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초에 태어나 질곡의 현대사의 그 현장에서 우뚝 서 있던 노벨 문학상 수상자들인 16인의 과거의 삶과 일상을 좀더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16인의 반란자들' 속에서 내가 알고 있거나 읽었고 그리고 좋아하는 작가도 있지만 잘 알지 못하는 작가들도 있어 우선적으로 내가 알고 있는 작가들 먼저 찾아서 읽어 보았다. 하지만 노벨 문학상 작가들 작품은 쉽게 다가오는 작품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질곡의 현대사를 표현해서 읽까 쉽게 읽혀지기 보다는 어려운 작가와 작품들이 더 많다. '오르한 파묵'은 무척이나 좋아하는 작가이지만 그의 작품은 언제나 어렵다. 그런 작가들의 삶과 일상을 작품이 아닌 '인터뷰'에서 좀더 가깝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행운이다. 그것도 그들의 사진과 함께 말이다.
주제 사라마구, 그는 <눈 먼 자들의 도시>라는 작품에 반하여 그의 다른 작품인 <눈 뜬 자들의 도시> <수도원의 비망록>을 구매해 놓았지만 다른 작품은 아직이다. 그는 한 줄의 질문에서 작품을 구상해 낸다는 말을 읽고는 창작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그런 작가를 사진과 함께 만나는 것은 정말 기분 좋은 만남이었다. '계속 글을 쓴다는 것이,글을 쓰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는 것을 도저히 믿기지 않아요.' 작가이면서 '책이 숲을 죽여서는 안된다' 라는 주장을 내세운 그,환경을 생각하고 자연을 생각하는,원시림 파괴하는 것을 원치 하는 그의 생각처럼 책은 영원하지만 자연 파괴를 하지 않으면서 재생되는 자원으로 영원한 지식을 전해줄 수 있는 책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나 또한 보태어 본다.
오에 겐자부로, 일본에서는 두명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나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는 다른 누구보다도 장애아들인 '히카리'를 통하여 문학 뿐만이 아니라 그의 삶이 한번더 정화되었지 않나 생각을 해보는데 '나한테는 내 아들 히카리가 현실을 여과하는 렌즈였던 셈이다'라는 말에 절대 공감을 해 본다. 그의 작품으로는 <아름다운 애너벨 리,싸늘하게 죽다>를 읽었는데 중간부분까지는 약간은 이해를 못하며 그냥 읽어 나가다가 다 읽고 나서는 '아하' 했던 작품으로 기억을 한다. 짧은 인터뷰에서 그를 모두 알기엔 부족하지만 작품에서 작가를 다 이해하지 못하던 행간을 잠시나마 이어본 듯 하여 좋았다.
토니 모리슨, 그의 작품은 내가 접한 기억이 없다. 내 기억속에 축적되어 있는 것도 그리 없다. 하지만 흑인이기에 느꼈을 인종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다른 누구보다 힘든 현실을 살아 왔을 것이란 생각을 가져본다. 그래서일까 자신에게 혹독하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시간에 무척 엄격해요. 하루에 두세 시간은 꼭 글을 써요. 그건 나한테 일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또 하나의 방식이거든요.' 하루에 두시간씩 글을 쓴다고 모두가 노벨 문학상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노벨 문학상을 받는 다고 자신의 삶이 바뀔까? '노벨상이 당신의 무엇을 바꾸어 놓았습니까?... 피상적으로 중요한 변화는 돈이에요. 좋은 것은 나 자신과 내 작품에 대해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거예요. 하지만 나는 일상은 물론이고 작가로서의 생활도 바꾸지 않았어요.노벨상, 아니 나한테 주어진 어떤 상도 나를 좋은 작가나 좋은 사람으로 바꾸지는 못할 거예요.'
