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목 박완서 소설전집 10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02년 7월
평점 :
품절


이작품을 좀더 일찍 만났더라면 어떠했을까 하는 후회를 하게 되었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읽으면서 헌책으로 구매를 해 놓은 십여권이 넘는 작품을 언제 기회를 내서 한꺼번에 읽겠다는 계획만 가지고 있기를 몇 해, 그러다 작가님을 먼저 보내고 이 작품을 대한 것이 왜 이렇게 죄스러운지. 박완서 작가를 내가 처음 작품으로 접한 것은 아이들의 <자전거 도둑> 이었고 그리곤 좀더 작가를 알고 싶어 에세이집인 <호미>를 읽게 되었는데 친정엄마와 같은 푸근하면서도 시골스러운, 늘상 만나던 이웃집 할머니처럼 왜 그렇게 감겨 오는지 그 후로 나오는 작품들은 미리미리 구매를 하여 읽게 되었는데 자신의 삶을 숨김없이 써 내려가는 노작가의 끝없는 현역으로의 필력이 좋아서 롤모델로 삼고 싶었다. 자신의 화단을 가꾸듯 글밭 또한 늘 열심히 호미질을 하고 꽃을 심고 잡초를 뽑는 노작가의 힘은 그렇게 내겐 큰 기쁨이었는데 작년 연말 친정아버지를 암으로 보냈기에 그 아픔을 너무도 잘 아는데 작가마져 암으로 가셨다니 더없이 가슴이 쓰리고 아팠다. 그래서 얼른 더 늦기전에 잡게 된 작품이 첫장편소설인 이 작품이다.

한국전쟁의 아픔을 가지고 있는 작가의 삶이 고스란히 작품에 담겨 있어 더 실감나게 그시대를 들여다볼 수 있었던 작품이며 옥희도라는 환쟁이로 나오는 이가 故 박수근 화백을 모델로 삼았기에 그시대의 화가들의 궁핍한 삶 또한 함께 들여다 볼 수 있다. 어디 전후의 시대라 넉넉한 것이 있으랴마는 한국전쟁으로 두 아들을 잃은, 그것도 딸때문에 참담하게 잃었다고 생각하는 엄마와 반은 쓰러진 고가에서 살아가야 하는 비참한 삶을 이십대의 시선으로 복잡하면서도 잘 그려내서 참으로 오랜만에 소설을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경아라 불리는 그녀는 대학에 떨어지고 한국전쟁 전 해에 아버지를 잃었다. 자신과 너무도 잘 통했던 아버지를 잃고 나니 자신의 반쪽을 잃은 듯 하였는데 그 다음해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도강을 하려던 오빠 둘이 끝내 도강을 하지 않고 집으로 왔기에 그들을 숨겨야만 했다. 그런데 그들에게 뜻하지 않게 큰집의 큰아버지와 진이오빠가 오게 되고 오빠들이 그동안 숨어 지내던 곳을 큰집식구들에게 내어주고 오빠둘은 다른 곳에 숨어야만 했다. 그때 마침 경아가 생각해낸 곳이 행랑채, 그곳은 너무도 오랜동안 사용하지 않아서 남의 눈에 잘 띄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어머니도 그녀의 뜻에 동의 하여 깨끗하게 청소를 하고는 그곳에 오빠둘을 피신시켰다. 그런데 그날밤에 그 행랑채가 폭격을 당한 것이다. 아뿔싸, 어머니가 깨끗하게 다림질 하여 오빠들을 위하여 깔아준 하얀 홑이불위에 낭자한 오빠들의 붉은 피와 조각조각 흩어진 그들의 육신, 그 후로 어머니와 경아는 심하게 앓게 되고 어머니는 젊음을 유지하듯 끼던 의치마져 빼놓고 생활하게 되어 십여년 아니 이십여년은 더 늙어보이게 되었고 경아하고는 먼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처럼 손한번 제대로 잡아보지 못하고 눈빛 한 번 제대로 마주하지 않고 남남처럼 살아각데 된다. 오빠들이 폭격을 당하여 죽게 된 반쯤 허물어진 행랑채를 그래도 둔 채 고가는 그야말로 흉가처럼 그들에게 전쟁의 상흔 그대로 그녀들과 함께 하나가 되어갔다.

