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너머로 여자를 말하다 - 네이버 최고의 아트 블로거 강은진의 그림 에세이
강은진 지음 / 케이펍(KPub)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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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서리가 쳐지도록 외로웠던 나날이었다. 제 2의 사춘기가 찾아오는 듯한 그런 상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읽고 있던 소설책을 옆에 가지런히 놓아두고 마음을 평온하게 해줄 그림들을 감상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늘 그래왔었으니까. 그 그림이 이번엔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라는 화가의 그림으로 점철된 마로니에북스 책이 아닌 친애하는 이웃님의 ‘아트 talk talk’ 님의 책, 「그림 너머로 여자를 말하다」라는 것이 조금 다를 테지만. 저자의 블로그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은 불과 몇 달 전. - 싱숭생숭한 어느 날에 마음을 차분히 해줄 그림을 감상하려고 몇 번의 검색 끝에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공간을 찾아내었다. 그곳이 저자의 블로그였던 것. 내가 늘 위안을 받는 공간을 가꾸던 사람이 쓴 책이라 - 왠지 안면에 옅은 미소가 배어나온다. 책을 집는 순간부터 흐트러졌던 마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는 모양새를 보이는 것을 느낀다. 그래, 이거지. 이런 정돈되는 느낌을 원했던 거다.

 

 

 

늘 그렇듯, 그림 에세이라는 것은 하루만에 다 볼 분량인 것은 자명한데, 난 늘 쉬이 넘기지 못하고 그림 하나하나와 오래도록 마주하게 된다. 그것이 내게 있어서 그림에 대한 애정이라면 애정을 표현하는 방법이리라. 한 마리의  고양이가 따사로운 햇빛이 작열하는 곳에 자리를 잡고 낮잠을 청하고 있는 모양새를 바라보듯, 그렇게 모든 것을 감싸 안아줄 양 포근함이 가득 담긴 아늑한 눈길로 바라보는 것. 그 눈길엔 고아한 척, 고매한 척 하는 그 어떤 인위적인 것도 들어차 있어선 안되는 것. 난 분명 이 책을 그림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얻으려고 펼쳐 든 것이 아닌,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어줄 것을 헤매다 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그 까닭이 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모든 그림이 나를 만족케 시켜줄 그러한 그림들은 아니었다. 개중엔 나를 지레 겁을 먹게 만드는 것도 있게 마련이었다.

 

 

 

 





구스타브 카유보트 - 「비오는 파리 거리」

 

 

책에 있는 다른 그림들을 보고 이 그림을 본다면, 아 - 무척 사실적이구나, 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그림에 대해 아는 것 전혀 없는 바인 나조차도 느낄 수 있음에 괜스레 기뻐진다. 실은 나, 이런 그림을 좋아한다. 하지만 요즘은 그냥 따뜻한 그림을 더 많이 찾게 됨에 무뚝뚝하게만 보이는 이 그림이 달가울리 없다. 마음에 조금 더 여유로움이라는 햇빛이 찾아들었다면, 나 역시 이 그림을 보고 청량한 블루 레인! 이라고 칭한 저자의 글을 보며 고개를 주억거리며 저자와 함께 했을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각기 다른 빨간 우산, 파란 우산, 찢어진 우산 -은 아니고- 이 아닌 똑같이 생긴 우산들을 보며 생각이 가지를 쳐서 급기야 산업화라는 것을 떠올리게 하고, 대량생산되어 누구나 다 똑같은 물건을 쓰고 있는 사진 아니, 그림 속의 인물들은 모두 쌀쌀맞고 퉁명스럽게만 보인다.

 

 

 

 

 

 

 

 

  

구스타프 클림트 - 「사포」



앙투안 장 그로 - 「류카테 절벽의 사포」


 
 


 

그리스 여류 시인 ‘사포’ - 당대 남성 우위의 위계질서에서 군계일학으로 자리메김하여 여성들과 아이들에게 시를 가르쳤다던 그녀. 만일 내가 찾아낸 구스타프 클림트의 「사포」가 위와 같이 붉은 빛을 띄었다면야, 나에게도 혼동은 오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흑백으로 이루어진 그림은 뜨악함을 안겨주었다. 옆에 서있는 소녀(?)는 마치 혼령이야? 도대체 뭐야? 라는 식의 의문을 자아내고 이 화가는 이 분위기를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라는 생각마저 들었으니…. -흑백인지 혹은 붉은 빛인지 무엇이 진정한 그의 그림인지는 모르지만.- 계속해서 그림에 대해 풀어놓은 책에서도 이 그림에게 만큼은 자애롭지 못했던 듯 하다. 이 그림의 옆 페이지엔 사포라는 여인을 설명하기에만 급급했던 듯 하다. 옆의 그림은 뱃사공 ‘파온’이라는 남성을 열렬히 사랑했으나, 사랑의 고통으로 이내 바다에 목숨을 던졌다는 그 가슴 아픈 이야기. 오롯하게 ‘앙투안 장 그로’라는 화가의 무한 상상에서 나온 이 그림은 가슴을 저릿하게 만든다. 우리가 살아가다보면 사랑의 고통뿐 아니라, 거친 파도에 노출된 배처럼 자의적이 아닌 타의적으로 움직일 때가 있을 터다. 인생이라는 것이 그런거지, 라고 치부해 버리기엔 조금 무리가 있는데,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제 2의 사춘기가 찾아온 것만 같은 지금의 내 상태로 이 그림을 마주하기에 울컥하는 마음이 금세 다른 그림으로 옮겨가게 한다. 조금 더 오랫동안 바라보았더라면 나도 모를 눈물이 흘렀을지도 모르겠다. 무엇때문인지도 모르면서.

