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첫 번째 걷기 여행 - 머리를 비우고 마음을 다독이는
김연미 지음 / 나무수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여행이라는 분야에 있어 나라는 사람에 대해 간추리자면, 여행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먼저 여행가자,라고 말할 만큼 여행을 좋아하는 편도 아닌데, 아이러니하게 요즘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을 보면 마음 속에 황량한 바람이 계속해서 스며들고 있는가보다. 이럴 땐 걷는 게 최고지,하면서 시작한 것이라고는 그저 런닝머신 위에서만 걷는 것 뿐이다. 풉. 지금으로부터 3년 전, 그 무엇도 위로가 되지 못한 시절이 있었다. 그 어떤 이보다 찬란해야 했던 나였는데, 그런 내가 물을 먹어 빛을 잃은 하나의 전구와도 다를 바 없는 존재와도 같았으니 -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힘들 때 사람이 의지할 수 있는 거라고는 사람과 술. 그밖에 무엇이 있겠는가 말이다. 이리 써놓고 보니 이 서평이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과 다를 바가 뭐가 있나 싶겠다. 어찌됐든, 걷는 것은 꽤 매력이 있다. 전에는 버스를 타고 혹은 택시를 타고 다니던 길들을 이제는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이 나와 걸어서 가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는데, 걷는 동안 만큼은 오로지 나만의 시간이라는 점. 그 누구도 감히 나와 나의 소통에 끼어들 수 있는 간극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나는 슬픔이 마음 속을 찢어놓을 만큼 힘들 때, 고민이 머릿 속을 지배할 때 등등, 나는 한적한 골목 구석구석의 길을 혹은 소음이 섞인 도시의 길을 그렇게 걸었다. 하지만 십이월이 되니 찬 바람이 뼈 속에서 휭휭 불어대고, 그로 인해 걸어야겠다는 의지는 또 한 풀 꺾이고 내년을 기약하는 내가 보임에 허허 웃어버린다.

 

 

 

  

‘서울 남산 산책로, 경기 용인 한택식물원 꽃길, 경남 하동 · 전남 광양 섬진강 매화길, 인천 웅진 덕적도 비조봉, 충남 서산 개심사~서산마애삼존불상 포행길, 강원 횡성 숲체원 편안한 등산로, 경남 함양 개평마을 고샅, 경기 여주 해여림식물원 산수유길, 전북 정읍 내장산 자연관찰로, 제주 올레길’ ㅡ 꽃을 좋아하는 나는 꽃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이라면 별 다섯개짜리의 의미인 간색 포스트잇 플래그를 덕지덕지 붙여놓고는 혼자 뿌듯해했다. 올해 겨울에도 여전히 듬직하게 내 옆을 지켜주는 그에게 “나, 여기 가고 싶어. 같이 안가면 친구랑 가든가, 혼자라도 갈거야.”라고 으름장을 늘어놓은 상태. 하긴, 나보다 여행을 더 좋아하는 그는 내가 가자고만 하면 카메라를 이미 챙겨들고 언제 갈래? 하며 나를 재촉할 터, 결코 손사레치며 마다할리 없음을 약삭빠른 난 이미 꿰뚫고 있었던 게다. 쿡쿡.


 

