 아래 상상이라는 지극히도 추상적인 단어로 삶에 대한 권태를 무르게 만들어주는 이야기들의 향연들로 가득채워 빡빡한 일상 속에서 한숨 돌릴 수 있는 계기를 직접 마련해준다. 하지만 그럼에도 누군가 내게 ‘이 책 어때요?’라고 물어온다면 나는 ‘잘 모르겠어요’라고 답하려고 한다. 아니, 설령 좋음, 보통, 나쁨이라는 세개의 선택란이 있어도 나는 가장 만만한 보통에도 체크하지 못하고 아마 주저주저하며 선택하지 않은 백지를 낼지도 모르겠다. 그는 휘몰아치는 그의 활자들을, 그 수많은 이야기들을 한꺼번에 마주하기에 나의 사고 회로가 허용할 수 있는 범위마저도 차단시켜 더 이상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지경까지 내몰아 결국은 독자를 비웃는 듯함이 조금은 부담스럽게 다가왔던 것이 그 까닭이라 말할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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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도 색깔이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검정도 색깔이다
그리젤리디스 레알 지음, 김효나 옮김 / 새움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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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435p의 책장을 덮는 것과 한숨이 내쉬어진 것은 거의 동시였다. 그것은 비로소 이 책을 다 끝냈다는, 그리고 더 이상은 그녀의 삶과 내 삶을 같은 눈높이에서 마주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의 한숨인 셈이었다. 내가 이 책을 얼마나 붙잡고 있었을까, 손가락을 하나, 둘 세어 따져보니 족히 열흘은 붙잡고 있었지않나 싶다. 그것은 나의 구미를 잡아당기지 않는 이 책의 한계,라고 이야기하는 것 말고는 달리 방도가 없다. 10월 끝무렵부터 한 장, 두 장 읽어가 11월, 열흘동안 50p도 못나가리 만큼 지루하여 하품을 자아내는, 그러다 끝내 잠의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그녀의 삶을 이제는 끝내야했다. 물이 없는 우물 속의 두레박이 아래로 곤두박질치며 내는 딱딱,거리는 소리는 두레박이 내는 것이 아닌 내 마음 속의 자명종과 같은 것이었음을 알아챈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갈증이 전혀 나지 않는 상태에서 물을 들이키는 것은 차오르는 배를 바라보며 신물이 올라오는 것을 느끼는데, 내게 있어 그것이 그녀의 인생이었다. 치졸함과 추악함이 맛깔나는 잼으로 변모하여 빵 속에 들어가 그녀의 생을 눅눅하게 만들어버렸다.

 

 

 

그리젤리디스 레알의 자전적 소설, ‘검정도 색깔이다’ 그녀는 검둥이 애인 빌을 정신병원에서 탈출시키고 그를 48시간 내에 이 땅에서 내보내야 한다는 엄명을 받게 되어 그와 두 아이와 함께 독일로 이주하여 자신의 몸을 타인에게 노출시키는 일, 매춘으로서 돈을 얻게 된다. 책 전체가 그리젤리디스 레알의 서른 두 살 이후의 삶에 조명을 비추고 있기에 줄거리에 대해 나의 어쭙잖은 말은 삼가는 게 좋겠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하.지.만, 내가 이 책에 대한 평점을 이렇게밖에 줄 수 없는 이유가 프랑스 소설이어서, - 실은 그 까닭에 마음이 무거워진 탓도 있었으나, 비단 그것만으로 이 책을 거부하였더라면, 난 이 책 자체를 읽지 않았으리라. 게다가 그 까닭으로 읽는 것에 부담을 느꼈더라면 전에 읽었던 기욤 뮈소의 작품도 하나의 작품만 읽고 안녕,해버렸을 것이 분명한데, 나는 그의 책을 꼬박꼬박 읽어왔었다. 프랑스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 라는 얼토당토 않은 이유도 아니었고, 소위 말하는 매춘부에 대한 거부감 역시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 책은 가파른 언덕을 주위를 바라볼 틈도 없이 숨차게 올라가는 나에게서 일말의 미소라도 원했던 것이라면 너무 많은 것을 바란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나에게 있어서는 무척이나 거부감을 드러내기에 충분한 책으로 다가왔는데, 그 까닭을 구태여 찾자면 문장을 표현하는 데에 있어 내게 있어 위장을 헤집는 것과 같은 불쾌함을 동반한 졸렬함이었고, 그것은 음식물을 섭취한 후에 이 책을 손에 집는다는 것은 내게는 무척이나 고역과 다름없는 역겨움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사랑의 결정체라고 불리우는 섹스라는 것이 그녀에게는 사고 파는 것으로 간주된 그 순간부터 경계했었어야 했다. 아니, 애초에 시대상황이 그녀를 그리 만들었다고 줄곧 생각하게 만들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몇 번의 노동기회가 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내침으로써 매춘부라는 것은 오롯이 자유의지의 선택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그것말고는 다른 것에 대한 열정은 보이지 않았고, 뭔가를 하고 싶다는 열정조차도 내 검은 눈동자에 만큼은 비치지 못했으니까. 세상이 그녀를 병들게 만든 것이 아니라, 그녀 자신이 병들게 했다.