 

 

 

「실내」
 



「실내」



「실내」



「등을 돌린 젊은 여인」



모두 ‘빌헬름 함메르쇼이’의 작품이다. 왜 그는 무슨 연유로 이렇게 등을 돌아 있는 여인들만을 그려냈을까. 분명 여인이 서있는 자리를 그린 것이 분명할진대, 쓸쓸하고, 적막하기까지 하다. 이 그림을 보고 있자면 꼭, 외면받는 듯한 그런 기분이다. 그냥, 그런거, 나는 바라보고 얘기를 좀 하고 싶은데, 저 사람은 등을 돌리고 나를 바라보지 않으려고 하는 것. 그래서 풀 죽어 있는 것 같은. 이 그림은 자꾸 그런 느낌을 받게 만든다. 한도 끝도 없이 쓸쓸해지게.


 

 

 

자콥 타만 - 「선생님이 돌아서 있을 때」



「큰 모자를 쓴 잔느」

 

「노란 스웨터를 입은 잔느」 

 

하지만 쓸쓸하게 만드는 그림보다는 돌처럼 단단하게 굳은 마음을 몰랑몰랑하게 만들어주는 그림이 더 많았다는 것.  ‘자콥 타만’ - 「선생님이 돌아서 있을 때」라는 그림을 보며 입술 언저리를 실룩실룩거리며 웃기도 했고, ‘모딜리아니’의 시선이 닿는 곳엔 연인 ‘잔느’가 있었다. 「큰 모자를 쓴 잔느」, 「노란 스웨터의 잔느」를 보면서 그녀에 대한 ‘모딜리아니’의 사랑에 오히려 내가 더 두근댐을 느끼게 되면서, 분명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보았을 거야, 라고 호언장담하게 된다. 비록 가슴 아픈 결말이지만, 그들은 아마 지금 누구보다 더 행복한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이다. 혹, 그와 그녀의 아이까지 - 세 가족이 그곳에 있을지도 모르지.

 
 

 


   

 

칼 빌헬름 홀소에 - 「창가의 기다림」

 

 

눈을 뗄 수 없어 계속 멍한 상태로 내내 바라보았던 ‘칼 빌헬름 홀소에’ - 「창가의 기다림」과 ‘루이 마리 드 쉬리베르’ -「과일과 꽃을 파는 가게」가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루이 마리드 쉬리베르’의 작품은 나와있지 않은 것 같다. -아니, 내가 찾지 못하는 것이겠지.- 어쨌든 「창가의 기다림」에서 여인은 빌헬름 함메르쇼이’의 작품과 똑같이 뒤돌아 있다. 그럼에도 이 그림은 색감에서 따스함이 감돌고, 커튼 사이로 내미는 햇빛이 외면받는다는 느낌보다는 조금 더 희망적임을 느끼게 된다.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으로- 옆이라도 훔쳐보고 싶은데, 감히 부를 용기가 안난다. 눈물이 송글송글 맺혀있기라도 하면 부른 나도 그녀도 얼마나 민망하겠는가, 모르는 바 아니기 때문. 그녀의 기다림이 애틋하기만 하다. 저자의 아, 내게도 그런 기다림이 있었지. 라고 쓴 한 줄에 나의 기다림도 함께 포개어진다. 그렇게 그림 속의 이름 모를 그녀와 저자와 내가 교감을 느낀다. 그녀의 기다림은 지금쯤은 끝이 났을까 - 혹시 아직도 내내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쉬이 다음 페이지로 넘길 수가 없다. 그러다가 또 한번, ‘루이 마리 드 쉬리베르’의 그림에서 철푸덕 넘어지고 만다. 마치 「과일과 꽃을 파는 가게」에 서있는 여인의 등 뒤에서 몰래 훔쳐보다 넘어진 남자 곁에 나란히. 아이쿠. 부끄러워라. 그런데 여인에게서 눈을 뗄 수 없다. 여인의  핑크빛 드레스가, 여인의 아름다운 손짓·몸짓이, 여인의 사랑스러운 표정이 가던 길을 멈추고 여인을 바라보게 한다. 아, 예쁘다 -

 

 

 

 

 

