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분야의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그 유명했던 박범신의 ‘은교’도 아직 접하기 전이에요. 아이러니하게도 유명세를 타면 조금 거부감이 이는 까닭일까요. 비즈니스라는 단어와 표지는 그 조화될 수 없는 하나의 아이러니한 작품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도 듭니다만, 오묘함이 함께 스며들어있는 듯함도 함께 느끼게 되네요. 책 소개를 언뜻 보니, 현 자본주의를 꿰뚫고 있는 듯도 하네요.

  

 

 

 

이 책의 소개를 처음 보았을 때, 혹시 ‘여행서’가 아닐까, 생각했네요. 저자가 여행한 곳을 토대로 쓴 소설이니, 그간 제가 읽었던 소설과는 어쩌면 조금은 낯선 기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봐요. 자전적 소설이라고 보아야하나요, 혹은…. 그것은 읽고 판단할 문제겠지요.

 

 

 

 

 

조정래님의 신간이 한번 더 나왔네요. 요즘 조정래 작가님은 책을 계속해서 내시는 것 같아요. 허수아비춤, 불놀이에 이어 - 대장경까지. 정치의 현주소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음은 다른 이들의 서평에서 언뜻 본 적이 있는데 -실은 아주 많이요- 그 분의 작품은 읽어보지도 않은 주제에, 어렵다고만 느꼈던 이유인가요. 이 책은 대장경이 만들어진 이유보다는 그 뒤에 숨은 뜻을 말하고 싶어한다 _라는 글을 보게 되서인지, 역사를 남들 앞에 나서서 말하지는 못하지만 관심을 갖고 있는 저에게는 무척이나 흥미로운 책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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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01 2011-01-06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장경은 재간 아닌가요? 7번 국도도 새롭게 쓴 재간이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하늘보리 2011-01-06 13:36   좋아요 0 | URL
둘 모두 재간 맞습니다. 하지만 재간되었다는 이유로 같은 책이라고는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내용자체는 같겠지만, 추가되고 삭제된 부분은 분명 있을테니까요 -
 
밑줄 긋는 여자 - 떠남과 돌아옴, 출장길에서 마주친 책이야기
성수선 지음 / 엘도라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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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밑줄 긋는 여자라 - 나도 한때는 책을 읽을 때 준비물이 포스트잇이 아닌 노란색 색연필이었던 적이 있었지, 하며 책장 속의 책을 뒤적거려보지만, 전부 포스트잇 플래그가 붙어 있는 책이나 페이지만 적어둔 책이 꽤 된다. 밑줄이 그어있는 책은 2007년 즈음에 읽었던 이미나의 ‘그 남자 그 여자’ 하나 뿐이었다. 밑줄 그어놓은 그 책을 보니 내가 왜 이런 곳에 밑줄에… 하며 낄낄 웃고 있었는데 그때는 마음에 와닿았던 것이 지금은 왜? 라고 반문하고 있으니 그것은 아마 내가 전과 같은 상황이 아니라는 증거겠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그녀를 따라 나도 색연필을 손에 꼬옥 쥐어본다. 하지만 난 이 책 어디에도 밑줄을 긋지 않았다. 그렇다고 포스트잇 플래그를 붙여놓지도, 포스트잇에 페이지를 써놓은 것도 아니다. 그것은 이 책에서 얻을 것이 하나 없었음이 아니라, 후에 한번 더 읽으며 그녀와 공유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그녀가 읽은 책을 나는 부끄럽게 단 한 권,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이 책 뿐이었으니. 그때, 그녀와 내가 나눈 교감은 작가와 독자가 나누는 교감이 아니라, 작가도 침범할 수 없는 같은 책을 읽은 독자와 독자의 교감인 것이라고 난 감히 이야기할 수 있다.

