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여행책 - 휴가없이 떠나는 어느 완벽한 세계일주에 관하여
박준 지음 / 엘도라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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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세상은 한 권의 책, 여행하지 않는 자는 그 책의 한 페이지만 읽을 뿐!”이라는 문구를 띠지에 떡하니 붙여놓아 책의 내용을 짐작하기도 전에 깊은 떨림을 느끼는 것과 읽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든 건 동시였다. 막연하게 여행에세이에 대해선 비판적인 내게도 이런 마음이 들 수 있게 만들어주는 책이 있구나 - 라는 생각에 기쁜 마음과 함께 이 책을 덥썩 품에 안게 된 책이었는데, 딱 그만큼의 실망이었다. 딱 기대했던 만큼의 실망. 어쩌지? 난 미안하게도 이 책에 세개 이상의 별을 줄 수가 없다. 별 세개도 내 입장에서 본다면야 무척이나 관대한 것만 같아서 하나를 빼야 하나, 말아야 하나 무척이나 고민을 하게 만드는 것이 어쩌면 그의 전작이었던 「on the road」나 「언제나 써바이 써바이」를 추천하는 지인들이 많아 한껏 기대를 했던 까닭일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내가 직접 읽어보지 않은 책의 대한 평이 좋다고 하여 그 다음 작품까지 좋겠지,라고 기대한 나에게도 탓은 있다. 

 

 

 

누군가의 여행 이야기를 읽는 것만으론 부족했다. 책 속에 등장하는 낯선 세계를 직접 느끼고 싶었다. 여행을 떠난 작가와 함께 나란히 길을 걷고, 그가 만난 사람들을 보고 싶었(p8)기에 책여행과 여행책이 합해져 「책여행책」이 되었다는 그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그러고보니, 전에 비슷하지만 다른 책을 접했던 것도 같다. 번역하는 여자 , 윤미나의 「굴라쉬 브런치」 - 그것은 독서 여행기라고도 불리우는데, 그것은 작가가 쓴 소설의 배경에 찾아가 그 책들과 조우하는 것이 그 까닭이다. 뭔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난 지금 도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지 정리가 하나도 되질 않는다.) 그러니까, 어쩌면 그때 받았던 감흥을 - 이 책에서 다시 느껴볼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가지고 시작했다.

 

 

 

 

책을 덮고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을 꼽자면, 「아웃사이더 예찬」을 읽고 ‘성적 소수자들의 낙원이라’불리는 프로빈스 타운으로 가서 게이들이 스스로를 ‘게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이후다. ‘게이(gay)’라는 말 자체가 ‘명량한, 즐거운, 낙관적인, 밝은’의 의미를 갖고 있다. 이 호칭에서 알 수 있듯, 그들은 스스로를 더 이상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게이스럽게 산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자부심을 갖고 명랑하게 낙관적으로 산다는 말이다. 프로빈스타운 사람들은 참 게이스럽다. (p22) 라는 것을 느끼고 독자에게 전해주더라는 것,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읽고 체가 짜놓은 일정대로 체가 60년 전에 다녀갔던 그곳들 - 아르헨티나‘산 마르틴 데로스 안데스’에서 체가 며칠간 지냈다는 국립공원 관리사무소, 칠레에선 체가 묵었다는 ‘로스 앙헬레스 소방서’- 을 발견하고 신기해했을 그의 모습이 스쳐지나가며 미소가 입가에 걸리게 되고, 「내일은 어느 초원에서 잘까」 의 배경인 몽골의 아르항가이 초원에서 게르의 집 앞에서 몽골식 인사법으로 외친다. “개를 붙잡아주세요!”, 「느긋하게 걸어라」를 읽고는  ‘좋은 길’ 또는 ‘여행’을 뜻하는 스페인어인 ‘카미노’라고도 불리는 산티아고길을 찾아가는데,  그곳을 정말 걷는다. 정말 대책없다. 푸하하하 - 순례자여. 당신이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곧 길이다. 당신의 발걸음, 그것이 카미노다. (p136) ㅡ 총 열여섯권의 책을 읽고 책여행을 한다.

