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모래 - 2013년 제1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구소은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삼다多의 섬 제주도에서 특히나 여자의 삶은 그야말로 '억척'이라 말할 수 있다. 거센 바람과 돌이 많은 땅을 일구고 바다에서 잠녀들에 의해 건져 올려지는 해산물까지 그녀들의 삶은 억척스럽지 않으면 섬에서 견디어내기 힘든,그것이 나라를 잃고 더불어 가난이 모두의 목숨을 위협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악스럽게 현실과 맞써야 했을 것이다. 위기 상황에서 남성 보다는 여성이 더 위기대처에 능수능란함이 드러난다. 식구들 입에 풀칠할 것을 억척스럽게 마련하는가 하면 거기에 자식들 교육까지 우리나라 '어머니'들은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은 굶어도 새끼들은 먹고 입히고 교육시키며 그렇게 일으켜세웠다. 자신은 까막눈이어도 자식은 힘들게 벌어 대학까지 교육시키는 것이 우리네 어머니들이었다.그것이 섬 바다 특히나 태어나는 순간 나라를 잃었고 태어나는 순간부터 잠녀였던 삶이라면 누구보다 더 억척이었을 것 같다.

 

여기 그런 잠녀의 역사가 있다.우도의 한 바닷가에서 태어나는 순간 나라를 잃었고 잠녀였으며 가난을 벗어나기 위하여 일본 바다로 출가물질까지 가야했던 구월과 해금 그리고 그들의 다음세대인 켄과 미유까지 이어지는 100년의 역사,우리 근대사와 함께 한 이들의 가족사는 나라를 잃고 일제강점기에 일본 미야케지마로 이주를 하여 삶이 '여행'이라 생각하며 좀더 나은 삶을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는 이산가족의 아픔을 그리고 있다. '영과후진, 흐르는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라고 했다. 나라 안팎으로 사정이 좋을 때도 다른 나라에 가서 뿌리를 내리고 산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그런데 다른 것도 아닌 일제강점기이니 일본에서 한국인으로 뿌리를 내리고 사는 것은 더없이 힘든 일이었을텐데 잠녀로 가정 경제도 책임지며 자식을 누구보다 잘 키워내려 했던 어머니들의 삶은 또 얼마나 핍박이었을까.어머니들의 옹이진 삶이 웅덩일르 채워 주었기에 켄에서 미유에게로 삶은 이어지고 시간은 흘러갈 수 있었을 것이다. 역사는 또 그렇게 한국에서 일본으로 흘러갈 수 있었기도 하다.

 

디아스포라는 정착을 꿈꾸는 영원한 이방인이다. 그들의 삶에는 늘 결핍이라는 물이끼가 습진처럼 끼어 있다. 아무리 먹고살 만해도 그들의 가슴은 허기지고,두꺼운 옷을 껴입고 있어도 늘 춥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삶을 설명한들 알 수 있을까.아마도 우진은 그런 말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국적을 버리지 못하고 끝까지 고수한 상잠수 구월과 해금,그녀들의 핍박하고 질곡의 삶을 그 다음세대인 켄(건일)은 외면하듯 한다. 어머니와 멀어지고 어머니가 제주의 잠녀이고 한국인이라는 말이 어머니의 입에서 세어 나오지 않아야만 자신이 일본사회에서 일본인으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갈 수 있는 길이고 그의 딸인 미유가 완전한 일본인이 되는 길이라 생각한다. 잠녀인 어머니 해금의 유복자로 태어나 호적이 없던 그에게 일본인으로 살아가게 호적을 만들어 주기 위하여 생사도 모르는 한태주를 가슴에 묻고 일본인 선장 아들인 청각장애를 가진 후쿠오의 양아들로 만들어야 했던 질곡의 삶 또한 해금에게는 또 얼마나 큰 아픔이었을까.자신의 아버지가 전쟁의 피해자였고 그들 또한 전쟁의 피해자로 격랑의 삶을 살고 있는 가운데 자신의 동반자였던 한태주와 어머니 구월을 잃고 기둥과 같았던 동생 기영이 북한으로 가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는 시간을 그녀에게 던져 준 후 아들 건일만 바라보는 삶에서 아들의 외면은 그녀가 바다속에 잠수 들어갈 때 그녀의 몸을 가라않게 해 주는 납덩이만큼 무거웠을 것이다. 그런 아들이 그녀가 폐암으로 살 날이 줄어들고 나서야 이제서 자신의 어머니를 바로 보게 된다.