이 말고도 이 책엔 수십 장의 아름다운 명화들이 있는데, 개중 어떤 것이 더 아름다운가를 판가름할 수도 없는 명화들이 가득하다. 자신의 마음가짐에 따라 조금 부정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고, 혹은 조금 더 애정 듬뿍 바라볼 수도 있는 게다. 이 책의 1부에서는 각 19개의 주제를 제시하고 그에 맞는 명화들을 일러주고 있는 형식이라면, 2부에서는 화가의 생에 대해 일러주며, 화가의 특색을 잘 일러준다. 또한, ‘그림에 재미를 느끼는 여덞 가지 통로’를 제시하고 있어 여러 시각에서 좀 더 폭 넓게 그림을 바라볼 수 있게 도와준다. 올해(2011)에 첫 번째 그림 에세이를 읽으며 괜찮은 화가들을 여럿 만났고, 난 여전히 ‘그림’의 ‘그’자도 모르지만, 이번에도 즐거운 나들이를 감행했다. 그림 에세이는 늘, 눈과 마음이 즐겁다. 무한 상상에 도전해 보는 것도 그림을 보는 즐거움이 아니던가 - 당신의 상상을 저자의 상상에 포개어 둘만의 교향곡을 들어 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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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관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1 케이 스카페타 시리즈 1
퍼트리샤 콘웰 지음, 유소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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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매니아층을 거느리고 있는 퍼트리샤 콘웰이라는 작가는 나에게 범접하기 힘든, 예를 들면 마이클 코넬리, 로버트 해리스, 제프리 디버, 버나드 콘웰과 같은 작가라 할 수 있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어려워 보여서’라고 말하면 타인의 비웃음을 살런가. 나는 책을 읽으며 어려워보이는 책은 읽기가 싫다. 취미로 읽는 책을 구태여 과제처럼 생각하고 그 책들을 읽어야 하는지 모르는 까닭이다. 그렇기에 난 이들 작가의 책엔 감히 손도 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작년 즈음 로버트 해리스의 「고스트 라이터」와 마주 앉아 몇 일을 함께 했다. 쉬이 읽혀지는 책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뇌리에는 괜찮았던 책,이라고 박혀있는 까닭이다. 그런데 어렵게 느끼는 또 다른 작가의 책에 또 다시 슬쩍 손을 내밀 수 있었던 것은 「법의관」이라는 제목을 가진 까닭이었다.

 

 

 

책의 원제는 부검, 검시의 뜻을 지닌 《postmortem》 - 그것은 법의관이라는 직업을 설명하는 가장 최적의 단어가 아니던가. 하지만 나에게 법의관이라는 특정한 직업이라는 것이 생소하게만 느껴졌다. 물론 지금이야, 책을 읽었으니 그나마 조금 아는 척을 해보이는 것 뿐일 테지만, 실은 나, 법의관이라는 정확한 뜻을 몰라 법과 의학을 종횡무진하는 -의학이 소송까지 치닫게 되는(혹은 메디컬 드라마의)- 그런 직업으로만 생각했더랬다. 이 얼마나 무지몽매한 두뇌를 가지고 있는가 말이다. 요즘 박신양, 김아중 주연의 〈싸인〉이라는 드라마를 시청 중이라면 법의관이라는 직업이 낯설지 않게 다가왔을까. 이러쿵 저러쿵 할 것 없이, 사전을 뒤적여보는 수밖에. 사전에서 법의관은 ‘경찰의 범죄수사에 도움을 주거나 사인과 사망경위를 밝혀 인권을 도모하는 일을 주업무로 하는 학자’라고 명명하고 있다. 이런 매력적이고 매혹적인 직업을 가진 이가 이 책에 나온다는 것이 아닌가! 나는 피해자의 인간적인 존엄성을 지켜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일단 피해자가 사건 번호로 불리기 시작하고, 증거물이 이 사람 저 사람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면 나도 어쩔 도리가 없다. 꺼져버린 생명처럼, 개인의 프라이버시 역시 무참하게 짓밟히는 것이다. p17

 

 

 

이 책을 읽기 바로 전에 스티그 라르손의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1」을 읽었고, 채 읽지 못한 2권의 씁쓸함이 입 안으로 닥쳐와 쩝쩝 거리며 입맛을 다시고 있던 중이었다. 그 불충분한 것을 잠시 잊게 해줄 간식거리가 필요했고, 그것으로 나는 「법의관」을 손에 집었다. 집었을 때 두툼한 두께에 나도 모를 안도감을 느꼈는데, 요즘은 추리 소설을 대할 때 만큼은 두께가 이정도는 되니 결코 시시껄렁하지만는 않을거야, 라는 식의 두께로 책의 질을 가늠하는 괴상한 습관이 생겨버렸다. 어쨌든, 이 책은 「법의관」이라는 낯설지만 흥미로운 제목부터, 시작 하기도 전에 기대치는 넘칠 듯 끓어오르는 상태였다. 그 기대를 충족시켜줄 수 있을 것인가.


