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고백
치트라 바네르지 디바카루니 지음, 이진 옮김 / 뿔(웅진)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고백’이라는 단어가 내게 주는 감정은 뺨에 홍조를 띠게 만드는 것과 같은 류의 기분좋음을 안겨준다. 나에게 있어 ‘고백’이라는 단어가 풍기는 것이 자백, 실토, 이실직고와는 다른 류의 단어로 다가오기 때문이겠지. 이를테면 수줍은 아이의 “너를 좋아해.”와 같은 순수함을 상기시켰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눈에 들어온 표지가 내가 생각한 그것을 떠올리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 무엇보다 어두침침한 색의 조합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표지의 색으로 그 책을 판단하는 것에 무리수가 따른다는 것은 알지만 분홍빛깔이 웃도는 그런 이야기가 아님은 확실할 터. 한 소녀가 들판에서 무언가를 집고 있는 듯한 이 표지는 책장을 덮은 지금도 의아함을 감출 수가 없는데, 이 표지를 보고서 책의 이야기를 상상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닌 책과 무슨 연계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엉뚱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그 까닭이다. 책 제목 왼쪽 귀퉁이에 생의 마지막 순간 떠올릴 일생의 잊지 못할 기억들…… 인종과 국적을 초월한 인류의 위대한 이야기 여정이 시작된다! 라는 글귀를 시작으로 책을 읽는다. 하지만 난 이 책의 전체적인 구조를 잡기 위해서 7,80페이지라는 분량을 허비해야만 했는데, 챕터마다 시점이 다르다는 점이 한 몫 했겠지만, 요즘 나의 집중력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태도 예외일 수는 없을 것이다. 책을 파악한 순간부터 다시 첫 장을 들어서 보니, 아 - 그제서야 눈에 들어오고, 그제서야 눈이 그들을 알아보고 반응한다.

 

 

 

장소는 인도 영사관, 지진이 발생하는 바람에 건물 지하에 갇힌 9명이 있다. 그 극한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어둠 속에서 지치고 초췌한 얼굴로 공포에  떨며 매우 조금 남은 비상식량으로 목숨을 연명하며 지상에 있는 이들이 자신들을 찾아내어 구출해주길 바라는 것, 그것뿐이리라. 그러던 중 “각자 살아오면서 겪은 놀라운 사건 이야기를 해보면 어떨까요?” 라며 한 여대생이 제안하는데, 그런 게임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둥, 할 얘기가 없다는 둥, 이야기 같은 건 해본 적이 없다는 둥, 이야기를 잘 못한다는 둥 - 하는 불평·불만들을 무수히 쏟아내놓지만 “누구에게나 이야기는 있어요.” 라며 그 질문들을 제압한다. 이야기를 듣는 것에 있어서 규칙이 필요했는데 ‘끼어들지 않기, 질문하지 않기, 비판하지 않기, 한 사람의 이야기가 끝나면 필요에 따라 휴식시간 갖기’ ㅡ 하나의 책을 통해 하나도, 둘도 아닌 무려 아홉 명의 삶을 엿볼 수 있다면, 굉장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들의 각기 다른 이야기는 독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삶에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라는 것이 메인 요리를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해 밑반찬을 깔아주는 것이 있는 것, - 그것은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 구성 중 하나인데, 이를 어쩌나, 이 책은 반대다. 메인 요리가 지진이라고 한다면, 밑반찬은 그들의 이야기인데 - 그러기엔 메인 요리가 너무 허무맹랑하고 지지부진하지 않은가. 아니, 달리 생각한다면 그들의 이야기인 아홉 가지의 메인 요리를 돋보이게 하려고 지진이라는 밑반찬을 깔았을지도 모르겠다. 아, 이제서야 마음이 조금 놓이는 것이 결국 내 마음은 그 의미로 받아들일 작정인가보다. 나는 그렇게 내 멋대로 이 책을 소화시키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이야기라, 이야기 - 내가 이 세상에 태동하기 시작한 이래로부터 이야기를 꺼내놓자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불분명하지만 적어도)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할 이야기를 떠올리려보니, 딱히 어떤 이야기를 해야하는가에 대한 막막함이 찬바람과 함께 내 몸을 휘감는다. 이제 생각해보면 내가 왜 어째서 그런 사소한 질문 앞에서 우뚝 멈추어섰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니까 나는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상상하여 그런 상황이 온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야만 하는 것인지, 그것에 집착하고 있는 꼴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나중에 죽기 전, 누군가에게 들려주어야 하는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 생각의 끝을 봐야겠다는 마음마저 들더란 것이다.

 

 

 

그래서 오랜 기간을 두고 생각한 끝에 내가 할 이야기는, 그 무엇도 아닌 내 자신에 대한 사과,였다. 내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고 누구보다 더, 누구보다 더,를 외치던 나와 - 실은 그것을 깨달은 지금부터라도 버려야 하겠지만, 그것을 버리는 순간부터 나는 사회에서 방황하는 한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점 또한 깊숙히 깨달아버렸음이 통한스럽다. 사회에서 박탈당하기 싫은 나의 처절함이지만, 그것을 후회스러워하는. 결국은 아이러니한, 양면성을 띤 고백이라는 게지.-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내 곁에 있을 그 사람에게 고마움을 전달하는 것. 그거면 된거다,싶은거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서 죽음을 앞둔 순간에 그들 이야기의 합일점을 찾아냈는데, 그것은 아물지 않은 상처였다. 그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써, 겉으로는 태연하게 살아가는 그들의 삶도 완전치는 못하다는 것을 깨달음과 동시에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를 주고 받는 것. 그것이었다. 아마, 이것이 이 책이 나에게 주고자 했던 깨달음이 아닐까, 하지만 난 이 책이 만족스럽지 못하다. 책을 읽기 전보다 읽은 후에 갈증이 나는 것이 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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