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박물관 1 민음사 모던 클래식 27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케말, 그를 눈 멀게 한 18살의 퓌순
오르한 파묵의 소설들을 읽다보면 무척이나 섬세하고 세세하다. 전작 <내 이름은 빨강>을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세밀화를 보듯 그가 '언어' 로 그려내는 세세함은 어찌보면 지루하기도 하지만 한번 그의 맛에 빠져 들면 헤어나올 수 없는 '깊은 맛' 을 전해 주기도 한다. 1975년, 부와 명예 어느것 하나 부족하지 않은 터키의 상류층에 속하는 케말에게는 정말 잘 어울리는 짝인 '시벨' 이 있다. 그들은 곧 있을 약혼식을 앞두고 모두의 관심을 받고 있는 정말 남들이 부러워하는 환상의 커플이다. 어느날 시벨이 어느 부티끄 앞을 지나다 걸려 있는 가방을 보고 이쁘다고 한다. 케말은 그 가방을 사서 약혼녀에게 줄 생각을 하며 그 가방을 기억해 두었다가 그녀와 헤어진 후 그곳에 가게 되고 상점에서 뜻하지 않게 외가쪽 친척뻘인 갖 18세 생일이 지났고 미인대회에도 나갔을 정도로 아름다운 '퓌순' 을 만난다. 첫 눈에 케말을 사랑에 눈 멀게 한 그녀 퓌순, 그들은 남들의 눈을 피해 어머니가 사 놓고 돌보지 않는 멜하메트의 아파트에서 퓌순의 수학공부를 봐준다며 꿈 같은 44일간의 사랑을 나눈다. 

약혼식 날, 모두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그들은 성대한 약혼식을 하지만 케말은 온통 퓌순만 찾고 퓌순에게 집중되어 있다. 그의 고민을 친구에게 털어 놓으며 벗어나려 했지만 그 또한 여의치 못하고 시벨과 점점 거리가 생기게 되고 아버지 또한 결혼과는 다른 사랑을 나누었던 여인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부자지간에 비밀을 나누게 되지만 그도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게 되리라곤 생각을 못했다. 시벨과 약혼식 이후에 관계가 발전되어 잘 되리라 생각했던 케말. 하지만 약혼식 이후 퓌순의 행방이 묘연해지면서 그는 퓌순과 함께 했던 그 모든 '추억' 이 담긴 것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녀가 머물렀던 흔적이 담긴 것들을 모으고 그녀의 체취를 맡으며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 한다. 그런 그를 뒤에서 수근거리지만 약혼녀를 그를 기다릴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하지만 케말의 병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점점 더 깊어지기만 한다. 

퓌순이라는 커다란 사랑의 그림자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점점 깊은 늪에 빠져 들 듯 헤어나오지 못하는 케말,시벨과 해안별장에서 동거를 하며 지내 보아도 정신병원에 치료를 다녀도 병은 차도를 보이지 않자 시벨은 파리로 떠나고 그들의 관계는 소원해진다.친구들을 통해 겨우 소식을 전해 듣던 그들은 시벨이 친구를 통해 약혼반지를 전해줌으로서 사실상 파혼에 들어가고 그는 퓌순을 찾는 것에 열정을 쏟는다. 그녀와 미인대회에 함께 참가를 했던 친구를 통해 편지를 보내가 어느날, 퓌순에게서 온 짧막한 편지를 발견하고 부푼 마음에 그녀가 잃어버렸던 '귀걸이 한 쪽' 과 어린시절 추억이 있는 '자전거' 를 들고 그들이 이사를 해 간 가난한 동네로 그들을 찾아 가지만 그녀는 어린 시나리오 작가와 결혼한 상태, 자신을 가누지 못하고 그녀와 스치는 그 한순간 마쳐 행복으로 여기며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퓌순의 남편이 계획하는 그녀를 여주인공으로 내세울 터키영화제작에 참여를 하겠다며 함께 영화를 보러 다니는 케말, 그에겐 온통 먼 미래의 생각만 늘 가득하다.

'이 담뱃갑, 진열장에서 꺼내 침실로 가져왔던 퀴타흐야산 재떨이, 찻잔과 유리컵, 퓌순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손에 들고 신경질적으로 만지작거리곤 했던 조개껍질, 당시 그 방의 무겁고, 지치고 답답한 분위기를 떠올릴 수 있도록, 그리고 퓌순의 아이같은 머리핀을, 이 이야기를 어떤 아이가 경험했다는 것을 잊지 않도록 진열한다.'
'이 이스탄불 힐튼 호텔 엽서는, 내가 지금 서술하고 있는 시절에서 이십 년 정도 지난 후, 순수 박물관을 만들기 위해 이스탄불의 유명한 수집가들을 찾아다니고. 이스탄불과 유럽의 벼룩시장을 돌아다닐 때 손에 넣었다.'