 

 

 

토요일로 넘어가는 깊은 새벽에 울린 전화에서 살인 사건을 전해 듣는다. 이미 전에 몇 차례의 살인이 있었고, 살인 사건의 정황을 살펴보았을 때, 이는 분명 연쇄 살인 사건,이다. 살인 사건을 전해 듣고 자다 깨서 곧장 현장으로 간다. 스카페타 박사가. 바로 그녀의 직업이 앞서 말한 매력적인 법의관이다. 사건은 그녀의 눈을 통해 전달되고 독자는 그것을 읽는다. 범인은 여성들을 강간하고, 전화선으로 결박하고 손가락, 갈비뼈 등을 부러뜨리며 끝내는 교살한다. 그런 그가 남긴 흔적이라고는 그의 손을 스친 시체의 몸에는 반짝이는 물질과 다리에 흘려놓은 비분비형의 정액뿐이다. 두가지 단서로 범인을 잡기에는 무리수가 뒤따른다. 게다가 범인을 잡기도 전에 스카페타는 함정에 빠진다. 컴퓨터 해킹으로 인한 정보 유출과 실험실에 있어야 할 -그러나 박사의 서명조차 없는- PERK의 라벨이 붙어 있는 것(샘플)이 냉장고 안에 있었던 것. 누군가 그녀를 함정에 빠뜨리려 하는 것인가?

 

 

 

여느 추리 소설이 그렇듯 이 책도 추리 소설이라는 정해진 프레임에서 벗어나진 못했음이 실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대부분의 추리 소설의 1인칭은 대부분 남성이다. 그들은 힘이 있다. 남성적인 힘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이끌어갈 힘이 있다는 것이다. 와카타케 나나미 「의뢰인은 죽었다」의 여탐정 하무라 아키라도, 기시 유스케 「도깨비 불의 집」의 변호사 아오토 준코도 곁에는 도와주는 남성이 있었다. 그들 또한 힘이 없었고, 또 연약했다. 그런 내 생각을 꿰뚫어보기라도 한 듯 스카페타 박사도 역시나,다. 게다가 소극적이기까지 하다. 옆에 형사 마리노가 있지만, (후..) 뭐라고 해야하나. 마리노 형사는 입방정 좀 떨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이는 스카페타에게 말하지 않아야 했다는 것이 아니다. 형사라면 증거 불충분이란 명목 아래 그 누구도 쉽게 용의자로 몰아가선 안되고, 단정 지을 수 없는데, 그는 너무 쉽게 단정지어버리는 것에 있다는 점이다.- 그의 입은 너무 쉽다. 또한 앞서 스카페타는 소극적이라고 말했다. 그 소극적은 우유부단함과도 결부되는데, 범인이라고 생각하는 노선이 시도때도 없이 바뀌어버리고, 그러면서 독자의 노선도 함께 바꾸려 시도한다. 그러니까 범인의 포위망을 점점 좁혀가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 저 사람 꾹꾹 찔러본다고 말해야할까. 그와 함께 동참하는 독자가 있는가 하면, 아닌 독자도 있는 게지. 처음엔 나도 스카페타의 시선을 따라가다가 이러다간 죽도 밥도 안되겠다는 생각에 내 입지를 점점 좁혀나갔다. 책 속에서 범인을 찾을 사람이 백이면 백, 1인칭일진대 그 사람을 믿지 않고 내 위주로 범인을 찾아 내겠다니, 그런 나도 어처구니가 없지, 생각한다.

 

 

 

범인의 정체는 놀라웠다. 잘 짜여맞춘 트릭이 아닌 예상 외의 인물이었기 때문일까. 왜 이 사람이 범인인가 싶을 정도로 얼토당토하기까지 했으니 말 다했지,싶다. 사건은 벌려놨지, 주위에 끌어들일 사람은 다 끌어들였지, 결국 그자를 프레임 밖에서 데리고 왔다. 이미 스포일러가 된 것도 같지만, 더 이상은 말하지 않겠다. 어쨌든 400페이지 모두 범인을 잡는데 할당되고 있다. 하지만 정말로 범인을 위해 쓴 페이지는 얼마나 되는가,라는 말이다. 지극히 주관적인 내 생각으로는 전체 페이지 중 11분의 1, 딱 그 정도. 그것으로 범인을 찾았으니 그대로 고개를 돌려 책을 덮기엔 손에 들린 아이스크림이 너무 달짝지근하지 않은가. 라섹을 하고 난 뒤, 줄줄 흐르는 눈물을 닦아가며, 시려서 잘 떠지지도 않는 눈에 강약으로 힘을 주어가며, 10페이지를 읽을 때마다 세개의 안약을 번갈아 넣어가며, 그렇게 읽었는데,... 그래도 그렇게 해서 읽은 연유는 책의 재미 때문이었겠지. 하지만, 퍼트리샤 콘웰이라는 이름으로 이제껏 읽지 않았다,고 이야기 하기엔 그녀의 첫 작품은 내게 너무 실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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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분야의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보이지 않는 - 소설 속의 소설, 이라는 소재는 무척이나 독특하다. 처음 이 책의 구성을 보고 치트라 바네르지 디바카루니의 「마지막 고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또한 소설 속의 이야기라는 소재로 이야기가 펼쳐진다는 것이 같다는 점에서. 또한 시점이 1인칭만을 고집하지 않고, 2인칭, 3인칭_ 이렇게 세가지의 시점을 통솔하고자 하는 작가, 폴 오스터. 게다가 소설의 시점은 1967년과 2007년. 40년의 세월을 넘나드는 시점인데, 그 속에서 난 제대로 유영할 수 있을까.

