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밥바라기별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그와 통화를 하다가 문득 하늘을 보게 되는 날이 잦아졌다. 무거워져 들어지지 않는 머리를 들어올려 고개를 젖히고 보는 하늘에는 까만 도화지에 노랑색 크레파스로 잘못 찍은 듯한 별이 보인다. 그럴 때마다 외치는 말이 “개밥바라기별!”이었는데, 그는 내가 그 말 뜻도 모르면서 쓴다며 웃곤 했다. 아이러니하게 그에게 이 책이 있어 그가 슥 내미는 것을 덥썩 잡고는 두어달 가량을 묵혀두고는 읽을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던 것은 겉표지를 상실해버린 책의 모양새는 못생긴 벌거숭이를 보는 듯함에 저 예쁜 겉표지는 왜 버려두고 이렇게 발가벗겨 놓았느냐고 따져물었더니, “내맘이다!”라고 답하는 그에게 샐쭉해진 표정으로 입을 댓발이나 내민 채로 툴툴거렸다. “왜 겉표지는 버려서…”어쩌고, 저쩌고 - 그러다가 어느 순간 잡게 된 요 책은 대략 70페이지를 훌쩍 넘어서야 나의 머릿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 그 전까진 상황 전개고 뭐고 주루룩 나열되어 있는 검정색 한글을 아무 생각없이 눈으로 읽기만 한 모양이다.

 

 

 

시대는 월남전이었던 1970년, 그것은 책의 첫 장을 펼치면 자연스레 알 수 있게 되는데 첫 장, 첫 줄을 보면 그해 겨울에 나의 베트남 파견이 결정되었다.로 시작하기에 책을 읽으며 알아가기 보다는 처음부터 거저 주워먹는 꼴이다. 여기서 ‘나’는 ‘준’인데, 이런 말을 구지 해야하는 것은 화자가 한 명이 아닌 까닭도 있지만, 이야기는 주로 준을 주축으로 뻗어나가는 것과 같이 보인다. 준 외에 영길, 인호, 상진, 정수, 선이, 미아가 각 장마다 이야기의 화자로 등장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동시에, 그 전에 다른 화자가 이야기했던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이 마치 이어달리기의 한 장면을 보는 것도 같다. 나는 그 순간에 회한덩어리였던 나의 청춘과 작별하면서, 내가 얼마나 그 때를 사랑했는가를 깨달았다. 며 그 때의 회상에 독자들을 초대한다. 그렇게 이야기는 1장이 아닌, 2장부터 시작하는 셈이다.

 

 

 

어른이나 애들이나 왜들 그렇게 먹구사는 일을 무서워하는 거야. 나는 궤도에서 이탈한 소행성이야. 흘러가면서 내 길을 만들 거야. (p41) 나는 나를 잘 모른다,고 시작된 준의 독백은 자신을 찾기 위해 점철지어진 학교생활을 그만두겠다는 뜻으로 자퇴,를 하게 된다. 그 때 준이 말한 자퇴의 이유가 어찌나 명료하던지 몽글몽글 솟아나는 뭉클함을 만들어내어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중략) 모든 선택의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저는 학교를 그만두겠다고결심하고는 두려움에 몸이 떨리기도 하지만 미지의 자유에 대하여 벅찬 기대를 갖기도 합니다. 물론 힘들겠지만 스스로 만든 시간을 나눈어 쓰면서 창조적인 자신을 형성해나갈 것입니다. (p90) 그렇게 제도와 학교가 공모한 틀에서 빠져나갈 것이라 단언하며 그는 산으로 가서 끊임없이 자신을 돌보고, 내면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천천히 내 숨소리에 집중한다. 콧털이 가늘게 떤다. 그마저도 익숙해진다. 눈구멍 밖으로 조금 볼 수 있는 나의 거처인 가슴팍에서부터 배와 두 무릎으로 이어진 몸을 본다. 그는 여기 나와 함께 있다. 그리고 가뭇, 내가 사라진다. (p108) 세달쯤 후 그는 산에서 내려와 도시의 이곳저곳을 무전여행하며 길 위에서 만났던 무수한 사람들의 얼굴과 밤마다 마주하고 그들을 끌어안기에 이른다. 허깨비같은 삶으로 돌아왔을 때, 방랑의 동행자였던 장씨를 유치장에서 만나 공사판을 다니고, 오징어잡이 배를 타며 그는 느낀다. 목마르고 굶주린 자의 식사처럼 맛있고 매순간이 소중한 그런 삶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내가 길에 나설 때마다 늘 묻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p261) 하지만 그는 곧 그와 작별을 고하고 제빵집에서 겨울을 나고 동래 범어사에서 입산 출가를 하다가 집으로 돌아와 봉지 안에 있던 알약을 털어놓게 된다. 닷새째 오후, 그는 혼절 상태임에도 부연 빛을 보고 본능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알아채고 그쪽 방향으로 나오게 된다. 나는 오랫동안 세상의 색깔이 변해가는 모양을 내다 보았다. (···) 색깔이 차츰 나뉘며 각각의 색으로 돌아갈 즈음에야 하늘이 쾌청하게 맑고 푸르다는 걸 나는 알았다. (p281)

