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반양장) 사계절 1318 문고 2
로버트 뉴턴 펙 지음, 김옥수 옮김 / 사계절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열두살 어른이라 볼 수 없는 나이다.그렇다고 열세살을 어른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 나이엔 부모밑에서 투정이나 부리고 사춘기 그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하면서 하나의 자아로 독립하려고 발버등치느라 어른들과 부딪히고 방문을 걸어 잠그는 나이,하지만 로버트는 달랐다. 그의 열두살은 어른이 되기 위하여 준비하는 해였다면 열세살은 비로소 어른이 된 해라고 할 수 있다. 왜일까? 그의 곁에서 늘 든든한 버팀목처럼 자리하고 있던 아버지의 존재가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땅의 주인이 된 것이 아니라 땅이 아버지를 소유하던 날, 로버트는 어른이 되었다.

학교에서 교우와 작은 트러블로 인해 수업을 빼 먹고 집으로 향하던 로버트는 이웃집 테너 아저씨의 든든한 행주치마가 새끼를 낳는 장면을 보게 된다. 하지만 송아지는 엉덩이에 끼어 나오지 못하고 어미도 힘들어 하고 있다.로버트는 당장 바지를 벗어 송아지와 어미를 구하고자 있는 힘을 다해 온 몸이 피어 이물질로 범벅이 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송아지의 탄생을 도와준다. 그리고 어미의 목에 무엇이 걸려 있는 것 같아 그것까지 뽑아 내려고 하다가 심한 상처를 입고 정신까지 잃게 된다. 어떻게 되었을까? 송아지도 물론 건강하고 어미소도 건강하다.그런데 한마리가 아니라 쌍둥이를 낳았단다. 자신의 팔은 비록 꿰매야 했지만.어른도 하기 힘든 일을 열두살의 로버트가 해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어미속의 목숨도 건졌으니 이웃집 테너 아저씨는 고마움의 답례로 이쁜 새끼 돼지 한마리를 준다. 이름은 '핑키' 애완돼지처럼 로버트와 하나가 되어 잘 커나가는 핑키, 하지만 로버트의 집은 가난하다. 아버지가 농장일을 하고 돼지 잡는 일까지 하는데도 늘 살림은 어렵다. 그런 집에 핑키는 무럭무럭 자라서 새끼를 잘 나아주어야 한다.

로버트는 늘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아버지의 몸에서 나는 돼지 잡은 냄새가 나지 않았으면 바란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 일에서 최고나 마찬가지처럼 모든 분들이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인정해주신다. 아버지는 농부로 늘 셰이커 교인으로의 정해진 법칙과도 같은 삶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하며 진실되게 사신다. 남보다 더한 욕심도 부리지 않고 꼭 필요한 것만 취하고 사는 삶처럼 진실되게 하시는 분이다. 그런 아버지에게 돼지 잡은 냄새가 나면 좀 어떤가. 핑키도 잘 커가도 이웃집 테너 아저씨네 황소들도 잘 커나가서 '러틀랜드' 에도 가서 신나는 경험과 구경을 하고 온다. 하지만 가난한 삶을 위해서는 핑키가 새끼를 많이 나아 주어야 하는데 핑키는 테너아저씨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새끼를 가지지 못하고 아빠는 겨울에 사슴 한마리도 잡지 못하는 어려운 상황이 겹친다. 거기에 아버지는 얼마 살지 못할것 같다는 말을 소년에게 해준다. 자신이 없는 공간을 지탱해 나갈 수 있도록 아버지는 소년을 가르쳐 왔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아버지는 겨울에 핑키를 잡게 되고 소년은 아버지와 함게 자신의 첫번째 소유물이었던 '핑키' 를 잡으며 '어쩔 수 없는 상황' 임을 깨닫고 감정을 억제하지만 아버지 또한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을 보고는 억제한 감정의 봇물을 터뜨린다. 그리고 아버지께 감사한다. 아버진 겨울을 그렇게 이겨내고 봄이 오고 더 많은 삶을 지탱하지 못하고 돌아가신다. 그리고 소년은 비로소 아버지가 없는 공간에서 어른이 되어 아버지의 장례를 도맡아 치르고 농장일을 한다. 아버지의 부재로 인하여 어른이 된 소년, 그리고 누구보다 아버지를 존경하는 소년은 '아버지처럼' 되는 것이 소원이다. 늘 셰이커 교본처럼 움직이고 사셨던 아버지, 아버지가 가난하다고 느꼈지만 아버지의 장례식 때 함께 일하던 분들은 아버지보다 더 못한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고는 자신들은 가난하지 않음을 느낀다. 풍족하진 않았지만 가난하지도 않아던 아버지와 삶,'필요하다고 모두 다 사는 건 아니라는 거야.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다 해서 다 따라 할 필요는 없어.네가 어떤 일을 하느냐가 더 중요해. 겉보다는 속이 중요하단 말이다.' 라는 말을 해주시던 아버지, '언젠가 아빠는 나무가 세 번 따듯하게 만들어 준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무를 자를 때와 나무를 운반할 때, 그리고 그것을 태울 때다.' 꼭 필요할 때만 그리고 농부였기에 '뿌린만큼 거두는 진실된 삶' 을 누구보다 잘 알았고 실천하며 사신 아버지, 그 아버지에게 배운 그 삶을 어른이 된 소년은 이어 나가려 한다.