울분 - 필립 로스. 생전 처음 듣는 이름이다. 그런데 여파가 대단하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순식간에 마음을 휘어잡는다. 책의 소개를 구지 보지 않고도 '울분'이라는 제목에 마음이 동하긴 처음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청춘이란 녀석과 함께 희극과 비극이 교차되는 그 곳에 내가 서있다. 그가 그려내는 청춘의 격정과 분노가 나에게까지 미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것이 울분으로 가득찬 나의 지금을 조금은 가볍게 만들어줄 수 있을까. 필립로스가 그려낸 그곳에서 나의 울분도 함께 터뜨려낼 수 있을것인가.

오후의 문장 - 삭막한 현실에서 따뜻한 이야기를 쓰고자 하는 이가 있다. 그가 쓰는 이야기엔 우리의 이상의 혹은 이하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응원하는 이들이 있지만, 살아내는 것조차 버거워한다. 하지만 그들은 각자의 소리를 낸다. 그것은 조화를 이루고 결국 그것이 우리의 마음에 불어닥칠 것이다. 그것이 지금도 무표정한 얼굴로 타이핑을 써내는 내 얼굴에 웃음을 짓게 만들어줄지, 누가 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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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1 밀레니엄 (뿔) 1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뿔(웅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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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슬럼프다. 그것은 활자들을 읽는 재미조차 상실하게 만들어 버릴 수 있는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음이 틀림이 없기에, 그에 따른 해결책으로 내 자신은 내게 유예기간을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기꺼이 내주었다. 그러니까 난 징그러운 슬럼프와 싸울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아 포기선언을 한 상태. 그런데 내 발목을 붙잡는 것이 있었다. 이름하야 「밀레니엄」 - 그것은 내가 이 책에 빠져들기 직전의 상태였고, 그럼에도 보이지 않는 손과 마주잡았기에 이 책을 오롯이 읽어내고 그에 합당한 서평을 써내야만 했던 것. 밀레니엄, 밀레니엄 -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100페이지까지 내가 이 책을 읽어나가며 이게 뭐가 대단한데? 왜? 어째서? 어떤 부분이? 라고 부정적으로 반문하고 있는 내가 있었다. 당연하지, 그쪽 지방의 실 지명을 댄다한들, 관심을 두지 않아 들어도 모르는 그곳이기에 -한마디로 듣도 보도 못했으니- 페이지가 넘어가는데 진척이 없는 것은 당연한 것. 등장 인물들의 이름이야 늘 쓰던 것이라 아무런 거부감도 없었지만, 연습장 한 켠에 지명도 함께 적기는 처음인 것만 같아서 머릿 속에서는 아우성을 치더라 말이다. 결국 그것은 책을 읽는 것에 있어 재미를 반감시키는 요인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어쨌든, 그것에 내가 대응이랍시고 할 수 있는 것은 4일째 하릴없이 페이지를 넘기며 졸음을 머금은 나의 눈이 번쩍 뜨이게 만드는 부분을 만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비로소 그곳과 조우한다. 반갑다. 미치도록. 그제서야 안면에 웃음이 번진다. 하.지.만, -

 

 

 

이제 그것은 하나의 연례행사가 되어 있었다. 남자가 그 꽃을 받은 날은 자신의 여든두 번째 생일날이었다. 바로 이것이다. 그것은 ‘헨리크 방예르’의 증손녀 ‘하리에트 방예르’가 그의 생일만 되면 만들어주던 압화(押花)가 그녀가 죽은 36년 뒤인, 그 해에도 역시 날아든 것. 그는 1년이라는 시간에 살해범이 누구인지 알아내면 500만 크로나 -8억의 상당한 금액- 를 주겠다 말하는 것과 함께, “자네에게 한스에리크 베네르스트륌을 넘겨주겠네. 나는 그자가 사기꾼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어. 그는 30여 년 전 바로 우리 회사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네. 나는 자네에게 그의 목을 쟁반 위에 담아줄 수 있어. 수수께끼를 풀게! 그럼 나는 법정에서 망신당한 자네를 ‘올해의 기자’로 만들어주지!” p170-171 라며 그의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 그는 안그래도 ‘베네르스륌’과의 소송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그는 위축되어있었고, 그는 그 사건을 맡지 않을 이유가 없어진 셈이다. 아니, 그것은 그에게 있어 잡아야하는 어떤 동앗줄이었을지도 모르리라. 하지만 글쎄, 그가 과연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라는 우리나라의 속담을 빌자면, 강산은 벌써 세 번도 변했고, 이제 네 번째 변할 차례인데, 그만큼 시간이 지나 또렷하지 못한 그토록 어처구니없는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까? 그는 나를 믿을 수 있게 해줄까. -하지만 아직까지 그는 아무 것도 하는 것이 없다. 그 뒤엔 언제쯤 보여줄건데? 라고 재촉하는 내가 있다.-

 

