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넘어 함박눈
다나베 세이코 지음, 서혜영 옮김 / 포레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나이가 들어가면서 "눈"에 대한 감상도 다 제각각인듯 하다. 어린시절 눈에 대한 감상은 그저 눈만 오면 밖에 나가 놀기를 원했고 손발이 꽁꽁 어는줄도 모르고 얼음지치고 연을 날리고 눈싸움을 하고 미끄러움을 타고 해도 해도 끝이 없는 눈속에서 놀이세상에 빠져 살았던 어린시절,그러나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어 가면서 눈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변해가고 있다.그만큼 세상의 때를 타서인지 눈이 오면 즐겁다가고 교통대란에 빠질것이 우려되기도 하고 채소값이 폭등하겠다는 식탁경제를 걱정하게 되고 질척질척하는 것이 싫어 나가는 것을 삼가하는가 하면 난방비 걱정을 한다. 현실을 너무 직접적으로 생각을 하지 감성적인 것은 점점 도망가 버리는 것이 눈을 바라보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래도 난 아직 눈이 오면 밖에 나가 눈구경을 하고 싶다.마음은 소녀라고 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는 중년,찬바람이 뼈 속으로 밀려 들어와 시리기에 그것도 잠깐이다.그렇다면 서른 넘어 내리는 함박눈은 어떤 느낌일까? 커플이라면 함박눈을 바라보는 것은 따사로움이겠지만 만약에 "솔로" 그야말로 "모태솔로" 라면.

 

다나베 세이코는 '여성의 감성'을 참 잘 포착하여 그려내는 소설가다. <조제와 물고기와 호랑이들>이란 일본영화를 보고 반하여 그녀의 소설들을 찾아 읽게 되었다.몇 권 읽지 않아지만 우리가 몰래 숨기고 싶은,혹은 밖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아주 작고 미묘한 그런 틈새와 같은 감성들을 소설로 잘 표현한다.물론 우리와 일본이라는 나라의 문화가 달라 조금은 이질감도 느껴지지만 여성이라면 충분히 공감하며 무릎을 치며 읽을만한 그런 소설들을 많이 쓰는데 이 책에는 단편,주로 서른 넘은 솔로여성들이 느끼는 사랑에 대한 감정에 대하여 정말 공감백배의 표현을 잘해 놓았다. 서른이라는 나이는 대부분의 친구들이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었거나 결혼을 하지 않은 친구들은 솔로 아니면 결혼을 위하여 적절한 사람을 찾는 단계이다. 나에게 '서른'이란 나이는 연년생 두딸들을 키우느라 어떻게 지나갔는지,내 정체성을 잃어버린 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눈깜짝 하고 일어나 세상을 보니 갑자기 마흔이 넘어 있는 나 자신이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여자들이 나이를 먹으면 더욱 공황장애나 빈둥지증후군을 앓는 듯 하다.

 

서른 넘은 여성들의 수다가 있는 달콤한 것이 아니라 조금 쌉싸름한 그런 '사랑,연애,이별,인생'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간 수다식탁과 같다. <지금 몇시에요?> 길 가는 잘생기고 맘에 드는 남성에게 그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지금, 몇 시에요?" 하고 물어보는 여자,여기 그런 여자가 있다. 그녀는 그렇게 해서라도 누군가에게 다가가고 싶고 그 속에서 자신의 '누군가'를 찾고 싶다. 운 좋게 자신의 물음에 대답해 주면서 정말 맘에 드는 남자를 만났더면 좋겠지만 대부분은 그에 응하지 않거나 대답을 해주고 응해 주어도 자신에겐 어울리지 않는 남자들 뿐이다. 왜 그녀가 거리로 나가 '지금, 몇 시에요?' 를 물으며 다녀야 하나? 그렇게 사랑과 결혼이 그녀에게 절실한 것일까? 그녀의 상상속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그녀는 우선 '자존감'을 잃었다고 볼 수 있다.서른이라는 나이가 그렇기도 하지만 팔팔하고 매끄러운 이십대하고는 서른이라는 나이는 분명히 다르다.탱탱함도 싱그러움도 없다. 두루뭉술한 허리라인이 말해주듯 이제 그녀도 나이를 먹고 있고 나잇살이라는 것이 붙고 있다. 그런 그녀를 그녀 자체로 좋아하고 사랑해줄 사람은 어디를 보고 외쳐도 보이지 않는다.그런 그녀에게 그녀의 자존감을 일으켜 세워주는 남자가 앞에 있다.따라가야할까?