 

 

 

저자는 앞서 프롤로그(지친 영혼에도 보습이 필요하다)에서 나는 회사원이지만 나의 책읽기는 ‘생산적인 책읽기’ ‘전략적인 책읽기’와는 거리가 멀다. 출세를 하려고 책을 읽은 것도, 실무에 필요한 책을 골라서 읽은 것도 아니다. 그저 책이 좋아서, 책을 읽을 때 행복해서 책을 읽었다. 라는 말은 그녀와 나의 책을 읽는 이유가 같다는 하나로 깊은 동질감을 표하기에 충분하다 생각하며 혀로 마른 입술을 적셨다. 위에서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라는 책을 이야기했는데, 그 책은 작가 공지영이 딸 위녕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이다. 하지만 그것은 다르게 이야기해서 독서에세이,라고 칭해도 될 것도 같다. 물론, 딸에게 보내는 편지의 형식에서 벗어나진 않지만, 공지영은 그곳에서 자신이 읽었던 수많은 책들을 깨워 딸에게 일러주는 식이다. 그러고보면 저자의 「밑줄 긋는 여자」는 ‘독서 일기’라는 점만 다를 뿐, 그와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독서 일기’라니. 그것은 박완서의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나 윤대녕의 「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의 후반에서 나왔던 감상문과는 조금 다른 형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저자의 느낀점이 아니라 실생활을 살아가며 그곳에서 책 구절을 끼워맞추는 식이랄까. 어쨌든 내게는 그동안의 틀에서 벗어난 독서에서 새로운 경험이 되는 신세계를 달착지근한 양념을 버무려 맛보여준게다. 나는 이 책을 덮고는 수첩을 뒤적거리고 집에 있는 책들을 하나씩 깨웠다.

 

 

 

그리고는 수선이의 도서관이라는 온라인 서재(http://www.kleinsusun.com)가 소개되어 있어, 그곳에 들어갔는데 실은 실망을 금치 못했음은 책과는 좀 다른 그녀의 문체랄까. 그냥 자신이 기억하기 위해 쓴 말 그대로 독서 일기기에 내가 가타부타 이야기 할 것이 못되지만 책과는 다른 느낌이었달까. 독서 일기가 그녀의 온라인 서재에 담겨있는 그것이라면 내가 쓰는 서평과 다를 것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하는 생각에 조금은 의아했지만, 그래도 내가 읽은 것은 그것이 아닌 책이니 그나마 다행,이라며 안도의 숨을 내쉰다. 난 아사다 지로를 좋아한다는 그녀에게 ‘수준이 그게 뭐냐?’며 교수가 핀잔을 주기에 화가 난 그녀도 대들었다고 한다. 나에게도 좋지 않게 말하면 발끈하던, 작가가 있었다. 기욤 뮈소 - 낄낄낄. 한 편, 두 편을 읽고 세 편 - 그의 네 권째 책을 들었는데 아차, 싶었었다. 틀에 박혀있는 사람이구나 - 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 그런데 한 친구가 나에게 그 사람 책은 다 똑같아.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음에도 좋지 않은 말이 튀어나오더라 그 말이다. 물론, 지금은 그렇게까지 예찬하거나 그의 작품이 나오는 즉시 사재끼거나 그러진 않지만, 그럼에도 난 그의 책을 -읽었던 책에 한해서- 아직 좋아한다. 하지만 그 다음의 작품까지도 좋아할 수 있느냐 물으면 그건 또 아닐 것 같다. 참 아이러니다. 큭큭. 어쨌든 나에게도 그런 작가가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책의 중간 즈음에 “밥도 안 되고 돈도 안 되는 소설을 왜 읽어?“어차피 다 지어낸 얘기, 읽어서 뭐 해?” “괜히 읽어서 이 생각 저 생각 많아지면 피곤하기만 해.” 라는 소리를 듣곤 한다고 작가는 털어놓는다. 실은 나도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자주 하곤 했었다. 물론 지금은 책을 읽을라치면 소설 먼저 찾게 되는 내가 전에는 그런 말을 했었다는 것에 의아해지기도 하지만, 한때는 나도 그런 감정고갈 상태의 말을 자주 했었다는 것. 그러고보면 예전에 무뚝뚝한 표정 때문에 가장 많이 들은 말 중 하나가 “넌 감정이 메말랐어.” 라는 말이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어떤 특정한 터닝 포인트가 있었다기보다는 어쩌면 책이 한 몫 했을 수도 있겠다 싶은 것이 옆에 있는 책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과시하게 된다. 바로 어제, 어떠한 이유때문에 당분간은 인문·예술만을 읽어야 겠다고 말하는 내게 그가 했던 말은 ”맨 밥만 먹는 기분이겠다”였다. 그래서 그때 갑자기 탁, 하고 드는 생각이 “소설은 고기 반찬이지.”라는 말이었다. 아 - 그 말보다 더 딱 들어맞는 말이 어디있단 말인가. 쿡쿡. 책에서 저자는 소설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를 들고 있는데, 소설·에세이·인문·예술·자기계발이라는 장르를 떠나서 나는 그저 나에게 맞는 책이고, 어떤 책이든 간에 당연히 갖추어야 할 재미가 있으니까 읽을 뿐, 그것에 어떤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참 쓸데없는 일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무리는 아닐 터다. 설득을 한다고 하여 읽을 사람들이라면 얼마나 좋을꼬, 하지만 언젠가 자신을 흔들어 소설에 손을 집게 두는 것이 어쩌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적어도 나는 그리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또 읽지 않으면 어떠한가. 그런 사람은 그렇게 살게 둬야하는 것이다. 자는 사람을 억지로 흔들어 깨울 필요는 없는 것이다.