 

 

 

게다가 “진실로 사랑해보지 않은 자는 이 책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길. 책은 그런 사람의 손 안에서보다 더러운 쓰레기 더미 속에서 좀 더 따스하게 머물 테니까.”이런 오만한 그녀의 글을 고개를 주억거리며 읽어 내리기에 내 심장은 그렇게 말랑말랑한 상태가 아니었음이 애석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사랑이란, 그래. 그녀에게 있어 사랑이 무엇인지 나는 그것이 궁금했다. 그녀가 끄트머리에 진정으로 사랑했다던 로드웰, 그를 기억하고 찬양하기 위해 쓰여졌다던 그 역시 내 눈엔 다른 자들과 같은 사람들처럼 보였음에 왜? 라는 말을 반문해야했는데, 남이 보기에 자질구레한 사랑도 자신에게는 영속할 줄 알았던 그녀의 사랑이 가엾기까지 하다. 부록에 ‘매춘은 혁명적인 행위이다.’라고 쓰여져 있고, 그곳엔 그녀가 제네바의 길거리를 걸으며 써내렸던 글이 있다. 오만함의 극치는 어디까지인가, 나의 한숨은 얼마나 더 깊어갈 것인가. 그녀의 글은 오만하고, 그런 그녀의 글을 나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 뿐이다. 장하다. 이 책을 끝까지 정독하여서. 나는 남의 인생을 내것인 양 가타부타하기는 싫지만, 내 한참 모자란 서평이 그녀의 생에 어디까지 참견하려 손을 뻗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한마디는 자신의 몸을 상하게 한 벌로 몸은 강력하게 저항할 것이고 그것을 시작으로 입 주변에 꽃봉오리들을 피울것이다. 얼룩덜룩한 그 꽃봉오리 속에는 독을 품을테지. 그것의 이름은 ‘매독’······. 아, 도저히 안되겠다. 마음 속을 정화하고자 나는 다른 프랑스 소설을 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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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어른이 읽는 동화
정호승 지음 / 열림원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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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에게」라는 시로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라는 문장으로 거침없이 몰아치는 마음 속의 파도를 잔잔하게 어를 수 있을 만큼 막연한 외로움에 허덕이는 나를 잡아끌어준 시인, 정호승, 그가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타이틀로 쓰는 네번째 동화 『의자』로  우리의 심금을 흔들어놓으려 하고 있음에 책의 표지에 있는 소년을 호기 잔뜩 부풀린 눈빛으로 어루어만져본다. 소년의 초상화는 손사레 칠 정도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자칫 거부감이 들 수 있을 만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섬뜩함을 안겨주기에 충분하고 그보다 동화라는 타이틀에 맞지 않는다 생각했더랬다. 하지만 다 읽은 지금 다시 바라보니 사랑이 결여된 현대인들을 바라보는 짙은 안타까움을 표현해내는 것이 아닐런지 슬몃 생각해보지만, 표지뿐만이 아닌 책의 중간중간에 가미된 일러스트까지도 하나같이 신비로움을 내포하고 있는 까닭에 내가 생각하는 것이 맞는지 확신이 서질 않는다.

