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는 날이 참 좋아서 괜히 온 몸이 근질근질,뒷산에 가고 싶은 것이다.
날마다 베란다 창을 열고 바람이 어느 정도 부나 가늠해 보고는 뒷산에 갈까 말까한다.
그런데 오늘은 도저히 못참겠다. 오전을 얼른 보내고 물병하나 준비하고 디카 챙기고 엠피챙기고
모자를 챙기는데 여시가 벌써 눈치채고 난리났다. 저도 데리고 가라는 것인데 녀석을 데리고
나가면 내가 힘들다. 계속 안고 다녀야하니..이제 할매라 뒷산을 할보하게 놓아 둘 수가 없다.
지지배는 그렇게 나가는 것을 좋아하는데 좀더 따듯해져야 데리고 잠깐 나갈 듯 해서
조금만 가다리라고 하는데 현관을 나서는 날 보며 계속 '끙끙...으으으끙끙..'
특유의 우는 소리를 낸다. 불쌍한 표정을 지으면서...ㅋ
유채
아파트 현관을 나가는데 어머님 같으신 분도 산에 가시는지 등산복 차림이시다.
날이 따듯해져서 이젠 산에 오르시는 분들이 많아지셨다. 나물도 뜯으시고..
간만에 뒷산에 가는 것이라 옷을 어떻게 입고 나가야 할지 한참을 망설였다.
얇게 입고 나갈까 하고 베란다 문을 열어보면 약간 추운듯도 하고...
할 수 없이 바람막이 속에 도톰한 티를 입고 나섰더니 덥다. 에고 잘못입고 나왔다.
그래도 약간은 쌀쌀함이 있어서 다행이다.
산의 입구에 사람들이 땅을 개간해 놓은 곳이 있는데 그곳에 냉이꽃이 하얗게 피었다.
아니 노란 꽃다지와 함게 노랗고 하얗게 풀꽃밭이 되었다. 한편에는 노란 유채가가 곧
필 듯 부풀어 올라 있다. 종종 노란 나비가 훨 훨 봄을 휘젖고 다닌다.
산의 초입에 분홍빛 진달래가 너무 이쁘게 활짝 피어 얼른 그곳으로 달려가 진달래를 담고
버려진 땅에 피어난 냉이꽃을 찾았다. 초봄에 냉이를 찾으려고 내가 한바퀴 돌았을 때는
냉이가 얼마 있지 않았는데 꽃이 피고보니 많다. 냉이밭이다.
냉이밭을 지나 산으로 들어서니 서서히 초록빛이 살아나고 있다.
찔레나무에 새순이 돋아 초록빛이다. 나무에는 아직 아주 연한 연두빛이 스멀스멀인데
찔레나무만 유독 초록빛을 강하게 띄고 있다. 봄이라는 증거라도 내밀고 있는 듯 하다.
나무만 봄이 아니라 산새들도 바쁘다.여기저기서 시끄럽게 지저귄다.
바닥에 앉아 무언가 쪼아 먹는 녀석도 있고 나무에서 지저귀는 녀석도 있고 무척 바쁘다.
그들의 일상을 훼방놓지 않기 위하여 살금살금 정상으로 올랐다.
정상에서 잠시 머물러 우리 동네를 내려다 보다가 할미꽃을 보기 위하여
묘지가 있는 곳으로 내려갔다. 그곳은 지난해부터 자손들이 돌보지 않는지 묘지가 황폐해져
가고 있다. 이번 한식에도 아무도 오지 않았었는지 삭막한 풍경 그대로이다.
내려가는 길에는 가시나무가 있고 묘지에 떼도 벗겨지고 허물어지고...
이곳 묘지는 정말 잘 정돈이 되어 있어서 늘 부러움과 함께 난 할머니 할아버지 혹은
친정아버지를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정말 너무 황폐해졌고 삭막하다.으슥하여 오래 머물러
있기가 미안하다. 그래도 나라도 찾아주니 다행한 일이 아닐까...
할미꽃과 한참 정답게 데이트를 하고 있는데 위가 시끄럽다.