 

나는 오늘도 여전히 ‘고기 반찬’인 소설을 읽고, 그곳에서 메마른 감성들을 다독이며, 그들과 함께 발맞추어 동행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그들과의 동행에서 벗어나서 현실을 직시하고, 가끔 그들과 함께 걸었던 그 길을 그리워하겠지. 그리고 또 새로운 이들을 만나고, 또 친구가 되어서 - 난 그렇게 소설을 뭣하러 읽느냐,라고 의문점을 남기는 이들과는 다르게 하나의 삶을 여러 각도로 바라보며 책에서 다른 이가 살고 있는 또 다른 삶의 모습을 공유하고, 때로는 그 속에서 예기치 않게 위로도 받고, 때로는 동질감을 표하며 공감도 하며, 그렇게 재미나게 살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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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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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명 작가 를 처음 만나게 된 것은 「천년의 금서」의 덕택이다. 혹자가 그 작품은 다른 작품들에 비해 실망스러운 작품이라고 말하는 것을 나는 서평을 통해 만났었더랬다. 하지만 나는 그의 작품을 읽은 것은 그것 하나뿐이었으니 뭐 어떻다 말할 처지가 아니었고, 도리어 실망스럽다던 그 작품에 나는 풍덩 빠져 학원이 끝나고 집에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에 그 책을 읽다가 무려 네 번의 버스를 놓칠 정도로 무척이나 흥미있게 읽었었던 기억에 김진명이라는 작가에 호기를 품지 않을 수 없었다. 한(韓)씨 성을 가진 이가 大韓民國이라는 단어 중 ‘韓’의 어원에 의문을 품고 시작한 이야기가 그에 따른 어마어마한 진실을 내놓기까지의 그 과정이 흥미롭게 읽혔는데, 사이사이 지루하다 할 틈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 내가 이번에 읽은 「1026」을 들기까지 딱 일년이 걸렸다. 읽던 책을 사무실에 놓고 온 것이 이 책을 생각보다 빨리 손에 들게 만들었다. 금세라도 엎어져 잘 듯할 정도로 피곤했기에, 자기 전 조금만 읽는다는 것이 푹 빠져 읽게 된 것은 물론이거니와, 졸음이 가득한 눈에 활력을 줄 정도였으며, 심지어 그 다음 날은 읽고 있던 책을 제치고서라도 주욱 읽고 싶은 심정이었음은 내가 이 책에 얼마나 빠져있었던가를 알려주는 것이 된다.

