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 장수 문순득, 조선을 깨우다 - 조선 최초의 세계인 문순득 표류기
서미경 지음 / 북스토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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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왜 그를 선택했을까, 그였기에 더 다행한 역사가 되지 않았을까,그가 아니고 만약에 양반이나 좀더 신분이 높은 이였다면 조선을 흔들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더불어 그런 인재를 알아보는 탁월한 눈을 가진 인재인 정약전과 정약용 그리고 실학자들이 있었기에 그의 3년 2개월의 표류가 새로운 세상을 보는 그야말로 광명과 같은 눈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 내용에 대한 다큐를 본 느낌이 있어 읽으면서 자꾸 머리속에서는 그 다큐가 생각났다. 이백여년간 촌부의 다락에서 숨쉬고 있었던 '역사' 의 값어치가 비로소 세상에 나와 빛을 보는 순간이기도 했던 것 같은데 왜 좀더 그의 시각이 일찍 세상에 나왔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가져보지고 했다.

작은 섬 우이도의 일개 홍어 장수였던 문순득, 일자무식이라 해도 남보다 뛰어난 호기심과 기억력 그리고 생명력으로 처음으로 새로운 세상과 만난 '천초' 인 그가 홍어를 나주장에 가져가 백섬의 쌀과 바꾸어 돌아오던 길, 뜻하지 않은 풍랑을 만나게 되고 망망대해에서 거친 파도와 비바람을 이겨내기엔 너무 작은 일엽편주와 같은 배로 지금과 같은 고도의 GPS도 없는 그런 항해에서 죽지 않고 살아 남아 그래도 남의 땅이지만 밟게 되었다는 것은 어쩌면 선택이다. 새로운 세상은 벌써 그의 앞에 기다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남보다 더 뛰어난 호기심과 친화력 기억력 덕분에 가는 곳의 언어 생활양식 모든 새로운 것들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여 차곡차곡 저장해 둔 문순득, 좀더 빠른 통신망이 있었다면 바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겠지만 닫힌 세계에 살고 있었던 조선과 그리고 그곳을 벗어나지 못했던 민초였던 이들에게 새로운 세계와 사람들 그리고 이상한 언어는 받아 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곳에서 끈질긴 생명력으로 버티어 가면서도 모든 것을 담아 두었기에 후세에 빛을 보는 '역사' 를 남겼다는 것은 어쩌면 그야말로 지금의 '여행서' 에 버금가는 이야기꾼이며 여행가의 면모를 보여준듯 하다. 그렇다고 그가 표류한 이야기들이 그냥 혼자 담아 두었다면 빛이 되지 않았을터인데 그를 알아본 '정약전' 이라는 비범한 인물이 있어 그의 표류기는 더욱 조선을 흔들어 놓을 수 있었던 듯 하다.

'나는 사방의 나라는 문자가 같다고 알았다. 그런데 문자도 다르단 말인가?' 이 얼마나 닫힌 생각과 닫힌 나라에서 살고 있었다는  말인지. 제주도에 표류해온 사람들을 가리켜 '해귀' 라고 했다. 나와 다르다고 나와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고 바다에서 온 귀신이라고 했으니 어이가 없지만 어쩌겠는가 이 나를 벗어나보지 않고 안방만 지키며 살았으니. 그런 모두의 눈을 놀라게 하는데 '홍어 장수 문순득' 이 있으니 한참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던 '실학' 과 만나 더 큰 빛을 보게 되지 않았을까. '문순득은 이제 일개 변방 작은 섬의 홍어 장수가 아니었다. 표류가 그를 변화시켰다. 류큐,필리핀,마카오,중국 땅 곳곳을 3년 2개월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떠돌면서 이방인들과 소통하고 보고 들은 지식과 경험이 그를 바꾸어 놓았다. ...조선 사람 최초로 필리핀 통역사 역할을 자청했다.' 자신이 오랜 기간 이역땅을 돌며 표류생활을 해 보았기에 낯설고 물설은 곳에서의 고생을 알고 있기에 제주도에 표류한 이들의 통역을 자청하여 그들을 본국으로 돌아가게 해 주었던 최초의 통역사가 된 문순득, 그와 언어가 통한다는 것 하나로 그들의 9년간의 표류생활이 한바탕 울음으로 이어지던 장면이 꼭 보지않아도 느낌으로 마음이 짠해진다. 얼마나 반가웠을까,언어가 통하고 자신들을 알아봐준다는 그 하나가 이렇게 반갑다는 것이. 문순득 그도 그랬을 것이다. 좀더 일찍 자신과 조선이 알려졌다면 본국으로 돌아오는 날이 앞당겨졌을텐데.

