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꾼들
윤성희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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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도 접해본 적이 없는 작가의 작품을 읽는 것에 지레 겁부터 먹는 것이 아마도, 어쩌면, 아직도_ 나의 편협된 독서습관 때문이겠지 - 라는 생각이 들며 푸른빛 눈물이 마음에 아롱진다. 「구경꾼들」이라는 책을 들고 표지를 슬쩍 보고 뒤로 홱 돌려 문학평론가 차미령의 열줄이 조금 넘는 평을 읽다보니 ‘세 번 톺아볼 때 여백이 깊어지는 소설’이라는 문구가 나를 잡고 흔든다. 세 번,씩이나? 읽는 것이 결코 녹록지 않겠다_며 책을 펼쳤을 땐 이야기가 이야기를 물고 그 이야기가 이야기를 물어 끊어질 듯, 끊어질 듯 하면서도 결국은 이어내는 작가의 글에서 위태로움을 느끼기 전,에 왠지 모르게 따뜻함이 배어나온 것을 느낀 것은 내 입가에 웃음이 걸려있을 때였음을.

 

 

 

 

리뷰를 끄적이면서도 웃음을 실실 흘리고 있는 연유가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마다 신발을 바꿔신어 어정쩡한 걸음으로 걷는 큰삼촌의 모습이 상상되어서? 밥 먹고 기운낼 일이 있다며 열무김치에 밥을 두 그릇이나 비벼 먹고 가그린하는 할아버지에게 바람피우냐는 할머니의 말이 할아버지에게 한 마지막 말이라는 것 때문에? 그것도 아니면 빵봉지에 적혀 있는 제조사의 이름이 자신의 이름과 같아서 무작정 제조사를 찾아 공장을 찾아간 화자때문에? 아버지가 일하는 편의점에서 ‘물건 훔치기 놀이’를 하는 화자의 가족때문에? 퀴즈 프로그램에서 소녀시대가 몇 명이냐는 질문에 답하지 못해 첫 질문에 똑 떨어진 할머니때문에? 기침을 하다가 갈비뼈가 나간 화자때문에?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풉, 하고 웃음이 터지는 것이 어쩌면 그것일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니, 결코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것 모두가 우리의 삶과 똑 닮아있어서. 작가는 늘 비관적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그로 인해 삐딱한 세상만을 보는 내게 이 한 권의 책으로 따뜻함을 안겨주더란 이 말이다.

 

 

 

 

‘나’의 이름을 일러주지 않아 나에게선 아가_ 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화자,의 태동기를 읽어 내리면서 나는 ‘필연을 가장한 우연’,‘우연을 가장한 필연’을 떠올리게 된다. 그것은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큰삼촌, 작은삼촌, 고모, 나는 가족이라는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는 하나의 공동운명체라고 할 수 있는데 앞서 말했듯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어 그들의 이야기를 주축으로 그뿐만이 아닌 다른 이의 삶까지도 구경꾼처럼 기웃거려 독자가 책의 등장인물 누구 하나 그냥 흘려보내질 못하게 만들어버리기 때문에 가능할런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사연없는 사람 하나 없다고 해야할까. 여기까지 쓰고는 거봐 사람 사는 건 다 똑같잖아 (p108) 라고 말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오버랩되며 이제 아버지가 내 서평의 구경꾼이라도 된건가,하는 생각에 급작스레 터져나오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어 한바탕 웃어제낀다.

 

 

 

 

“잊지 마세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 기억하는 거예요.”(p88) 무심한 듯,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그들은 나였고, 또 우리였다. 우리의 삶을 또 다른 시각으로 그려내는 그들을 보고 있자니 애잔한 마음이 들며 그들의 어깨를 툭툭 털어주며 위로를 건네고 싶어지고, 또 나도 그리 위로받고 싶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수도 있겠다란 생각이 든다. 무척이나 기분좋게 읽은 책이기에 다른 이의 서평에 기웃거리며 훑어보고 있노라니 단편을 장황하게 이어놓은 것 같다,며 역시 단편 프레임에서 벗어나질 못한다,는 평을 보고서 어쩌면 내가 준 별 다섯개가 과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나는 좋았다. 오랜만에 다 읽고도 하루종일 그 생각에 한동안 주위를 서성일 수 있는 책을 만난게다. 그거면 된거다. 책을 읽고 내가 느낀 것이 별 다섯개라는데, 그 누가 뭐라할텐가. 부모님은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의 삶을 바라볼 것이다. 구경을 하는 동안 부모님은 자신을 잊을 것이다. 그러니 부모님을 구경할 또 다른 사람이 필요했다. 나는 뷰파인더로 아버지를 들여다보았다. 얼굴을 반으로 자른 다음 셔터를 눌렀다. 찰칵, 하는 소리에 맞춰 숨을 멈추었다. (p237) 그 순간 나도 그 가족의 일원이 된마냥 함께 숨을 멈춘다.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상을 태운 자리에 돋은 사과나무(라서 증조할머니가 보낸 선물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하숙생이 사과씨를 뱉어내 싹을 틔운) 뒤에 숨어있는 구경꾼인 주제에. 낄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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