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설헌 - 제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최문희 지음 / 다산책방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공자님 말씀에,여자는 사람들 앞에 구부리는 것이니, 삼종의 도가 있을 뿐이라고 하셨다. 집에서는 부모를 따르고, 시집가면 남편을,지아비 죽으면 자식을 좇아 잠시잠깐이라도 스스로 이루는 바가 없어야 한다고 했느니, 아예 서책 보기를 버러지 보듯 하는 게 좋을 게야.....' 아버지 초당 허 엽은 딸이라고 하여 그녀를 아들과 다르게 키우지 않았다. 아들들과 함께 사랑방에서 글을 읽고 배우게 했으며 그녀는 이미 8세 때에 천재라는 소리를 들을만큼 대단한 글을 썼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그런 천재적인 글재주가 결혼 후에는 그녀의 인생을 옭아매는 올가미가 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서책 보기를 버러지 보듯 하는게 좋을 게야..' 라는 말이 가슴을 친다. 하지만 그 삶을 버릴 수 없었던 그녀,가슴을 후벼파는 아픔을 더욱 꾹꾹 눌러 참으며 더욱 슬픔을 시에 녹여내지 않았나 한다.

그녀의 결혼 전 15세까지의 친정에서의 삶은 그야말로 '자유' 라고 볼 수 있다.남녀칠세부동석이라 하는 조선시대에 남자인 아들들과 함께 대등하게 글공부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아버지의 배려와 그녀의 재주를 높이 샀던 오빠와 스승의 역할이 크지 않았을까. 맘대로 자신의 생각을 글로 스스럼없이 표현하고 담았던 그녀, 담장을 벗어날 수 없었지만 그녀는 시속에서는 자유를 맘껏 표현하고 누구보다 자유로웠다. 모두가 부러워 하는 당당한 집안에서 글에 뛰어난 재주를 보였던 오빠 붕과 동생 균 그리고 그녀까지 그야말로 글재주가 있는 집안에서 자신의 재주를 맘껏 펼쳤던 그녀가 결혼이라는 그것도 안동 김씨 집안이라는 '장벽' 과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녀도 최순치도 이미 서로를 마음에 담고 있었지만 김성립의 아녀자가 되어야 했던 초희,그녀의 글은 우리나라 보다는 중국에서 더 많이 알려졌다는 다큐를 본 적이 있다. 중국에 까지 널리 알려졌던 그녀의 글솜씨와 빼어난 외모는 그야말로 그녀의 인생을 내리막길로 걷게 만든 주요인이 되고 말았다.

자유분방한 친정집과는 다른 시집에서의 생활, 된시집살이와 불성실한 남편 사이에서 어렵게 가졌던 아이들마져 잃게 되고 친정아버지의 부음에서부터 오빠 붕의 귀양과 죽음으로 인한 친정의 몰락을 보면서 힘들어했던 그녀는 맘 붙일 곳 없는 결혼생활에서 더욱 황폐해져 가기만 했던 듯. 만약 남편 성립이 좀더 그녀의 편에 서서 그녀를 감싸주고 말한마디 그녀의 편이 되어 주거나 시모로부터 방패막이가 되어 주었다면 그녀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자문해 본다. 여자인생은 뒤웅박팔자라더니 그 잘나가던 천재시인이 시집의 꽉 막힌 시집살이에 갇혀 그녀의 인생은 얼음장같은 별채에 갇혀 한마리 날지 못하는 박제된 새처럼 점점 자신의 생을 갉아 먹고만 있었다. 아니 아름답게 피었던 부용꽃이 점점 시들어 가고 있었다니.'같이 앉아 시를 나누고 ,하늘과 별과 세상 끝까지 흘러가는 물에 대해 이야기 나누리라. 그런 남편과 더불어 세상의 끝까지 동행하리라 생각했다.' 그녀가 남편에게 바라는 것은 별거 아니었다. 그녀와 도란도란 시를 나누고 자연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함께 동행하길 원했는데 그러지 못한 결혼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어쩌면 남편과 그녀 사이에는 '시어머니' 라는 넘지 못할 장벽과 같은 장애물이 가로 막혀 있었던 것.어찌할꼬.