문순득 그의 표류가 주는 의미는 크다. 새로운 세상을 최초로 본 사람이기도 하지만 그 모든 기억들을 담아 놓았고 그의 기억을 다시 끄집어 내어 책으로 낸 정약전의 <표해시말>과 그의 영향을 받은 정약용의 <경세유표>와 그가 선진국의 배에 관한 관심과 자신이 표류를 하게 된 것 또한 선박제조에 뒤떨어진 기술 때문이라는 관점에서 더 자세하게 보았던 선박기술에 대한 것을 정리해 놓은 이강회의 조선 최초의 선박논문인 <운곡선설> 뿐 아니라 우이도의 문순득의 집은 표류후 실학의 산실이 되었다니 대단하다. 일개 홍어 장수에서 새로운 문물을 보고 받아 들인 실학자나 선구자가 되었으니 그의 운명을 표류가 바꾸어 놓았다고 볼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라면 표류자가 되었다면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시름시름 앓거나 혹은 죽기도 했을 터인데 그의 강인한 뱃사람으로의 생명력과 장사로 다져진 호기심은 그를 새로운 사람으로 바꾸어 놓은 듯 하다. 작은 섬 우이도에서 홍어 장사를 하기만 했던 그에게 새로운 나라와 문물은 얼마나 값진 보물처럼 다가왔을까.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커다란 배나 지금까지 보지 못해던 꼬불꼬불한 실같은 글씨, 어느것 하나 놓치지 않고 '우리화' 시켜서 저장해 놓은 그의 복원력도 뛰어나지만 그런 새로운 것에 눈을 뜨고 있었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더 다행이다.

한승원님의 <흑산도 하늘길> 정말 감동적으로 읽었는데 작가는 그 소설에서 정약전을 마중나온 작은 어선의 선주를 문순득으로 추정했다니 나 또한 기억을 뒤져 새롭게 그를 떠올려 보기도 했다. '가치를 제대로 알아준 정약전 같은 실학자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문순득의 표류는 한낱 어상의 모험담 정도로 잊혀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그가 표류를 마치고 고향에 돌아와 이런 신문물을 만난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면 정말 어상의 모험담으로  점점 커져 부풀려지고 무슨 전설화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를 알아본 대단한 실학자 정약전에 의해 체계화되고 책으로 쓰여지게 되면서 그의 표류는 단지 개인의 이야기가 아닌 '역사' 가 된 것이다. 류큐,오키나와에서조차 사라진 언어와 역사가 그의 표류기에는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그의 표류기인 <표해시말>은 문순득의 이야기이면서 류큐의 역사책이라 볼 수 있다. 일본과는 동떨어져 다른 역사오 언어를 가지고 있었던 류큐, 그곳에서 정확하게 그들의 언어를 알아들었고 그것을 기억하고 토해낸 홍어 장수 문순득, 그 모든 것을 기록없이 기억해냈다는 것도 정말 대단하다. 아마 글씨를 알았더라면 남겨진 역사는 얼마되지 않았을터인데 그가 신분도 그렇고 글씨를 모르는 사람이었기에 모든것은 더욱 자세하게 그의 뇌리에 박혔던 것이라니 흥미롭다.'문순득은 무기는커녕 모든 것을 잃고 흘러들어온 표류민이었다. 그런 약자의 시선으로 그는 순수한 이방인 관찰자가 되어 우리나라에는 물론이고 일본에도 소중한 역사 기록을 남긴 주인공이 되었다.' 

일개 홍어 장수 문순득에서 표류생활 후 새로운 문물을 보고 느낀 것이 조선을 흔들고 선구자들의 눈과 귀에 바퀴를 달아주듯 잘 굴러가에 하여 실학자가 아닌 실학자로 거듭난 문순득, 새로운것에 대하여 빗장을 걸어 대문을 꼭 걸어잠그기 보다는 받아 들일것은 받아 들이고 배울것은 배우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정말 그의 삶으로 보여준 사람이다. 어쩌면 너무 일찍 세계화에 다가간 사람인데 역사속에 묻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찌보면 갇힌 세상에서 살던 모두에게 일침을 가하는 '표류기' 이지 않았나싶다.좀더 그와 같은 이들이 많이 있고 새로운 것에 눈을 돌릴줄 아는 시선을 가진,자신의 자리를 빼았길까 전전긍긍하는 위사람이 아닌 열린눈과 귀와 마음을 가진 윗사람이 있었다면 우리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일개 홍어 장수도 역사를 흔들어 놓았는데 만약에 그것이 위에서 그런 일이 발생했다면 그 파장은 무척 컸을 것이다. 요즘 자주 접하게 되는 정조시대의 역사, 읽어도 읽어도 흥미롭고 재밌다. 역사란 알면 알수록 자신도 모르게 더 깊이 파고 들어가는 우물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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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1-03-17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전해듣고 책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가,
바쁜 일상속에서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여기서 또 만나네요.

일깨워주셔서 고맙습니다.
얼른 보관함에 넣어야겠어요. ^^

서란 2011-03-18 22:1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저도 재밌게 읽은 책이랍니다.
즐거운 독서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