 

 

 

 

그렇게 책여행을 끝내고 나서,  ‘크레모나, 헬싱키, 할렘, 교토, 아바나, 아를, 앙코르와트, 하코다테, 님만해민, 뒤셀도르프, 후지산, 카오산로드, 야쿠시마’ 열세 개 나라의 수도를 방문하여 여행책을 써내려간다. 책에 흥미를 느낀 것은 바로 그때였음을 덮었던 책을 뒤적이며 서평을 쓰는 지금 깨닫는다. 다녀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여행책을 써낸 어떤 연결고리도 없이 이어지는 도시들은 내 머릿 속에서 뒤죽박죽으로 반죽된 채로 덩그러니 남아있었고, 흥미는 점점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 차고 올라오지 못한 것은 아마도 무언의 반항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지루해 지루해 - 를 연발하던 나는 결국 처음 책을 읽을 때와는 달리 아무런 감흥없이 책을 덮어야만 했다. 그것이 비단 책에 아무런 사진이 없다는 것뿐만은 아니었을터. 나는 카미노에 대해 마음대로 기대하고 실망했다. 정작 카미노는 내가 찬사를 보내건 실망을 하건 제자리에 제 모습 그대로 있었다. 나 혼자만 요란을 떨었다. 그때 난 카미노에서 누리고 있는 것들을 망각하고 있었다. 카미노는 가르쳐주었다. 실망을 하더라도 집착하지 말며, 현재를 누리되 집착하지 말라고. (p139) 나 역시 그의 책에 마음대로 기대하고 실망하여 다 읽고 나서는 공허한 마음마저 들었더랬다. 나는 덮었던 책을 다시 펴서 승차감이 투박한 하이카라찡찡 전차를 타고 다시 한번 하코다테를 구경할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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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꾼들
윤성희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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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도 접해본 적이 없는 작가의 작품을 읽는 것에 지레 겁부터 먹는 것이 아마도, 어쩌면, 아직도_ 나의 편협된 독서습관 때문이겠지 - 라는 생각이 들며 푸른빛 눈물이 마음에 아롱진다. 「구경꾼들」이라는 책을 들고 표지를 슬쩍 보고 뒤로 홱 돌려 문학평론가 차미령의 열줄이 조금 넘는 평을 읽다보니 ‘세 번 톺아볼 때 여백이 깊어지는 소설’이라는 문구가 나를 잡고 흔든다. 세 번,씩이나? 읽는 것이 결코 녹록지 않겠다_며 책을 펼쳤을 땐 이야기가 이야기를 물고 그 이야기가 이야기를 물어 끊어질 듯, 끊어질 듯 하면서도 결국은 이어내는 작가의 글에서 위태로움을 느끼기 전,에 왠지 모르게 따뜻함이 배어나온 것을 느낀 것은 내 입가에 웃음이 걸려있을 때였음을.

 

 

 

 

리뷰를 끄적이면서도 웃음을 실실 흘리고 있는 연유가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마다 신발을 바꿔신어 어정쩡한 걸음으로 걷는 큰삼촌의 모습이 상상되어서? 밥 먹고 기운낼 일이 있다며 열무김치에 밥을 두 그릇이나 비벼 먹고 가그린하는 할아버지에게 바람피우냐는 할머니의 말이 할아버지에게 한 마지막 말이라는 것 때문에? 그것도 아니면 빵봉지에 적혀 있는 제조사의 이름이 자신의 이름과 같아서 무작정 제조사를 찾아 공장을 찾아간 화자때문에? 아버지가 일하는 편의점에서 ‘물건 훔치기 놀이’를 하는 화자의 가족때문에? 퀴즈 프로그램에서 소녀시대가 몇 명이냐는 질문에 답하지 못해 첫 질문에 똑 떨어진 할머니때문에? 기침을 하다가 갈비뼈가 나간 화자때문에?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풉, 하고 웃음이 터지는 것이 어쩌면 그것일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니, 결코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것 모두가 우리의 삶과 똑 닮아있어서. 작가는 늘 비관적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그로 인해 삐딱한 세상만을 보는 내게 이 한 권의 책으로 따뜻함을 안겨주더란 이 말이다.

