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이곳은 눈이 정말 많이 내렸다. 하루종일 눈이 내려고 오후부터는 많은 눈이 내려 퇴근길이
무척 혼잡했을 듯 하다.그렇기에 옆지기도 다른 때보다 사십여분 늦게 들어 왔는데 다른 이들은
더 많이 걸렸다고 한다. 모두가 하루종일 내린 눈에 거북이걸음이었으니...하지만 난 이런 눈이
반가우니.뒷산에 갈 수 있다는,아니 가고 싶다는 생각에 하루종일 심난한 하루를 보냈다. 가지도
못하면서 괜히 앞 뒤로 왔다갔다 바깥 풍경만 쳐다보기만 할뿐 나가지도 못했다. 그런데 오늘은
아침 일찍 밖을 보니 정말 상큼하고 맑으며 얼른 뒷산으로 달려가고 싶게 만든다.거기에 친구가
베란다창으로 보이는 뒷산풍경을 찍어서 보내주니 나도 울집 뒷산으로 달려가고 싶은 생각이 마구
마구 퐁퐁 솟아 나는 것이다.그래서 얼른 산에 갈 준비를 했다. 해야할 일은 잠시 미루어 두고.
지난 일요일 영인산 산행을 갔는데 넘 힘든 것이다. 십일월 가을여행 때 체력을 너무 소모한 덕인지
아님 내가 다시 저질체력으로 변한것인지.암튼 요즘 너무 뒷산 산행을 하지 않아 바탕인 체력이 방전
이 된 듯 해서 뒷산 산행을 춥지만 자주 해야겠다 마음 먹었는데 이렇게 눈이 내려주니 설레임에 더
산에 가고 싶은데 미끄러질까봐 걱정,추울까봐 걱정...시작하기 전에 이건 원.그래도 용기를 내서 따
뜻한 메밀차 보온병에 담고 따뜻하게 모자 쓰고 조끼까지 껴 입고 파카를 입고 나섰다.아이젠과 스
틱은 기본으로 챙기고 장갑은 왼손은 두꺼운 것 오른손은 손가락 장갑을 끼었다. 핸펀으로 사진을 찍
어야 하니 요게 또 문제다. 스마트폰장갑을 하나 사던가 해야지 손이 시려워 사진을 잘 찍지 못한다는.
산의 초입에 들어서서 스틱을 꽂아 놓고 아이젠을 하고 장갑을 맞추어 끼고 모자도 귀마개를 내려서
귀를 덮어 주었다.그랬더니 바람이 코와 턱만...춥지도 않고 딱 좋다.
눈이 내려 바람이 차고 상큼해서일까 지난 일요일보다 덜 부대끼고 몸도 가볍다.눈이 내려서 힘들
줄 알았는데 그렇게 힘들이지 않고 생각보다 더 잘 올라가고 있는 것 아닌가. 내가 내가 아닌듯.
눈이 내려서 그야말로 고요하다.바람이 쌩쌩 겨울나무를 흔들고 있고 그 때문에 가끔 눈이 떨어져
내리고 투덕 투덕 어디선가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만 들릴뿐 고요하고 깨끗해서 좋다. 눈이 내렸어도
누군가 부지런한 이가 많이 다녀갔는지 발자국이 지나간 흔적을 남겼다. 눈길에서는 조심 조심 가야
한다고,누군가 내 발자국을 이정표 삼을수도 있으니 조심해서 걸어야 한다. 그런데 난 누군가의 발
자국을 따르기 보다는 사람들이 밟지 않은 곳을 밟으며 올랐다. 먼저 누군가 밟고 지나간 곳은 눈이
녹아서 진흙탕길이다. 눈을 밟고 오르는 편이 더 나아 그랬더니 뽀드득 뽀드득 소리가 참 좋다.
어제 눈이 정말 많이 내렸나보다.십센티가 넘게 쌓여 있는 듯 하다. 오늘도 눈이 내린다고 했는데
다행히 맑은 하늘이라 더 좋다.눈이 내린 후 파란 하늘이면 정말 멋지다. 아무도 밟지 않은 햐얀
눈이 쌓인 곳을 밟으며 내 발자국을 찍어 놓고 잠시 숲에 정지한 듯 가만히 숲의 소리를 들어 본다.
고요함도 좋고 두 뺨에 와 닿는 차가운 바람이 정말 좋다.상쾌하다. 가슴속이 다 후련해진다. 산에
오지 않았다면 후회했을 것이다. 산의 초입에 들어서서 미끄러울까봐 산은 오르지 않고 둘레길만
걸어야지 생각을 했다.그러다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다니..하는 생각이 들어 올랐는데 역시나 오르
길 잘했다.미리 포기하지 말라는 교훈을 얻는다. 서두르지 않고 걸으면 괜찮은데 미리 걱정을.