 

 

 

누구에게나 방황의 시기, 사춘기가 나에게도 있었으나 나는 정도가 심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내게 주어진 삶에 순종했고, 그 경쟁 속에서 뒤쳐지긴 했어도 살아남으려 노력했고 그것은 현재까지도 미미하지만 여전히 -ing라고 얘기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황석영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개밥바라기별’은 내가 할 수 없었던 것을 간접적으로 상상하게 만들어준 고마운 책,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비록 그가 겪은 시대와 내가 사춘기 시절 겪었던 시대는 확연히 다를지 몰라도 방황기에 누구나 겪는 심리 상태는 충격적이게도 그 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것 없음을 인식시켜주기에 충분하다. 그렇기에 작가가 쓴 준의 이야기가, 오롯한 그의 이야기만이 아닌 책을 읽는 독자들의 이야기도 될 수 있음에 - 적어도 나에게는 - 교감을 느끼게 되며 반가운 마음에 미소를 걸치게 되는 것이다. 그간 쓸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길어지는 서평글이 보기가 싫어서, 아니 - 이것들을 통틀어 귀찮아서_라는 명백한 사실앞에서 제대로 된 줄거리를 여태껏 쓰지 않고 버텨왔던 것을 깡그리 무시하고 즐비하게 나열한 이유는 미안하게도 내가 놓친 그들의 걸음걸이를 조금 더 좁히고 싶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젊거나 나이먹거나 세월은 똑같이 소중한 거랍니다. 젊은 날을 잘 보내세요. (p17) 작가가 말하는 젊은 날은 비단 방황하던 그 때만이 아닌 지금도 포함되는 것이리라. 나는 여전히 지금에 와서도 방황하고 있고 그 방황에 의의를 두고 싶지 않다. 그것도 또 하나의 ‘내’가 되기 위한 성장일테니. 그 방황이 끝나는 날, 내 젊은 날도 끝나는 것이리라. 좋은 책을 만나는 일은 여전히 즐겁다. 오늘 퇴근하는 길에 하늘을 바라보며 오늘 뜬 별이 내눈에 개밥바라기별로 보이는가, 샛별로 보이는가_ 아직은, 개밥바라기별로 보이겠지 그것은. 오늘 그에게 말해줘야지. “오늘도 개밥바라기별이 떴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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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욱 찾기
전아리 지음, 장유정 원작 / 노블마인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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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페이지가 약간 넘는 이 책은 내게서 기억 저 편에서 이미 묻혀버린 오래된 기억을 선연하게 만들기에 충분한데, 그것은 효정의 첫사랑 김종욱이 아닌 바로 나의 첫사랑. 하지만 첫사랑은 역시 첫사랑일 뿐,이라는 말에 실감하며 바보같은 표정으로 어리둥절해 하는 그를 앞에 두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주체할 수가 없어  푸하하_ 하며 자지러질 듯이 웃던 내가 있었다. 왜 웃냐는 그 친구의 물음에도 난 그저 웃을 뿐이었다. 헌데, 나는 왜 그 기억과 마주한 지금, 마치 날개 젖은 새를 바라보는  이리도 처연한가. 누군가가 나의 첫사랑이라는 것이, 내가 누군가의 첫사랑이라는 것이 낯설다. 아니, 나는 첫사랑이라는 단어가 아직도 낯설다. 한 녀석이 니가 내 첫사랑이었어,라는 오글거리는 멘트를 날렸을 때, 온 몸에 벌레가 기어다니듯 하여 그 말을 들은 후부터는 가만히 있다가도 발작을 일으키는 증세를 보이기도 하였더란 말이다. 풉. 첫사랑, 첫사랑…. 그래, 애틋하지. 애틋한 만큼 처연하고, 모든 것은 딱 그만큼이었던 것이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그때였다. 그 감정들이. 그래서 사랑이란 것이 알지도 못하는 그때에 - 여전히 지금도 사랑이라는 녀석은 갈피를 잡을 수 없지만 - 첫사랑이라고 규명지으며 그것에 생명력을 부여하고 싶었던 게지. 그는 그때 누구보다 찬연했다. 또 누구에게나 첫사랑이라는 기억은 찬연한 기억으로 남아있을터다.