 

'두 종류의 시간이 있다.

하나는 흐르는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고이는 시간이다.

흐르는 시간은 육체에 흔적을 남기고 고이는 시간은 가슴에 흔적을 남긴다.'

해금의 아버지인 나가사키 원폭 피해자였던 박상지와 결혼을 약속한 한태주와 동생 박기영은 그녀에게 '고이는 시간' 인 과거이다. 과거의 아픔을 간직하고 그녀는 날마다 납덩이로 자신을 가라앉혀 바다 밑에서 이 힘든 격랑의 시간을 살아가고 견디게 해 줄 생명줄과 같은 해산물을 건져 올려야 했다. 그렇게 해서 가난을 벗어나야 했고 한국인으로 일본에서 뿌리를 내리고 멸시당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다. 해금의 시간을 이어준 것은 누구보다 뛰어난 물질 솜씨가 있어 현재를 견디어 굶지 않고 살아가게 해 주었지만 과거의 웅덩이인 옹이를 채우고 현재로 미래로 나아갈 수 있게 해 준 시간은 '켄과 미유'이다. 흐르는 시간을 그녀에게 준 사람들,하지만 켄은 과거에 머물러 있다. 미래로 나아가기 보다는 과거에 안주하여 더이상 나아가려 하지 않고 있다. 어머니를 받아 들이지 않고 자신의 과거를 받아 들이지 않으며 겉포장을 하고 일본인으로 허울뿐인 일본 이름 '켄' 으로 건일을 버리고 일본인 노릇을 하며 살고 있다. 그것이 온전한 삶일까? 켄은 그것이 자신이 살아갈 길이고 버티어 갈 길이라 생각한다. 그리하여 딸인 미유에게도 쉬쉬하며 자신의 그리고 어머니 해금의 과거를 덮으려 한다. 하지만 역사도 시간도 흐른다. 어느 순간 덮어 있다고 저만큼 흘러가서 잊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어느 순간 수면 위로 고개를 들고 나타나게 되어 있다. 자신의 과거의 문을 빗장을 걸고 숨죽이며 살아가려 했던 그에게 어머니의 폐암 판정은 걸어 잠갔던 빗장을 풀게 만들었다. 자신이 잘못 살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일본 땅에서 재일교포로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란 것을 많이 접해서 알고 있지만 개인의 역사로 보면 분명 건일에게는 오점이고 오류였다. 어머니와 건일의 관계에 물꼬를 튼 것은 그의 딸 '미유'를 통해 화해와 용서 이해를 하게 된다.

 

"나도 조선 사람이고 네 아버지도 조선 사람이었어. 네가 일본 사람들처럼 살 수는 있으나 일본인은 아니다. 그까짓 종이 쪼가리가 피를 대신 할 수는 없는 거야. 아무리 일본 이름을 가지고 산다 해도 네 피를 속일수는 없잖니. 그리고 네 몸속에 흐르는 조선인의 피는 그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순결한 피야.무슨 일이 있어도 그것만은 잊지 마라."

 