 

 

 

“바…… 박 대통령…… 비밀…… 10·26…… 비밀을…… 내가…… 수연…… 하……하……하우스…… 으……으……헉.” 수연의 부탁으로 전화를 대신 받게 된 경훈은 제럴드 현이 남긴 위와 같은 말을 유언을 단서로 모순으로 점철된 10·26의 실상을 파헤친다,라는 것이 내가 이 책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간략한 줄거리다. 1979년 10월 26일. 내가 태동하기 약 10년 전, 그러니까 나와는 동떨어진 시대에 일어난 사건이다. 하지만 시간이 그렇게 흘렀음에도 아직도 확실하게 매듭지어지지 않은 이야기. 그래서 그때의 그 사건에 궁금증을 품은 이가 자신이 생각하는 가설로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했다. 이야기의 발단은 결코 특이하거나 희귀하지 않고, 평범하기 이를 데 없다. 그렇기에 말도 안된다며 발끈하거나 그럴 거리도 없음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하지만 좀 아쉽다,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경훈과 나는 분명 동등선에서 출발했고, 모든 대화 내용도 나도 함께 들었음에도, 그가 변호사라는 직업 탓인지, 내가 그때의 정치 상황을 제대로 꿰뚫지 못했던 탓이 컸던 것인지 -혹은 그 둘 다 인 것인지도- 두뇌 회전이 빠른 그가 문제를 다 풀어버려서 그것을 공유하기 보다는 아, 그렇구나 - 라며 자연스레 관찰자가 되버린다는 것. 그리고 직접 발로 뛰어 알아내는 것 보다는 대화를 통해 알아내는 것이 더 많았던지라 아, 이거 생각보다 일이 빨리 풀리겠는데 - 했던 것. 풀릴 듯, 풀릴 듯 하면서도 풀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이야기가 꼬이느냐, 또 그것도 아니다. 이야기는 절대 꼬이지 않는다. 그저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면 자연스레 그에 따른 또 다른 의문이 생기는 것, 그것뿐이다. 그것은 답답하다고 표현하기보다는 도리어 흥미롭다. 하지만 국가의 몇급비밀‘씩’이나 되는 것을 변호사라는 이유만으로 툭 - 털어놓을 수 있다는 것은 조금 의아스럽기도 했는데, 그로 인해 우리는 이 책에서 조금 더 많은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는 사실에 그나마 위안이 되더란 것이다. ‘10·26’ 드디어 그 실루엣을 공개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죽음, 그것에 관하여 의문을 품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다름아닌 나였다. 나는 고등학교때 문과였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생각도 나지 않는 일사부재리의 원칙, 미란다의 원칙, 헌법 따위를 달달 외우기만 했을 뿐, 한국근현대사에 대해서는 초,중학교를 다니며 배운 국사가 전부였다. 그래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임기 중 김재규에 시해되었다,라고만 알고 있었지 - 어떤 연유로 그랬을지, 그 배후엔 누가 있었을지, 심지어 김재규, 그는 어떤 이인지 직접 찾아본 적도 없거니와, 궁금해 해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음이 이토록 얼굴이 화끈거리도록 부끄럽다. 그것은 스무 살하고도 몇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실재와 허구가 적당히 버무려진 「1026」이라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이것을 전부 실재라고 믿어버릴지도 모르는 나 때문에, 그때의 사건과 관련된 기사들을 검색하여 찾아보고 있는 내가 보인다.

 

 

 

마지막 부분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등장하며 햇볕정책이 계속 나오는데,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이 일어나기 전인 작년에 이 책을 읽었다면 햇볕정책의 긍정적인 면들에 대해 조금은 고개를 주억거릴 수도 있었을 것도 같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라면야  어디 그것을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말이다. 책에서 북한은 우리의 동포이고, 혈연이기에 “리 국민은 우리의 동의 없이 미국이 일방적으로북한을 공격했을 때 절대로 미국의 편에 서서 핏줄 간의 전쟁을 치르지는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하지만, 지금은 어디 그런가. 초,중,고등학교 때에는 분명 북한은 우리의 형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배웠던 나는 올해(2010) 끄트머리에 와서 국방백서에 ‘북한정권·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고 다시 정정하여 명기되는 것을 지켜보는 현세에 있다. 아, 통한스럽다.