 

나도 한때는 결벽증에 강박증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그렇지만 그것도 세월이 지나다 보니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먼지가 쌓이면 쌓이는대로 살게 되었다.그런데 여기 그런 여성이 있다. 생각해보니 자신이 너무 깔끔을 떨어 그나마 편하게 지내고 어쩌면 결혼까지 가지 않았을까? 하는 남자와 헤어지게 되었다.그리고 독신인 친구와 함께 살고 있지만 그녀는 무척이나 지저분하다. 그것을 못마땅해 하며 자신의 입맛에 맞게 깔끔을 떠는 그녀의 눈에 룸메이트의 남친이 놓고 간 특대 팬티를 보게 된다. 아니 그렇다면 속옷도 입지 않고 갔다는 말인가? 특대 팬티를 보며 그녀의 어린시절 아버지를 떠올렸지만 그것은 그녀의 상상에 불과했던 것,룸메이트의 친구가 온 다는 날 그녀들은 방은 그야말로 변신에 변신을 꽤하여 다른 세상처럼 변하였고 그녀도 말끔하게 단장을 하고 남자를 기다렸지만 남자는 달라진 방의 풍경에 실망을 하고 그녀 또한 룸메이트의 남친에게 실망을 하게 된다. 어쩌면 친구의 남친은 지전분한 방을 보고 여자를 더 좋아했는지 모른다. 너무 틈이 하나도 없이 깔끔한 방은 인간미가 없다고 느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문제는 누구에게 있을까?

 

서른이 넘은 여자,그녀에겐 이도저도 아닌 남자 산페이가 있다. 그녀는 아직 노처녀이기에 목욕탕에서 부부가 나누는 야릇한 정서나 임산부 아내와 함께 하는 살뜰한 남자들의 그런 감정을 왠지 털이 쭈뼛 서는 듯도 하고 살떨리기만 하다. 온전히 내것으로 받아 들여지지 않는 노처녀,그는 자신이 무심코 던져 놓았던 전화번호부에 있는 남자들을 만나 보지만 역시나 그들 역시나 솔로인 자신들의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녀가 향하는 곳은 고양이 때문에 싫기는 하지만 늘 자신을 편안하게 해주는 산페이의 집으로 향한다. 결혼을 하자고 해도 '응' 어떤 질문에도 무심하게 대답하는 산페이,그는 그의 일에 빠져 있지만 그의 일에도 충실하고 그녀의 약속은 성실하게 지킨다. 하지만 먼저 결혼을 하자던가 그 외의 일은 나서주질 않는다.아직 이남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런 그녀에게 산페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이다.연애하는 동안에는 여자들은 물론 남자들도 그렇겠지만 '이사람일까? 아님 저사람일까?' 하고 자신만의 저울에 올려 놓고 사람의 무게를 달아본다.그리고 자신에게 어울릴것 같은 사람에게 기울기 마련이다.맘을 정하기까지는 내사람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런 단계를 서른이 넘은 노처녀의 마음을 잘 표현해 놓았다. 남보다 특출난 직장도 사람도 아니지만 뭔가 그에게 안겨 있으면 편안하고 따사롭다.과연 내사람일까?

 

사람은 먹는 것,맛의 기억으로 산다고 할 수도 있을 듯 하다. 어린시절 엄마가 해주시던 그 맛을 잊지 못하여 평생 그 맛을 찾아 헤매는 사람도 있고 자신이 몹시 힘들었을 때 누군가 차려준 따뜻한 밥상을 잊지 못하는 경우,음식에 대한 기억은 오래도록 잊지 못하는 것 같다. <깜짝우동> 요즘은 가격은 높이고 양은 줄이는 다양한 방법들이 현재도 눈속임의 상술이 여기저기 일어나고 있다. 깜짝우동이야 말로 그릇은 넓은데 깊이가 얇다. 양이 얼마 안되는 것이다.그렇지만 이 우동 맛있다.그 우동을 누구와 어떻게 해서 먹게 되었느냐에 따라 맛은 또 천차만별 달라지게 되어 있다. 모태솔로로 엄마와 함께 살고 있는 서른 넘은 노처녀가 결혼할 뻔한 순간에 엄마가 혹이 되어 파혼을 하게 되고 그것을 빌미로 둘은 얼굴만 보면 다툰다.엄마와 딸은 애증의 관계,그것이 잘 표현되어 있다.우리집도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런 그녀가 어느날 자신이 결혼하기 위해서는 아니 엄마가 결혼을 하면 내 인생은 어떻게 달라질까? 하고 엄마에게 결혼하라고 했더니 엄마가 가출을 했다.갑자기 엄마가 없는 공백의 공간이 어색하고 낯설다.그런 그녀가 엄마를 찾아 나서다 우연하게 한 남성을 만나게 되고 그와 '깜짝우동'을 먹게 되면서 둘은 호감을 갖게 된다.그리고 엄마는 아무일 없다는 듯이 돌아오고.그렇다면 연애상대를 만난 것이 엄마 때문일까? 깜짝우동 때문일까? 왜 그녀는 늘 엄마탓을 하며 살았을까? 자신이 결혼상대를 고르지 못하고 늘 망설이는 것은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을 못하고 늘 엄마탓을 했는데 그것을 엄마가 없는 순간에 깨닫게 되는,우리는 늘 누군가 옆에 있을 때는 존재감을 모르다 없으며 그제야 그 존재감과 내 현실을 보게 된다. 엄마의 부재로 인해 자신이 현실을 보게 된 그녀가 이성친구를 만난 것 또한 유머러스하지만 그 과정이 어쩐지 쌉싸름하다.