 

 

 

 

‘나’의 이름을 일러주지 않아 나에게선 아가_ 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화자,의 태동기를 읽어 내리면서 나는 ‘필연을 가장한 우연’,‘우연을 가장한 필연’을 떠올리게 된다. 그것은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큰삼촌, 작은삼촌, 고모, 나는 가족이라는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는 하나의 공동운명체라고 할 수 있는데 앞서 말했듯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어 그들의 이야기를 주축으로 그뿐만이 아닌 다른 이의 삶까지도 구경꾼처럼 기웃거려 독자가 책의 등장인물 누구 하나 그냥 흘려보내질 못하게 만들어버리기 때문에 가능할런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사연없는 사람 하나 없다고 해야할까. 여기까지 쓰고는 거봐 사람 사는 건 다 똑같잖아 (p108) 라고 말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오버랩되며 이제 아버지가 내 서평의 구경꾼이라도 된건가,하는 생각에 급작스레 터져나오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어 한바탕 웃어제낀다.

 

 

 

 

“잊지 마세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 기억하는 거예요.”(p88) 무심한 듯,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그들은 나였고, 또 우리였다. 우리의 삶을 또 다른 시각으로 그려내는 그들을 보고 있자니 애잔한 마음이 들며 그들의 어깨를 툭툭 털어주며 위로를 건네고 싶어지고, 또 나도 그리 위로받고 싶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수도 있겠다란 생각이 든다. 무척이나 기분좋게 읽은 책이기에 다른 이의 서평에 기웃거리며 훑어보고 있노라니 단편을 장황하게 이어놓은 것 같다,며 역시 단편 프레임에서 벗어나질 못한다,는 평을 보고서 어쩌면 내가 준 별 다섯개가 과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나는 좋았다. 오랜만에 다 읽고도 하루종일 그 생각에 한동안 주위를 서성일 수 있는 책을 만난게다. 그거면 된거다. 책을 읽고 내가 느낀 것이 별 다섯개라는데, 그 누가 뭐라할텐가. 부모님은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의 삶을 바라볼 것이다. 구경을 하는 동안 부모님은 자신을 잊을 것이다. 그러니 부모님을 구경할 또 다른 사람이 필요했다. 나는 뷰파인더로 아버지를 들여다보았다. 얼굴을 반으로 자른 다음 셔터를 눌렀다. 찰칵, 하는 소리에 맞춰 숨을 멈추었다. (p237) 그 순간 나도 그 가족의 일원이 된마냥 함께 숨을 멈춘다.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상을 태운 자리에 돋은 사과나무(라서 증조할머니가 보낸 선물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하숙생이 사과씨를 뱉어내 싹을 틔운) 뒤에 숨어있는 구경꾼인 주제에. 낄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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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만난 175가지 행복이야기
장현경 지음 / 성안당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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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세이, 이게 얼마만인가 - 하고 물으며 기억을 상기시키려 들었더니 어느 순간 뚝, 끊겨버린다. 무척 오래간만임에 틀림 없는 것이다. 올해 읽은 책들에 번호를 매겨가며 죽 써놓은 수첩을 뒤적이고 블로그를 한바탕 뒤적였더니, 이병률의 끌림이라는 여행에세이보다는 감성에세이 쪽이 더 짙은 책이 마지막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아니, 정말 여행에세이다운 책을 읽은 것은 칠월에 괜찮다~ 하며 재미있게 읽은 ‘처음 만난 여섯 남녀가 북유럽에 갔다’가 마지막이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터다. 그동안 지인에게서 여행에세이라 불리는 책을 선물받기도 하였지만 쉽사리 손에 들지 못했던 것은 단 한가지, 정말 떠나버릴까봐…혼란으로 야기된 정리되지 못한 생각들은 하나의 단어로 허공에 흩어져버리기 일쑤였고, 내 머릿 속의 좌표는 그 어느 방향도 잡아내지 못하였다. 언제고 답답함을 들쳐 업고 현실 도피를 꿈꾸지만 막상 현실에 서있는 나는 소심하기 이를데 없어 어디로도 떠나지 못한다. 그래서, 편하게 여행을 하고 그들이 쓴 여행에세이를 읽는 자체를 거부했을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손에 안착한 요 녀석을 내칠 수 없기에 한 장씩, 결코 서두름없이 읽기 시작한다.