 

 

 

자꾸 첫사랑이라는 오글거리는 단어를 언급하는 것은 그것을 찾는 효정이 자신의 사랑이었던 김종욱을 내놓으라 내 앞에 딱 버티고 서서 두 손을 쫙 펼치고 눈을 부릅뜨고 있기에 그를 찾기 전 내 첫사랑을 잠시 언급했던 여유를 가지고 싶었던 게다. 이 책의 줄거리를 구지 꺼내놓자면, ‘첫사랑을 찾아드립니다.’라는 사기를 당한 광고지의 전단지가 회사에서 짤린 효정에게 우연치 않게 날아든다. 그것은 효정에게 첫사랑을 찾는 일보다는 일자리 제공을 해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먼저 들게 만들어 무작정 찾아간 그 곳에는 지인의 결혼식 피로연에서 보았던 성재가 있었다. 성재는 효정의 첫사랑을 함께 찾는 것으로 테스트를 하겠다,고 얘기하고 효정은 그에게 고이 간직한 예뻤던 자신의 첫사랑을 나즈막히 고백한다.

 

 

 

라디오헤드의 <Creep> , 여자애 입에 남아 있는 달큼한 담배 냄새, 발가락이 얼어붙을 것 같던 새벽의 추위, 이름 모를 벌레의 걸음걸이. 내 첫사랑은 그 여자애뿐 아니라 당시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모든 것을 포함한다. (가제본, p63) 인도에서 만난 구구절절 늘어놓은 효정의 첫사랑보다 두 장도 채 안되는 성재의 첫사랑이 더 깊이 다가왔던 것은 아마도 동질감이라는 까닭이었으리라. 내 첫사랑이 그 친구뿐만 아니라 나와 그 친구를 둘러싸고 있던 동아리, 도서관, 문학제 준비때문에 함께 내뱉은 한숨, 끝난 후의 희열, 그때 게걸스레 먹은 자장면 한 그릇과 소주 한 잔으로 알딸딸하여 비척걸음을 걷던 공원…이었던 것처럼. 여기까지 생각해냈을 때, 갑자기 초점이 사라져버린 눈동자는 안식처를 찾지 못해 헤메고 있었고, 사고회로는 차단되어 아무런 생각을 할 수도 없었다. 그때가 그리운 것이 아니라 그때의 시간이 이렇게 예쁜 추억으로 자리잡고 있을 줄은 몰랐기에. 책은 이렇게 그저 단어들의 집합으로 문장을 이루어내 독자와의 교감을 이루고 있었다. 책 속의 등장인물만의 오롯한 이야기가 아니라.