스포트라이트는 ‘블롬크비스트’만을 비추는 것은 아니었다.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그녀를 향해 비추고 있었다. 거식증 환자처럼 비쩍 마른 데다, 짧게 커트한 머리, 코와 눈썹에는 피어싱까지 했으며, 목에 2cm의 말벌 문신과 이두박근 둘레에는 끈 모양의 문신, 그리고 견갑골에는 좀 더 큰 용 문신을 한 매력적인 사람임엔 분명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닌 ‘리스베트 살란데르’ - 그녀였다. 그녀의 삶은 어떤 모양새인지, 어떤 상태인지, 그리고 누구에게 어떤 대우를 받았고, 또 받고 있는지_를 다루고 있다. 아직 그녀에 대한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은 자꾸만 기대가 된다. 실은 ‘블롬크비스트’보다 좀 더 기대가 되는 인물이라고 한다면, 그가 기가 죽는 것은 아닐까. 쿡쿡. 어쨌든, 그녀에겐 무언가가 있다. 그녀의 행동 양식이 그걸 말해준다.

 

 

 

나는 1권에서 멈춰있다. 아직 이 책이 어떤 책인지도 모르겠다,는 것이 내가 내릴 수 있는 정확한 대답일게다. 아직 사건에 대한 발돋움은 아직 시작조차 하지 못한 것으로 보여서, ‘헨리크 방예르’가 의뢰한 사건의 진척은 여전히 없어보이고, 손아귀엔 잡히는 것이 없다. 계속 제자리를 맴돌고, 나는 그 곳을 서성인다. 혹자는 -아니, 사실 나를 제외한 모두일지도- 왜 밀레니엄, 밀레니엄. 하는지 알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난 1부 2권을 끝낼 때까지 이 책의 평은 내릴 수 없을 것만 같다. 그저 책이 잘 읽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직 진척되지 못한 부분들에 평점을 내리기엔 그동안 잘 읽혔으나 끝 마무리가 별로였던 책에 대한 예의,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어떠한 대안도 없이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하물며 어떠한 실마리라도 잡히리라 생각했던 나의 예상과는 달리, 무척이나- 소극적인 1권은 아직 내게 눈이 트일 자리가 없다,는 것도 한 몫한다. 다들 열광한다는 책을 읽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슬럼프를 겪고 있는 중이고, 그 슬럼프는 2권을 집는 순간에 끊을 수 있을까, 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으며 그곳에서는 집어삼킬 듯 읽어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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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도시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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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한 먼지라도 묻으면 어쩌나, 반들반들하게 닦아주는 판도라의 상자 속 또 다른 상자에는 당신이 그려놓은 유토피아가 떡하니 당신을 보며 그 어떤 것보다 반짝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덜 삶아진 달걀처럼 반숙 상태라 해도,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그것은 형태를 잡아가고 있다. 또, 사고가 어느 곳까지 미치느냐,에 따라 언제 바뀔지도 모르고. 어찌됐든 누구나 품고 살고 있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그것이 소망하고 갈망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누구에게도 함부로 내보일 수는 없다. 왜? 아직 완성되지 않아서? 아니, 오로지 당신만의 세계니까. 그 속에 오쿠다 히데오에게 굽고 삶아진 이들이 있다,라고 생각햇다. 하지만 완전히 속았다. 내가 앞서 한 이야기들은 모두 보잘 것 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그저 책 제목인 「꿈의 도시」는 유메노(ゆめの : 꿈의)라는 도시를 직역(이랄 것도 없지만)하여 나온 책이었던 것이다. 왠지 모르게 속은 기분이다. 혼자 착각해놓고 속았다고 말하고 있으니, 어리석기 짝이 없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 다섯 -이지만 그 다섯이라고만 말하기엔 다른 이들이 가엾진 않을까- 명에겐 제각각의 꿈이 있다,는 것이 내가 처음 이 책에 대해 생각한 것들이 보잘 것 없다, 생각하지 않을 유일한 위안으로 삼을 만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내용은 전혀 그렇지가 못하다. ‘꿈의 도시’라는 말이 민망해질 정도로 유메노 시에 살고 있는 그들은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투영한 또 하나의 도시 - 유메노(ゆめの). 그곳의 배경은 시골과도 다름없다. 시골,하면 정겨움을 상상하는가? 아니, 그곳은 우리의 삶을 투영한 만큼이나 악질적이고 위험하다. 납치, 살인 등 오감이 움츠러드는 갖가지 사건·사고들이 벌어지고 있고, 혈연으로 자신의 아들을 출마시키려는 구의원이 있고, 생계형 원조교제를 하는 유부녀들이 가득한 려인서클이 있으며, 젊은이들의 대도시 거주 이동으로 인해 황량하게 노인들만이 그 자리를 떡 버티고 있다. 게다가 인력을 충원하기 위해 이민 온 브라질인들 -디뉴- 과 대립 중에 있다.

