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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악보 - 이론의 교배와 창궐을 위한 불협화음의 비평들 ㅣ 자음과모음 하이브리드 총서 1
최정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실 이 책 제목만 보고 선택한 것은 나의 잘못이었다.내겐 너무 먼 책이다. 인문쪽의 책은 손에 꼽을 만큼밖에 보지 않는 내게 '생각의 접붙이기' 에 대한 책이나 정말 방대하고도 그 깊이를 따라가지 못해 몇 번을 헛발을 디디듯 하면서도 읽어나가려 했지만 멈춤 멈춤 그리고 또 멈춤 아직 다 읽지 못했다. 다음에 정말 내게 진정한 시간이 허락하고 저자에게 약간 미안하지 않을때 다시 빼서 읽고 싶은 어찌보면 한없이 밉고 어찌보면 정말 매력덩어리인 책이다. 아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진주내지 보물이라고 해야 할 듯 하다.한번에 모두를 보기는 아까운 책이다.
'사유의 악보' 제목만 보면 무슨 음악에 대한 이야기인가, 혹은 음악가들에 대한 아니 예술에 대한 이야기인가 하겠는데 정말 모든 방면을 총망라한다고 해야하나 어느 한부분 건드리지 않고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의 사유는 정말 대단한 잡식성처럼 음악 영화 문학 인문 예술 철학 모든 방면을 다 아우르면서 '생각 접붙이기' 를 하니 그 스피드를 따라 잡기도 힘들지만 열 살에 서점 한귀퉁에서 호기심에 무심코 뽑아 읽었던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대한 어떤 '오독' 으로 인하여 인문학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니 정말 대단하다. 그 세월도 세월이지만 열 살때부터라고 한다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양의 인문학 책을 접했을까 짐작도 가지 않지만 나름의 그만의 철학 또한 방대한 양으로 가지치기를 하고 있으리라. 그런 그에 비해 겨우 손에 꼽을 정도의 인문책을 보고 거기에 <군주론>은 근처에도 가지 않았으니 처음부터 이 책을 이해한다는 것은 격이 안맞고 너무 힘에 부친다.
베토벤이나 모짜르트 그외 쟁쟁한 음악가들만 자신의 악보에 비밀을 숨겨 놓은 것은 아닌듯 하다. 그 또한 그만이 해석할 수 있는 악보를 만들어 놓은 듯 하다. 십여년에 걸쳐 쓴 글들이라 하는데 어찌 내겐 이중 한단락도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지,동시대를 살고 있었나 싶다. 보는 방향이 다르고 관심이 달라서라고도 하겠지만 그가 보는 텍스트의 사유는 책에서 뿐만이 아니라 문학 음악 그림 영화등 글에 갇혀 있던 텍스트를 영화속에서도 끄집에 내는가 하면 소설 속에서도 혹은 철학 속에서 끄집어 내어 그만의 새로운 또 다른 가지를 쳐 나간다. 철학이나 그외 지식은 예전 학창시절에 머무르고 있는 수준에 그가 쏟아내는 방대한 양의 지식을 한꺼번에 넙죽 받아 소화를 시킨다는 것은 보지 않아도 뻔하다. 소화불량. 이래서 점점 독자에게서 인문책이 멀어지고 기피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좀더 쉽게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접근성이 용이하고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공감성을 갖춘다면 좀더 많이 읽게 되고 많이 찾게 될 터인데 나부터 힘들다고 자꾸 놓고 싶은 생각을 가지게 하니 정말 아쉽다. 하지만 읽어 나갈수록 빠져드는 알 수 없는 마력이 있다. 어찌보면 읽으면서 사유의 폭이 자신도 모르게 확장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사유란 것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곳 저곳에서 알맞은 음표를 찾아 접붙이기를 하다보면 하나의 교향곡이 될 수 있다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사유,새로운 글쓰기.
요즘 책을 많이 읽지는 않지만 읽은 책에 대한 리뷰를 쓰다보면 처음과는 다르게 변질되고 새로운 글을 쓰고 있는 자신을 가끔 발견하게 된다. 생각의 가지치기,접붙이기를 하고 있는 자신 말이다. 그런 모습은 내가 읽거나 혹은 보거나 듣거나 모든 것들이 그 이야기에 맞게 접붙이기를 할 수 있는, 어떤 잡학에 가까운 것들을 흡입했다는 것이다. 그것들이 모여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점점 새로운 접붙이기가 되고 처음엔 짧게 끝나던 리뷰가 점점 길어지고 자신이 조금 더 잘 알고 있는 종류의 이야기라면 더없이 길어지고 할 말도 쓸 말도 많다는 것이다. 이 책 또한 그런 맥락으로 보고 싶다. 그가 인문과 함께 한 세월과 양이 남과 다르기에 생각의 접붙이기 또한 남과 다르게 특별난 것이다. 그 생각을 따라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에 책을 모두 이해할 필요도 그의 생각이 모두 옳다고는 보지 않지만 '사유' 란 꼭 필요한 것임을, 중요성 정당성을 읽을 수 있다. 내가 보고 싶었던 영화,보지 못했지만 크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그랜 토리노>에서 ' 복수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러한 지연과 그에 대한 자연스러운 불안의 감정, 곧 법치에 대한 일종의 '뒤틀린' 믿음 그 자체 때문이었을 것.' 이라 표현해 놓았다. 어찌보면 그는 영상이나 그외 정형화되지 않은 텍스트를 어찌보면 글이란 그만의 텍스트로 너무 매력있게 정형화 시키는데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지 않나싶다. 그만큼 지식의 양도 다양하고 방대하겠지만 말이다.
좀더 나의 지식의 깊이가 있었다면 정말 재밌게 읽었을 책이다. 아니 조금 시간이 흐르고 나서 다시 읽게 된다면 좀더 재밋게 있을 수 있으려나.아직은 내겐 너무 어려운 책이다. 어렵다고 책장 한 켠에 모셔두고 싶지도 않은 책이다. 그의 생각을 뒤쫒을 수 있을 때까지 몇 번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인문책을 좀더 많이 읽어봐야겠다는 것,나의 독서 편식이 이 책에서 드러난다. 그동안 잘 사용하지 않던,흔히 쓰지 않던 용어들을 만나면서 내 사유의 폭은 얼마나 넓어졌을까. 아니 '사유의 악보' 앞에서 움츠러든것은 아닌가 걱정도 된다. 내가 소화는 하지 못한 책이지만 정말 매력적인 책이라는 것은 알만하다. 누군가 정말 맛잇게 읽어줄 이가 분명히 있을 것이고 이 분야를 좋아한다면 그와 난형난제하듯 재밌게 읽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나의 반성, 너무 깊이 없는 책읽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뒤돌아 보는 자신을 본다. 어찌보면 나의 책읽기에 일침이 될 수 있는 책이기도 했다. '세계는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구성해 나가는 것이었다.' 라는 말처럼 구성된 것을 따라가기 보다는 만들어 가야할 듯 하다. 사유라는 것 또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