 

 

 

전아리 작가는 「팬이야」 이후 「김종욱 찾기」로 내게 다시 다가왔는데, 아무래도 이미지가 이제 완연하게 굳혀져가는 것이 눈에 보인다. 그녀의 책은 가볍고 유쾌하여 보는 내내 웃음을 자아낸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딱 거기까지다. 나는 아직도 어떠한 교훈도 얻어낼 수 없는 책이 낯설뿐더러, 이렇게 유쾌하기만 한 책을 읽고 나면 왠지 허한 느낌마저 이는 까닭에 다른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 것만 같은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우연처럼 만나 인연이 된 효정과 성재를 떠올리고 있노라니 어느새 걸린 미소가 하루종일 떠나질 않는다. 그래, 이거면 됐지. 하하하 - 오랜만에 유쾌한 다른 이들의 연애소설을 훔쳐다보았다. 그들의 행복 바이러스가 나에게도 옮겨붙기를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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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란
공선옥 지음 / 뿔(웅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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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을 것 같은 11월이었다. 연속되는 최악인 책들에 대해 켜켜이 쌓여가는 책에 대한 거부감은 좀체 풀릴 기색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영란을 집기까지에는 무척이나 오랜 시간이 지나야만 했음을_ 이 책을 집는 그 순간에도 내려놓아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를 수십번도 고민했음을 고백한다. 더 이상은 책에 실망하고 싶지 않았고, 즐비하게 늘어서있는 활자들에 배신감을 느껴 그것들을 발로 쿵쿵 밟아 땅에 파묻고 싶지 않았다. 11월 내내 내가 가진 표정들 중 가장 추악한 인상을 쓰는 얼굴과 좋지 못한 기분으로 책을 읽어왔다. 안되겠다 싶었다. 내 마음을 동요할 수 있게 만드는 그런 책을 읽고 싶었다. 내가 가진 책 중 나의 마음을 동요하게 만드는 책이 없을리가 없었다. 책장에서 할레드 호세이니의 '연을 쫓는 아이'를 한 손으로 움켜 쥐었다가 놓기를 반복했다. 책이 읽히지 않는다는 이유로, 눈물이 가득찬 마음으로 하산의 아픔을 위로해줄 자신이 없었다. 당장이라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책을 읽고는 싶은데 어떠한 판가름이 서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다음 책이 나에게 어떤 기분을 안겨줄지 이제 덜컥 겁부터 나는 마음때문에 「영란」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책을 집으면서도 안절부절하여 첫 장을 쉽사리 펼치지 못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강구책이라는 것이 책에 대해 살펴보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이 아무리 공들여 쓴 서평이라 할지라도 책을 읽지 않은 나에게 오롯이 와닿을리 없었다. 분명한 것은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렸다는 것 말고 내가 기억하는 것은 그 무엇도 없다. 내가 아직 읽지 않은 책이니 어떤 평도 믿을 수 없고, 믿고 싶지 않아 그저 겉만 걸신 들린 듯 핥아댔다. 혹, 그 속까지 제대로 맛보았다 하였더라도 그것들은 이미 내 미각에서 지워졌으리라.

 

 

 

 

정섭은 자신이 그 여자를 생각하는 마음의 종류가 어떤 것인지를 알고 있었다. 그것은 눈물이라는 수맥이었다. 서로 다른 곳에서 생성된 눈물길이 통하고 있어서였다. 그것은 그러니까, 예기치 않은 순간에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파인 가슴이 만들어낸 셈이었다. 그 사람들은 살아 있는 동안, 그 눈물샘에서 솟아나는 눈물을 먹고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 시작된 셈이다. (p69)

 