 

 

 

장현경이라는 이 여자, 처음부터 뒤통수를 갈긴다. 그 나이면 한 번쯤 느끼게 되는 능력의 한계에 대한 무기력함이 20대 초반의 활활 타오르던열정을 해가 갈수록 시들게 만들 때였다. 라며 스물 일곱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잠깐의 여행이 아닌 잘 다니던 회사까지 그만두고 유학을 갔댄다. 뉴욕으로_ 그러면서 본격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그것은 숙소구하기, 대중교통, 밥상차리기 등 뉴욕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침서로 자청하고 나섰다. 그러고 나서야 본격적인 뉴욕의 이곳저곳을 구경시켜준다. 그 중 야심한 새벽에 주린 배에서 꼬르륵~ 소리를 절로 나오게 했던 컵케이크 투어라던가, 올해에 가지 못해 한이 되어버린 벚꽃놀이, 푹 빠지지만 않는다는 명목 아래 한번쯤 구경하고 싶은 카지노 등은 나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것은 대체적으로 책을 읽는 내내 자신의 행보만을 기록하고 사실을 나열하여 느낌이 없었다,라고 이야기를 해야할까. 초반에 뉴욕에 가게 되어 방방뜨는 그 기분은 뒤로 가면 갈수록 바람이 불어 빠져나가는 손 안의 모래인냥 결국엔 손에 잡히는게 하나 없었다는 말이다. 게다가 벚꽃, 핼러윈데이, 산타클로스_를 제외한 나머지는 글에서도 사진에서도 계절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느껴져 구지 계절별로 나눈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 라는 의문도 함께 들었는데, 그저 심심해보여 넣은 것이 아닌 내가 미처 알아채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기를_. 또 한가지 덧붙이자면, july2나 august1 외에 몇 곳은 두장도 채 넘기기 전에 다 끝나버려 정작 뉴욕의 명물이라 할 수 있는 타임 스퀘어, 브라이언 파크, 그랜드 센트럴은 마치 먹기 전에 흘린 커피처럼 고스란히 얼룩이 되어 허탈함과 짜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어쩌면 나는 뉴욕이라 하였기에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위주가 아닌 뉴욕을 강조할 만한 무언가로 내가 지금 뉴욕에 발을 붙이고 서있다는 느낌을 받게 해주길 바랬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간혹가다 글의 밑에 있는 작은 사진들은 눈을 찌푸려서 보아야만 했고, 느낌없는 글들은 왠지 슥슥 읽어내려가면서도 감흥이 없어서 언젠가 뉴욕에 가는 날이 온다면 뉴욕에 가도 심심하지 않게 만들어줄 정보 수집용으로나마 위로삼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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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분야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르누아르의 그림을 무척이나 좋아해서 불안정한 마음이 드는 날이면 한번씩 그의 그림을 훑어보게 됩니다. 따뜻한 그의 그림을 보고있노라면 마음이 한층 안정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 그의 그림을 밑바탕에 깔고 소설을 그려냈다니요 - 정말 어쩌면 그림 같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네요! 게다가 제가 좋아하는 ‘당신도, 그림처럼’과 ‘그림에, 마음을 놓다’의 저자 이주은 작가의 추천도 곁들여져 기대가 증폭되는 것이 두근두근한 마음이 대신해주는 것만 같습니다. +.+

 

 


 

김훈 작가는 ‘공무도하’로 만나 본 적이 있는데, 사실 인상깊은 작품까지는 아니었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작품이었어요 - 마치 칼같이 툭툭 끊기는 그런 책을 좋아하지 않는 저로써는 조금 힘들었던 작품이기도 했구요. 하지만 늘 언제나 그렇듯 , 작가 는 하나의 작품만이 아닌, 다른 작품까지도 몇번을 읽어보아야 그 작품에 대해 비로소 아~ 괜찮구나, 별로구나, 하는 식별을 해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낯선 작가의 문장만으로 별로다 - 라며 거리를 두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렇기에 세상을 담을 수 없는 언어의 한계와 세상을 최대한 안고 싶은 김훈 선생님의 열망 사이에서 피어난 오랜 고뇌와 고민이 이루어 낸 절정의 작품이라는 이 책을 접해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 11월의 추천책으로 살포시 올려봅니다.  

