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함께 길을 나서다

 

 

오늘은 두번째 맞이하는 아버지 기일이라 시골에 내려가야 한다. 옆지기를 기다려 저녁퇴근시간에

가자고 했지만 엄마 혼자 동동 거릴것만 같기도 하고 큰딸이 있어 딸과 함께 여행하는 기분으로

외가댁에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가보자고 했다. 녀석 일찍 일어났더라면 더 일찍 길을 나섰을텐데

늦잠을 자서 점심시간이 지나도 한참 지난 시간에 집을 나섰수가 있었다. 길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으니 다른 것은 들고 갈수도 없고 디카에 책만 한 권 챙겨 들고 나섰다. 밖에서 추울듯 하여

둘은 꽁꽁 싸매고 나섰는데 목도리를 하는 것을 싫어하는 녀석 손에 들고 다닌다.

-그거 왜 손에 들고 다녀..목에 둘러야 춥지 않지..콧물 훌쩍이느니 목도리 하겠다.

-엄마 잔소리 때문에 들고 나온것야.. 그냥 들고 다닐거야.

늘 이런식이다. 그러니 사사건건 둘은 부딪히고 잔트러블...그래도 시내버스를 기다리고

내 카드로 하여 둘의 요금을 계산하고 자리에 앉아 전철역까지 기분 좋게 갔다.

 

 

 

울동네 할마시 분들이 많다...엄마 친구분들이 많이 타셨다

 

전철역에서 중간역이 아닌 종착역까지 가는 전철을 타기 위하여 30~40분을 기다려야 했다.

훵하게 뚫린 플랫폼에서 나무의자에 앉아 잠깐 책을 꺼내어 읽는데 손이 시렵다. 허허벌판에

앉아 있는 것처럼 다리도 점점 꽁꽁 얼어가는 것 같고 딸도 춥다고... 율무차를 한 잔씩 빼서

마셨지만 그때뿐이다.그렇게 앉아서 기다리다보니 전철이 오고 평일이라 그런지 붐비지 않는

가운데 자리를 잡고 앉아 갈 수 있었다. 가는 역이 지방대학이 있는 곳이라 그런지 대학생들이

많다. 수도권에서 내려오는 학생들인가보다. 엄마네 집에 가면서 이렇게 시내버스와 전철 그리고

다시 털털이 시내버스로 가는 것은 처음이다. 결혼하고도 처음이고 내 평생 처음이다.

 

그러니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를 애상을 할 수가 없다는 것. 늘 자차로만 다니다가 이렇게 가는

것도 여행 기분이 나고 좋을 듯 하여 나섰는데 길에 버리는 시간이 너무 많다는 것,

하지만 전철 창 밖으로 보여지는 풍경은 자차로는 볼 수 없는 풍경들이다. 새롭다 여행하는 것처럼...

기다리는 시간은 길었지만 달려서 가는 시간은 짧았다.금방 역에 도착하고 아직은 허허벌판처럼

역만 덩그러니 있는 곳에 내렸는데 도통 시내버스를 어디서 타야하는지 차 시간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다. 역에 다시 들어가 편의점 아저씨께 물었다.

-저 여기 처음인데 00방향 가는 몇 번 버스를 어디에서 타야 하나요.길 건너인가요 역 바로 앞인가요.

버스시간은 어떻게 되죠...

-아 저도 여기는 고향이 아니라 잘 모르는데 00를 물어봐 주시면 제가 자세히 대답해 드릴께요..

-ㅎㅎㅎㅎㅎ... 저도 거기서 지금 오는 길이고 거기서 사는데 제가 더 잘 알듯 하네요.

저한테 그곳에 대해 물어보세요.제가 대답해 드릴께요.지금은 이곳에서 버스 타는 것이 필요한데요.

그랬다. 편의점 아저씨도 내가 금방 왔던 곳에서 사시는 분이라 이곳에 대하여 모른단다.

 

에효 이곳에서 가게를 하니 그정도는 상식으로 알고 있어야 할텐데..

너무 웃겨서 그냥 웃으며 나왔더니 딸이 알아봤냐고 한다. 편의점 아저씨와 한 대화를 말해 주었더니

깔깔거리며 웃는 녀석,안되겠다 싶어 올케에게 전화해 보았는데 안받는다.다시 엄마집에 전화를

했더니 작은오빠가 일찍 왔는지 받는데 오빠도 잘 모른단다.엄마가 옆에서 일러 주시는데

엄마는 그저 몇 번 버스만 타라고 하시니 길을 건너는지 아닌지 알려 주시니 않는다.

지나는 사람이라도 있어야 물어 보는데 시간이 점점 기울어지다보니 사람이 별로 없고 학생들은

한 편으로 셔틀버스로만 이동하니 우리가 있는 쪽으로는 오지도 않고.. 물어 물어 길 건너에서

타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고 4~50여분 기다렸다. 점점 우리는 동태가 되어갔다.

그래도 이것이 시골여행의 맛이라며 기분 좋게 기다렸더니 기다리고 기다리던 버스가 온다.

정말 반갑다. 집나간 며느리가 돌아 온 것보다도 더 반갑다.정말..