붐비지 않아서 좋고 더렵혀지지 않아서 좋고.나무가 낙엽을 떨구어 내고 빈가지를 하얀 눈이 채워
져 따뜻해 보인다.하얀 솜옷을 입은 나무들이 바람에 하얀 눈을 털어 내면 다시금 눈이 내리는 듯
한 풍경을 자아낸다. 눈이 내리니 울동네 풍경도 다르게 보이고 하얀 눈이 세상을 다시 보게 만든다.
또 다른 시선을 안겨준다.
욕심내지 않고 올랐더니 더 금방 정상에 오른 듯 하다. 아무도 없는 길을 혼자 걷는데 자꾸만 뒤에
서 누군가 따라오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오르다 잠깐 뒤돌아 보면 아무도 없는데 무슨 소리지.
하고 뒤돌아보면 나 혼자다. 모자에 있는 귀마개를 했더니 소리가 더 분산되서 들리는지 자꾸 누가
따라오는 듯한 느낌,겨울이 따라오나. 정상에 서서 한동안 시원한 공기로 몸속에 가득 충전해 본다.
시원하다. 멀리 보이는 산들이 전부 하얗게 하얗게 눈으로 덮여 있다. 울동네도 눈으로 덮여 다른 공
간에 온 듯한 느낌이 들고 이제 본격적인 겨울인양 난 잠시 서서 겨울을 본다.
늘 뒷산에 오면 망설인다.산 하나만 타고 말아야지 하다가 정상에서 하산길로 내려오고 나면
다시 이어지는 작은 산에 또 가고 싶은 것이다. 뒷산은 두 개로 나뉘어져 있어서 한바퀴 돌고 나면
한시간정도 천천히 돌면 넉넉하게 잡아도 한시간 반 정도의 시간을 요한다. 그래서 운동하기 딱
좋은데 요게 또 게으름모드이면 오기 싫은 것이다. 한번 오면 자꾸 오고 싶은데 이런저런 핑계로
미루다보면 체력도 떨어지고 뒷산도 힘든 저질체력이 되고 만다. 그런데 오늘은 눈이 내려서일까
정말 가뿐하게 두 산을 모두 걸었다.사람이 지나간 곳은 벌써 눈이 녹고 있어 질척질척,그래서 더
눈이 쌓인 길을 걸었더니 느낌이 더 좋다.
눈오면 꼭 한번 해보는~~ㅋㅋ
작은 산에서 오는 길 둘레길로 오는데 아가배,돌배나무에 돌배가 매달려 있다. 하나를 따서 보니
속이 까맣게 익은 채로 있어 입에 넣고 먹었다.어릴 때 산밭에 아버지와 함께 하서 많이 따먹던
것인데..이젠 추억만 남고 아버지는 곁에 없으시니 아가배를 보면 아버지 생각이 난다.아가배를
따고 찍고 있는데 누군가 지나며 크게 기침을 해서 깜짝 놀랐다. 지나간다고 표시로 한 것 같은데
난 이런 소리에 정말 크게 놀란다. 남겨진 시간은 나 혼자,아가배와 함께 나도 겨울 이 시간 속에
추억 한자락 저장해 본다.
산행을 마치고 따뜻한 메밀차 한 잔 따라서 마시고 있는데 거짓말처럼 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이다.
내가 산에 들어설 때도 날이 좋았고 눈도 내리지 않아서 산행하기 정말 좋았는데 마치자마자 눈이
내리다니.혼자 산에 있는 시간이 넘 좋아 신날새의 해금 음악을 틀어 놓고 따뜻한 메밀차를 마시며
잠시 이 시간을 혼자 즐겼다. 완전한 겨울나무로 이곳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지만 오늘은 내가 겨울
나무가 되어 눈을 맞은 것처럼 이 기분 뭘까? 눈이 내리면 겨울산은 이렇게 뒷산이라도 몇 번 올라
야 설레임이 줄어 드는데 겨울맛을 보았으니 한동안 여운이 길게 갈 듯 하다. 미끄러울까봐 넘어질
까봐 미리 걱정하고 포기하려 했는데 아무 탈 없이 무사히 잘 오르고 내리고 그렇게 또 한페이지
겨울이야기를 간직하게 되었다.오늘도 눈예보가 있었고 많이 내린다는데 내일도 뒷산 예약을 할까.
암튼 산에 오니 상쾌하고 시원하고 맘 속이 다 후련해지는 깨끗한 기분 넘 좋다.이래서 또 겨울산을
찾는가보다.
2013.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