 

 

이 한 권의 책에 실려있는 한 편의 소설로 수십 명의 작가를 동시에 얻은 기분이라는 문학평론가 조연정의 말은 혹하게 만드네요 - 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에서 책 사냥꾼은 혹, 책을 사랑하는 우리들을 일컫는 말은 아닐런지요. 판타지 소설은 좋아하지 않는 편이나, 문단의 동료로 삼고 싶다는 은희경 작가의 추천이나 굉장히 드문 지적 즐거움을 느꼈다는 정이현 작가의 추천은 저에게 있어 어쩌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쇼윈도에 눈길을 잡아끄는 진주목걸이인 셈이네요.

  

 

 

 

불행하게도 저는 아직 펄벅의 어떠한 작품도 읽기 전이네요. 그 유명한 대지 역시, 고등학교 시절 잠시 손에 들었다가 놓은 저는 책과 친하지 않았던  그 때에 읽기에는 무척이나 부담스러웠던 책이었음에 곧바로 놓았던 것이 편협한 독서의 한계 - 라고 밖에 말할 수 없음이 굉장히 애석해지네요. 소작농 여인의 눈으로 그려낸 중국의 격동기를 이야기로 표현했다는 이 책이 어떻게 다가오게 될지, - 전처럼  난해한 문장들에 똬리를 틀게 만드는 그런 활자들로 가득한 건 아닐지 걱정부터 앞서지만 -  벌써부터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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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0-12-02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김훈 작가님꺼 넣는다는 게 깜빡했네요.
다섯 권 고르기 참 힘든 것 같아요!^^

하늘보리 2010-12-02 22:26   좋아요 0 | URL
저는 10월,11월엔 두권씩만 추천페이퍼에 넣었는데, 이번에는 비교적 풍요로운 것 같아요! 읽고 싶은 책이 12월 추천도서로 선정되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깔깔깔 -♬
 
가미가제 독고다이 김별아 근대 3부작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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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올해 김별아의 작품 중 「미실」,「열애」라는 두 작품을 접하고도 그녀의 작품에 갈증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다음 작품으로 선택한 것은 「가미가제 독고다이」- 그것은 원래 구매할 예정이었으나, 책을 사기 위해 서점에 들렀다는 그가 브리다와 가미가제 독고다이 외 몇 권을 말하기에 다 팽개치고 가미가제를 외쳐버린. 그것은 내것이 되었다. - 그 제목은 뜻조차 알지 못하는 내게 낯설게만 다가왔기 때문에 독고다이 가미가제, 가미가제 다이독고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킥킥거렸고, 간혹 가미가제 독고다이,라고 말하였다 하더라도 그게 맞나? 라며 고개를 갸우뚱 거려야만 했던 아주 괴상한 이름이다. 읽기 전 가미가제를 가미카제라고 발음하는 그에게 “가미카제가 아니라 가미가제야.”정정해주며 “그런데 가미가제가 뭐야?”라고 물었더니 그는 시종일관 “읽어봐. 알려주면 재미없잖아.”라고 대꾸했다. 읽고 있는 책을 마무리짓고 나서 조만간 읽어주리라 했지만, 먹고 싶은 것은 아껴뒀다 먹는 심리처럼 책을 읽는 것에 있어서도 그런 마음이 들 수 있음을 난생처음 깨달았다. 올해의 목표였던 150권 째 책은 이 책이야! 라고 남몰래 다짐하며 그렇게 아끼고 또 아껴뒀다. 하지만 그러고보면 김별아 작가가 좋다, 좋다 하면서도 나는 아직 작가의 작품에 별 다섯개라는 만점짜리 점수를 준 적이 한번도 없는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까닭은 - 나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 결말로 치달을수록 현실과 맞닿는 폭이 근접해짐에 나는 금세 루즈해져 책장을 넘기는 손이 무뎌짐을 느끼게 되기 때문일런지도 모르겠다. 「미실」이 그랬고, 「열애」가 그랬다. 늘 그런 현상을 느껴왔음에도 작가의 책을 고집하는 까닭은 실은 나도 잘 모르겠다. 어찌됐든 첫 장을 폈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여자를 좋아하는 건 집안 내력이다.라고 시작되는 문장을 보며 그래요, 이번에도 호락호락하지 않은 글을 쓰셨군요. 라고 생각하며 그녀의 초대에 기꺼이 응했다.