영란은 아니, 후에 목포에서 영란으로 불리는 그녀는 아이와 남편을 가슴에 묻고 빵과 막걸리로 끼니를 떼우며 억지로 사는 듯한 모습은 독자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남편의 출판사에서 책을 낸 정섭에게 인세를 주기 위해 연락을 하게 되지만, 정작 정섭이 그런 그녀를 딱하게 여겨 “막걸리 말고 빵 말고 밥을, 따뜻한 밥을 먹읍시다.”라며 그녀를 회유한다. 둘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 온기를 공유한다. 여기서 ‘온기’라는 것이 ‘사랑’이라고 오인하면 곤란하다. 내내 가족의 빈자리를 메꾸지 못하고 혼자였던 그들에게 따뜻한 온기를 전해주었다고, 나는 그렇게 표현하고 싶다. 정섭은 친구의 부음에 목포에 가야하는 상황에서 그녀를 빤히 쳐다보며 어쩌실래요? 라고 물어오고 그렇게 그녀와 함께 동행하게 된다. 그녀와 그가 목포로 향하는 기차의 뒷자석에서 나도 그들과 함께 호흡하고 있었다는 것. ‘아니, 도대체 뭘 믿고?’라는 생각은 잠시 접어둔 채로.

 

 

 

 

'변명의 여지가 없는 상태'에 있는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옹색스러울 수 있는지를 알지 못했고 헤어리지 못했고 헤아릴 필요가 없다고까지 여겼다. 그리고자신이 그런 처지에 놓인 것이 분명한 지금, 울지도 못하고 웃지도 못하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또 다른 자신에게 가만히 말을 걸어본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내가 나를 용서할 수 있기를. 내가 나를 부디 저주하지는 않기를. (p105)

 

나의 ‘영란’이라는 이 책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끝내야겠다,고 혼자 생각하며 큭큭, 웃어본다. 책의 호불호가 갈리는 이유는 대체 무얼까. 그곳 지방이 아닌 사람은 알아듣지 못하는 사투리? 잔잔함을 가장한 지루함? 그녀와 그의 시점 처리에서의 혼란스러움? 답답한 전개? 그 중 이유로 댈만한 것은 그 무엇도 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혹자들의 서평을 살펴보면 이 책에서 가장 많은 불평·불만은 단연 사투리였다. 허나, 단지 그 이유만으로 이 책의 매력을 단박에 떨어뜨리기에는 안타깝다_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비단 나뿐일까. 하긴, 개개인이 느끼는 것에는 차이가 있는데, 내 주관적인 감정을 앞세워 설명하는 것 또한 부질없다고 생각된다. 작가는 슬픔에 등지고 앉지 말고 슬픔과 마주하라고, 그 슬픔을 꺼내서 달래주라고 이르며 그것을 영란이라는 인물을 통해 눈 앞에 놓아주고 있는 셈이다. 그 '영란'의 모습에서 나는 신경숙 작가의 「기차는 7시에 떠나네」에서의 '하진'과 「외딴 방」에서의 '나'를 만났다. 전혀 다른 분위기 속에서 그려내는 슬픔을 마주하는 이들이 애잔하지만 결국은 슬픔을 딛고 섰다는 것이 기특하여 - 정작 나는 그러지못하는 주제에 - 벌어진 입술 사이로 미소가 촘촘하게 배어나온다. 이 책은 그간 나의 비루한 독서의 간극을 채워주기에 적역이었다고 생각하며, 그녀의 다음 작품을 기다린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를 읽고 그녀의 글이 좋다_라고 생각했던 적 없었고,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도 그런 마음이 든 적 있노라고 당당히 말할 순 없지만, 어느 순간부터엔가 그녀의 매력에 파고들었다는 것 만큼은 자명하다. 고마워요, 공선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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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마디 - 조안의 아주 특별한 이야기
조안 지음 / 세종미디어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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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본래 유명세를 벗하여 출간되는 책들은 구태여 손을 뻗어 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여 손길 한번, 눈길 한번 주지 않을 뿐더러, 도리어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 다들 잘 알고 있는 이외수, 타블로, 최강희, 배두나, 차인표, 소지섭…, 의 책들 또한 내게 있어서는 그저 책이 아닌 그들의 위상을 높여줄 만한 ‘하나의 도구’라고 아직도 생각하고 있는 한 사람이다. 솔직히 말해서 ‘배두나의 사진집’은 도대체 어떤 종류의 책으로 분류가 되는 것이고, 정혜영, 션의‘오늘 더 사랑해’라던가, 가장 최근 발매된 소지섭의 ‘소지섭의 길’이라는 것이 누구나 다 아는 정혜영과 소지섭이라는 브랜드를 떼고 - 특히 사진이 곁들여져 있는 책들을 말한다면- 서점에 내놓는다면 지금같은 사랑을 받을 수 있느냐,가 나로서는 그들의 책을 손에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내치는 것에 있어서 굉장히 큰 이유가 되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조안이 낸 장르를 알 수 없는 ‘단 한마디’라는 책을 보는 순간, 한번쯤은 읽어보고 싶다_라는 느낌에 사로잡혔지,싶다. 아마 4차원이라는 별명을 지닌 그녀가 그린 일러스트와 써낸 동화같은 글이, 아니 판타지 소설이라 불리우는 이 책이 나에겐 어떤 느낌으로 와닿을까, 싶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연예인이 쓴 글,이라는 색안경을 끼지 않고 잘 읽을 수 있을까? 라는 궁금증을 안고서 책을 읽기에는 여전히 무리가 있었다.