제주 우도의 잠녀 구월에서 해금으로 그리고 건일과 미유에게까지의 역사는 제주에서 일본 미야케지마로 뿌리를 내리기까지 격랑의 가족사는 우리의 근대사 100년과 맞물려 역사와 가족사가 씨실과 날실로 잘 짜여진 한벌의 옷이 되어 미유에게까지 와서야 비로소 화해와 용서 속에 몸에 맞는 옷으로 거듭나려 하고 있다. 과거 식민지였고 전쟁의 피해자였지만 굳건하게 자신의 국적을 버리지 않은 해금처럼 우리는 다시금 일어나 '한류'로 일본 사회를 흔들어 놓고 있다. 건일의 입장에서 본다면 백프로 일본인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드라마를 보고 한국을 여행하고 이해 못 할 일이지만 딸 미유에게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할머니의 고향인 제주여행을 가고 좀더 한국어를 열심히 배워 대화를 할 수 있고 해금이 뿌리를 내린 '아리수'를 좀더 한국식으로 가꾸어 자신의 터전으로 삶을 수 있는 것이다. 잠녀로 출가물질을 오던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현재는 한류가 일본사회를 뒤흔들어 놓아 우리것이 일본사회에 하나 둘 정착하고 있는 시대다. 분명 역사도 흐르고 시간도 흘렀다. 어느 누구의 편에서서 빗장을 걸고 문을 닫을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시선으로 역사도 다시 보고 이해할 것은 이해하고 용서와 화해가 필요한 시기이며 잘못된 것은 꼬집고 넘어가야 하는 그런 과거와 미래를 아우룰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소설에서 해금이 미야케지마에 뿌리를 내리지 않았다면 어떠했을까? 어머니의 힘이란 정말 위대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활활 태워 자식을 건사하고 그 다음세대까지 아우르며 과거와 현재를 어머니의 힘으로 이어 놓는 가교 역할을 했는가 하면 자신의 과거 아픔을 꺼내 보기 보다는 미래에 투자를 하며 한국의 어머니상을 잘 보여주었다. 언젠가 나카사키의 아버지가 돌아올지도 모를 곳이고 자신의 반려자인 한태주가 올지도 그리고 동생 박기영이 찾아 올 곳은 미야케지마 아리수다. 그들에게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해줄 것이다.그렇기에 어머니 해금은 더욱 떠나지 못하고 그곳을 지키고 싶을 것이다. 제주의 우도와 비슷한 화산섬,우도의 검은 모래인 검멀레가 생각나고 우도 바다에서 물질해서 잡던 전복이며 미역이며 소라가 있고 자신의 어머니 구월이 일구던 터전이고 지신들을 버리지 않고 보듬어 준 바다가 이곳이다.늘 억척일것만 같던 어머니 해금이 폐암으로 쓰러지고 그런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는 아들 건일이 마음의 문을 열 때 얼마나 눈물이 흐르던지.나 또한 아버지를 폐암으로 보내드렸기에 그 순간이 기억나 마지막 부분은 울면서 읽게 되었다.그 순간은 모든 것이 용서되고 이해되고 더이상 가두어 둘 감정이 무엇이 있을까? 생과 사는 다른 듯 하면서도 같은 얼굴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받아 들여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강하게 부정하며 살아가는 경우가 있지만 모든 것은 시간 앞에 굴복하게 흐르게 마련이다. 역사도 시간이 흐르면 빛이 바래지기는 하겠지만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디엔가 저장되어 있다. 잘못을 했다면 용서를 빌어야 할 것이고 포용할 줄 아는,그것이 또한 미래의 역사와 만나는 방법이기도 한 것 같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우리 부모님과 동생을 데리고 기미가요마루라는 커다란 연락선을 타고 제주를 떠나오는 순간부터 여행이 시작되었던거야. 우리 식구들은 일본에서 돈 많이 벌어서 고향에 돌아가자고 약속했거든. 그러니까 아직도 여행 중인 셈이잖니? 참 길고도 긴 여행이지."

 

검은 모래가 있는 '바다'는 구월과 해금 그리고 건일과 미유까지 그들을 살아가게 해 준 생활터전이기도 하지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이어주고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주는 가교 역할도 하면서 그들에게 용서의 기회를 안겨주는 곳이기도 하다. 어머니가 물질하던 미야케지마의 그 바다를 외면하던 건일이 딸 미유와 아내가 미야케지마와 바다를 좋아하며 그곳에 자주 가는 모습을 보며 그도 서서히 빗장을 풀게 된다.그를 살게 해 준 것은 다른 곳이 아닌 이 푸른 바다와 검은 모래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숨을 쉬고 켄의 정원을 가꾸며 살아 올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과 일본을 이어주는 것도 이 바다고 그들의 삶을 지탱해 준 것도 바다며 바다는 어머니를 품어 주었듯이 모두를 품어주고 용서를 해주었다.우리에겐 정말 아픈 역사였지만 잠녀인 해금의 가족사를 보며 다시금 되짚어 본 역사는 격랑이면서 어쩌면 더 단단하게 담금질하게 만들어 주었는지 모른다. 그것이 또한 우리네 삶이고 현재의 삶이라면 거부하지 말고 받아 들이며 겸허히 살라하는 듯 하다.겸허한 삶으로 일관했던 해금의 삶이 대단하다. 어느 순간 자신의 삶에 무릎을 꿇을 수도 있었을텐데 늘 한결같이 일관한 삶이 현재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의 삶이 아닐까 한다.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내 삶을 되돌아보게 만들며 역사 책 한 권을 읽은 느낌이 들게 만드는 소설이다.나 혼자의 삶이 아니라 공존의 삶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다.책을 읽다 문득 '귀화식물' 을 생각하게 되었다. 귀화식물들은 대부분 우리것보다 더 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남의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려면 더 독한 생명력이 그들에겐 필요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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