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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 너의 존재감 ㅣ 르네상스 청소년 소설
박수현 지음 / 르네상스 / 2011년 11월
평점 :
너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너는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어느 시인의 싯귀처럼 이름을 불러 주면 비로소 그 존재감이 더욱 도드라지는 것이 있다. 물론 들이나 길가에 핀 이름 모를 꽃들도 그러하겠지만 우리가 자주 만나고 스치는 인연에게도 이름을 불러주면 남다른 의미로 내게 다가온다. 요즘 아이들은 누구나 다른 누구보다도 내가 더 특출나거나 '존재감'이 정말 뛰어나 '미친 존재감' 이 되길 원한다. 그런데 바꾸어 생각해 보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나 혼자 아니고 모두가 그렇다면 그런 추세라면 어떻게 해야할까. 서로의 이름을 자주 불러 줘야하겠지만 교실안의 사정은 그리 원만하지 않다. 우리네 교육 시스템이 경쟁을 부추기고 승리자와 패배자로 점점 갈라 놓고 있으니 친구라 해도 적이고 남을 밟고 올라서야지만 내가 드러날 수 있다. 서로 돕고 서로의 존재를 느끼기 보다는 스스로 빛나는 별이 되기 위하여 타인의 존재감에 불이 들어 왔다면 커버려야 하는 세상이다.
그런 각박한 경쟁시루속에서 친구들의 눈치를 보면서 떠들거나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야 하는 아이들, 말은 안해도 서로의 고민은 비슷비슷하겟지만 나보다 더 잘났다고 나보다 더 대단하다고 느끼는 불안감에 휩싸여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아니 남의 마음을 들여다보길 원하지 않고 그럴 시간적 여유도 없다. 그런데 여기 서로의 생각이 아닌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준 쿨샘과 나락고 2학년 3반 '이년들아' 의 정말 쿨하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다. 이년들가 욕일까 욕이 아닐까. '하이고! 언제부터 이년이 욕이셨어요? 내숭 떨기는. 시끄러, 이년아!' 정말 입에 짝짝 달라붙는 이 칼칼하면서도 청양고추를 씹었을 때의 그 후끈후끈한 맛이 느껴지는 맛깔난 말로 '이년들아'을 외치며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 볼 기회를 준 쿨샘이 등장하신 것이다.
아이들은 그냥 보기엔 정말 아무 문제없고 별달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쿨샘은 개개인의 마음에 언제 들어갔다 나왔는지 마음 속이 곪아 터지고 있음을 감지한 것일까,마음일기를 쓰라고 한다.도대체 듣도 보도 지금까지 써 본 역사가 없는 '마음일기'는 어떻게 쓰는 것이고 어떻게 써야 하는 것이야. 성적을 올리며 머리를 싸매고 공부해도 못 딸아갈 판인데 운동장에 나가서 체육이나 하고 뛰어 놀라니,그리고 아침밥을 굶었으면 도시락이라도 까먹으라니. 이런 샘이 존재하긴 한걸까? 말 한마디로 완존히 '존재감'을 드러낸 쿨샘,그 정체가 정말 궁금하다. 마음일기를 써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일까.그러면 댓글을 달아 어쩌겠다고.그렇게 하여 마음읽기를 하면 마음이 다스려진데.