 

 

 

그녀의 글을 정의하고 분석하는 것 자체가 부질없다. 괜히, 일부러, 구태여 머리 아픈 짓을 할 필요는 없었다. 어리석은 행동이니까. 나는 그녀의 환상적이고 기발한 세계에 초대받은 ‘손님’이었다. 그녀가 베푸는 잔치를 내 나름대로 즐기면 될 일이었다. 독자 여러분들도 그녀가 벌이는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이다. 그녀가 요리해서 내놓은. 열여섯 가지 독특한 이야기를 신나게 맛보고 즐겼으면 한다. - 정수현 작가

 

그렇다. 그녀는 전직 작가가 아닐뿐더러, 자신의 상상력만을 의지하여 써낸 글이기에 그것을 정의하고 분석하는 것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나도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감을 표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전작 작가가 아닌 책을 읽을 때, 직업이 본디 ~이기에,라는 부제를 먼저 떼고 시작하는게 맞지 않나 싶다. 전작 작가가 아니기에 그 책을 좀 더 낮춰서 봐야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전작 작가의 작품과 같은 값을 주고 책을 사기에는 아깝지 않나,라는 생각과 그런 것까지 감안하며 이 책을 읽을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연예인이 썼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라는 생각이 드는 까닭이 그곳에 있다. 나는 이 책을 처음에 조안이라는 사람이 썼다,라는 것 때문에 호기를 가졌지만, 읽을 때 만큼은 그녀가 연예인이기 때문에,가 아니라 하나의 작가의 글로 보았기에 이런 말을 할 자격 정도는 독자라는 이름으로 충분히 주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녀의 머릿 속에서 상상하는 것들 중 나는 한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이야기들이 참 많았다,라고 말하고 있다. ‘심장이 점점 커져서 질질 끌고 다니는 소년, 심장이 사라져 가슴이 뻥 뚫린 소년, 열쇠로 가득 찬 심장을 가지고 있는 소년, 진실의 혀·마법의 혀·독설의 혀를 가지고 있는 소년, 생명을 연장시키는 알약을 손에 쥐려는 남자, 로또 당첨번호를 미리보는 소녀, 태어나서 단 한 마디밖에 할 수 없는 아이, 손바닥에 날개가 생긴 소년, 손에 눈물주머니를 가지고 있는 소년, 소년에게 심장을 주기 위해 눈물을 모으는 소녀,젖처럼 뿌옇고 하얀 눈물을 흘리는 소녀, 개똥벌레가 된 소년, 바다에서 태어났다고 믿는 소년, 화상을 입은 엄마와 소년을 일컫는 빨간 모자, 그림자가 된 소년, 그림자를 사랑한 소년’이라는 열여섯 편의 이야기 중 가슴에 와닿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허무맹랑하여 ‘이게 뭐야?’라며 짜증섞인 말투로 하나의 이야기를 덮은 적도 더러 있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존중하지 못해서도 있었지만, 문제는 마무리였다. 혹자는 여운이 남는다,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것은 여운을 운운할 것이 아니라 그녀 자신도 이야기를 끝내지 못했던, 덜 다듬어진 글은 그녀의 한계였다,라는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을 내비쳐본다. 