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여행책 - 휴가없이 떠나는 어느 완벽한 세계일주에 관하여
박준 지음 / 엘도라도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세상은 한 권의 책, 여행하지 않는 자는 그 책의 한 페이지만 읽을 뿐!”이라는 문구를 띠지에 떡하니 붙여놓아 책의 내용을 짐작하기도 전에 깊은 떨림을 느끼는 것과 읽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든 건 동시였다. 막연하게 여행에세이에 대해선 비판적인 내게도 이런 마음이 들 수 있게 만들어주는 책이 있구나 - 라는 생각에 기쁜 마음과 함께 이 책을 덥썩 품에 안게 된 책이었는데, 딱 그만큼의 실망이었다. 딱 기대했던 만큼의 실망. 어쩌지? 난 미안하게도 이 책에 세개 이상의 별을 줄 수가 없다. 별 세개도 내 입장에서 본다면야 무척이나 관대한 것만 같아서 하나를 빼야 하나, 말아야 하나 무척이나 고민을 하게 만드는 것이 어쩌면 그의 전작이었던 「on the road」나 「언제나 써바이 써바이」를 추천하는 지인들이 많아 한껏 기대를 했던 까닭일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내가 직접 읽어보지 않은 책의 대한 평이 좋다고 하여 그 다음 작품까지 좋겠지,라고 기대한 나에게도 탓은 있다. 

 

 

 

누군가의 여행 이야기를 읽는 것만으론 부족했다. 책 속에 등장하는 낯선 세계를 직접 느끼고 싶었다. 여행을 떠난 작가와 함께 나란히 길을 걷고, 그가 만난 사람들을 보고 싶었(p8)기에 책여행과 여행책이 합해져 「책여행책」이 되었다는 그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그러고보니, 전에 비슷하지만 다른 책을 접했던 것도 같다. 번역하는 여자 , 윤미나의 「굴라쉬 브런치」 - 그것은 독서 여행기라고도 불리우는데, 그것은 작가가 쓴 소설의 배경에 찾아가 그 책들과 조우하는 것이 그 까닭이다. 뭔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난 지금 도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지 정리가 하나도 되질 않는다.) 그러니까, 어쩌면 그때 받았던 감흥을 - 이 책에서 다시 느껴볼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가지고 시작했다.

 

 

 

 

책을 덮고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을 꼽자면, 「아웃사이더 예찬」을 읽고 ‘성적 소수자들의 낙원이라’불리는 프로빈스 타운으로 가서 게이들이 스스로를 ‘게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이후다. ‘게이(gay)’라는 말 자체가 ‘명량한, 즐거운, 낙관적인, 밝은’의 의미를 갖고 있다. 이 호칭에서 알 수 있듯, 그들은 스스로를 더 이상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게이스럽게 산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자부심을 갖고 명랑하게 낙관적으로 산다는 말이다. 프로빈스타운 사람들은 참 게이스럽다. (p22) 라는 것을 느끼고 독자에게 전해주더라는 것,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읽고 체가 짜놓은 일정대로 체가 60년 전에 다녀갔던 그곳들 - 아르헨티나‘산 마르틴 데로스 안데스’에서 체가 며칠간 지냈다는 국립공원 관리사무소, 칠레에선 체가 묵었다는 ‘로스 앙헬레스 소방서’- 을 발견하고 신기해했을 그의 모습이 스쳐지나가며 미소가 입가에 걸리게 되고, 「내일은 어느 초원에서 잘까」 의 배경인 몽골의 아르항가이 초원에서 게르의 집 앞에서 몽골식 인사법으로 외친다. “개를 붙잡아주세요!”, 「느긋하게 걸어라」를 읽고는  ‘좋은 길’ 또는 ‘여행’을 뜻하는 스페인어인 ‘카미노’라고도 불리는 산티아고길을 찾아가는데,  그곳을 정말 걷는다. 정말 대책없다. 푸하하하 - 순례자여. 당신이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곧 길이다. 당신의 발걸음, 그것이 카미노다. (p136) ㅡ 총 열여섯권의 책을 읽고 책여행을 한다.

 

 

 

 

그렇게 책여행을 끝내고 나서,  ‘크레모나, 헬싱키, 할렘, 교토, 아바나, 아를, 앙코르와트, 하코다테, 님만해민, 뒤셀도르프, 후지산, 카오산로드, 야쿠시마’ 열세 개 나라의 수도를 방문하여 여행책을 써내려간다. 책에 흥미를 느낀 것은 바로 그때였음을 덮었던 책을 뒤적이며 서평을 쓰는 지금 깨닫는다. 다녀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여행책을 써낸 어떤 연결고리도 없이 이어지는 도시들은 내 머릿 속에서 뒤죽박죽으로 반죽된 채로 덩그러니 남아있었고, 흥미는 점점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 차고 올라오지 못한 것은 아마도 무언의 반항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지루해 지루해 - 를 연발하던 나는 결국 처음 책을 읽을 때와는 달리 아무런 감흥없이 책을 덮어야만 했다. 그것이 비단 책에 아무런 사진이 없다는 것뿐만은 아니었을터. 나는 카미노에 대해 마음대로 기대하고 실망했다. 정작 카미노는 내가 찬사를 보내건 실망을 하건 제자리에 제 모습 그대로 있었다. 나 혼자만 요란을 떨었다. 그때 난 카미노에서 누리고 있는 것들을 망각하고 있었다. 카미노는 가르쳐주었다. 실망을 하더라도 집착하지 말며, 현재를 누리되 집착하지 말라고. (p139) 나 역시 그의 책에 마음대로 기대하고 실망하여 다 읽고 나서는 공허한 마음마저 들었더랬다. 나는 덮었던 책을 다시 펴서 승차감이 투박한 하이카라찡찡 전차를 타고 다시 한번 하코다테를 구경할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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