정말 교실에 존재했었나 할 정도로 조용했던 이순정, 그녀의 한마디에 강이지는 벌벌 떨게 되었다. 그녀들의 왜 그렇게 소리 지르고 벌벌 떨게 되었을까? 상처가 곪게 된 그 속사정 속을 마음읽기를 통하여 점점 아이들 마음 속으로 들어간다. 그런 마음을 알 듯 말 듯 그저 한 줄 댓글로 담하는 쿨샘은 그들의 모든 사정을 꿰뚫어 보고는 그녀들의 마음 치유에 나선다. 이순정, 엄마와 아빠가 고등학교 대 서로에게 반해 순정을 다 바쳐 낳았기에 순정이라지만 아빠는 순정을 낳고 3개월 후에 도망을 갔다.정말 후덜덜이다.아니 왜 도망을 가는가.그리고 지금까지 어디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그런 아빠를 버리지도 못하고 찾아 헤매듯 삶이 엉망인 엄마, 엄마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시골에서 할머니와 살다가 올라 왔지만 자신이 지켜야 할 것은 엄마가 아니라 할머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강이지 그녀는 왜 큰소리만 나면 벌벌 떠는가? 그녀의 속사정 또한 집안에 문제가 있는 것, 엄마 아빠는 툭하면 기물파기를 하며 싸우고 소리지르고 이혼을 한다고 남발을 한다. 남동생에 쌍둥이 동생들까지 그 시간은 악몽이다. 정말 나락에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 그런 자신의 모습을 감추기 위하여 학교에서는 오지랖 넓게 이것저것 참견하며 밝은 척을 했던 강이지,마음읽기 시간에 '넌 요즘 어떠니..?' 이 한마디에 그동안 마음에 맺혔던 봇물이 툭 터지고 만다. 자신의 아픔에 귀 귀울여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 그렇게 쿨샘의 프로그램에 의해 서로의 마음에 쌓여 있던 이야기를 꺼내며 서로를 용서하고 이해하고 감싸안을 줄 알면서 자신들의 '존재감'을 정말 확실하게 드러낸 친구들.
십대란 어떻게 해도 정말 힘든 시기다. 어린이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어른도 아닌 현실이 행복한 것도 아니고 미래가 확실한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샌드위치속에 낀 양파처럼 자신의 껍질을 벗기고 벗겨도 알 수 없는 시기이다. 어른인 부모님의 일에도 참견해 보지만 그렇다고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 없다.딸들과도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어른인척 하지만 깊이가 깊지 않다. 저희들의 잣대로는 뭐든지 고쳐 놓을 수 있고 어른들이 잘못했다고 하지만 자신 또한 그 위치에 이른다면 어떨까? 자신은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 혐오하던 그 범주를 벗어난 있을까.가르치는 입장과 가르침을 받는 입장은 분명 다르다. 그 속에서 아이들의 존재감이 사라지고 있다. 아니 모든 것이 획일적으로 진행이 되고 개인의 아니 99%의 민주주의는 사라졌다. 그러지 않아도 가정문제고 마음이 곪은 아이들이 또 다시 학교에서 곪고 있으니 언젠가는 터질 것이다. 그런 아이들의 등을 쿨샘이 '토닥토닥' 다스려주고 있다. 아니 마음이 나갈 수 있는 방향의 길잡이와 같은 등대가 되어 아이들이 바르게 가게 인도해 주고 있다. 그 속에서 진정 자신을 보게 되는 아이들, 자신의 존재감을 찾아 가는 아이들의 따듯한 마음이 가슴 뭉클하게 한다.
'이년들아, 부수고 망가뜨리지 좀 마. 그러지 말고 이 일기나 써. 아무 때나 쓰고, 아무 때나 나한테 가져와. 한 줄도 좋고, 반 줄도 좋으니까 써 보란 말여. 날마다 써서 날마다 제출하면 더 좋고. 검사받는다,생각하지 말고 그냥 나랑 일대일로 얘기한다고 생각해.'늘 공부와 시간에 쫒기다보니 정작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정말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기 보다는 원칙적인 문제인 원인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원인을 파헤치고 들어갈 선생님이나 그런 상담역할을 할 사람이 없다.자신의 마음을 열지 못한 아이들이 간혹 선택을 잘못하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는 것을 보면 비단 그것이 남의 이야기가 아닌데 경쟁을 부추기기 보다는 인격이나 품성에 좀더 중점을 두는 교육이 되어야 하는데 언제부터인가 스팩이나 승리자 위주의 교육에서 꿈나무들이 시들어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나 또한 딸들이 이와 비슷한 나이라 좀더 그녀들의 삶 속으로 일상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으로 읽게 되었다.딸들이 집에 오면 '엄마, 나 요즘 어떤지 물어봐줘..?' 하던 말이 자꾸 떠오른다. 그들의 마음과 그들의 소리에 밑줄을 그어보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