 

 

 

1인칭 화자는 우연히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들의 어처구니없고 생뚱맞고 기막힌 필연을 믿는다,며 백정 출신임에도 피를 무서워하여 자기 몸이든 남의 몸이든 피가 흐르는 모습을 보면 기함을 하며 울어대는 쇠걸이 할아버지와 윤간을 당했음에도 이성적이고 냉정하게 판단하여 붉고, 뜨겁고, 비린 걸음걸이를 내딛어 살아남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올미 할머니의 결합을 통해 잔인한 우연과 지독한 필연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뒤를 이어 자신의 피를 부정하여 임종을 앞둔 올미 할머니에게 "엄마, 가기 전에 말해주오. 내 진짜 아버지는 누구요?" 라고 묻는 훕시(하계운)는 양반 여성인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정선의 결합을 통해 자신의 천한 백정의 피를 희석시키겠다고 하였지만, 그것은 회색이 아닌 흰 털과 검은 털이 대비되어 흰 것은 더 희고 검은 것은 더 검은 , 결국 얼룩 강아지_인 하윤식이 이 세상에 태동하게 한다. 이쯤이면 대략 눈치를 챌 수 있으리라. 쇠걸이 할아버지와 올미 할머니의 결합이라던가, 아버지 훕시와 어머니 정선의 결합은 순전히 하윤식, 그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임을. 그러면서 3대인 그도 호락호락하지 않은 여자를 만나게 될 것을 어렴풋 암시한다. 그 여자는 자신에게 있어서 신의 존재인 형 - 그의 연인, 현옥. 그렇다. 이야기는 이제 시작인게다. 순전히 현옥을 위해 형 경식 대신 입대를 지원한 윤식. 살기 위함이 아닌, 죽기 위해 죽는 연습을 해야하는 그가 지원한 부대 이름은 일명 자살 특공대‘가미가제’

 

 

 

 

비극이다. 우리 근현대사를 쓴다는 것 자체가 거대한 비극에 맞대면하여 슬픔을 감내하는 일이다. 하지만 비장하고 엄숙한 방식만으론 그 비극 속에서도 징그럽도록 끈질기게 존재했던 삶을 온전히 그려낼 수 없다. (······) 그리하여 결국 나는 그 비극 속에서 가장 희극적으로 살아가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기로 했다. 희극적일 수밖에 없어서 더욱 비극적이고, 인간적인. (작가의 말 , p362)

 

읽는 내내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푸하하하 - 하는 명쾌한 웃음소리. 책을 읽으며 소리내어 웃어본 것이 얼마만인가. 이 책은 실제로 그 이름만 번지르르한 특공대에 묶여 '사케'를 마시고 '사쿠라'의 환송을 받으며 마지막 엔진을 가동했던 우리 민족이 있을진대, 그렇다면 묵념을 해가며 읽어도 시원찮을 이야기임에도 훕시의 목숨을 구해준 그 생원의 성씨를 알고자 함이 은인을 기억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 성씨인 진주 하씨가 되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라던가, 훕시가 나카무라 형사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지어내는 거짓말들이라던가 하는 것들은 독자에게 웃음거리를 제공하는 인물임에 확실하다. 하지만 책의 마지막까지 그들과 행보를 함께 하고 이제 끝났다며_ 마지막 장을 덮고 가만히 앉아있노라니, 침울함이 밀려오기에 그 당시 웃음을 자아냈던 훕시의 행동거지들을 억지로 생각해보지만 그 때의 그 웃음이 지어지지 않더란 말이다. 그 당시엔 웃음이 나서 웃었던 것이, 상황을 더욱 더 처연하게 만든다는 것을 이제와서 깨닫는 바이다. 그것을 깨달은 그 순간에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이 정지한 것과 같이 - 시계의 초침마저 들리지 않을 정도로 - 적막한 내 방이 갑자기 희뿌옇게 보여 창문을 열고 환기를 하기에 이르렀다. 창문을 여니 급작스레 시게미쓰는 아니, 장성우는 허공 속에서 외롭지 않느냐 - 묻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누르고 속으로 아리랑을 부른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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