 

 

 

비목어, 난초, 풀꽃, 소나무, 바람, 제비꽃, 해어화, 해어견, 명태, 망아지, 주춧돌, 옥구슬, 실, 암탉, 종이배, 우제어, 기파조 ······, 사물을 의인화하여 사랑이 결여된 우리네 삶의 퍽퍽함을 26편의 동화를 통해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흔히 ‘너는 너, 나는 나’라고 생각하는 현대인에게 하나의 눈만 가져 헤엄을 치지 못하고 둥둥 떠다니기만 하는, 짝을 만나야 비로소 헤엄칠 수 있는 「비목어」, 바람이 불어야만 청명한 소리를 낼 수 있는 「풍경소리」, 하나로서는 불필요한 옥구슬과 실이 주인공인 「슬픈 목걸이, 한 몸뚱아리에 머리가 둘 달린 기파조, 왼손과 오른손이 협력하여야만 일을 해낼 수 있음을 강조하는 「왼손과 오른손」등을 통하여 ‘네가 있으니, 내가 있는 것이다’라는 것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규정짓고는 그 가르침을 정호승 시인의 맑은 영혼에서 나오는 노랫가락처럼 동화로 표현하여 현대인들이 다가가기에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의 간극을 허용하여 그것을 빌미삼아 조심스레 파고든다.

 

 

 

나는 작품해설을 읽을 때마다 자신의 책이 아니기때문에 이곳저곳에서 끌어모아 짜집기를 하여 간혹 어색한 문장들을 마주할 때도 있고, 비평가 중에서는 독자가 알아듣지도 못하는 어려운 말들을 써가는 동시에 장황하기까지 하여 독자들의 시선을 흩뜨리게 만드는 경향도 더러 있음에 되도록이면 작품해설은 읽지 않는 편이다. 또한 그 뿐만이 아니고서라도 책은 오롯이 읽는 독자의 생각대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책을 읽으며 이끌어온 내 상상들을 한번에 깨뜨리기 싫은 것, 그것은 내가 읽는 것은 몇 년 전처럼 수능의 언어과목을 잘 보기 위해 그 책의 의도를 파악해야하는 공부가 아니라고 생각되는 것도 작품해설을 읽지 않는 것에 일조하는데 한몫 거든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에 작품해석을 읽을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26편의 이야기를 다 접하고 나서 왠지 모를 허전함때문이었다. 게다가 「담쟁이」라는 시를 스케줄러의 맨 앞장에 적어놓아 고3시절의 일년을 위로해주던 이, 도종환 시인이라는 이유였다. 도종환 시인을 작품해설에서나마 볼 수 있다는 것이 반가웠고, 정호승 시인의 작품에 한발 더 다가가게 만들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었다. 그는 ‘정호승 시인의 동화나라’에 온 것이 행복하다고 그리 쓰고 있었는데, 그의 동화나라라, 참 감칠맛나는 문장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작품해설은 꼭 거기까지일 뿐, 더 이상은 얻어낼 수도 없었음이 서글프다. 
  
  
   

 


책으로 다시 돌아와서 정호승 시인, 그는 「작가의 말」에서 사랑은 결국 사랑을 필요로 합니다. 사랑은 사랑 이외에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을 완성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뿐입니다. 라고 이야기하며 이 책은 동화의 방법으로 사랑을 이해하기 위하여 쓴 책입니다. 라고 독자들에게 조곤조곤 일러주고 있음에 동화를 읽고 있으면서도 사랑과 연관짓겠다며 가진 애를 쓰며 읽던 나였다. 하지만 두번 째, 세번 째······. 억지로 짜맞추지 않아도 읽으면 읽을 수록 언저리에서 사랑이라는 단어가 머물고 있음이 느껴진다. 샘물을 앞에 놓고 이것은 환상이라며 눈을 비비고 귀를 막아 현실을 부인하고자 하여 목이 말라 죽어있는 「현대인」의 자화상이 타자가 아닌 바로 내가 아닌지, 짤막한 동화 한편에 많은 생각이 교차되는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한번에 후루룩 다 마시듯 읽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지만, 기울이면 바닥이 보이는 커피처럼, 그렇게 아껴서 읽고 싶어지고, 또 그래야 하는 맑은 영혼의 소유자, 정호승의 어른들이 읽는 동화,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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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기 인간관계 핵심스킬 - 사람과 성공을 얻는 5가지 스킬
데일 카네기 연구소 지음, 최염순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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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읽기 전부터 지레 겁먹었었던 까닭은 329p라는 생각보다 두꺼웠던 책의 장수였다. 소설이면 이까이꺼 훗, 하며 읽어주었을텐데 나에게 있어 어떤 분야보다 취약하고 늘 재미없게 읽는 자기계발이니 더디고, 더디고, 또 더딜 수밖에. 하지만 자기계발임을 알고서도 이 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데일 카네기라는 그의 명성을 귀가 간질간질거릴 만큼 익히 들어왔기 때문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이유, 그 때문이었다. 게다가 띠지인 척 하고 있는 표지엔 '인간관계와 직장생활 성공법칙'이라는 것을 보았던 것이 데일 카네기라는 명성보다 나를 더 사로잡았던 까닭이 아니었나 싶다. 내가 지금 이 곳에서 일을 시작한지 9개월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함께 일하는 현장감리 박부장의 행동은 고집스런 나를 더욱 고집불통인 사람으로 만들어버리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난 가끔 그와 상반되는 의견을 주고 받을 때면 내가 더 이상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하기 위해 귀를 막고 눈을 막고 마음을 막아버린다. 그와 나는 9개월을 그렇게 지내고 있다. 간혹 현장에서 노무자들에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그가 안쓰러울 때도 있지만, 서로의 약점을 물어뜯고 할퀴는 것을 생각해내고는 그런 마음도 금세 슥슥 지워버린다.

