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김진명 작가 를 처음 만나게 된 것은 「천년의 금서」의 덕택이다. 혹자가 그 작품은 다른 작품들에 비해 실망스러운 작품이라고 말하는 것을 나는 서평을 통해 만났었더랬다. 하지만 나는 그의 작품을 읽은 것은 그것 하나뿐이었으니 뭐 어떻다 말할 처지가 아니었고, 도리어 실망스럽다던 그 작품에 나는 풍덩 빠져 학원이 끝나고 집에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에 그 책을 읽다가 무려 네 번의 버스를 놓칠 정도로 무척이나 흥미있게 읽었었던 기억에 김진명이라는 작가에 호기를 품지 않을 수 없었다. 한(韓)씨 성을 가진 이가 大韓民國이라는 단어 중 ‘韓’의 어원에 의문을 품고 시작한 이야기가 그에 따른 어마어마한 진실을 내놓기까지의 그 과정이 흥미롭게 읽혔는데, 사이사이 지루하다 할 틈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 내가 이번에 읽은 「1026」을 들기까지 딱 일년이 걸렸다. 읽던 책을 사무실에 놓고 온 것이 이 책을 생각보다 빨리 손에 들게 만들었다. 금세라도 엎어져 잘 듯할 정도로 피곤했기에, 자기 전 조금만 읽는다는 것이 푹 빠져 읽게 된 것은 물론이거니와, 졸음이 가득한 눈에 활력을 줄 정도였으며, 심지어 그 다음 날은 읽고 있던 책을 제치고서라도 주욱 읽고 싶은 심정이었음은 내가 이 책에 얼마나 빠져있었던가를 알려주는 것이 된다.

 

 

 

“바…… 박 대통령…… 비밀…… 10·26…… 비밀을…… 내가…… 수연…… 하……하……하우스…… 으……으……헉.” 수연의 부탁으로 전화를 대신 받게 된 경훈은 제럴드 현이 남긴 위와 같은 말을 유언을 단서로 모순으로 점철된 10·26의 실상을 파헤친다,라는 것이 내가 이 책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간략한 줄거리다. 1979년 10월 26일. 내가 태동하기 약 10년 전, 그러니까 나와는 동떨어진 시대에 일어난 사건이다. 하지만 시간이 그렇게 흘렀음에도 아직도 확실하게 매듭지어지지 않은 이야기. 그래서 그때의 그 사건에 궁금증을 품은 이가 자신이 생각하는 가설로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했다. 이야기의 발단은 결코 특이하거나 희귀하지 않고, 평범하기 이를 데 없다. 그렇기에 말도 안된다며 발끈하거나 그럴 거리도 없음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하지만 좀 아쉽다,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경훈과 나는 분명 동등선에서 출발했고, 모든 대화 내용도 나도 함께 들었음에도, 그가 변호사라는 직업 탓인지, 내가 그때의 정치 상황을 제대로 꿰뚫지 못했던 탓이 컸던 것인지 -혹은 그 둘 다 인 것인지도- 두뇌 회전이 빠른 그가 문제를 다 풀어버려서 그것을 공유하기 보다는 아, 그렇구나 - 라며 자연스레 관찰자가 되버린다는 것. 그리고 직접 발로 뛰어 알아내는 것 보다는 대화를 통해 알아내는 것이 더 많았던지라 아, 이거 생각보다 일이 빨리 풀리겠는데 - 했던 것. 풀릴 듯, 풀릴 듯 하면서도 풀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이야기가 꼬이느냐, 또 그것도 아니다. 이야기는 절대 꼬이지 않는다. 그저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면 자연스레 그에 따른 또 다른 의문이 생기는 것, 그것뿐이다. 그것은 답답하다고 표현하기보다는 도리어 흥미롭다. 하지만 국가의 몇급비밀‘씩’이나 되는 것을 변호사라는 이유만으로 툭 - 털어놓을 수 있다는 것은 조금 의아스럽기도 했는데, 그로 인해 우리는 이 책에서 조금 더 많은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는 사실에 그나마 위안이 되더란 것이다. ‘10·26’ 드디어 그 실루엣을 공개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죽음, 그것에 관하여 의문을 품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다름아닌 나였다. 나는 고등학교때 문과였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생각도 나지 않는 일사부재리의 원칙, 미란다의 원칙, 헌법 따위를 달달 외우기만 했을 뿐, 한국근현대사에 대해서는 초,중학교를 다니며 배운 국사가 전부였다. 그래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임기 중 김재규에 시해되었다,라고만 알고 있었지 - 어떤 연유로 그랬을지, 그 배후엔 누가 있었을지, 심지어 김재규, 그는 어떤 이인지 직접 찾아본 적도 없거니와, 궁금해 해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음이 이토록 얼굴이 화끈거리도록 부끄럽다. 그것은 스무 살하고도 몇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실재와 허구가 적당히 버무려진 「1026」이라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이것을 전부 실재라고 믿어버릴지도 모르는 나 때문에, 그때의 사건과 관련된 기사들을 검색하여 찾아보고 있는 내가 보인다.

 

 

 

마지막 부분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등장하며 햇볕정책이 계속 나오는데,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이 일어나기 전인 작년에 이 책을 읽었다면 햇볕정책의 긍정적인 면들에 대해 조금은 고개를 주억거릴 수도 있었을 것도 같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라면야  어디 그것을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말이다. 책에서 북한은 우리의 동포이고, 혈연이기에 “리 국민은 우리의 동의 없이 미국이 일방적으로북한을 공격했을 때 절대로 미국의 편에 서서 핏줄 간의 전쟁을 치르지는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하지만, 지금은 어디 그런가. 초,중,고등학교 때에는 분명 북한은 우리의 형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배웠던 나는 올해(2010) 끄트머리에 와서 국방백서에 ‘북한정권·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고 다시 정정하여 명기되는 것을 지켜보는 현세에 있다. 아, 통한스럽다.

 

 

 

나는 아마 작가의 또 다른 책을 읽게 된다면 -그럴테지만- 그저 김진명 작가의 작품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며 기분 좋게 읽을 테다. 우선 그의 작품은 강하고, 묵직하다. 그리고 과감하다. 하지만 마무리는 그저 아쉬움만 남긴다. 퇴보하는 경향이 있달까. 점진적인 흐름을 꾀하여 결말을 지을 수도 있었을텐데, 작가의 늘 급진적으로 마무리되는 결말은 아쉽다. 서평을 마무리하기에 앞서 - 여담이지만, 두어 달 전 내 방에서 책장 앞에 서서 기웃기웃거리는 아빠를 보았다. 아빠가 나가시고 나는 백권도 훨씬 넘는 책들을 보았는데 아빠에게 무엇 하나 떳떳하게 추천해드릴 수 있는 책이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더란 거다. 시시콜콜한 소설책을 추천해드리기엔 석연치 않은 마음과 또 한편으로는 속에서 꼬물꼬물거리는 왠지 모를 부끄러움 때문에 결국은 책만 뚫어져라 쳐다볼 뿐, 어떤 책도 추천해드리지 못했던 것이 아직도 아쉬움으로 남아있는데, 이 책 만큼은 웃으면서 읽어보시라고 권해드릴 수 있겠다,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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