 

 

 

시점은 5가지로 나누어진다. 첫 주자로 생활보호비 수급자를 줄여야 하는 공무원 도모노리 -. 그는 기초생활비를 지원받는 부정 수급자를 적발하기 위해 파친코 주변을 얼쩡거리다가 우연하게 ‘주부 원조교제’라는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그러는 사이, 누군가가 그를 노리고 죽음으로 몰아넣으려 한다. 두 번째 주자로는 도쿄에서의 대학 생활을 꿈꾸는 여고생 후미에 -. 작년 여름에 도쿄 여행을 다녀온 뒤부터 이 도시의 ‘최고’라는 게 모두 다 시들하게 보였다. 드림타운의 관람차는 그저 창피할 뿐이다. 야경도 없는 주제에. p91 라며 유메노를 떠나 도쿄로 진학하려고 무던히 애를 쓴다. 그러던 그녀가 어떤 이에게 납치를 당한다. 그렇게 그녀의 시점은 중간에 급작스레 사라져버린다. 그녀는 무사할 수 있을까? 세 번째 주자로 노인들을 대상으로 사기 세일즈를 하는 전직 폭주족 유야 -. 싸구려 누전차단기를 집의 형편에 따라 가격을 조정하며 사기 기질을 여실히 보여주지만, 의리 하나는 끝내준다. 시바타가 어이없는 일을 저질렀을 때, 그를 책망하기는커녕 회유의 길로 인도하려 한다. 네 번째 주자로 마트 식품 매장의 좀도둑을 적발하는 보안요원 다에코 -. 그녀는 누가 봐도 사이비 종교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슈카이에 몸을 담그고 있다. 하지만 어처구니없이 사슈카이와 갈등 중인 만신쿄에 의해 회사에서 잘리게 되고, 사슈카이 지도원이 되려고 우에무라의 제의를 받아들인다. 수입은 고작 7만 엔이지만 그정도면 먹고 사는 데 충분하다는 생각때문에. 마지막으로 출세 가도의 야망을 안고 사는 재력가 시의원 준이치 -. 그는 돌아가신 부친에 의해 게이타·고지 형제와 결탁을 맺는데, 그 형제가 시키지도 않은 말썽을 일으키고, 결국은 그를 곤란에 빠뜨리게 된다.

 

 

 

“결국 우리처럼 학교에서 낙오한 인간들은 말이다, 돈 왕창 벌어서 자신을 증명하는 수밖에 없어. 일류 기업에 들어갈 수도 없고, 이제 새삼스럽게 연예인이나 레이서가 될 수도 없잖아. 어떤 집에서 사느냐, 어떤 차를 타느냐, 자식새끼에게 어떤 옷을 입히느냐. 그런걸로 치고 올라가지 않으면 아무도 우릴 상대해주지 않아. 무조건 빅이 되어야 해. B,I,G, 빅.” p176

 

“(…)이 여자도 그렇고 그 남편도 그렇고, 20대 한창 나이에 정사원으로 받아주는 데가 없어요. (…) 번듯한 대학 나오고, 일할 의사가 있는데도 졸업하자마자 빈익빈부익부 사회에 떨어지는 거예요. 진짜 요즘 젊은 사람들, 먹고살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멀쩡한 성인이 시급 천 엔 미만으로 일하는 세상이잖아요, 그러니 이 젊은 부부를 좀 도와주세요. 인생, 서로 도와주고 도움 받으면서 사는 거 아닙니까?” p457



 

또 다르게 - 그들에게서 뻗어나온 다른 이들이 있었다. 모두 다 나열할 순 없지만, 우울증·불면증·섭식장애를 두루 갖추고 있는 니시다, 은둔형 외톨이 노부히코, 승진을 위해 혹은 사장 가메야마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주말에도 쉬지 않고 자처해서 일하는 시바타, 려인서클 매니저 야마다 등을 통해서 우리는 그야말로 아득할 만큼 불안한 현재에 태동하고 있음을 등장인물을 통해 간접 체험할 수 있다. 우리는 자본주의의 삶에 노출된 게다. 모든 것은 ‘돈’으로부터 시작하여 ‘돈’으로 끝나고, 그것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다. 없는 자는 권력을 쥐고 있는 자에게 굽실거리고 권력을 쥐고 있는 자는 없는 자를 가지고 놀아난다. 그리하여 극한 상황까지 치닫는다. 또한, 인 각자의 이익을 창출하고자 할 때, 사회 기반의 흔들림이라는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그래서 결국은 생활보호비 수급자를 줄여야 하는 상황까지 오게 되는데, 그들은 여전히 한 푼이라도 아쉬운 상황. 그들은 고집을 꺾지 않고, 새로운 수급자가 되려는 이들을 향한 공무원들의 강한 거부가 이어진다. 결국 그것은 덤프 트럭의 핸들을 잡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이야기하자면, 현시대엔 가상과 현실을 분간하지 못하는 이들을 향해 매서운 눈길과 더불어 삿대질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나 또한 그런 사람이고. 나는 그런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을 뿐더러, 우둔하다고까지 생각한다. 나는 그들을 향해 따뜻한 눈길 한 번, 미소 한 번 던져줄 수 없고, 그럴 마음조차 없다. 하지만 나같은 이들이 많을수록 그들은 더욱더 움츠러들고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자신을 숨기고자 한다. 현실에선 그런 그들을 반가이 여기지 않는 까닭에 그들이 자신을 내보이는 장소는 오직, 가상뿐이다. 그래서 그 속에서 메일린이라는 공주를 만들고 살아있는 메일린을 만들어 공주를 지켜주는 임무를 띠게 된 것, 그것이 그들을 기쁘게 해주는 것일 게다. 이렇게 저자는 사회의 문제를 하나만 콕 집어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 속엔 나와 너의 자화상이 유영하고, 우리는 그런 나와 너를 쯧쯧, 혀를 차며 비웃는다.

