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을 위로해줘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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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이란 자신이 서 있는 시간과 공간을 자각하는 거야.’
열일곱살의 연우, 아빠의 기억은 낯설고 소년에게는 보호를 해줘야 할 것만 같은 옷칼럼니스트인 엄마와 둘이서 자유롭게 사는 그들.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 좀더 나은곳이라 해야하나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만난 새로운 삶과 인연들, 그리고 아픈만큼 성숙해지기 위한 자아 성장을 위한 시간을 보내게 되는 소년의 이야기는 연우의 나이와 엄마의 나이가 현재 나와 우리 아이들의 나이와 같아서일까 더 가슴으로 느껴지는 이야기들 이었다. 한참 공부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세상 부조리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음악’ 이라는 비상구를 찾는 아이들, 그들이 십대 소년들이다. 자신들에게 잘 맞고 어울리고 자신들을 표현한 노래라고 여겨지는 힙합에 심취하여 혹은 그외 다른 음악에 심취하여 현재의 스트레스를 푸는 아이들, 하지만 그들과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부모세대들에겐 공부와 음악을 병행한다는 것을 받아 들이질 못한다. 아니 음악에 빠져 사는 아이들을 이해를 해주려 하지 않는다. 그 시간에 공부에 더 매진할 수 있도록 ’잔소리’ 를 해보지만 안된다. 물론 나 또한 아이들과 늘 부딫히는 문제도 그것이다. 공부를 하는 중에는 음악을 좀더 멀리하라고, 하지만 지금 세대의 아이들에겐 그것이 안된다. 음악과 함께 자란것처럼 음악에 빠지기도 하고 그속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찾는 아이들도 있다.

성장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전학을 가는 학교에서 처음으로 마주친 아이 태수와 그를 통해서 알게되는 노래와 ’G 그리핀’ 그리고 그의 방에 그려진 알 수 없는 그림의 정체로 부터 소년은 성장을 시작한다. 연우에겐 아버지의 기억보다 엄마의 연인인 연하의 남자 재욱형의 기억이 그리고 함께 하는 시간이 더 자연스럽고 가족같다. 가끔 그들의 술자리에 끼어 가족처럼 혹은 형제처럼 하나가 되는 이상한 관계, 하지만 엄마와 재욱형의 관계는 늘 모호하다. 연결이 되는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현재형’ 인 관계에서 그는 어른들의 세계를 습득한다. 그리고 그의 앞에 나타난 ’큐티 걸’ 인 채영, 그녀는 자신을 향하고 있는 것일까, 아님 자신의 방 전주인인 선배형을 향하고 있는 것일까. 태수와의 만남에서 연우는 자신이 알지 못하던 ’다른 세계’ 를 경험하고 채영을 만나면서 ’첫사랑’ 같은 사랑의 감정에 눈을 트게 된다. 엄마와 재욱형의 관계를 보아오던 그에게도 한 곳을 향할 상대가 생긴 것이다.

엄마는 늘 연우의 보호본능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 늦은 밤, 식탁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엄마와 내 방 거울 앞에서 서 있는 나,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해도 서로의 고독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 모두가 그런 것일까.’ 늘 고독하게 혼자 술을 마시거나 술에 취해 있을때 술상대로 그를 불러내기도 하는 엄마를 보면서 옆에서 부축을 해주거나 보호를 해줄 수는 있지만 엄마의 고독을 함께 나누지 못하는 연우, 그는 그 속에서 어른들의 고독에 대하여 느끼게 된다. 하지만 세상은 혼자의 힘으로 버티고 일어나야 하는 곳이란것을 엄마를 보면서 알아가고 엄마의 ’성’ 안으로 들어가 보려 하지만 엄마라는, 어른의 울타리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 것 같다. ’ 우리는 둘러싼 세계는 너무나 모호해서 성 안으로 들어가는 길을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그러니 세계에 대해서는 결국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거지.어떻게 궁금증 같은 게 풀려? 신민아씨, 대체 카프카를 어떻게 읽은 거야.’ 카프카 하나면 모든 것이 해결되듯 하는 소녀 채영과는 다르게 어른이라는 세계는 뭔가 다른 성이 있는 듯 하다. 소년은 그 세계를 습득해 가는 것이다. 소녀 채영과 태수 그리고 그의 여동생 마리를 통하여.

 ’그리운 거 손톱 사이에 낀 놀이터 모래알들. 그리운 거 미소짓게 하던 어린 시절의 잃어버린 기억들 아침햇빛.’ 처럼 시간은 순간 자신의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는 모래알들처럼 모두 사라지고 어린시절 기억 또한 사라져 버렸기에 그리워지는 것이다. 하지만 아픔이 있다면 그 기억은 사라질까? 또한 세상이 자신이 원하던 방향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픔만큼 그만큼 성숙해지는 것이다.그리고 자신이 원하던 밑그림으로 그림이 그려지지 않기에 ’추억’ 은 더욱 소중한 것이다. 자신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게 해 주었던 태우, 하지만 그에게도 그만이 그리는 세상이 있다. ’마리의 말도 떠올랐다. 오빠는, 안 그러고 싶은데도 꼭 무슨 일엔가 희말리게 돼.’ 자신이 원하지 않지만 타인의 일에 휘말리어 인생이 꼬이게 되는 태수, 그런 연우는 첫사랑 채영을 오롯이 가슴에 담는다. 채영 또한 연우의 방에 살던 선배 대신이 아닌 ’연우’ 로서 그를 좋아하는것처럼 연우에게 다가온다. 그 사이에서 마음의 상처를 입는 ’독고마리’ 는 아프지만 늘 씩씩하다. 그들의 사랑 사이에 끼고 싶어하지 않는다. 하지만 태수는 채영과 연우의 사이가 궁금하다. 한참 그럴 나이다. 사랑에 눈 뜨고 사랑이라는 열병에 가슴앓이를 하고, 그러다 그 사랑이 자신에게 향하는 것이 아닌 자신은 겉껍데기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연우, 그렇다면 채영은 아직도 선배와의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일까.

