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이 시작되고 날마다 뒷산에 산행을 간다고 한 것이 한번도 가지 못하고 구월을 보내게 생겼다.
그래서 오늘은 날도 좋고 해야할 일을 뒤로 미루고 얼른 물 한 병 챙겨 들고 뒷산으로 향했다. 날이
너무 좋아 기분도 좋고 발걸음도 가볍고. 점심시간 때라 많이 오가는 사람은 없어서 하나 둘 오르고
내리는 것을 보니 나말고 산행하는 사람들이 많은가보다. 산의 초입에는 많은 사람들이 밭을 일구어
이것저것 심어 놓아 결실을 맺느라 무성하다. 도라지 고구마 콩 파 가을김장 무 배추 깨... 많은 농
작물이 결실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길가에 양 옆으로 늘어선 코스모스, 밭작물을 일구느라 코스모스를
모두 뽑아 버렸었는데 그래도 많이 나서 한들한들하니 참 좋다. 이쁘고.
정말 바람에 한들한들 코스모스다. 같은 색만 있어 조금은 아쉽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가을에는
코스모스와 갈대 억새를 봐야만 가을을 보낸듯하니 잠깐의 시간이지만 마음이 여유로워진다.
어떤 이는 하이힐을 신고 올라와 코스모스를 한줌 꺾어간다.가을은 그녀 손에서서 환하게 피어난다.
코스모스와 사진 한 장 찍어주려고 했더니 그냥 꽃만 꺾어 들고 가서 뒷모습을 바라 보다가 난 한장
찍어다..ㅋㅋ 가을을 담고 싶어 소녀처럼 혼자서 찍고 또 찍고.
여치
자리공
산에 들어서니 가을이 완연하다. 가을바람에 투덕투덕 상수리 떨어지는 소리도 들리고 가을바람이
나무와 나뭇잎을 흔드는 소리에 나뭇잎 사이로 흩어져 내리는 가을 햇살이 너무도 이쁘고 따사롭게
느껴진다. 여름엔 덥다고 산을 오기 싫어했는데 어느새 가을이다. 들어서는 길에 여치도 만나고 코스
모스도 피어 있고 씀바귀꽃도 고들빼기꽃도 자리공도 보니 가을은 가을이다. 투덕투덕 소리를 따라
발길을 옮겨보니 상수리가 떨어져 있어 몇 개 주어봤다. 큰 상수리도 있지만 그리 크지 않은 것도 있고
아직 여물지 않은 도토리도 있고. 다 같이 자연에 길들여져도 결실을 맺는 시간은 저마다 다 틀리다.
자연도 그럴지니 사람은 또 어떠할까.
맑은 가을하늘이다. 파란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파란하늘,정말 이쁘다. 정상에 밤나무가 있어 밑을
보니 벌써 누군가 밤을 다 발라가고 빈 밤송이만 있다.잠시 정상에서 시원한 바람을 폐부 깊숙히 밀어
넣고 내려가며 버섯을 찾아보니 버섯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비가 내리고 다른 곳은 버섯이 많던데
나무가 우거져서인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바람에 투덕투덕 알밤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 주위를 들러
보니 알밤이 가끔가다 하나씩 하나씩 있다. 그렇게 하나 둘 줍다보니 주머니 반은 주웠다. 요거면 옆지
기와 둘이서 맛은 볼 듯 하다. 산밤도 있고 알이 제법 굵은 것도 있고.그런데 다른 가만 보니 일부러
나무밑을 다니며 밤만 줍는 분들이 있다.봉지를 가지고 다니며 말이다.나도 사진을 찍으며 옮기다 보이
는 것들 주워 기분 좋았다.참나무들이 가지마다 잎을 달고 가을 해를 향해 있는 튼실한 풍경을 보니
참 좋다. 조금 있으면 하나 둘 잎이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을 터인데 이럴 시간도 얼마 없을 듯
하여 담아 보았는데 난 겨울나무도 좋아하지만 이런 푸르른 나무도 좋아하고 단풍이 든 것도 참
좋아한다.
나무 사이로 난 길을 나만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까치도 청설모도 걸아가고 있다. 내가 가야 할
길을 보다보니 까치가 어슬렁 어슬렁 망중한을 즐기고 있어 살금살금 천천히 가고 있는데
느닷없이 청설모 한마리가 달려가고 있다. 무언가 먹잇감을 발견했나,아님 나를 발견하고..ㅋㅋ
녀석의 공간에 내가 들어 왔다고 뭐라 하는 듯 하다. 숲의 주인은 우리란 말야..라고 하는 듯.
오솔길을 혼자 걸어가니 정말 기분 좋다. 솔바람 솔솔 부는 곳을 혼자 음악을 들어가며 걷다보니
길 끝이다. 아니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그런데 여름에 아카시 나무가 쓰러졌는지 그 쓰러져 있는 폼이
멋져서 한번 담아 보았다.그리곤 거기에 기대어 서서 가져 간 메밀차를 한모금 마시며 가을바람을 맞으니
정말 시원하니 좋다. 노부부가 걸어 오다가 내가 있으니 그냥 가신다. 그냥 길 끝까지 오시지.밤이나
메밀차 나누어 주려고 했는데 그냥 가시니 혼자 이 좋은 시간 즐길 수밖에.
돌콩
바람에 밤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길 옆에 큼직한 밤송이가 있어 숲으로 들어가는데 어머니 한 분이
'아고 힘들다.다리가 아파서 힘이 드네..' 하시며 멈추어 말을 하시길래, '다리 아픈데 쉬엄쉬엄 가세요.'
하며 밤이 있나 살피다 보니 떨어진 밤송이가 있어 몇 개 발랐다.어머님은 길으 끝까지 갔다가 다시 오
시며 '밤이 있긴 있나요..' 하신다. 주운 밤을 어머님을 불러 다 드렸다. '요거 다리 아픈데 쉬엄쉬엄
가시며 발라 드세요.' 했더니 큰 것도 주웠다며 고맙단다. 밤 줍는 것도 재주라며 칭찬해 주신다. 당신은
올라오다 상수리 4~5개 주웠다며 보여 주신다. '내 눈엔 밤이 안보이던데..잘 줍네.' 하신다. 별거 아닌데
괜히 기분이 좋다. 내려오는 길에 보니 돌콩이 완전히 땅을 덮었다. 돌콩을 보다 보니 <달려라 돌콩>이란
소설도 생각이 난다.
산을 내려오는 길에 또 코스모스와 조우,그렇게 코스모스 앞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사진에
담으려 하는데 가을바람에 흔들려 그야말로 한들한들한 풍경을 찍게 되었다. 언제 또 코스모스를
담아볼까. 오늘 산에 나오지 않았다면 후회했을 듯 하다.날도 좋고 바람도 좋고 정말 가을을 맘껏
담은 듯 하다.이젠 미루지 말고 자주 나오도록 해야할 듯 하다.역시 자연은 넘 좋다. 가만히 그 속에
있는 것만으로도 풍요롭고 행복하다.
2013.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