 

 

 

나는 아마 작가의 또 다른 책을 읽게 된다면 -그럴테지만- 그저 김진명 작가의 작품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며 기분 좋게 읽을 테다. 우선 그의 작품은 강하고, 묵직하다. 그리고 과감하다. 하지만 마무리는 그저 아쉬움만 남긴다. 퇴보하는 경향이 있달까. 점진적인 흐름을 꾀하여 결말을 지을 수도 있었을텐데, 작가의 늘 급진적으로 마무리되는 결말은 아쉽다. 서평을 마무리하기에 앞서 - 여담이지만, 두어 달 전 내 방에서 책장 앞에 서서 기웃기웃거리는 아빠를 보았다. 아빠가 나가시고 나는 백권도 훨씬 넘는 책들을 보았는데 아빠에게 무엇 하나 떳떳하게 추천해드릴 수 있는 책이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더란 거다. 시시콜콜한 소설책을 추천해드리기엔 석연치 않은 마음과 또 한편으로는 속에서 꼬물꼬물거리는 왠지 모를 부끄러움 때문에 결국은 책만 뚫어져라 쳐다볼 뿐, 어떤 책도 추천해드리지 못했던 것이 아직도 아쉬움으로 남아있는데, 이 책 만큼은 웃으면서 읽어보시라고 권해드릴 수 있겠다,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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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고백
치트라 바네르지 디바카루니 지음, 이진 옮김 / 뿔(웅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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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고백’이라는 단어가 내게 주는 감정은 뺨에 홍조를 띠게 만드는 것과 같은 류의 기분좋음을 안겨준다. 나에게 있어 ‘고백’이라는 단어가 풍기는 것이 자백, 실토, 이실직고와는 다른 류의 단어로 다가오기 때문이겠지. 이를테면 수줍은 아이의 “너를 좋아해.”와 같은 순수함을 상기시켰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눈에 들어온 표지가 내가 생각한 그것을 떠올리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 무엇보다 어두침침한 색의 조합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표지의 색으로 그 책을 판단하는 것에 무리수가 따른다는 것은 알지만 분홍빛깔이 웃도는 그런 이야기가 아님은 확실할 터. 한 소녀가 들판에서 무언가를 집고 있는 듯한 이 표지는 책장을 덮은 지금도 의아함을 감출 수가 없는데, 이 표지를 보고서 책의 이야기를 상상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닌 책과 무슨 연계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엉뚱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그 까닭이다. 책 제목 왼쪽 귀퉁이에 생의 마지막 순간 떠올릴 일생의 잊지 못할 기억들…… 인종과 국적을 초월한 인류의 위대한 이야기 여정이 시작된다! 라는 글귀를 시작으로 책을 읽는다. 하지만 난 이 책의 전체적인 구조를 잡기 위해서 7,80페이지라는 분량을 허비해야만 했는데, 챕터마다 시점이 다르다는 점이 한 몫 했겠지만, 요즘 나의 집중력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태도 예외일 수는 없을 것이다. 책을 파악한 순간부터 다시 첫 장을 들어서 보니, 아 - 그제서야 눈에 들어오고, 그제서야 눈이 그들을 알아보고 반응한다.

 

 

 

