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눈폭탄이 내리고 그야말로 세상은 눈세상,설국이 되었다.
눈의 유혹이란 벗어날 수 없는 것인지 보조주방으로 창으로 보이는 뒷산 풍경이 너무 멋있어
추운것도 잊고 한참을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뒨산 가고 싶다...뒷산 가야지'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뒷산에 가 본 것이 언제적 일인지 가물가물..거기에 시월에 수술후 회복증이라 과한 운동이라
할 수 있는 산행은 해보지 않아 엄두가 나지 않는데 눈이 왔으니 미끄럽고 더 힘들듯..
갈까 말까..아니야 갈까..아니냐 힘든데 그냥 집안에서 구경으로 만족할까..
그러길 여러번 하다가 '가자'로 결론을 내고는 급하게 준비 준비..
눈이 왔으니 스틱과 아이젠은 필수로 챙겨야겠고 내복도 입고 모자도 겨울용으로 귀덮개가 있는
것으로 쓰고 겨울조끼까지 두툼하게 껴 입고 났더니 눈 위에 굴러도 될 것터럼 눈사람이 되었다.
장갑도 끼고 보온병에 메밀차 따뜻하게 담고 산에서 들을 노래가 가득 담긴 엠피도 챙기고 씩씩하게
나서기 전에 옆지기에게 만약을 위하여 문자,' 나 뒷산에 가요..내복 입고 스틱에 아이젠 챙기고..'
그리곤 큰놈에게 '엄마가 한 시간 반이 지나도 오지 않으면 119에 연락해.알았지..' 하고는
혼자서 눌루랄라 뒷산으로 향하는데 집에서 보다는 그리 춥지 않은 듯.아니지 내가 너무 껴입었나.
정말 그 날씨 좋던 가을에도 뒷산을 오르지 못했고 여름에도 그렇지만 아프다고 핑계로 늘 미루던
산행을 어찌 눈폭탄이 내린 후 아직 이런 과한 운동을 해보지도 않았는데 갈려고 맘을 먹다니..
가다가 힘들면 초입만 구경하던가 평지길만 걷다가 오리라 다짐하고 나가는데 생각보다 기분도 좋고
몸도 가볍다.아니 옷을 너무 껴입어서 그렇지 생각보다 힘들지 않다.
와우~~와우~~브라보~~이런 선계와 같은 설국을 나 혼자 봐야한다는 것이 아쉽다.
큰놈이 엄마와 함께 왔다면 정말 좋았을텐데 침대위에서 엑스레이나 찍고 있으니 원...
밤과 낮을 바꾸어 살고 있는 녀석,아침을 먹고 한참을 깨워도 일어나지 않고 엄마가 뒷산에 간다고
해도 시큰둥 하여 나혼자 나섰는데 정말 멋지다. 어디를 둘러 보아도 다 선계처럼 느껴지는 세상.
눈의 유혹이 너무 강렬하다. 그저 이 속에 내가 있다는 것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올 줄 몰랐고 이런 날이 있을 줄 몰랐는데 혼자서 겨울산행을 하게 되다니..
뒷산은 150m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길이 여러갈래다.올라갔다 내려갔다.그리고 산의 중간 허리를
뚝 잘라 섬처럼 떨어진 뒷산이 또 있어 그곳까지 왔다갔다 오르고 내리면 한시간 반 정도 걸린다.
운동하기에 딱 좋은데 여름에 숲이 우겨졌을 때에는 섬짓하기도 하다. 혼자 숲을 즐기다
갑자기 나타난 사람에 놀라 '엄마야..' 하고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기도 하는데 정말 이런 곳에선
짐승이 아니라 사람이 무섭다. 언젠가 두번이나 노루가 내 뒤에서부터 뛰어 내려와 놀란적이
있는데 그 놀람은 설레임과 동급이라 이런 곳에도 노루가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하여 그 길을 한참
바라 보았는데 오늘은 눈이 내린 후라 동물의 발자국이 여기저기 찍혀 있다. 녀석들 눈이 내려
먹을 것을 구하려고 뛰어 다녔는지 발자국에서 속도감이 느껴진다.
예전에는 중턱만 올라도 힘이 들고 숨이 찼는데 그러지 않다. 내가 많이 좋아진 것일까.
눈이 바람과 햇볕을 이기지 못하고 '후두둑 후두둑' 떨어져 내려 나무 밑에 잘못 있다가는
눈벼락을 맞는다. 한두번이 아니다.그래도 참 시원하다. 혼자서 별소리를 다 질러가며
설경에 빠져 흥얼흥얼,무얼해도 좋다. 겨울나무에 눈이 쌓인 풍경이 꼭 인삼을 튀김반죽에 묻혀
펄펄 끓는 기름에 튀겨낸 후의 인삼뿌리 같다. 그와 비슷한 것들이 파란 하늘에 마구마구
흩어져 있는 것 같아 '세상에나,선경이 따로 없군.' 하며 혼자서 자연에 극찬이다.
