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의 홀로서기

 

 

지난 밤에 봄비가 살짝 다녀가고 날이 꽤 쌀쌀하다. 비가 내린 후의 숲은 어떨까 싶어 아침에 딸들

베란다 문을 열고 뒷산을 바라보니 봄비에 축축히 젖은 나무를 보니 달려가고 싶은데 미끄러워

미끄러질까봐 그만 마음의 문을 닫아 버렸다. 2007년 700고지에서 하산길에 미끄러져 바윗계곡으로

굴러 손등뼈도 부러지고 오랫동안 고생한 정말 아픈 경험이 있으니 이런 날은 뒷산이라도 조심 또

조심을 해야하는데 게으름을 피우면 계속 머뭇거리게 될까봐,무기력이 스멀스멀 올라올까봐 강행군을

하려던 마음이 쌀쌀한 바람에 닫쳐버리고 말았다.

 

어젯밤엔 악몽에 시달리느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잠들자마자 나도 모르게 지른 소리에 내가

놀라 잠이 깨고 꿈이 너무 선명해 말똥말똥 그러다 잠든 후에 다시 계속되는 악몽,몸이 아플 때는

악몽을 잘 꾸기에 그냥 넘기기로 했는데 아침 일찍 막내가 늦을지 모른다며 모닝콜을 해달라고 해서

게속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아 받을 때까지 하다보니 조금 남아 있던 잠까지 달아나고 말았다. 옆지기

출근하는데 그냥 누워 있다가 일어났지만 밥맛도 없고 어제 산에 다녀와서인지 팔은 아프고..

 

스무살 막내는 제가 살고 있는 곳으로 전입을 하고 싶다고, 나 또한 스무살에 울아버지께 내 호적을

파가겠다고 했다가 아버지께 혼난 기억이 있다.그래서 차근차근 앞으로 이렇게 하려면 전입을 해야

한다고,내 호적이 필요하다고 몇 번이나  부딪혀서야 전입신고를 하고 주택청약을 넣었던 기억이 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홀로서기를 하며 언니와 자취를 하며 살게 된 것이 엄마와 아버지 품을 떠나게

된 계기가 되었고 지금까지의 길이 되었다. 막내가 오늘 갑자기 그런 이야기를 해오니 나의 그때 생각이

문득 나며 아버지가 그 때 이 마음이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내가 호적을 파간다고 하니

무척 서운해하셨다.결혼전에는 아버지 밑에 두고 싶다고..별거 아닌 듯 하지만 사소한 것에서 오는

서운함...나도 막내에게 다른 방법을 알아 보라고 했지만 괜히 서운하다. 딸들은 서로 다른 곳에서

한참 [홀로서기]를 하고 있다. 큰놈도 이젠 꽉 찬 강의 때문에 일상으로 복귀한 듯 하다. 혼자 밥을

해 먹는다는 것이 쉬우면서도 힘든 일이란 것을 알아가고 있는 중이며 막내 또한 혼자서 서울생활을

해야하니 그 또한 힘들다. 늘 엄마가 옆에서 챙겨주는 것도 아니고.

 

밥을 먹으면서도 잠을 자면서도 녀석들 생각 뿐이다. '밥은 챙겨 먹었는지..집에 들어와 잠을 자는건지.'

모든 것이 녀석들 생각 뿐인데 시간이 흐르고 나면 이 또한 믿음으로 바뀌리라 본다. 이런저런 생각에

요즘 통 책 속에 빠져들지 못하고 겉돌고 있다. 좌탁위에 쌓여 있는 책들,그리고 봄바람이 산들산들부니

밖으로 밖으로 나가고 싶은 바람난 처녀의 마음처럼 봄바람에 살랑대는 이 마음을 어쩔꼬.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베란다 군자란 화단에 들어가니 녀석들 하루아침에 많이도 올라왔다. 밖에 봄비가 내리고

있는 것을 알았던지 정말 쑥쑥 올라왔다. 이 녀석들 한꺼번에 피어 오르면 더욱 싱숭생숭할터인데...

봄은 봄이다. 겨우내 잠자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보니...

 

201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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