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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권유 - 시골에서 예술가로 산다는 것
장석주 지음 / 다산책방 / 2012년 2월
평점 :
저자가 사는 곳은 나에겐 추억이 있는 곳이기도 하며 가끔 가는 산인 서운산이 있는 곳이라 더 와 닿는다. 옆지기와 연애를 하던 시절,그는 차를 몰고 어디론가 시골길을 달려갔다. 분위기가 좋은 카페가 있다고 하며.그렇게 달려 간 곳이 금광저수지고 그 근처에 있는 미술관겸 카페다. 그곳에 한번 가고 나서부터는 가는 길도 좋았고 그곳에서의 추억도 있고 해서 아이들이 어려서도 몇 번 갔던 곳이다. 산이 둘러서 있어 참 좋은 곳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곳이 고향이 친구를 만나고 그렇게 하여 내겐 더없이 마음에 드는 곳으로 낙점,그렇게 하여 산행도 잘 하지 못하면서 서운산 산행도 가끔 가기도 하여 건강을 다지고 자연과 좀더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곳에만 가면 마음이 안정되고 왠지 모르게 안식처를 찾은 것처럼 좋다. 가끔 시간이 나면 옆지기에게 가자고 하여 그 주변을 가기도 하는데 산도 좋고 물도 좋고 볼거리도 많고 정말 좋은 곳이다.
삼십여년의 서울생활을 접는 다는 것은 큰 결심 아니고는 가시 힘들 듯 하다. 지금은 귀농이다 뭐다해서 일부러 자연을 찾아 내려오는 사람들도 많지만 십여년이 지난 시간의 여유가 있으니 마음을 단단히 잡았을 듯.거기에 정말 어마어마한 양의 책을 가지고 계시다고 하니 우리집 같은 경우도 이삿짐이 많아서 이사를 할 때 남들의 배의 배도 넘는 이사비용을 내야했지만 짐을 옮기는 분들이 정말 고생을 했다. 뭔 짐이 이렇게 많냐고.하지만 지금이 더 많아졌는데 책의 양이 장난이 아니었을 듯 하다. 하지만 책에게도 사람에게도 집을 장만하여 내려온다는 것은,자연과 하나가 되는 장소에 안주한다는 것은 부러운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막상 시골생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늘 시골분들이 하는 말처럼 몸이 고달프다고 부지런히 몸을 놀려야 하는 생활이다. 모르면 배우고 물어보고 그렇게 이웃이 되고 자연과 하나가 되어가다보면 그 또한 자연인이 되어가리.
투두둑 빗방울 소리보다 큰 알밤 떨어지는 소리를 벗하고 산에 걸린 안개와 함께 하며 누리는 고달픔은 왜 그리 낭만으로 들리는지. 도시에서는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던 야생화며 나무들의 열매와 꽃과 그리고 느리게 가는 시간을 여유자적하는 생활이 고달프면서도 언젠가는 나도 누리고 싶은 로망의 시간이라 그런가 한 줄 한 줄 그저 알밤을 까먹듯 오도독 오도독 씹어 먹어 본다. 자연을 향유하며 고독을 향유하는 그 긴 시간들이 더디 가는 속에서 시 한 편 써서 들려줄 견공이 있고 텃밭을 지키는 노모가 있고 뒷산에는 밤나무 숲이 있어 하루가 심심하지 않을,산책하는 시간에는 함께 시골길을 걷고 싶은 생각이 절로 난다.
도시의 생활은 어쩌면 네트워크의 시간이다. 무언가 연결되지 않으면 소외 된 듯 하고 늘 손에서 놓을 수 없는 핸드폰마져 몇 시간 없으면 안절부절,그야말로 무인도에 홀로 떨어지는 기분이겠지만 시골 생활이란 그런 모든 기계적인 것에서 멀어진다고 볼 수 있다. 기계로는 얻을 수 없는 더 많은 것들을 소유할 수 있고 향유할 수 있고 그러기에 그는 '권유'라고 하지 않았을까.시행착오를 거쳤지만 해보니 몸에 좋은 함께 누리고픈 시간들의 여유가 한 줄 한 줄 모두에 꼭 꼭 담겨 있어 나 또한 읽는 동안에는 그 오래된 추억속의 그 길을 떠올려 보며 그속으로 잠영해 본다. 하지만 우리네 몸은 언제부터 도시의 시계에 맞추어져 있는 것인지 늘 마음 속에만 여유로운 시골생활을 저장해 두고 막상 용기를 내어 꺼내어보질 못한다. 나 또한 그런 삶을 원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꼭 물음표를 마지막에 써본다. 남이 누리는 생활은 여유롭지만 내가 누린다면 정말 여유가 될까? 그 속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시를 쓰고 산책을 하고 음악을 듣고 그동안 저 깊은 곳은 동굴속에 감추어 두었던 희망을 꺼내어 그곳에서 갈무리 하여 빛을 내볼 수 있을까?
'봄은 꽃들의 난장이다. 촛불 같은 꽃봉오리를 피워올린 목련이며,담장마다 무더기로 피어나 땅을 향해 둥글게 휘어지는 노란 개나리꽃 덤불, 진달래꽃 따위가 한꺼번에 만개한다. 온갖 봄꽃들이 시끌벅적대는데,무청에 파란 싹이 돋아나는 동안 골목엔 사각사각 연필 깎는 고요가 소리 없이 익어간다.'
'저수지 주변에 띄엄띄엄 서 있는 나무들은 오래된 침묵을 가사처럼 두르고 있다. 수행이 깊은 노스님 같다. 해가 뜨기 전까지 나무들은 침묵을 감싸안고 있는 안개 가사를 두르고 물을 굽어볼 것이다. '걷는 자'는 아직 미숙한 인생을 살고 있지만, 걷기의 쾌락에 빠져 천천히 나무 아래를 지나가는 것이다.'
그곳에 가 본지 정말 오래 되었다. 근처에 가 본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하지만 기억속의 미루나무하며 초록빛 물이며 한겨울 따듯한 유자차를 마시고 있던 카페에서 내다 본 창 밖 풍경,갑자기 소리도 없이 함박눈이 내려 온세상의 풍경을 바꾸어 놓았던 그 시간들은 고스란히 저장되어 어제일 처럼 기억이 난다. 물빛도 나무도 모두 초록빛이었는데 따듯한 유자차를 한 잔 마시는 사이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소복소복 쌓인 눈 속을 조용히 조용히 빠져 나오던 그 시간, 그 시간이 그리워지게 만드는 글들이다.커다란 창으로 자연이 내다 보이는 곳에서 새벽에 조용히 홀로 깨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기분은 어떠할까? 고독을 벗하여 오롯이 그 시간을 나의 것으로 만드는 시골생활의 맛은 어떤 것일까? 그가 내디딘 모두의 걸음은 알 수 없어도 어느 한 걸음은 그 맛을 알것도 같은 기분,청룡이 머문다는 그곳으로 가서 시원한 바람을 맞고 싶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