자연이 만들어 내는 음영에 감탄을 하며 설경을 둘러 보는데 어느 곳 하나 똑같은 풍경이 없다.
바람의 방향에 따라 눈이 쌓여 있는 것이 다 달라 그 풍경이 다 다르고 눈이 쌓여 있는 것을 보고
바람이 어느 방향으로 불었는지 알 수가 있다. 그런가 하면 햇볕이 만들어 내는 나무의 음영 또한
너무 멋지다.여름의 숲,가을의 숲 그리고 겨울의 숲의 풍경이 모두 다르고 그때그때마다 모두 멋지지만
겨울숲의 풍경도 정말 멋지다. 거기에 눈 내린 숲의 풍경이란 정말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턱과 볼이 얼얼한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구마구 눈 밭을 혼자서 헤집고 다니고 싶다.
하지만 어디가 어느 정도의 깊이인지 몰라 앞사람이 다녀간 발자국을 밟으며 간다.
눈이 내린 겨울은 몸을 반듯하게 하고 발을 잘 옮겨 놓아야 한다.내 발자국이 다른 이에게 길이 될 수
있으니. 그사람의 마음이 삐뚫어지면 발자국은 그래도 삐뚫삐둟...
오월엔 아카시아 향기가 진동하고 아카시아 꽃이 하얗게 떨어져 내려 환상인 정상,
오늘은 눈이 하얗게 덮여 눈의 세상이다. 멀리 내다 보이는 울동네도 그 멀리 보이는 산도
모두가 하얀 눈의 세상이다. 나무는 청명한 파란 하늘 그 속에서 위용을 자랑하며 우뚝 서
있는데 왜 그렇게 겨울나무가 멋있고 든든해 보이는지. '나무야 나무야 겨울나무야...'
하며 노래 한자락 불러 주고 산을 내려간다. 내려가는 길은 조심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어제 한치 앞도 보이지 않게 그렇게 눈폭탄을 쏟아 내더니 오늘 하늘은 정말 청명하다.
푸르다 못해 시리도록 파랗다. 그러니 눈이 쌓인 산의 풍경은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내려가는 길에 조심 조심 스틱을 이용하여 먼저 짚어 보며 내려가는데 아이젠을 해서인지
미끄럽지 않고 잘 내려갈 수 있는데 이것이 사람이 가지 않은 길이라 더 조심스럽다.
동물들이 먼저 지나간 흔적도 있고 여름에 나무가 쓰러져 길을 가로 막은 곳도 있어
조심 조심하며 내려가다보니 다리에 조금 힘이 들어갔나 보다. 그래도 이렇게 혼자서 겨울산행을
한다는 것이 정말 좋다.공기도 맑고 새소리에 떨어져 내리는 눈을 맞으며 시원함에 볼은 얼얼해도
이것이 겨울산행 맛인가 하며 혼자서 흡족..
산행을 하면서 들으려던 엠피의 노래는 한번도 꺼내지 못했다.
오늘 산행은 나와 바람과 눈과 햇볕과 겨울나무와 새들과 그렇게 동행 한 듯 하다.
눈 밭에서 지저대는 새들 나무와 눈을 떨구어 내는 바람,쉬 쉬 소리를 내며 투둑 투둑 떨어져
내리는 나뭇가지,그렇게 자연과 함께 하다보니 힘든 것도 모르고 늘 이 산에 오면 하던 대로
그렇게 산을 돌고 돌고 한시간 반 동안 즐겁게 산행도 하고 설국도 구경하고 정말 좋다.
언제 또 이런 기회를 가져볼까? 이렇게 용기를 내어 밖으로 향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집안에서는 결코 볼 수 없고 얻을 수 없는 그 무언가를 한아름 선물 받은 기분이다.
늘 보았던 풍경도 '눈'이라는 하나의 자연이 보태어짐으로 하여 다른 세상으로 변한다는 것을
오늘 정말 온 몸으로 느꼈다. 다리가 후둘거리면 어쩌나 오르다 혹은 내려오다 미끄러지면
어쩌나 하던 걱정들은 모두 기후였다. 미끄러져도 눈 밭에서 미끄러지면 재미있을 듯.
어릴 때는 눈 밭에서 비료푸대도 타고 내려오고 미끄럼도 타고 했는데 이젠 그저
오래전 추억만 되새김질 하며 '그런 시절이 있었지'로 마감을 하며 따뜻한 메밀차로
추위를 날려 보낸다. 뒷산 산행 후 뒷산을 바라 보며 설경 속에서 마시는 메밀차도 참 좋다.
늘 춥다고 아직이라고 하며 콕 박혀 있기 보다는 부딪혀 새로운 것을 얻어야할 듯 하다.
2012.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