 

요즘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린다. 사월이 지난 눈이 내리고 있다.겨울로 다시 회귀한 듯한 날에 보는 눈의 느낌은? 서른 넘어 함박눈을 혼자 맡게 되는 느낌은 어떨까? 이십대에 맞는 눈과는 그 느낌이 확연히 다를 것이다. 회사에 노처녀라 불릴 수 있는 여자 둘이 있다. 그리고 그들과 일관계로 엮인 상처한 남자가 있다. 하루는 언니겪인 노처녀가 그녀에게 할 말이 있다고 맛있는 것을 사주겠다고 한다. 그리곤 자신이 장장 세 달 동안 공들여 쓴 대작과 같은 시를 보여준다.그것은 다름아닌 '이별시' 였지만 그녀는 노처녀 언니의 그런 모습을 보고는 달리 생각하게 되고 그 시에 숨겨진 의미를 찾는다. 서로의 사랑의 화살이 방향을 잘못 찾아 갔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다카하타와 데쓰카 선배를 엮어주고 싶다.둘은 정말 잘 어울릴것도 같은데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그런것도 아닌가 보다. 서로 보는 눈이 다르기 때문에. 왠지 알게 모르게 사랑의 씁쓸함을 맛 보는 그 순간에 '함박눈' 내린다. '서른 넘어 내리는 함박눈은 차분했다.' 팔팔한 이팔청춘이나 이십대에 함박눈이 내리는 것을 보았거나 이런 나를 빗겨간 사랑을 보았다면 몹시 가슴이 아팠을 것이다. 하지만 서른 넘어 쓴맛 단맛 쌉쌀한맛 모두 맛 본 나이에 함박눈은 '차분함'을 가져다 준다. 세상을 보는 눈이 그만큼 넓어졌다는 것이다. 아 그런데 왜 내 가슴이 쓰리지.그런 자신의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이 왠지 더 비극적으로 다가온다.

 

이 소설에는 이렇게 연애의 아니 사랑과 결혼전의 쓴맛 단맛 모든 것을 맛본 여성들의 심리가 잘 담긴 이야기들이 비극적이지만 비극적으로 끝나지 않고 유머와 왠지 모를 무척 추운 날의 고드름 끝에 비친 햇살처럼 반짝인다.이십대처럼 열정적으로 사랑을 할 나이는 아니지만 무언가 활활 불태워 보고 싶지만 그것이 맘대로 안되는 서른이다.자신의 사랑에 불씨라도 찾을까 하고 주위를 둘러 보지만 모두 자신의 눈에는 모자라 보이기만 한다. 그렇다고 넘쳐나는 사람을 원하는 것은 아닌데 이런 사랑을 해야하나 아니면 모태솔로로 이어나가야 하는 기로에 선 서른 넘은 여성들의 맘이 비극적이면서도 웃음짓게 만든다. 아마도 한번쯤은 사랑과 연애에 이런 경험들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랑을 한번도 해보지 않았다면 이런 미묘한 감정을 모르겠고 읽어도 그 맛을 모르겠지만 사랑과 연애의 줄다리기에서 고배를 마셔 보았거나 그런 시간을 거치면서 흘러 온 세월이 있는 이라면 재밌게 맛깔나게 읽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사랑도 결혼도 영원한 숙제인듯 하다. 이것이 정답이라고 할 수 있는 맞춤답이 없는 사랑이고 결혼이다. 아무것도 모를 때는 겉모습으로 판단했으나 살아보면 그것이 아닌 내실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그런 나이가 서른 그 즈음이 아닐까.세상이 변하면서 점점 모태솔로들이 넘쳐나고 있다.남자도 많지만 여자들이 더 '솔로선언'을 많이 하며 나름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나도 두 딸들에게 가끔 화가 나면 '혼자 살아.너희들 능력을 펼치면서 말야.결혼 해봐야 고생만 한다.' 라고 하지만 안해도 후회 해도 후회라면 해보고 후회하라고 하고 싶다.모든 것은 때가 있다.그 때를 놓치고 하려고 하면 힘든 것이다. 세월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갈 수 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모태솔로인 서른의 여성들이 자신에게 잘 맞는 짚신짝을 발견하는 그날까지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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