여운이라는 말이 이렇게도 쓰일 수 있구나,라는 생각에 풉,하고 웃음이 터져나온다. 그녀가 벌이는 잔치에 초대된 손님인 나는 아직도 제대로 된 음식은 맛보지 못하고 밑반찬만 먹은 기분에 여전히 허기가 져 입맛만 다실 뿐이다. 단 한 편이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된 이야기를 맛보고 싶은 나같은 독자에게는 조금 짜증섞인 투정을 들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가지 더 짚자면, 열여섯 편의 이야기는 어두운 내용 뿐이었다. 그 열여섯편을 하나로 이을 끈은 애초에 부재된 상태였지만, 혹시나 싶어_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늘어지다 보니, 그것 또한 부질없는 짓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사실 이야기라는 것은 자신의 프레임에 갇혀 자신만이 알 수 있는 암호를 쓰는 것이 아니라, 책으로 낸 이상 그것을 읽는 독자들을 간과하면서까지 자신의 세계를 고집해서는 발치에 있는 독자까지 끌어당겨 안기엔 무리가 있을 성 싶다. 내내 어두운 터널 속을 느릿느릿 지나가다가 마지막 책장을 덮은 순간에야 비로소 터널을 빠져나온 듯 생각되던 이 책을 나는 추천까지 하고 싶을 정도의 책은 아니었다,라는 정도의 말로 이 책에 대한 평은 이제 그만 끝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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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마지막 장미
온다 리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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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보낸다,는 말을 하는 것조차 민망하게 짧았던 가을을 보내고 이제 겨우 겨울이란 녀석을 두 팔로 끌어안아 맞이하였는데, ‘여름’이라는 제목을 떡하니 써놓은 이 책을 집어들다니, 풉. 나도 모르게 낮은 실소를 터뜨린다. 그간 읽히지 않던 책들을 손아귀에 거머쥐고 있자니 얼마나 짜증이 솟구쳐올랐는지 아무도 모를게다. 하지만 여기에 덤을 얹어주다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온다 리쿠라는 작가는 익히 들어 알고 있고, 「도미노」라는 작품을 통해 이미 한번 접한 바 있으나,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이내 매몰차게 돌아서 다음 작품을 기약하겠다,했었고 그것이 이 작품이었다. 읽기 전부터 호불호가 갈리는 이 작품을 손에 들고 읽으려니 땀이 베어나오는 것을 슥슥 닦고서야 심호흡을 한다. 첫 장은 그렇게 힘겹게 열렸다.

 

 

 

 

이번 작품의 제목인 ‘여름의 마지막 장미(The last rose of summer)’는 19세기의 바이올리니스트 하인리히 빌헬름 에른스트가 만든 곡인데, 한 가지 테마가 다양하게 변주되는 곡이에요. 그래서 소설도 그 곡의 이미지를 따라 제1변주에서 제6변주까지 이어집니다. 역시 장이 바뀔 때마다 같은 테마가 반복되면서 점점 변화해 가는 이야기죠. _ 온다 리쿠 인터뷰 中

 