지방에 살고 있는 나는 ‘서울 남산 산책로’는커녕 근처에도 못가봤는데, TV에서 걸핏하면 나오는 통에 가보지 않은 그 곳을 몇번이고 다녀온 기분마저 든다. 하지만 볼 때마다 다른 것을 보니, 내가 직접 가면 또 얼마나 다른 모습으로 나를 놀래켜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어, 그에게 얼른얼른! 하며 보채는 내 꼴은 참으로 우습다. 하지만 그곳에 도착해서는 빨리빨리 - 를 추구하기보다는 도리어 느릿느릿의 미덕을 배워 불안한 삶을 재정비할 여유를 가져서 올테지. ‘경기 용인 한택식물원 꽃길’을 읽을 때에는 욕심같아서는 꽃이 다르게 피는 달마다 가서 꽃을 적은 메모지 한 장, 한 장마다_ 내가 입은 옷, 내가 신은 신발, 내가 쓴 안경의 테두리, 심지어 내가 내뿜는 입김 하나, 하나까지도  꽃내음을 가득 묻혀오고 싶을 정도로 폭 빠져버려서 2011년의 해가 밝으면 꼭 가야할 곳,으로 벌써 꼽아놓은 상태다. 또한 3월, 매서운 꽃샘추위를 뚫고 ‘경남 하동 · 전남 광양 섬진강 매화길’에 당도해서 매화를 손으로 어루어만지고는 나에게 너의 향기를 나누어 달라며 떼를 있는 대로 쓰고 올지도 모를 일이며, 갈림길이 있어 몇 번의 선택을 해야만 한다는 ‘인천 웅진 덕적도 비조봉’에 가서 오직 나의 선택을 믿고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용기를 배워올지도 모르겠다. 처음부터 내 눈을 사로 잡은 붉디 붉은 왕벚꽃이 천지에 떨어져 있어 보는 눈까지도 붉게 만드는 그 사진을 찍은 ‘충남 서산 개심사~서산마애삼존불상 포행길’은 실은 왕벚꽃이 아니라면 나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없었을 터, 나는 분명 이 곳을 방문할 일이 있다면 왕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사월 중순경에 갈테다,라며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중이다. ‘강원 횡성 숲체원 편안한 등산로’는 걷기는 좋아해도 등산이라면 손사레를 치는 나에게 적역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과 함께, 와 - 정말 이런 곳이 있단 말이야? 난 왜 이제서야 알았지? 라며 한탄을 해야했는데, 그것은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만 할뿐, 어딘가를 가야겠다,라고 단호히 마음 먹은 적이 없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제서야 알게 된 것을 감사해야 하는가. 큭큭. 담장 너머로 능소화가 핀다는 ‘경남 함양 개평마을 고샅’ - 비록 그곳이 그들이 있던 곳은 아니지만 난 아마 조두진의 「능소화」를 떠올리며 응태와 여늬의 가슴 아픈 사랑을 상기시키겠지. 그곳은 꼭, 사랑하는 이와 함께 가서 응태와 여늬에게 안부를 전하며  팔목수라로부터 우리 둘을 지켜달라, 그리 말하고 와야겠다. ‘경기 여주 해여림식물원 산수유길’에선 긍정적을 이르는 대표적인 단어들로 총집합된 10km에 이르는 꿈, 희망, 미래, 행복, 보람의 동산 - 다섯 가지 테마로 구성되었다는 이 곳을 여유로이 걷고 또 걷고, 쉬어갈 곳은 쉬어가며 그렇게 여유롭게 - .

 

 

 

 

책을 덮음과 동시에, 내 몸에 싱그러운 자연만의 향기가 내려와 앉은 것을 확인하고는, 이것이 날아가 버리기 전에 나도 떠나야 겠다, 생각한다. 무채색의 도시에서만 계절을 맞기에는 세월이 너무 눈부시다. 라는 그녀의 말이 눈에서 아른거리는 것이 그 까닭이다. 아, 아름답다. 그녀가 지탱하고 있는 땅이, 그녀가 가려는 길이, 그녀의 힘찬 발걸음이, 그녀의 입김과 함께 피어오르는 열정이. - 비단 이 책에는 그녀의 발자욱만 새겨진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생이 그녀의 발자욱을 따라 함께 걷고 있던 게다. 나는 책을 읽으며 그녀의 손 끝에서 새록새록 싹을 틔운 뭉그러지지 않은 단어들을 조합하며 감히 그녀의 생을 추측했고, 그것이 더 아름답게 빛나길 소망했다. 실은 여행서라고 한다면 내가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떠날 수 있는 곳이 아닌, 돈과 시간이 적절히 어우러진 그런 해외 여행만을 생각했고, 실제로도 나는 그런 여행서를 많이 접했었다. 물론 국내 여행에 관한 책들이 한창 출간되던 때가 있을 테고, 지금도 간간히 나온다는 점은 인터넷으로의 검색을 통해서라면 알 수 있는 부분임에도 그 무엇도 나의 눈길을 꽂을 만한 책은 없었다. 늘 똑같은 일상에 권태를 느낀 적도 있었으나 주말만 되면 쉬기 바빴던 나는 조금 있으면 새로이 맞는 2011년의 주말이 조금은 즐거워질 것도 같은 예감이 몽글몽글 솟아오르는 것이 벅찬 기대감을 안겨준다. 어쩌면 이렇게 그녀의 책을 만나게 된 것은 큰 행운,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만큼 나는 그녀에게서 격동적인 열정을 선물받은 기분이다. 발로 직접 걸어 얻은 값진 지도다. 길은 걸어야만 거리를 좁힐 수 있다. 사람과 사이에도 길이 있어, 그 길을 걸었으면 좋겠다. 
여행서인 만큼 별 다섯개를 주기란 내게 무척이나 어려운 과제다. 어쩌면 별 다섯개를 채워줄 별 반개는 내 발로 직접 다녀와서 내 발자취를 상상하며 이 책을 읽을 수 있을 때, 그때에 새로이 얹어주겠노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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