큰집의 도움도 마다하고 경아가 서울명동의 PX 초상화부에서 일하며 번 돈으로 근근히 생활을 하게 되고 그녀는 그곳에서 전쟁으로 인해 상처를 입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며 자신의 상처도 치유하지 못하면서 그들과 함께 하루살이와 같은 삶을 살아가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어머니로부터 멀어져 가는 듯한 공허함을 채우지 못하던 때에 옥희도라는 일명 환쟁이가 초상화부에 들어오게 된다. 그는 다른 환쟁이들과는 다른 무언가 다른 아우라가 있다. 경아는 그에게서 때론 아버지 같은 때론 오빠들 같은 그런 그늘을 발견하고는 그를 사랑한다고 믿게 되고 그와 자주 어울리게 된다. 함께 자주 찾아가는 장난감 가게의 위스키를 마시는 침판지를 보면서 자신들 삶 또한 그와 진배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어느날, 옥희도씨는 감기몸살로 일을 나올수가 없게 되고 그녀는 그를 좋아하고 치근대는 직장의 전장 태수를 보채어 그의 집주소를 알아내고는 함께 그를 찾아간다. 그곳에 본 모딜리아니를 닮은 부인과 그의 올망졸망한 다섯 아이들, 그녀는 그의 삶에서 자신이 누려보지 못한 무언가를 보게 되고 그를 더욱 사랑한다고 느끼게 된다. 하지만 옥희도를 향한 그녀의 사랑이 진실이었을까. 옥희도를 그녀를 품어 주는 것이 진짜 사랑이었을까. 가난을 벗어나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초상화를 그리게 된 옥희도는 어느날 그녀에게 '나도 경아도 침판지가 돼 가는 느낌이 들지 않겠어?' 라고 하더니만 '사람이고 싶어, 내가 사람이라는 확인을 하고 싶어.' ' 내가 아직도 화가인가 알고 싶어.' 라 말하고는 얼마간 그림을 그리겠다며 일을 하러 나오지 않겠다고 한다. 그동안 그녀와 함께 보았던 누군가 태엽을 감아 놓으면 태엽의 힘만큼 위스키를 따라 마시다가 그 힘이 약해지면 서서히 행동이 둔해지던 침판지, 지금까지 그들은 돈의 노예처럼 누군가의 줄에 의해서 타의에 의해서 살 수 밖에 없었던 전쟁후의 가난, 그곳에서 자신을 잃었던 옥희도는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고 싶어 한다. 그리곤 경아에게 자신이 그녀를 품어 준것은 사랑해서가 아닌 아버지로 오빠로서의 그늘을 드리워 주었다고 하며 그녀가 태수와 잘되길 바란다, 

'이 드넓은 고가에 단 둘만이 살면서 우리는 애정이라든가 의무로 묶여 있지는 않았다. 차라리 우리는 다 같이 고가에 망령에 들려 있음이 분명했다. 나도 결국 누구 때문도 아닌 채 이곳을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다.' 어머니와 함께 고가의 망령처럼 살아가던 그녀들에게 어느날 찾아온 큰집의 진이오빠는 말했다. ' 너의 어머니는 이미 이 고가의 일부야. 그것이 그분의 가장 편한 처신이람녀 우린들 어쩌겠니? 그렇지만 너까지 이 고가의 일부이기에는 너는 너무 젊고 발랄하다. 그러니 어머니에 대한 의무에 너를 얽매지 말란 말이다.' 오빠 둘을 삼킨 전쟁과 고가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살기를 바라는 큰집 오빠의 말도 그렇고 다른 이들의 조언도 있었지만 그녀 또한 점점 어머니와 함께 고가의 일부가 되어 가는 것처럼 그곳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그러던 어느날, 무심한 어머니에게 반항을 하듯 그녀는 옥희도씨의 집으로 향하고 모딜리아니를 닮은 부인에게 하루밤 재워달라고 한다. 그곳에서 옹기종기 모여자는 가족을 보며 자신이 누리지 못하고 있는 그 무언가를 이들은 가난해도 모두다 누리고 있는 듯하여 쓸쓸함에 깨었어도 일어나지 못하고 뒤척이다 늦잠에서 깨어난 그녀에게 옥희도의 부인은 어머니를 꼭 찾아뵙고 출근하라고 한다. 보기 흉하다며 의치를 끼라고 해도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늘 김칫국에 의치를 뺀 흉한 모습으로 자신을 대하던 어머니가 자신이 하룻밤 외박을 한 사이 심하게 앓고 있다. 거짓말처럼. 어머니의 폐렴이 자신탓인양 전전긍긍하다 약국을 찾고 병원을 찾아 보지만 어머니는 위독한 상태이고 끝내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돌아가시고 만다. 그 순간에 태수의 형수가 결혼승낙을 받으러 왔다가 그녀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되고는 모든 일을 도맡아서 하게 되고 그녀는 자신의 의지하고는 상관없듯이 그와 결혼을 하게 된다. 