어른들과의 관계와는 다른 사춘기 소년 소녀의 관계는 그렇게 채영이 늘 뒤집어 쓰는 후드에 가려진것처럼 반쪽이 가려져 있다. 반쪽의 숨은 마음을 확인하고 싶은 연우에게 모든 자신의 마음을 다 보여주지 않는 채영을 보면서 태우는 그들의 사랑에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었다. 채영이 연우를 좋아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어 무면허로 운전을 하게 되고 갑작스런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떠나게 된다. 하지만 연우와 채영은 태우의 죽음으로 인해, 아니 아픈 그들만의 시간을 이겨내고 ’성장’ 을 한다. ’청소년들이 사고치는 것, 그건 세상에 자신들이 컨트롤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는 무력감을 이겨내고 오버하는 거야.’ 그렇다면 태우의 죽음은 세상을 컨트롤 할 수 없는 오버였을까. 그의 죽음이후 비로소 선명하게 들어나는 세상, 세상은 스스로의 힘으로 혼자 이겨내고 살아가고 견디어 내는 것이다. 조력자가 있다고 해도 자신의 힘으로 견디어 내는 것이지 누군가에게 기대어 서서 세상을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늘 씩씩하게 혼자의 힘으로 ’엄마와 아들 연우’ 라는 공동체를 확고하게 지켜나가는 엄마에게서 소년은 은연중에 더 깊이 세상을 알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모든 것을 가졌다고 생각되는 채영의 부모님들 혹은 태우의 부모님들, 하지만 그들은 다 가진듯 하지만 늘 한쪽이 비어 있다. 완전하지 못한 장애를 가진 어른들처럼 자신들의 불완전을 자식에게 강요하듯 자신들이 습득한 것을 혹은 이루지 못한 세상을 종용하지만 연우의 엄마는 개방적이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방목을 하면서도 책임감을 늘 잃지 않게,엄마를 보호해야 하고 아빠 없이도 스스로 견디어 내게 강하게 만든다. 그리고 사랑도 죽음도 혼자 이겨내야 하는 세상의 편린이다.

’고등학생 래퍼 G-그리핀, 그가 떠난 둥지에 깃들어서 그가 두고 간 날개를 대신 완성해가고 있는 것, 그게 나였다. 날개에 그리핀이란 이름은 내가 붙여준 걸로 알았지, 그가 노래를 만들었던 방에서 나는 그 노래를 들었다. 그의 창밖에 서 있던 채영이 그에게 보낸 엽서를 대신 받았고 그리고 그와 비슷한 목소리로 마음속 이야기를 모조리 털어놓았던 거지. 내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고, 하지만 어디에도 나는 없었다. 모두 다 그의 그림자였다.’ 자신만의 세계를 산 것이 아니라 채영을 만나고 그를 좋아한다고 그녀가 나를 좋아한다고 생가한 것들이 모두 마리오네트처럼 남의 삶을 껍데기를 뒤집어 쓰고 살듯 살아 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자아발견’ ’자아형성’ 이 되어가는 연우, 이제 스스로 자신만의 성을 구축해 나가려 노력하는 그리핀이 되려 한다. 태우의 죽음과 어른들의 계산적인 사랑을 보면서 그리고 껍데기 뿐인 사랑앓이를 하는 하는 동안 ’시간과 겨루기’ 한 판을 멋지게 끝내고 자신만의 ’시간과 세계’ 를 찾게 되는 연우의 가슴 아픈 성장기는 그들이 고치를 벗아나 아름다운 나비로 탈바꿈하여 다시 만나게 되어서일까 가슴 아프지만 무지개를 보듯 잔잔한 설레임을 간직하게 만든다. 누구에게나 ’사춘기의 질풍노도’ 이 시간은 있다. 그 시간의 터널을 지혜롭게 빠져 나오나면 밝은 세상을 보게 되겠지만 그 터널을 벗어나지 못한 태수처럼 터널안에 갇히게 된다면, 그래서 더욱 소년들을 위로해 주고 싶었을까, 아님 또래의 아이가 있어 그들의 세계를 조금은 공감하기에 나 또한 그 시간을 그렇게 지나왔기에 소년들에게 힘을 보내주고 싶었던 것일까 읽는 동안 태수만은 지키고 싶었고 연우와 채영은 아픔이 있었지만 아름답게 지켜주고 싶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위로’ 를 받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나 자신은 지난 해에 아버지를 잃었기에 그 아픔을 위로 받고 싶고 다른 사람들은 취업이 되지 않아 혹은 정년을 늘려 달라고 혹은 용돈이 적어서 남보다 더 가진 것이 없다고, 위로의 이유도 가지가지 일것이다. 우린 누군가에게 모두 위로를 받고 싶다. 하지만 남의 그림자는 잘 보이지 않는 법이다. 내 그림자에 가려져. 연우과 같은 아픈 시기를 이겨 내고 지금에 이르렀듯이 또 그렇게 살아갈 일이다. 그렇게 살아갈지어다. 왠지 읽으며 스스로 위로를 받았거나 스스로를 위로해줘야 할 것만 같은, ’소년을 위로해줘’ 잔잔하게 퍼지는 호수의 파문처럼 연우의 힘찬 달리기가 희망을 향한 발걸음이라 마음이 놓인다. 그리고 다시금 그 시절로 돌아가 그시절 위로해주지 못한 나 자신을 위로하고 돌아오듯 현실이 희망으로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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