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나나>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
-
새벽의 나나 - 2010 제18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박형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5월
평점 :
'레오는 아직 수쿰빗 소이 식스틴의 비밀을 공유할 수 없는 이방인이었다.' 아프리카로 가던 중에 들른 태국에서 만난 전생의 아내라고 생각되는 창녀 플로이, 그녀로 인해 레오의 여행계획은 여지없이 수정되고 말았다. '예닐곱 권의 두꺼운 여행 가이드북을 뒤적여가며 공들여 작성한 것이었다. 완벽한 것처럼 여겨졌던 그 일정에는 그러나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너무 철저하게 짠 나머지, 어느 한 부분이라도 잘못될 경우 모든 게 통째로 무너지고 마는 구조였던 것이다. 애초에 완벽한 여행 일정이란 존재할 수 없는 법이다.' 완벽한 여행 일정이 없듯이 급 수정된 여행 일정처럼 그의 삶 또한 변화시킨 나나, 그곳엔 창녀도 있고 그외 그녀들과 함께 하는 비루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서로의 '관계' 로 얽혀 삶을 살아 가고 있다.
오백년전 쯤에 자신의 아내였을것 같은 여자가 지금은 식스틴에서 창녀로 있다. 그녀가 쌀국수를 먹는 엿모습을 보고는 그녀의 전생을 본 듯 하여 그곳에 머무르게 되었지만 플로이는 레오에게 관심이 없다. 그들은 서로의 주변만 돌 뿐 서로에게 아무것도 아닌 관계로 몇 달을 살아간다. 레오가 왜 그곳에 머무르려 했을까?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는 창녀 플로이를 위해 닭튀김을 가져다 주려 하다가 계단에 있는 도마뱀 비슷한 것을 밟아야 하는 상황에서 동물과 대화를 하는 그, 그는 갓태어나 그 계단밖에 보지 못한 도마뱀을 죽일 수 없어 계단에서 구르고 만다. 그로인해 다리의 인대가 늘어나고 깁스를 하고 창녀들과 함께 그곳에서 오랜시간동안 머물면서 아프리카 여행을 꼭 하겠다고 다짐을 해 보지만 그의 주머니는 창녀들에 의해,아니 그가 전생의 아내였다고 생각하는 플로이에 의해 무참히 털리고 만다. 모든것을 다 잃고나서 불현듯 한국으로 돌아가리라 다짐하는 그,한국에서의 삶 또한 만만하지 않아 여섯명이 탄 버스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혼가 불구덩이 속에서 살아남고 그는 다시 나나로 향한다. 그를 기다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그가 젊은 시절 관계했던, 그의 방황하는 시절과 같은 나나의 창녀촌 생활에 다시 물들어간다.
'수쿰빗 노천 국숫집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레오는 플로이에게 끌렸다. 거기에는 그녀 자체가 가진 아름다움 외에도 낯선 외국인에 대한 호기심과 젊음의 낭만 어린 치기, 또 무리한 일정으로 고단한 행군을 하는 배낭여행자 특유의 외로움 같은 것이 한데 섞여 있었다.'
'타이는 자유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름처럼 태국에는 온갖 자유가 넘쳐난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술을 마실 자유,아무 곳에서나 담배를 피울 자유, 온통 벌거벗고 다닐 자유,부모님 말씀 안 듣고 까불 자유, 각종 마약을 할 자유, 그러다 체포되어 감옥에 갈 자유가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자유도 지금 당장의 이 순간을 허비할 자유보다 달콤하지는 않다.' 레오 그가 누린 자유가 '순간을 누린 달콤한 자유' 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왜 그렇게 창녀들과 어울려 살고만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가 점점 자신을 잃어가면서 나약해지고 의지박약해지는 모습에 플로이에게서 벗어났으면 하는 바램이 일기도 했지만 그 거리의 사람들처럼 '오늘 하루 만족' 하는 삶도 삶이고 자유이다. 서로 관계하면서 서로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질긴 인연처럼 살아가는 잡초같은 그들,그들에게도 새벽이 있다.
작가의 책은 처음인데 쉽지 않은 작가라 생각하던 것이 점점 그를 좀더 알고 싶다는 호기심으로 책을 읽게 되었다. 쉽게 접할 수 없는 거리와 창녀들의 삶은 그가 깊이 있게 파고든 노력의 흔적처럼 세세하다. 마르케스의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의 전작처럼 그들과의 비루한 삶이 세밀하여 그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첫 장편이라 하는데 앞으로 그의 행보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인듯 하다. 삶은 어디에서든 어떤 방식으로든 계속되는 것이고 '지금 사는 인생이 내 몫의 최선이라 믿고 싶어.' 라는 말이 가슴에 박히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