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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 이야기
베르나르 키리니 지음, 임호경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평점 :
이 책을 읽기 바로 전에 같은 프랑스 소설인 다른 작품을 읽고는 허탈감에 못이겨 슬럼프를 맞이했지만 그럼에도 또 다시 프랑스 소설을 집어든 이유는 그 편견을 깨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프랑스 소설이라면 질색팔색하는 내가 꼴보기 싫어 미리 방어막을 쳐두는 꼴이지 싶다. 수중에 내게 있던 책이라고는 「육식 이야기」뿐이었고, 만약 이조차도 없었다면 나에게 처음으로 책을 읽는 재미는 이런 것이다 라며, 독서라는 것에 발판을 마련해준 프랑스 소설, 서너번은 읽었음직하여 이미 내 손을 떠난 기욤 뮈소의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를 구입해 다시 한번 엘리엇과 일리나를 마주하게 하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책은 프랑스 작가가 쓴 것이 아니라 벨기에 작가가 젊은 프랑스어권 작가에게 주는 보카시오 상을 수상하였다 해서 프랑스 소설로 붙여진 것 뿐, 오롯한 프랑스 소설이 아니었으니 이거 왠지 속임수에 넘어간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 나의 시선은 허공을 가로지르다가 어느 순간 우뚝 멈춰서 버린다. 그렇다면 나는 올해를 통틀어 읽은 것 중 감히 최악이라 평을 내리고픈 바로 전의 책을 마무리하고 이 책을 고른 것이 정녕 잘한 것일까,싶다. 실은 「육식 이야기」라는 이 작품의 - 주관적으로 - 유치하기 짝이 없는 표지는 서점에 가도 눈길이 갔다가도 거둘 만한, 그래서 손길 한번 가지 않을 그런 이 책의 표지는 나를 노려보고 있다. - 실은 책을 다 읽은 지금도 표지만큼은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 첫 단편부터 공포도 아닌 것이 사람을 경악하게 만든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그 이상을 뛰어넘은게다.
사람이란 모름지기 어떤 단어를 나열하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말하라, 라고 한다면 거의 마지막에 말한 단어를 꼽기 십상이고, 전에 그것을 TV의 한 프로그램에서도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험했던 것을 시청한 적이 있다. 그것은 비단 어린 아이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리라. 하지만 나는 아이러니하게 책을 덮고서 첫 단편이었던 ‘밀감’만이 생생하게 나의 머릿 속을 지배했다. 그것 외에 ‘베르나르 키리니’'의 어떤 단편도 그와 같은 영향력을 내게 선사할 순 없었다,고 단언한다. 여인의 피부를 감히 오돌토돌한 오렌지에 비유한 그의 상상력은 내 상상을 가뿐히 뛰어넘어 정확하고 안전하게 착지하여 내가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던 원동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고 말할 수 있음이 내가 이 책에 줄 수 있는 최고의 찬사다. 책 속으로 시선을 던지니 일요일마다 오렌지 주스에 약간의 피를 타마시는 한 남자의 사연이 나의 상상을 농락한다. 새하얀 피부를 지닌 금발의 여인,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는 오렌지 껍질들을 하나하나 벗겨낼 때 맺히는 물방울들을 걸신들린 듯 핥아대며 끝내 그녀를 마셔버린다. 이 정도에서 끝내버리면 이야기는 마무리되지 않은 바느질이고, 작가는 결코 그리 되게 두지 않는다. 그렇다 한들, 그것을 마셔버리고, 끝까지 그 맛을 갈구하는 것에서 끝나게 둔다면 그것 또한 독자에 대한 배려성이 자못 궁금하기까지 하겠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한 사내가 그 성적판타지를 자신에게 적용시킨다는 것. 순간 씁쓰레지는 것이 결국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를 받아들이는 것에 수긍하게 만든다.
‘밀감’ 외에도 ‘아르헨티나 주교’,‘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지금은 모두 죽어버린 몇 작가에 대하여’,‘착각의 나라 (야푸족은 어떻게 말하는가)’,‘기름 바다’,‘뒤섞인 사랑’,‘유럽과 기타 지역의 음악 비평 몇 편’,‘살인청부업자의 추억’,‘수첩’,‘기상천외한 피에르 굴드’,‘희귀조’,‘영원한 술판’,‘육식 이야기’의 총 열네 편이라는 베르나르 키리니,라는 브랜드 아래 상상이라는 지극히도 추상적인 단어로 삶에 대한 권태를 무르게 만들어주는 이야기들의 향연들로 가득채워 빡빡한 일상 속에서 한숨 돌릴 수 있는 계기를 직접 마련해준다. 하지만 그럼에도 누군가 내게 ‘이 책 어때요?’라고 물어온다면 나는 ‘잘 모르겠어요’라고 답하려고 한다. 아니, 설령 좋음, 보통, 나쁨이라는 세개의 선택란이 있어도 나는 가장 만만한 보통에도 체크하지 못하고 아마 주저주저하며 선택하지 않은 백지를 낼지도 모르겠다. 그는 휘몰아치는 그의 활자들을, 그 수많은 이야기들을 한꺼번에 마주하기에 나의 사고 회로가 허용할 수 있는 범위마저도 차단시켜 더 이상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지경까지 내몰아 결국은 독자를 비웃는 듯함이 조금은 부담스럽게 다가왔던 것이 그 까닭이라 말할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