 

 

 

책의 내용은 한 나무에서 서로 다른 나뭇가지가 각자 다른 방향을 뻗어나가듯, 그렇게 제각각인 듯 하다. 하지만 그 나뭇가지에서 뻗어나온 또 다른 나뭇가지들은 한데 엉켜있다. 번잡스러워 정신이 없어 가지를 잘라내쳐야할 정도가 아니라 그것들은 사이사이 엮여있다. 그것은 인물들의 만남은 무척 자연스럽다는 말이 된다. 예를 들면 후미에와 하루키의 만남이 그랬고, 유야와 도모요의 만남이 그랬으며, 유야와 노부히코의 만남이 그랬다. 책을 읽으며 전에 읽었던 온다 리쿠의 「도미노」와도 비교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보다 월등한 점수를 줄 수 있는 요인 첫 번째는 캐릭터의 완성이다. 그는 캐릭터마다마다에 또렷한 색채를 칠해주고 다른 색과 뒤섞일 수 없게 만들어버린다. 그러니 우리는 혼동할 여지가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도미노」를 읽을 당시 28명이나 되는 등장인물은 제각각 빛을 내지 못하여 그들은 과연 누구였을까? 그들은 28명이라는 어마어마한 등장인물이 필요하긴 했을까? 라는 등의 물음표로 남기기에 충분했다 생각한다. 하지만 「꿈의 도시」인 이 작품은 주인공 다섯에 또 다른 등장인물이 더해지는 격이다. -그것은 다섯 명이라는 적은 등장인물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책을 이끌어나가는 캐릭터의 명확함이라 함은 작가의 역량과도 비례하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본다. 두 번째는 시점의 명확한 선긋기이다. 중간 후미에가 납치당해서 행방불명된 것을 제외하고 그의 시점은 바뀌는 것 없이 한결같다. 또한 시점이 바뀔 때마다 번호가 매겨지게 되는데, 그 매겨진 번호에 5를 더하여 그 시점만 따라가면 도 다른 흥미로움을 맛볼 수도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닐 터다.

 

 

 

하지만 《폭발하는 스토리, 스피디한 전개, 충격적인 라스트신》에 대해서 동의표를 던질 수는 없다. 까닭이라함은 스토리는 ‘도모노리 ― 니시다’라던가, ‘유야 ― 시바타’, ‘준이치 ― 게이타·고지형제’ 에 있어 생각보다 너무 길게 끌고 가는 듯하여 호흡이 좀 빨라질 시기,라고 생각했는데도 내 호흡은 여전히 정갈했다는 점은 스피디한 전개라고 생각하기엔 좀 무리가 있지 않은가. 그저 라스트신으로 몰고 가는 때, 그쯤이 되어서야 호흡이 가빠짐을 느낀다. 충격적인 라스트신? 오우, NO. 나는 사실 이런 라스트신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만큼 실망도 컸고, 그 실망만큼 알 수 없는 배신감마저 들었다. 앞서 말했던 엉킨 나뭇가지들을 정갈하게 정리하고자 한 곳에 가지런히 모아둔 꼴이랄까. 저자가 짜놓은 프레임 안에 그들은 갇혔다. 그리고서는 이제 난 해놓았으니 모르겠다, 나 몰라라 도망친 저자가 상상이 되더라, 그 말이다. 어떻게든 정리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이 헛헛한 마음이 조금은 달래졌을까. 여전히 지금까지도 책을 읽고나서도 찝찝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단언하건대, 나는 이런 어제 운동하고 땀나는 트레이닝복을 입는 것 만큼이나 찝찝함을 풍기는 결말을 원한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캐릭터들을 한 공간에 멀뚱히 서있게 만들기만 하는 - 이런 결말은. 그래도, 오쿠다 월드. 난 그곳에 풍-덩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내 자신이 아이러니다.

 

 

 

 






















 

앞 유리에 비치는 풍경은 하늘도 길도 가로수도 온통 회색빛이었다 p21

하늘은 회색이었다. 하늘만이 아니라 길도 논밭도 집도 어슴푸레하게 가라앉아 마치 수묵화의 세계에 내던져진 듯한 착각이 들었다. p190

평소에는 울긋불긋 요란하던 간판들도 춥고 흐린 날씨 때문인지 모두 다 회색으로 보였다. 그건 마치 이 도시의 색깔인 것만 같았다. p630


 



유메노의 회색 빛깔은 언제쯤 꿈의 빛깔로 제 빛을 낼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유메노가 낼 수 있는 꿈의 빛깔은 어떤 색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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