그런 삶 속에서 믿었던 친정집마져 천천히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았으니 그녀가 의지할 곳은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다. 어렵게 얻은 딸과 아들마져 시모에게 빼앗기듯 하고는 뒷방신세가 되어 아이들의 죽음을 보아야만 했으니 어떠했을까. 딸로서도 아내로서도 며느리로서도 어미된 자리도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니 그녀,살고 싶었을까? 시들시들 시들어 가는 부용꽃처럼 그렇게 스물일곱의 아름다운 부용꽃은 그렇게 지고 말았던 것이다. '초희야, 너무 영민함도,너무 다정함도,지나친 나약함도 이 세상에 배겨나지 못하는 것을, 어쩌자고 머릿속에 촛불을 켜고 산다더냐.' 어찌하여 남자도 아닌 아녀자가 머릿속에 촛불을 켜고 살게 된 것일까.담장안에 갇혀 있는 아녀자가 촛불을 켜고 산다고 세상이 그녀의 것이 될 수 없는 세상, ' 이 좁으나 좁은 조선 땅에 태어난 것도 여자로 태어난 처량함도, 남편을 만나게 된 것도, 원망하고,서러워했던 걸 부인하지 않아요. 하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조선 땅에 태어남도, 여자로 태어남도, 김성립을 낭군으로 맛이한 것도 제게 주어진 운명이겠지요.' 그렇다 모든 것이 운명인것을 어찌한단 말인가.죽음으로서 비로서 자유인이 될 수 있었던 그녀의 삶이 안타깝다.눈물겹다. '천재도 과하면 독이 된다 하지 않던가...' 라는 말처럼 너무 그녀의 천재성이 과했던 것일까 그를 시샘하여 일찍 그녀의 꽃이 지게 만든 것일까? 정말 슬프다,눈물이 그냥 흘러 내린다,가슴이 먹먹하여 한참을 같은 줄을 읽고 또 읽고 하였다.

처음 소설을 읽으며 정말 故 최명희 작가의 <혼불>을 대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가 다시 환생하여 쓴 소설처럼 초희의 혼례장면이 <혼불>의 어느 대목처럼 아니 <혼불>을 읽고 있는 착각이 들정도로 잘 표현해 놓았다. 대하예술소설인 <혼불>을 읽으며 얼마나 가슴이 먹먹하고 소설이 이렇게 아름다울수도 있구나 하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고 아쉬움,소설이 완성되었더라면 어떠했을까.<혼불10권>은 미완성이면서 장장 17년의 세월동안 쓰여진 소설이며 그 내용또한 대단하다. 한동안 다른 소설을 읽어도 맘에 들어오지 않고 모두 시시했다. 그런데 이 작품이 제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이라 그런가,아니 '난설헌' 이라는 인물을 그려내기 위해서인지 너무도 잘 표현이 되었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것과 예술적인 면이 조화를 이루면서 아름다운 전통과 예술에 빗대어 초희 그녀의 비극은 너무 극명하게 갈라짐을 잘 나타내 주었다.그러면에서 혼불과 비슷한 면이 있다.

난설헌 그녀의 인생은 15세 이전과 그 이후로 극명하게 달라진다. 결혼전인 15세 이전에는 친정집에서 아버지 오빠와 동생과 함께 자유롭게 글공부를 하고 시를 짓고 했다면 결혼을 한 15세 이후에는 여자가 시를 짓는 것부터 싫어하는 시모와 남편의 눈총을 받아가며 결혼전에는 양지에서 글을 썼다면 결혼후에는 음지에서 쓴 글처럼 인생 또한 그렇게 음지가 되었으니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 좀더 개방적이고 그녀의 재주를 알아주는 그런 집안 그런 사람을 만났더라면 그녀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짧은 생이라 더욱 아름답고 곱게 피어 올랐던 것일까.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바느질하듯 그녀의 삶을 조각보로 이어가듯 아름답게 잘 표현해 낸 '난설헌'을 읽는 동안 울컥 울컥 얼마나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이 나던지.그녀를 아내로 맞은 성립의 삶 또한 어쩌면 피해자일지 모르지만 너무 자신의 아내에게 안이했던 것이 밉다.그녀가 죽어가게 방치한 사람이기도 하기에 밉기도 하면서 불쌍하다.그런가 하면 순애보처럼 그녀를 향했던 사랑을 접지 못했던 최순치 또한 가련하다. 천재적인 문학성을 가진 여인인 난설헌을 중심으로 많은 인물들이 그려졌음에도 재밌게 읽을 수 있고 요즘 소설에서 볼 수 없었던 면을 본 듯 하여 기쁘다. 그리고 난설헌이라는 그녀의 애련한 삶을 오롯이 잘 담아 내어 오래도록 여운이 남을 듯 하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녀의 생가를 한번 들러봐야겠다.그곳에 갔으면서도 시간이 없어 주위를 맨돌다 온 것이 못내 아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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