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 - 감각의 독서가 정혜윤의 황홀한 고전 읽기
정혜윤 지음 / 민음사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고전을 다시 읽어본다고 한것이 작년에는 몇 권 읽지를 못했다.아니 읽으려 하는 맘보다 예전에 읽었거나 다음에 읽을 기회가 있겠지 하고 뒤로 미루는 경우의 수가 더많은, 나의 핑계 때문에 읽지 못했다. 어쩌면 게으름과 나태함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참 고전에 빠져 지내던 시절이 있었다.학창시절엔 남들은 재미없다고 읽지 않는 고전을 도서실에 죽치고 앉아 혹은 줄을 서서라도 기다려 읽고 싶은 고전을 읽었다. 그땐 이해가 잘 되지 않아도 그 책을 읽었다는 그 희열에 읽은 듯 하다. 지금, 그 내용들이 기억날리 없다. 아니 그런 내용이었다는 것은 대략 생각나는듯 한데 세세한 것은 다시 읽어봐야 할 듯 하다. 아니 읽었다고 느낀 책들이 대부분이지만 그 모든 책을 읽은 것은 아니다. 흔히 고전은 읽었다고 그냥 넘기기가 일쑤다.나도 그렇다.그래서 고전을 일부러 신간을 구매할때 한 권 한 권씩 끼어 넣듯 하면서 일부러 구매를 하고 짝을 맞추고 있다. 책장에 꽂아 놓으면 언젠가는 손이 가게 되어 있다.그 언젠가가 올해엔 좀더 많이 읽는 해로 정하고 싶다. 그러다 읽게 된 전작 <침대와 책>에서 그녀의 방대한 독서량과 독서력 그리고 기억력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는데 그래서 이 책이 나오자마자 구매를 해 놓고도 읽지를 못했다. 이번에 또 어떻게 내가 '백기' 를 들게 될지 몰라서.다시 읽고보고자 아니 읽어보려고 구매해 놓고 읽지 않은 책들이 많다. 눈에 익은 것은 제목과 무라카리 하루키의 <1Q84>, 그것도 1권만 읽었으니 이 책을 읽어야 할까 말까 하다가 어렵다고 생각하지 말고 나와 똑같은 다른 리뷰어의 리뷰를 읽는다 생각하며 읽었다. 

난 대부분 다른사람의 리뷰를 읽어보려 하지 않는다. 괜히 내가 먼저 리뷰를 쓰기전에 읽게 되면 그 사람의 생각을 카피하는 것 같아 될 수 있으면 읽지 않고 내가 읽은 그 감정으로 리뷰를 쓴다. 내가 책에 대한 해석을 올바르게 하고 있든 그렇지 않든 내나름의 리뷰를 모두 마친후에 같은 책의 리뷰를 읽는 편이다. 그렇게 하고 나면 내가 몰랐던 부분이나 내가 놓친 부분에 대하여 좀더 알게 된다. 그래야만이 나만의 리뷰를 쓰는 것 같아 처음엔 리뷰가 힘들다고 생각되다가 내가 아닌 타인은 이런 생각으로도 리뷰를 쓸 수 있구나 하는 생각으로 돌리고 나면 잘 쓴 리뷰건 그렇지 못한 리뷰건 미련이 없어진다. 너무 많은 것을 저장하려고 노력하면 괜히 다음번 독서에 지장만 줄 뿐이다. 그래서인지 난 읽은것에 대한 것을 얼마 지나고나면 기억을 못하기도 한다. 좋은 문장을 많이들 기억하는데 점점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인지 아님 기억하려고 하지 않아서인지 기억해내지 못한다. 그래도 내가 그 책을 읽은 것으로 만족을 한다. 열심히 읽어도 늘 읽는 책보다 못 읽는 책들이 더 많기 때문에 집착을 버린다. 그렇게 감각의 독서가라고 알려진 방대한 독서를 자랑하는 정혜윤의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 을 읽게 되었다. 세계가 두번 진행되길 원한다면 그 앞에는 물론 '나' 라는 주체가 빠졌을 것이다. 고전을 통하여 나의 미래가 바뀔 수 있다면 그런 뜻으로 해석이 된다. 