 

 

 

예를 들면 현장에서 이런저런 사건들이 사무실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닌데, 나에게 잘못을 뒤집어 씌우면 나는 당연히 발끈하고 그것은 무서우리 만큼 격한 감정싸움으로 치닫게 된다. 결국 그는 나이를 운운해가며 나의 말문을 틀어막고, 상사라는 이름을 들먹여가며 내게 있는 약점을 꼬집고, 자신이 말하는 것에 있어 무조건 예예, 거리며 복종하는 여자인 나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군대식으로 나를 몰아붙인다. 전에 여사원은 어떻게 지냈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그리 못하겠다고, 모든 건 사장님 결제를 통해 들어가는 것이니 사장님이랑 결정하시고 전달해주세요, 라고 이야길 하면 그는 리라씨는 참 피곤한 사람이야. 라고 이야길 한다. 그와 나의 문제점은 하나부터 열까지, 그러니까 정수리부터 발바닥까지인 셈이다. 한 사무실에서 있으면 냉기가 감도는 그와 나의 직장생활을 편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대화의 기술일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에 전부터 읽어야지, 읽어야지 했던 데일 카네기, 그의 책을 이제서야 두 손에 억지로 구겨넣고는 만만찮은 빽빽한 활자들에 질려 한숨을 폭폭 쉬며, 첫 문장을 따라 눈동자가 움직인다.

 

 

 

자기주장은 토론대회가 아니다. 최선의 방어가 훌륭한 공격이 되는 전쟁터도 아니다. 자기주장이란 여러분을 과소평가하려는 상대방의 경박한 공격으로부터 자신의 행동, 동기, 혹은 의견을 방어하는 일이다. (p39) 자기주장[自己主張]이라는 것이 사전에는 자기의 의견이나 생각을 당당하고 자신 있게 주장하는 일이라고 명시되어 있는데 지금 우리가 박박 우기고 있는 자기주장이라는 것은 '목소리만 크면 이기는 세상'이라는 말이 아닐까 싶다. 곧 그것은 하나의 격언으로 자리메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비단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본문에서는 자기주장을 말할 때에 위처럼 명시하고 있는데,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드는 애매모호한 말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자기주장이 상대방의 권유, 회유로 돌아설 수 있다는 가정을 생각한다면 저렇게 한마디로 딱 부러지게 명시하기엔 조금 무리수가 있지 않나, 생각해보게 된다. 하지만 서로 자기주장을 내세울 때 최선의 방책은 “이 문제에 대한 제 입장은 변함없습니다. 일단 우리의 의견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고 대화를 진행하면 어떨까요?”라고 제시하는 것인데, 서로가 타협할 만한 타협안을 찾지 못했을 때 제격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만한 문장이었다.