장소는 인도 영사관, 지진이 발생하는 바람에 건물 지하에 갇힌 9명이 있다. 그 극한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어둠 속에서 지치고 초췌한 얼굴로 공포에  떨며 매우 조금 남은 비상식량으로 목숨을 연명하며 지상에 있는 이들이 자신들을 찾아내어 구출해주길 바라는 것, 그것뿐이리라. 그러던 중 “각자 살아오면서 겪은 놀라운 사건 이야기를 해보면 어떨까요?” 라며 한 여대생이 제안하는데, 그런 게임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둥, 할 얘기가 없다는 둥, 이야기 같은 건 해본 적이 없다는 둥, 이야기를 잘 못한다는 둥 - 하는 불평·불만들을 무수히 쏟아내놓지만 “누구에게나 이야기는 있어요.” 라며 그 질문들을 제압한다. 이야기를 듣는 것에 있어서 규칙이 필요했는데 ‘끼어들지 않기, 질문하지 않기, 비판하지 않기, 한 사람의 이야기가 끝나면 필요에 따라 휴식시간 갖기’ ㅡ 하나의 책을 통해 하나도, 둘도 아닌 무려 아홉 명의 삶을 엿볼 수 있다면, 굉장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들의 각기 다른 이야기는 독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삶에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라는 것이 메인 요리를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해 밑반찬을 깔아주는 것이 있는 것, - 그것은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 구성 중 하나인데, 이를 어쩌나, 이 책은 반대다. 메인 요리가 지진이라고 한다면, 밑반찬은 그들의 이야기인데 - 그러기엔 메인 요리가 너무 허무맹랑하고 지지부진하지 않은가. 아니, 달리 생각한다면 그들의 이야기인 아홉 가지의 메인 요리를 돋보이게 하려고 지진이라는 밑반찬을 깔았을지도 모르겠다. 아, 이제서야 마음이 조금 놓이는 것이 결국 내 마음은 그 의미로 받아들일 작정인가보다. 나는 그렇게 내 멋대로 이 책을 소화시키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이야기라, 이야기 - 내가 이 세상에 태동하기 시작한 이래로부터 이야기를 꺼내놓자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불분명하지만 적어도)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할 이야기를 떠올리려보니, 딱히 어떤 이야기를 해야하는가에 대한 막막함이 찬바람과 함께 내 몸을 휘감는다. 이제 생각해보면 내가 왜 어째서 그런 사소한 질문 앞에서 우뚝 멈추어섰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니까 나는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상상하여 그런 상황이 온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야만 하는 것인지, 그것에 집착하고 있는 꼴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나중에 죽기 전, 누군가에게 들려주어야 하는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 생각의 끝을 봐야겠다는 마음마저 들더란 것이다.

 

 

 

그래서 오랜 기간을 두고 생각한 끝에 내가 할 이야기는, 그 무엇도 아닌 내 자신에 대한 사과,였다. 내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고 누구보다 더, 누구보다 더,를 외치던 나와 - 실은 그것을 깨달은 지금부터라도 버려야 하겠지만, 그것을 버리는 순간부터 나는 사회에서 방황하는 한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점 또한 깊숙히 깨달아버렸음이 통한스럽다. 사회에서 박탈당하기 싫은 나의 처절함이지만, 그것을 후회스러워하는. 결국은 아이러니한, 양면성을 띤 고백이라는 게지.-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내 곁에 있을 그 사람에게 고마움을 전달하는 것. 그거면 된거다,싶은거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서 죽음을 앞둔 순간에 그들 이야기의 합일점을 찾아냈는데, 그것은 아물지 않은 상처였다. 그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써, 겉으로는 태연하게 살아가는 그들의 삶도 완전치는 못하다는 것을 깨달음과 동시에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를 주고 받는 것. 그것이었다. 아마, 이것이 이 책이 나에게 주고자 했던 깨달음이 아닐까, 하지만 난 이 책이 만족스럽지 못하다. 책을 읽기 전보다 읽은 후에 갈증이 나는 것이 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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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첫 번째 걷기 여행 - 머리를 비우고 마음을 다독이는
김연미 지음 / 나무수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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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여행이라는 분야에 있어 나라는 사람에 대해 간추리자면, 여행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먼저 여행가자,라고 말할 만큼 여행을 좋아하는 편도 아닌데, 아이러니하게 요즘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을 보면 마음 속에 황량한 바람이 계속해서 스며들고 있는가보다. 이럴 땐 걷는 게 최고지,하면서 시작한 것이라고는 그저 런닝머신 위에서만 걷는 것 뿐이다. 풉. 지금으로부터 3년 전, 그 무엇도 위로가 되지 못한 시절이 있었다. 그 어떤 이보다 찬란해야 했던 나였는데, 그런 내가 물을 먹어 빛을 잃은 하나의 전구와도 다를 바 없는 존재와도 같았으니 -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힘들 때 사람이 의지할 수 있는 거라고는 사람과 술. 그밖에 무엇이 있겠는가 말이다. 이리 써놓고 보니 이 서평이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과 다를 바가 뭐가 있나 싶겠다. 어찌됐든, 걷는 것은 꽤 매력이 있다. 전에는 버스를 타고 혹은 택시를 타고 다니던 길들을 이제는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이 나와 걸어서 가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는데, 걷는 동안 만큼은 오로지 나만의 시간이라는 점. 그 누구도 감히 나와 나의 소통에 끼어들 수 있는 간극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나는 슬픔이 마음 속을 찢어놓을 만큼 힘들 때, 고민이 머릿 속을 지배할 때 등등, 나는 한적한 골목 구석구석의 길을 혹은 소음이 섞인 도시의 길을 그렇게 걸었다. 하지만 십이월이 되니 찬 바람이 뼈 속에서 휭휭 불어대고, 그로 인해 걸어야겠다는 의지는 또 한 풀 꺾이고 내년을 기약하는 내가 보임에 허허 웃어버린다.