아파트 뒤에 있는 중학교에서 아이들이 올라왔따. 체육시간에 가끔 산을 오르는 아이들,
물론 선생님 인솔하에 올라오는데 아이들이 올라오면 시끄럽고 산은 그야말로 갑자기 시장바닥처럼
변하고 만다. 그래도 운동을 잘하지 않고 산행도 하지 않으며 공부에만 찌든 아이들이
이렇게라도 맑은 공기를 들이마신다는 것이 참 좋은 일인듯 하다.
녀석들의 시끄러운 소리를 들어가며 찍다보니 내 온전한 감정이 날아가 버렸다.
내일을 기약하며 그곳을 벗어났다.
생강나무 꽃
지난번 산행은 힘들었는데 오늘은 다리도 그렇고 괜찮다.무릎에 아대를 하고 나온다는 것이
그냥나와서 힘들거라 생각했는데 왠일일까...봄이라 몸이 가벼워진 것일까.
정상에 갔다가 내려오는 길을 거쳐 다시 작은 산으로 향하는 오솔길을 지나
산과 산으로 들어섰다. 그곳에 가는 길에도 어김없이 진달래가 피어 있다.
여기저기 분홍빛 진달래가 점점이 찍혀 있어 꼭 봄 수채화를 보는 느낌이다.
산이 끝나는 곳에 이르러 가져간 메밀차를 마시니 시원하다. 기분이 날아갈것만 같다.
이렇게 산에 오면 좋은데 왜 그리 집에서는 나가기가 싫은지...게으름..
오늘 이 산에서 바람에 다 날려버려야 할 듯 하다.
봄이라고 지나는 길에는 쑥도 부쩍 올라왔고 양지녁엔 노란 양지꽃도 피고 보라색 제비꽃도
피었다. 봄은 봄이다. 진달래도 곧 질 듯 하다. 산벚꽃 꽃망울이 한참 부풀어 올랐다.
곧 터지지 않을까...아파트 화단에는 종종 터진 벚꽃도 보이던데 산은 아직이다.
산 밑이라 그런가 울아파트에는 목련이 아직이다. 하지만 산에 들어오니 봄이 한창이다.
오늘 유채,제비꽃,양지꽃,꽃다지,냉이꽃,진달래,생강나무꽃,할미꽃을 보았다.
정말 기분이 좋다.
산을 벗어나는데 무언가 뒤에서 '스드드득..스드드득' 하는 소리가 난다.
뱀이 있을 턱이 없는데 무얼까 하며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제비꽃을 찍고 있었다.그런데 저 밑에서 무언가 '다다다닥' 하며 뛰어간다.
노루가 한마리 뛰어가나보다. 아무래도 노루다. 지난번 겨울에도 두마리를 보았었는데
오늘도 느닷없이 당한 일이라 '어...어디로갔지..'하고 나니 없어졌다.
정말 눈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나만 보는 것일까..
산의 초입인 의자와 체육시설이 있는 곳에 와서 비로소 메밀차를 마시고 엠피의 노래를 켰다.
산에서는 산새소리 바람소리를 듣기 위하여 엠피를 켜지 않았다.
오늘따라 전화가 많이 온다. 내가 산에 온 것을 아는지..옆지기는 일을 하다가 핸펀을 잃어버렸다고,
혹시 집에 있나 확인해 보라고 전화고 여기저기서 전화다.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어가며 산을 내려와 아파트 화단을 돌았다.
산수유가 활짝 피고 목련이 이제 피려고 한다.늦다..
그리고 매화가 피어 향기롭다. 어제도 매향을 맡았고 오늘도 또 매향을 맡지만 정말 좋다.
그렇게 봄으로 충만한 가슴으로 집으로 향한다. 기분이 좋다.
산수유
목련
매화
한시간여 뒷산 산행으로 이렇게 기분이 좋아지는데
늘 가기 싫어서..게으름에 바라만 보고 있으니..
이제부터는 자주 자주 뒷산을 찾아서 올라가야 할 듯 하다.
2012.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