 

 

 

실은 나는 책을 읽으며 나와 너무 상반되는 직장환경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라 활자가 눈에 제대로 보이지 않을 뿐더러, 자꾸만 답답한 마음에 책을 덮고 싶어지고, 그럴 때마다 소리내어 읽도록 나 자신을 강요하였지만, 소리내 읽어도 마음에 남는 것이 딱히 없다. 그러나 그 중, "만일 인간이 듣기보다 더 많이 말하도록 창조되었다면 두 개의 입과 한 개의 귀를 가졌을 것이다." - 마크 트웨인이 한 말을 응용하며 설명을 했을 때 비로소 아, 내가 조금은 관심을 기울일 수 있겠구나, 싶었다. 나 역시도 상대방과 의견이 대립되면 내 의견만을 내뱉지, 상대의 말은 제대로 경청하지도 않고 무조건 마음에 벽을 내 키를 훌쩍 넘어버릴 만큼 쌓아두고는 상대가 말할 때 난 그 벽에 기대어 잠만 자는 꼴이 되어버릴 때가 무수히 많기 때문에 늘 고쳐야지, 했던 것이었다. 경청을 할 때에 잘못 된 것은 「자신과 비교하는 것, 상대의 마음을 읽는 것, 필터링」 이와 같은 세가지가 주 원인이 된다 하였다. 그러고 보니, 나도 늘 상대방이 “나 ~했어”라고 하면 나도 속으론 ‘나도 했었는데’라며 뇌까리고, 상대방이 말한 그대로를 믿질 않은 채, 실은 그렇지 않잖아.라고 반박하기도 하고, 내가 듣고 싶은 말만 듣기도 했다. 난 「적극적 경청」을 읽을 때, 서로 커뮤니케이션이 아닌 이기적인 대화법을 주도해온 것이나 다름 없었다,라고 느끼며 헛헛해진 마음 속에 차가운 가을 바람이 들이 닥쳤다.

 

 

 

하지만 그 외의 것들은 나와 상관이 없다기 보다는 나의 상황과는 별개,라는 생각이 들어서 집중하기 어려웠고 아무리 좋은 말이 한가득 있어도 여전히 자기계발서는 자기계발서다, 라는 생각이 더욱 굳건해진 책이었다. 명성만큼이나 자자하게 나를 변화를 주는 영향까지는 끼치지는 못할지언정 마음을 흔들어놓을 수 있는, 적어도 자기계발서를 좋아할 수 있게 만들어준 책이었다,라고 마침표를 찍게 해주기를 바랐는데 이것도 저것도 아닌 다른 것과 똑같아보이는 이 책의 느낌은 내가 그동안 한번 접해보고 싶어하였던 책이 맞나, 하는 의구심을 가질 정도로 실망스러웠다는 것을 쓰며 이 책 서평의 마침표를 붙여본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어떠한 책 한 권으로 규정되어지는 관계라면 그것보다 애석한 일은 없을거라 생각이 든다. 사람에게는 각기 나름대로의 성격이나 취향이 있고, 그것을 존중할 때에 가장 효과적인 대화법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으나,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늘상 어렵다. 그럼에도 인간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대화를 추진하려면 우선 그 사람을 좋아해야하는데 나는 아직 박부장을 좋아하고 존경할 만한 의사가 미안스럽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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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분야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조정래 작가님의 책은 읽어본 적이 없네요.  이번에는 기필코 읽어보리라 생각했지만, 올라오는 평들은 자꾸 기대치를 낮추게 만들기에 충분합니다. 조정래님의 그 글에서 뿜어져나오는 사회에 대한 풍자가 아마 대단한 것 같더라구요. 씁쓸하지만, 그게 정말 우리의 세계라면 한번쯤은 되짚고 넘어가야 하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실은 에쿠니 가오리를 좋아하진 않지만, 그녀의 글을 건조한 듯 바라보는 저지만, 요즘에는 몇달에 한번이라도, 꼭 한번씩은 찾는 것이 그녀의 글인 듯 싶네요. 처음에는 아, 아니다 싶었던 것도 이제는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제가 신기하기만 하구요. 그녀가 빨간 장화에 이어 어떠한 결혼생활을 다시 한번 그려냈을지 기대되는 것도 사실이구요. 

 

  

     

 

 

실은 이번에 선물로 받은 책들도, 다른 곳에서 받은 도서들도 만만치않은데, 거의 신간이었었네요. 이번에는 꼭 다섯권을 꽉꽉 채우려고 했는데, 아쉽게 그러지 못하게 됐어요 - 다음 달을 기약해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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