먼저 만난 책은 <위대한 개츠비>다.내가 분명 읽었고 영화도 본듯 한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얼만전에 읽은 러셀 베이커의 자선의 <성장>과 비슷한 시기라 그 시대를 생각하며 읽게 되었다. 작가는 이 소설을 이해하려면 그 시대가 어떠했는지 알아야 한다면 시대에 대하여 설명을 하고 있다. 역시나 박학다식이라고 해야 하나 전개가 뛰어나다. 그냥 소설을 들여다보는것이 아닌 '소설의 행간' 을 읽듯 그 시대를 들여다보며 소설을 설명하니 소설이 더 재밋게 다가올수밖에.그녀의 지식은 어느 분야로든지 뛰어난듯 '가지치기'를 잘한다. 그녀의 글을 읽고 있으면 그냥 소설을 읽는 것이 아닌 그녀의 창작물을 다시 읽는것과 같다. 개인의 리뷰를 한데 모아 놓은 것을 읽다보면 독선에 빠질 수도 있어 그렇게 읽고 싶지 않은 면도 있는데 읽다보니 괜찮다. 책의 내용뿐만이 아닌 여러 분야와 그외 다른 책과 연계를 하여 들려주는 이야기는 재밌다. 그녀에게선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무긍무진하게 나올 듯 하다. 그렇게 따라 읽다보니 이 책 또한 다시 읽어봐야할 책이 되었다. 내가 읽은 것은 무엇이었단 말인가.

얼마전 <일생에 한번은 동유럽을 만나라>를 읽고는 프라하하면 카프카하여 카프카에 대하여 다시읽기를 해봐야겠다고 생각을 하며 <변신>에 대한 짤막한 글을 쓴듯 한데 '변신' 에 대한 글이 나온다. 내가 이 작품을 읽은 것은 중학교때였나 암튼 이해가 잘 안가 몇 번 읽은 듯 한데 가물가물하다. 암튼 불완전변태를 한듯한 그 이야기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는데 그녀가 들려주는 변신을 따라가다보니 내가 읽었던 그 시절의 추억도 생각난다. 책 내용보다 더 또렷하게.카프카가 왜 이런 작품을 썼을까보다 다시 한번 카프카의 작품들을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을 더 깊게 해 준 이야기였다. 그가 살았다는 황금소로의 누나의 집의 방이 생각난다. 그 길에서 소음에 시달리면서도 그가 생각해낸 환상과 현실의 차이는 어떤 것이었을까. 꼭 다시 읽고 싶다.

브론테 자매들의 이야기는 문학소녀들이라면 한번씩 접하며 지난 추억의 시간일 것이다. 책에서인지 여행프로에서인지 <폭풍의 언덕>이 쓰인 곳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바람이 몹시도 심한 그곳의, 아 어느 여행서에서 읽은 내용이다. 자매들의 이야기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그곳의 배경사진이 있었는데 그곳은 산책하기에 맞춤한 곳인듯 하여 언제 한번 가보고 싶은 곳으로 작점해 놓았는데 그녀가 들려주는 폭풍의 언덕 이야기를 듣다 보니 흑백영화의 비비람이 몹시 심하게 불던 장면이 생각난다. 서로에 대한 사랑이 너무 강렬해서였을까 
어쩌면 둘은 아닌듯 하면서도 너무도 닮은 사랑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이루어질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브론테자매의 한명인 샬롯 브론테의 <교수>라는 작품을 사두고 읽지 못한 것이 괜히 미안했다. 바로 내 등뒤에 있는데 올해는 꼭 읽어봐야겠다. 카프카도 그렇고 브론테도 그렇고 여행서 만난 그곳의 사진과 작품 이야기를 이 책에서 다시 만나니 더 반갑다. 이것도 인연인가보다. 다시 읽어보라는.

중학교 고등학교때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때문에 정말 많은 고뇌에 빠지기도 했다. 한참 첫사랑이니 하며 풋사랑에 빠질 시기였던 사춘기시절에 만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과 '베르테르효과' 는 놀람 그 자체였다. 슬픔이 아니 비극으로 끝나는 이야기라 더 여운이 길었던 것일까. 한참 책내용은 연애편지의 주를 이루기도 하고 암튼 정말 여자들은 누구나 로테와 같은 대상이 되고픈 생각을 가지기도 했던 그런 시기였다. 이 사랑을 그만두느냐 마느냐, 햄릿의 '죽느냐 사느냐' 가 문제가 아니라 이것은 사랑의 갈림길에서 무엇을 선택할지의 인간의 고뇌이다. 그가 사랑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이루지 못하는 사랑을 죽음으로 마감했기에 그의 사랑은 더욱 순수하고 숭고해 보이는 그런 극단적인 생각까지 갖게 만들었지만 그 사랑이 아니었다면 다른 사랑을 찾아보려 노력하지 않은 베르테르가 한편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사랑으로 난 상처는 사랑으로 채웠다면 그 이야기는 슬픔이 아닌 기쁨이 되었을터인데 그렇다면 고전이 되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골짜기의 백합>은 읽은 책인듯 한데 생각인 나지 않아 그냥 그녀의 생각을 읽어 나갔다.아무생각없이 타인의 리뷰를 읽는다는 것은 객관적인 입장이 될 수가 있어 오히려 더 편하게 읽을 수 있다.그리고 작년에 다시 읽어보려 생각했던 <마담 보바리> 는 그녀의 생생한 리뷰로 대신하며 꼭 올해가 가기전에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만들어 주었다. 자신의 남편에게서 사랑을 얻지 못하던 여인이 다른 남자에게서도 자신의 욕정을 채울 수가 없어 끝내는 자살로 그 끝을 맺는 비극적인 이야기,무엇이든 욕심의 끝은 '죽음' 인듯 하다. 죽어야 비로소 끝나는 욕심, 그런 욕심의 끈을 잘라 내는 한해로 살아야하지 않을까 하며 읽었다. 그녀는 <플로베르의 앵무새>란 작품과 함께 이 작품을 파헤져나간다. 그녀의 생각을 따라가며 읽는 것 또한 재미다.다른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고 이런면에서 보면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역시나 비슷하거나 그와 결부된 다른 작품에 대한 방대한 독서가 있어야 좀더 작품속을 재밋게 유희할 수 있음을 느낀다. 