 

 

 

 

 

 

그래도 더 많은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버스를 타게 된 것이 어디냐고,

큰오빠는 시골에 올거면 미리 전화를 하지 그냥 그렇게 힘들게 내려왔다고 오빠가 퇴근을 좀

일찍 하고 내려오는 길이라고 한다. 올케도 바빠서 일을 보다가 오빠와 함게 내려오는 중이라며

미리 전화하지 그랬냐고.. 나름 이것도 추억이니 괜찮다며 버스에 타고 떠들다보니

앞좌석에 앉은 할마시들이 울동네 분들이다.그것도 윗집 아랫집 엄마 친구분들이 대부분..ㅋㅋ

 

딸에게 할마시들이 내릴 때 함께 내리고 따라가면 길을 잊지는 않는다고,다 동네분들이라고 했더니

웃는다. 동네에 식물원이 생기고 이 버스가 종착역이 된 것이다. 평일이라 여기저기 시골버스가

툴툴 거리며 들렀지만 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는데 울동네 아줌마들이 그래도 어디서 타셨는지

몇 분 계시니 왜 그리 반가운지..내리면서 인사하고 인사하고..인사하니 깜짝 놀라신다. 요즘

누가 버스를 타고 오겠는가 자차를 이용하니 이렇게 올 줄도 몰랐고 나라고는 생각도 못하다가

한버스에서 내렸으니... '00야,아버지 기일이나 내려오는구나.올해가 몇해지..' 라고 하시며

모두들 아버지 기일을 아시는 눈치다. 늘 집 위 마을회관에 모이시어 밥을 나누어 드시고

하루종일 함께 하시다보니 누구네집 숟가락이 몇 개 있는 것까지 다 아시는 시골분들이다.

 

동네길을 걸어 집에 도착하니 엄마가 깜짝 놀라고 작은올케가 고생을 하고 있다.일찍 와서

도우려고 했는데 작은올케와 엄마가 다 해놓으셨고 그냥 저녁 차리는 것만 잠깐 돕고 바로

큰오빠네가 와서 시끌벅적..그리고 딱 한 분 계신 고모네까지 오셔서 그야말로 시끌벅적..

엄나는 식구들이 모두 모이니 또 눈물이 나는지 김장하고 감기 걸리셔서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는데 목이 메는듯한 목소리로 '니 아배가 오긴 오려나..' 하신다. 엄마도 아버지가 그리운 것이다.

'아버지가 오셔서 벌써 우리의 이런 모습 보고 좋아하시고 계실거야 걱정마셔..' 했더니

울컥 하셨나 보다.그래도 식구들이 모이니 좋은지 많이 못 차렸다며 하나라도 더 내놓으려고...

힘들게 오고 추워서 찌개와 함께 밥을 한 그릇 뚝딱 비웠는데 그게 탈이 났던 모양이다.

맛있게 먹었는데 소화가 되지 않는다. 엄마는 내가 아팠던 이야기를 모두 소문을 냈는지

고모도 내 건강을 걱정하시고...그래도 식들이 많으니 모든 준비가 수월하다.

 

울아버지는 무척 제사니 예절에 엄격하시어 제사를 지낼 때도 일분 일초도 틀리지 않고

음식을 차려내는 것도 격에 하나라도 틀리면 되지 않았는데 아버지 제사는 일찍 지내기로 했다.

아버지 계셨다면 큰일 날 일이다. 하지만 모두가 제사를 지내고 치우고 돌아가야 하니 어쩔 수 없다.

9시가 넘어서 지내기로 하고 준비를 해 놓고는 기다리다 제를 지내는데 내 배는 급기야 약까지

먹어야 해서 약을 먹고 쓸어 내리며 아버지께 제도 못 지냈다. 구부리지도 못할 정도로 아프더니

아버지 제를 지내고 한참 치우다보니 조금 내려갔다. 올케와 작은오빠의 생일이 바로 다음날이라

아니 아버지가 둘의 생일날에 가셨기에 제사를 지내고 다시 둘의 생일축하케익까지 겸했다.

제사도 지내고 생일축하까지 두번이나 하다보니 그야말로 아버지의 제사날은 바쁘게 되었다.

그래도 화기애애하게 모두 마치고 밥을 나누어 먹고 케익도 나누어 먹고..

엄마가 남은 음식들 모두 싸가라고 해서 봉지 봉지 음식들 나누어 조금씩 갈무리 하다보니

엄마가 드실 것은 조금밖에 남지 않는다. 아니 엄마가 마을회관에서 어르신들과 나누어 드실

것 조금만 남겨 놓으라고 해서 전을 한접시 정도만 남겨 놓았다. 제를 지내고 마을회관에 계신

분들에게 음식을 드시러 오시라고 했더니 안드신다고 해서 남겨 놓은 것이다. 작년에는 모두

회관에 가져가서 드셨다는데 올해는 식구들이 늘었으니...모두 무사히 마치고나니 하루가 저물었다.

 

엄마는 아버지 제를 지내는 것이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것처럼 몹시 꺼려하셨다. 아버지 사진도

못 꺼내 놓게 하셨는데 오늘은 그래도 우리가 우기듯 하여 아버지 사진을 꺼내 놓았더니 바로

싸서 챙겨 두셨다. 나 또한 제를 지낼 때 눈물이 쏟아지고 속도 컥 막히듯 아팠는데 나 또한

아직 아버지의 빈자리를 받아 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식구들 모두 무탈하고 건강하고 평온하게

해달라는 언니의 말처럼 아버지는 그렇게 해주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고 계시겠지.

아버지의 영혼을 만나러 가는 날,큰딸과 함께 여행처럼 즐겁게 즐기며 갔기에 돌아오는 길도

기분 좋게 돌아올 수 있었고 모두가 웃으며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워 기분 좋았던 시간.

아직 여분의 슬픔은 남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더 깊어졌지만 그래도 슬픔은 해넘이의 시간처럼

짧아졌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가게 되어 있고 시간은 모든 것을 잊게 하더라.

내년에는 또 다른 아버지의 기일을 만나겠지. 아버지, 보고 싶어요...

 

2012.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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