그리곤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창밖의 은행나무를 보고 있다가 오래전 옥희도씨의 집을 찾았다가 보게된 그의 그림속 '나목' 과 나목 주위에 그려진 여인들을 떠올리고는 나는 또한 내가 그 나목 곁을 잠깐 스쳐간 여인이었을 뿐임을, 부질없이 피곤한 심신을 달랠 녹음을 기대하며 그 옆을 서성댄 철없는 여인이었을 뿐임을 깨닫는다.옥희도씨는 그녀에겐 은행나무와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전쟁전 아버지의 죽음과 전쟁이 빼앗아간 오빠 둘과 죽은것과 마찬가지의 삶을 살아왔던 어머니와 아버지가 남긴 흉가와 같은 고가의 그 모든 역사를 간직하고 모듬어 주었던 살아있는 화석과 같은 든든한 그늘이었던 은행나무와 같은 옥희도씨, 그가 죽은후에 생전에도 열지 못했던 전시회가 열린다는 광고를 보고는 그녀는 그곳에서 달려가고자 한다. 과거의 상흔처럼 어머니와 경아의 사이를 갈라 놓았던 고가마져 자신의 손이 아닌 타인인 태수에 의해 허물고 반듯한 양옥으로 새로운 집을 건설하였듯이 이제 그녀는 옥희도의 그늘도 아닌 그녀만의 뿌리로 꿋꿋하게 서는 나무게 되어야 한다. 오빠 둘이 폭격에 의해 죽고 난 후 어머니가 그녀에게 마음의 문을 닫았듯이 세상과 결별하며 살았던 세월동안 아무 그늘없이 혼자 흔들려야 했던 경아, 어머니의 죽음은 그녀가 과거와 결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녀가 흔들리는 시간을 함께 곁에서 아픔을 함께 나누고 아버지의 그늘처럼 그녀를 품어 주었던 옥희도의 나목은 지금은 잎이 모두 떨어져 헐벗었지만 꿈을 간직한 채 희망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본 공허함이 나니 희망을 간직한, 초록의 잎들이 무성하게 달릴 그 푸르른 여름날을 꿈꾸며 나목은 그의 화폭에 담겨졌을지도 모르고 전후의 가난과 상처가 영원할 수는 없다. 무엇이든 세월이 가면 변하게 되고 아픔의 상처 또한 흐려지게 된다. 

소설속에는 이런부분이 나온다. ' 나는 고치를 벗고 훨훨 날개를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날개를. 나를 꼼짝 못 하게 가둔 두터운 고치로부터 자유로와질 수 있는 날개를 갖는 것이다. 날개를. 이윽고 나는 실제로 날개를 가진 듯이 공중으로 둥실 떠올랐다. 내 비상을 막는 아무런 저항도 없었다. 나는 완전히 체중을 잃었다.' 옥희도의 집을 찾았던 그녀가 고치를 벗어나 날개를 갖게 되고 나비가 되는 듯한 과정을 그린 이 구절은 다른 작품인 <환각의 나비>에서 비슷한 부분이 나오는 듯 하다. 이 부분을 좀더 세밀하게 단편으로 그려냈는지도 모른다. 기억상실증에 걸렸지만 절집에서 보살일을 하면서 있는 자신의 어머니에게서 이런 고치를 벗어나 날개를 얻고는 훨훨 나는 나비를 보게 되는 소설인데 작가의 작품에서는 모성, 여인의 삶이 점점 주를 잡아간다. 이 작품 속에서도 반쪽을 잃어버린듯이 살아가는 의치를 뺀 경아의 어머니가 나오는가 하면 새로운 삶을 모색하는 이십대 젊운 여인인 자신이 나오고 옥희도씨의 부인 같은 경우에는 외모는 모딜리아니의 그림속 모습같지만 가난으로 그녀의 모습을 잃었다. 전쟁은 그렇게 자신의 모습을 앗아가기도 하고 흐려놓기도 하지만 '모성본능' 만은 어쩌지 못한다. 경아의 어머니가 갑자기 급성폐렴으로 돌아가시게 된 것도 그녀에게 무심한 듯 했지만 그녀가 외박을 하고 집을 비운 날 어머니는 집밖에서 그녀를 한없이 기다렸을 것이다.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버지와 오빠를 잃어 의지하려던 자신의 그늘과 같은 남자의 그늘보다는 어쩌면 가난이나 전쟁의 상흔등 모든것을 품어 준것은 '어머니의 품' 이었다. 손톱은 새빨간 메니큐어를 칠하고 날마다 새로운 옷으로 자신을 치장하며 검거나 하얗거나 가리지 않고 남자라면 사족을 못쓰던 다이아나 김마져 두 아들의 든든한 어머니였던 것이다. 그 아이들을 위하여 그녀는 단단한 그늘이 되기 위하여 어쩌면 자신을 날마다 치장했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옥희도의 아내라고 떨어지는 여인이 절대 아니다. 가난하지만 화가인 남편에게는 가난을 느끼지 못하고 그림에 열중할 수 있도록 늘 배려하며 아이들을 키웠다. 그 또한 어머니의 힘이기 품이었다. 그렇게 경아 또한 자신을 품어주지 못한 어머니를 미워하듯 했지만 그녀 또한 어쩔 수 없는 아이들의 어머니로 거듭나 이젠 뒤안길에서 그 모두를 아우르는 여인이 되었다. 한국전쟁이후 그 어려운 터널을 꿋꿋이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강인한 어머니들의 힘이었는지 모른다. 환쟁이 옥희도씨의 '나목' 에 그려진 여인들처럼 아이를 업거나 물건을 이고 있는 여인들이 있었기에 그 시대를 큰 아픔이지만 무사히 이겨내며 오늘날을 만들어오지 않았을까. 언제 기회가 되면 한번 더 읽고 싶은 소설이다. 이 소설을 계기로 읽지 못한 작가의 작품들을 읽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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