'농부보다 훌륭한 사람? 농부보다 훌륭한 사람이 어디 있니? 가축을 돌보고 곡식을 기르는 사람보다 훌륭한 사람은 없단다. 우리 농부가 모든 사람을 먹여 살린다구,우리 역할은 신의 창조물을 돌보는 일이야. 이보다 훌륭한 일은 없다.' 평생 자신의 이름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문맹이었어도 누구보다 '진실' 에 귀 기울이고 '진실'되게 살고자 노력한 가난하지만 마음만은 누구보다 부자였던 아버지, '아빠, 하루종일 돼지를 잡고 난 뒤에도 그 옷을 입고 있는게 싫지 않으세요? '태워서 묻어 버리고 싶단다.' 하지만 자신도 무척 싫었지만 자신이 아닌 가족을 위해서는 싫어도 그 일을 접을 수 없었던 아버지는 평생 그 일을 하다가 돌아가신 것이다. 자신의 땅과 농장을 소유하지 못하고 마지막에 겨우 자신이 누울 자리만 가진 마지막 부분에서는 목울대가 '컥' 막히는 것처럼 눈물이 흘러 내렸다. 부모란 다 그런 것이다. 자식을 위해 자신의 몸은 부서져도 돌보지 않고 그렇게 황소처럼 일을 해도 자식은 자신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를 원하는,더 많이 배우고 더 가진 삶을 살기는 바라는 것이 부모인 것이다.

열세살 소년이 받아 들이기엔 너무 힘든 현실인 듯 한데 소년은 덤덤하게 아버지가 계실 때처럼 그렇게 묵묵히 자신이 늘 하던 일을,아니 아버지와 함께 하던 일을 찾아서 한다. 아버지의 부재에 마냥 손을 놓고 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엄마에게 투정을 부리지도 않는다. 아버지가 가르쳐준대로 하여 아버지처럼 되는 것이 소원인 소년은 아버지가 된것처럼 어른스럽게 아버지의 부재를 메꾸어 나간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은 아버지와 함께 하던 인부들이 모두 모인 자리라 역으로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이 되고 말았으며 소년이 어른이 된 날이기도 하다. 소년의 마지막 말이 명치 끝에 와서 막힌다. '안녕히 주무세요,아빠. 아빠랑 보낸 지난 13년간은 정말 행복했어요.' 슬픔도 슬퍼하지 못하고 담담히 흘려 버려야 하는 소년의 그 마음이 내게로 전이된 듯 하다. 아버지는 비록 자신의 이름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였지만 '로버트' 라는 한 알의 밀알은 제대로 싹을 틔운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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