한때 중학시절과 이십대엔 도스토예프스키에 빠졌던 시간이 있었다. 러시아문학에 빠졌다고도 볼 수 있는데 그때 만났던 작품들이 지금도 내 책방 한 켠을 장식하고 있고 언젠가 다시 읽어봐야지 했는데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이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보니 기억이 안난다. 다시 읽어야겠다.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니 이게 이런 작품이었구나 하면서 이번에 읽는다면 더 재밌게 작품의 행간을 읽을 수 있을것만 같다. 그렇다면 내가 어린시절에 읽었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어떤 작품이었을까. 생각되면서 한번 읽고 그만두는것이 오랜시간이 지나면 다시 읽고 싶어지는 것이 '고전'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그때는 이해가 가지 않기도 하고 '이게 뭐야.고전이라더니 별거 아니잖아.' 하던 작품이 시간이 지나고 나니 '아하..'하면서 뭔가 알듯 말듯 한 그 느낌속에 세월과 함께 뭔가 작품을 이해하는 나의 폭도 넓어졌구나 하는 생각을 가져보고 싶다. 

이 책에서 제일 반가웠던 부분은 조지 오웰의 <1984>일 것이다. 이 작품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와 비교를 해 놓았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1Q84>를 모두 읽은 것도 아니고 겨우 1권만 읽었지만 최근에 읽은 책이기에 다른 책들에 대한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으니 더 재밌고 이해를 하기에 빨랐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1984>를 너무 오래전에 읽어서일까 내용이 가물가물한 상태에서 그런가 하면서 읽었는데 하루키의 소설과 비교해 놓으니 하루키의 소설 또한 이해가 빨리된다. 두 권 남은 그의 소설을 빨리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작년에 읽으려다만 <거미여인의 키스> 또한 재밌게 읽었다. 작가의 작품중에 내가 보고 싶었는데 보지 못한 영화 <해피 투게더>가 있다고 하니 더욱 관심을 기울이며 보았다. 해피 투게더>란 영화는 동성연애에 대한 영화인데 그 배경에 대한 이야기를 어떤 책에서 읽었기 때문에 무척이나 보고 싶은 영화고 꼽고 있었다. 그런데 아직 접하지 않은 영화와 다른 작품인 <거미여인의 키스> 또한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라 언제 기회가 되면 빨리 읽고 싶고 보고 싶은 영화로 기억해 놓는다.

<설국>이란 작품은 몇 해 전에 다시 읽어 보았는데 그 느낌이 새록새록이다. 그것이 만약에 애니메이션으로 나온다면 정말 이쁜 작품이 될 것이다. '설국은 쓸쓸함과 허무를 가장 매혹적이고 우아하게 표현한 소설로 문학사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와 같은 생각을 안가지고 읽는다면 이런 행간을 읽을 수 있을까. 별 재미없다고 느끼는 이도 있을 것이다. 어느 작품이나 작가와 같은 생각을 가지며 읽는 것은 아니다. 그녀가 풀이해 놓아서인지 <주홍글씨> 또한 다시 읽어보고 싶은 생각을 가졌지만 다시읽는다고 이 책에서 읽은 내용이 기억하거나 그렇게 생각하며 읽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처음 접할때와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작품을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 책에 소개된 작품들은 내가 다시 읽어보려 생각했거나 읽어야지 하면서 미루고 있었던 작품들이 대부분이라 모두 재밌고 관심을 가지며 읽게 되었다. '그래서 세계는 두 번 진행된다. 한 번은 우리가 그것을 보이는 그대로 보는 순간, 두 번째는 그것이 존재하는 그대로 전설로 새겨지는 순간' 을 느껴보며 고전을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그냥 보이는 그대로 읽기 보다는 숨겨진 행간을 읽는 눈을 가지게 만들어 준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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