퓌순이 떠난 후, ' 이제 퓌순은 오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받아 들인 후 겪었던 고통이 날이 갈수록 사그라들자, 그녀의 부재에 서서히 익숙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절대, 전혀 사실이 아니었다. 나는 단지 물건들이 주는 행복으로 시간을 때우고 있었던 것이다.' '퓌순 없이 보낸 날들에 했던 모든 것은 속되고 평범하고 무의미하다는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며, 이 조잡함의 원인이 된 모든 사물과 사람에게 분노를 느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집에 들어가 어머니와 함께 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그의 퓌순을 찾는 방황은 끝나지 않고 이어져 그녀를 찾긴 찾았지만 이제 영원히 그의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사랑이 되었으니 그가 행복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은 언제인가?' 라는 물음을 던져주는 케말의 '순수 박물관' 은 케말조차 '사실 그 누구도,경험하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는 자신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라고 하고 그 사랑으로 인해 '특별한 우울증' 을 앓고 '사랑 때문에, 질투 때문에, 그게 무엇이든지 간에 이제 모든 일에 대해 제대로 평가를 내리지 못한다는 것을 느꼈다.' 점점 모든 일에 자신을 잃어가는 케말, 아버지가 날이 갈수록 삶을 포기하는 것 같고 시벨의 어머니는 강박적으로 오래된 옷과 무건을 보관하고 있고 케말의 어머니는 반대로 오래된 물건은 모두 다른 집으로 유배를 보내는 것을 보며 나이들어가면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것을 놓치며 사는 것은 아닌가 생각을 하는 그, 그가 꿈 꾸는 '순수 박물관' 에 놓여질 퓌순과의 사랑과 추억이 어린 물건들을 수집하는 그는 혹은 이상스럽게도 비취기도 한다. 정신분열증, 혹은 강박증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하지만 '순수한 사랑을 간직하고 싶은 남자' 로 생각을 달리하면 정말 지고지순한 '순애보' 적인 케말이다.

'꿈속에서 해바라기 밭에 있었어. 해바라기들이 가변운 바람에 이상한 모양으로 물결쳤어. 어쩐지 아주 무서웠어. 소리치고 싶었는데 소리를 칠 수가 없었어.' 그녀의 꿈으로 인해 미래가 결코 밝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파묵은 소설에 이런 복선을 잘 깔아 놓는다. 케말의 약혼식 이후 퓌순이 그를 떠났던 일년여 시간 동안 케말의 방황은 아날로그적이면서 슬로모션으로 모든 것을 표현해 놓듯 세세하게 담겨져 있어 조금 지루함을 거치는가 싶다가 중반을 넘어서부터 태엽이 감기면 감길수록 탄탄함에 점점 힘들어지는 것처럼 소설은 스피드를 찾기 시작하고 시나리오 작가의 아내가 된 퓌순의 말처럼 '사실 인생은 영화처럼 단순하지 않아' 이 이야기가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미리 말해준다. 이 소설을 읽다가 문득 기형도의 '빈집' 이란 시의 싯귀를 생각했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사랑을 잃으면 무언가 행동을 하지 않으면 죽을것만 같은 그 공허함, 케말은 퓌순이 떠난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하여 아님 자신이 가장 행복하고 가장 순수한 사랑을 했던 그 여인의 모든 것을 간직하고 싶어 그들이 44일간 사랑을 나누었던 멜하메트의 어머니의 낡은 아파트를 보고는 박물관을 생각해 내지 않았을까. 어찌보면 사랑을 기억하고 추억을 기억한다는 것은 한사람에 국한된 것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한 영혼' 을 아는 모두가 함께 나눌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할 것이다. 

<내 이름은 빨강> 에서는 세말화가들을 통해 터키의 문화를 소개했다면 이 소설은 '케말의 사랑' 을 통해 터키의 상류층및 젊은이들이 누렸던 문화를 소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터키의 작가이며 이스탄불의 작가로 알려진 '오르한 파묵' 은 소설속의 작가 또한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써서 장난스럽기도 하고 좀더 독자에게 친밀감을 주기도 한다. 터키의 특색이 잘 들어난 그의 소설은 한번 읽으면 정말 빠져 나올 수 없는 늪같아 그의 다른 책인 <하얀 성> <검은 책> <이스탄불> <눈1,2> 권을 소장하고 있고 읽어보려 하지만 기회가 오질 않았는데 <순수 박물관> 으로 그의 첫사랑 이야기인듯 하면서도 아닌듯함을 교묘하게 꾸며 놓은 사랑 이야기의 매력에 한동안 빠질 듯 하다. 44일간 사랑을 했던 한 여인을 잊지 못해 평생을 그 사랑의 그늘에서 살아가는 남자가 있다면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만남과 헤어짐이 너무도 쉬운 요즘, 디지털적인 사랑에 경종을 울리듯 케말의 아닐로그적 사랑은 가슴 깊이 간직해 두었던 낡고 바랜 '첫사랑' 을 끄집어 내어 하루쯤 추억해 보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은 언제일까? 2권이 기다려지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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