 

 

 

  

‘서울 남산 산책로, 경기 용인 한택식물원 꽃길, 경남 하동 · 전남 광양 섬진강 매화길, 인천 웅진 덕적도 비조봉, 충남 서산 개심사~서산마애삼존불상 포행길, 강원 횡성 숲체원 편안한 등산로, 경남 함양 개평마을 고샅, 경기 여주 해여림식물원 산수유길, 전북 정읍 내장산 자연관찰로, 제주 올레길’ ㅡ 꽃을 좋아하는 나는 꽃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이라면 별 다섯개짜리의 의미인 간색 포스트잇 플래그를 덕지덕지 붙여놓고는 혼자 뿌듯해했다. 올해 겨울에도 여전히 듬직하게 내 옆을 지켜주는 그에게 “나, 여기 가고 싶어. 같이 안가면 친구랑 가든가, 혼자라도 갈거야.”라고 으름장을 늘어놓은 상태. 하긴, 나보다 여행을 더 좋아하는 그는 내가 가자고만 하면 카메라를 이미 챙겨들고 언제 갈래? 하며 나를 재촉할 터, 결코 손사레치며 마다할리 없음을 약삭빠른 난 이미 꿰뚫고 있었던 게다. 쿡쿡.


 

지방에 살고 있는 나는 ‘서울 남산 산책로’는커녕 근처에도 못가봤는데, TV에서 걸핏하면 나오는 통에 가보지 않은 그 곳을 몇번이고 다녀온 기분마저 든다. 하지만 볼 때마다 다른 것을 보니, 내가 직접 가면 또 얼마나 다른 모습으로 나를 놀래켜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어, 그에게 얼른얼른! 하며 보채는 내 꼴은 참으로 우습다. 하지만 그곳에 도착해서는 빨리빨리 - 를 추구하기보다는 도리어 느릿느릿의 미덕을 배워 불안한 삶을 재정비할 여유를 가져서 올테지. ‘경기 용인 한택식물원 꽃길’을 읽을 때에는 욕심같아서는 꽃이 다르게 피는 달마다 가서 꽃을 적은 메모지 한 장, 한 장마다_ 내가 입은 옷, 내가 신은 신발, 내가 쓴 안경의 테두리, 심지어 내가 내뿜는 입김 하나, 하나까지도  꽃내음을 가득 묻혀오고 싶을 정도로 폭 빠져버려서 2011년의 해가 밝으면 꼭 가야할 곳,으로 벌써 꼽아놓은 상태다. 또한 3월, 매서운 꽃샘추위를 뚫고 ‘경남 하동 · 전남 광양 섬진강 매화길’에 당도해서 매화를 손으로 어루어만지고는 나에게 너의 향기를 나누어 달라며 떼를 있는 대로 쓰고 올지도 모를 일이며, 갈림길이 있어 몇 번의 선택을 해야만 한다는 ‘인천 웅진 덕적도 비조봉’에 가서 오직 나의 선택을 믿고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용기를 배워올지도 모르겠다. 처음부터 내 눈을 사로 잡은 붉디 붉은 왕벚꽃이 천지에 떨어져 있어 보는 눈까지도 붉게 만드는 그 사진을 찍은 ‘충남 서산 개심사~서산마애삼존불상 포행길’은 실은 왕벚꽃이 아니라면 나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없었을 터, 나는 분명 이 곳을 방문할 일이 있다면 왕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사월 중순경에 갈테다,라며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중이다. ‘강원 횡성 숲체원 편안한 등산로’는 걷기는 좋아해도 등산이라면 손사레를 치는 나에게 적역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과 함께, 와 - 정말 이런 곳이 있단 말이야? 난 왜 이제서야 알았지? 라며 한탄을 해야했는데, 그것은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만 할뿐, 어딘가를 가야겠다,라고 단호히 마음 먹은 적이 없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제서야 알게 된 것을 감사해야 하는가. 큭큭. 담장 너머로 능소화가 핀다는 ‘경남 함양 개평마을 고샅’ - 비록 그곳이 그들이 있던 곳은 아니지만 난 아마 조두진의 「능소화」를 떠올리며 응태와 여늬의 가슴 아픈 사랑을 상기시키겠지. 그곳은 꼭, 사랑하는 이와 함께 가서 응태와 여늬에게 안부를 전하며  팔목수라로부터 우리 둘을 지켜달라, 그리 말하고 와야겠다. ‘경기 여주 해여림식물원 산수유길’에선 긍정적을 이르는 대표적인 단어들로 총집합된 10km에 이르는 꿈, 희망, 미래, 행복, 보람의 동산 - 다섯 가지 테마로 구성되었다는 이 곳을 여유로이 걷고 또 걷고, 쉬어갈 곳은 쉬어가며 그렇게 여유롭게 - .