제목 속의 여름,이라는 단어에 걸맞지 않게 소설 속의 계절은 눈이 오고 코트를 입고 있으니 겨울을 뜻함을 오래지 않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세 자매의 초대를 받아 간 호텔. 그곳에서 일어난 일들’이라는 문장이 이 작품을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제 1 변주_미나토 도키미쓰, 제 2 변주_다도코로 사키, 제 3 변주_사와타리 류스케, 제 4 변주_아마치 시게유키,제 5 변주_사와타리 사쿠라코,제 6 변주_다쓰요시 아키라’라는 순으로 뒤죽박죽 변주가 시작되었다. 아니, 뒤죽박죽이 아니다. 한 변주가 끝나면 그 다음 변주가 이어서 시작하는 그런 변주인게다. 하지만, 죽은 사람이 그 다음 변주에서 등장한다니, 이 혼동을 어찌 부여잡고 읽을 수 있겠는가,싶다. 골치가 아프다. 맞춰보라는 식인가, 우선 무작정 읽는다. 그러나 책 속의 「지난 해 마리앙바드에서」라는 영화의 인용문들은 쓰잘떼기없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하기에 읽는 내내 불편한 상태를 유지해야만 했다. 미칠 노릇이다. 그래도, 이것은 미스테리니까, 그렇기 때문에, 혹여나 복선이 있을까 싶어 읽지만, 아…허무하다. 그것은 오랜만에 외출하는 날에 차려입은 옷에 묻은 김치국물이었던 셈이다. 마지막 장을 덮고 다른 리뷰를 찾아보기에 발동이 걸렸다. 그것이 이 책을 이끌어나간다고? 도대체 어떤 부분이? 게다가 무엇보다 이 책에 난색을 표하고 싶은 점은 내가 ‘바보’가 된 기분이 들었다는 것인데, 토론 대회에서 한창 열 올리고 있는데 맥없이 끝난 것과 동시에 아무런 결과를 통보해주지 않아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그런 좋지 못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는 점이다. 맥없이 끝나버리는 이야기에 내가 잘못 읽은 거겠지,를 연발하며 열페이지 가량을 되돌려 읽었으나 헛물킨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진실은 거짓에 섞어야 한다. 그래야 더욱 진실다워 보인다. 또 진실은 농담에 섞어야 한다. 그래야 얘기가 더욱 탄탄해진다. (p244) , 정말로, 정말로 이치코씨는 그 얘기를 할 작정이다. 진실은 허구 속에, 진실은 거짓말 속에. 진실은 농담 속에. 지금 그녀는 진실을 허구 속에 담아 이야기하려 하고 있다. (p261)

 

제 4변주부터 재미조차 찾을 수 없던 나는, 결국은 범인잡기에 포기하고, 이 책에서 족히 스무 번은 넘게 나왔던 ‘진실’이라는 단어가 주는 힌트를 얻고 싶었던 것뿐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속 시원히 말을 해달라고, 옆에 있었더라면 귀가 떨어져나가라 소리를 질렀을런지도 모르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도대체 그 호텔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겐지. 하지만 이미 진실은 휘발된 상태, 그러니까 애초에 진실따위는 없었던 게다. 그렇다면 작가는 독자를 농락한겐가. 아니, 아니다. 내가 놓친 거겠지,라고 생각하고 싶다. 나는 온다 리쿠 마니아들이 그렇게도 좋다 했던 분위기고 뭐고를 파악할 타이밍도 놓친 채, 시도때도 없이 나오는 한 영화의 인용문으로 인해 몰입성마저도 떨어진 나는 더욱 더 미칠 듯한 슬럼프가 나를 감싸고 있음을 이겨낼 자신이 없다. 욕지거리가 나오는 것을 간신히 꾹꾹 눌러 참고는 다 읽은 책을 책상에 휙, 집어 던진다. 내가 지금 어떤 상태에서 어떤 책을 읽어야하는지 아무 것도, 정말이지 아무 것도 모르겠다. 이는 모두 그간의 황폐해진 독서의 결말인 것이다. 안되겠다. 조금은 마음을 다스려야겠다,고 생각하고 머지않아 한국 작가의 책을 읽어야지,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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