오르한 파묵,터키의 작가.파묵 때문에 난 더욱 터키에 가고 싶다는 로망을 가지게 되었고 그의 작품은 힘들지만 찾아서 읽어 보려고 노력하고 그의 작품 대부분을 가지고 있다. 그의 작품중에 읽은 것으로는 <내 이름은 빨강> <순수 박물관> <고요한 집> 이지만 그외 <눈> <하얀성> <이스탄불> <검은 책> 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는 늘 힘든 작가이고 어려운 작품이다. 하지만 그를 통해 터키라는 나라가 좀더 가까워졌다고 할 수 있다. 작품은 어렵지만 그가 전해주려는 그 느낌만은 오롯이 터키라는 그 나라를 잘 전해준 듯 하고 사진 속 호탕한 웃음을 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는 어쩌면 좀더 정이 넘치고 친근한 작가는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는 집에 있었어요. 지금도 그래요. 내가 좋아하는 것은 여기 있는 것이고, 글을 쓰는 거에요....나는 모든 것을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고 있어요. 그러다가 문득문득 나는 행복한 존재이고, 더는 필요한 게 없다고 생각해요.'
노벨 문학상 작가들의 작품은 어렵지만 읽다보니 그래도 수상작가들의 작품을 조금은 맛보기를 한 듯 하다. 지난해에는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의 <염소의 축제>를 읽었고 '가스시아 마르케스'의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도 읽었다. 하지만 내겐 아직도 어려운 작가들이라 구매해 놓고 읽지 못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많다. 그들이 살아 온 세월이 나보다 더 많기도 하거니와 정치적이거나 현실적인 고통에서 벗어나지 않고 감내하며 그 시간들을 지나왔기에 그들의 얼굴과 손에 잡힌 주름만큼이나 깊은 그들의 연륜을 모두 소화해 내기란 힘들다. 그들이 그저 그런 '시간'을 지나왔다는 그 흔적만을 더듬는 것으로 만족하기도 하고 그들이 노벨 문학상이라는 큰 상을 바라고서가 아닌 자신의 삶에 일관되고 살고 있음이 더 공감이 간다. 한편으로는 그 사이에 우리의 작가들이 한 명은 끼어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느껴본다. 그들보다 못한 작품이나 작가가 아니면서 번번히 그 근처만 맴도는 우리의 문학계에도 언젠가는 노벨 문학상의 물꼬가 터지길 바란다.
연륜이 있는 노작가들의 인터뷰를 따라가다 보면 조금은 거리감이 있는,아니 욕심을 내서일까 내 입맛과는 거리감이 있는 부분들도 있지만 그런 약간의 부족함을 작가들의 사진이 대신해 준다. 흑백으로 처리된 작가들의 사진 중에서 글을 쓰는 '손' 이나 그들의 표정등을 중점적으로 보여준 사진들이 정말 좋았다. 우리 일상에서 자신의 마음이나 생각을 타인과 나누는 '가교'역할을 하는 '손' 그 손으로 쓴 글들이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려 주기도 하고 과거를 기억해 주기도 하고. 하지만 무엇보다 그 손에 잡히고 숨겨져 있는 질곡의 시간들의 깊이만큼이나 가득한 주름이나 굵은 마디가 정말 인상깊었다. 농부들은 땅을 일구기 위하여 손마디가 굵어졌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과거의 시간들과 현재의 시간들을 농사짓기 위하여 마디마디 깊은 주름이 박혀 있는 듯. 뭔가 꾸미지 않고 숨기지 않고 자신의 일상의 주름살을 오롯이 보여주고 담아 내어 좀더 진솔한 면을 볼 수 있어 좋았지 않아나싶다. 숨어 지내거나 혹은 쉽게 만날 수 없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들' 그들 또한 이웃이고 우리의 일상과 별반 다르지 않는 삶을 살아 가고 있음을 보면서 개인의 역사가 인류의 역사가 되기도 하고 많은 이들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지적재산이 되는 '문학'이라는 한공간에서 함께 숨 쉴 수 있음이 어쩌면 행운이라는 생각을 하며 그동안 미루어 놓았던 작품들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들어가는 글에서 처럼 모든 것은 우연히 시작되었단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로 부터 헌사 하나를 구할 수 있겠냐는 물음에서 16인의 노벨 문학상 작가들을 만나러 다니는 세계여행이 되었고 독자들에겐 한자리에서 16인의 작가들의 숨겨진 일상및 과거를 살짝 엿볼 수 있는 기회를 만났으니 분명 모든 것은 값진 것들이 될 것이다.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들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한 번씩 펼쳐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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