 

 

 

 

책을 덮음과 동시에, 내 몸에 싱그러운 자연만의 향기가 내려와 앉은 것을 확인하고는, 이것이 날아가 버리기 전에 나도 떠나야 겠다, 생각한다. 무채색의 도시에서만 계절을 맞기에는 세월이 너무 눈부시다. 라는 그녀의 말이 눈에서 아른거리는 것이 그 까닭이다. 아, 아름답다. 그녀가 지탱하고 있는 땅이, 그녀가 가려는 길이, 그녀의 힘찬 발걸음이, 그녀의 입김과 함께 피어오르는 열정이. - 비단 이 책에는 그녀의 발자욱만 새겨진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생이 그녀의 발자욱을 따라 함께 걷고 있던 게다. 나는 책을 읽으며 그녀의 손 끝에서 새록새록 싹을 틔운 뭉그러지지 않은 단어들을 조합하며 감히 그녀의 생을 추측했고, 그것이 더 아름답게 빛나길 소망했다. 실은 여행서라고 한다면 내가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떠날 수 있는 곳이 아닌, 돈과 시간이 적절히 어우러진 그런 해외 여행만을 생각했고, 실제로도 나는 그런 여행서를 많이 접했었다. 물론 국내 여행에 관한 책들이 한창 출간되던 때가 있을 테고, 지금도 간간히 나온다는 점은 인터넷으로의 검색을 통해서라면 알 수 있는 부분임에도 그 무엇도 나의 눈길을 꽂을 만한 책은 없었다. 늘 똑같은 일상에 권태를 느낀 적도 있었으나 주말만 되면 쉬기 바빴던 나는 조금 있으면 새로이 맞는 2011년의 주말이 조금은 즐거워질 것도 같은 예감이 몽글몽글 솟아오르는 것이 벅찬 기대감을 안겨준다. 어쩌면 이렇게 그녀의 책을 만나게 된 것은 큰 행운,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만큼 나는 그녀에게서 격동적인 열정을 선물받은 기분이다. 발로 직접 걸어 얻은 값진 지도다. 길은 걸어야만 거리를 좁힐 수 있다. 사람과 사이에도 길이 있어, 그 길을 걸었으면 좋겠다. 
여행서인 만큼 별 다섯개를 주기란 내게 무척이나 어려운 과제다. 어쩌면 별 다섯개를 채워줄 별 반개는 내 발로 직접 다녀와서 내 발자취를 상상하며 이 책을 읽을 수 있을 때, 그때에 새로이 얹어주겠노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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