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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사진관
김정현 지음 / 은행나무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세월이 눈을 열어주기도 하지만, 두려움 없는 경건한 마음이면 눈을 감고 있어도 그 빛이 보인다네.'
정말 책을 읽는 동안 한순간도 마음이 편치 않았던 소설이다.실화소설, 그런사람이 정말 있을까 할 정도로 '용준' 에겐 오롯 '식물인간이 된 아버지' 밖에 없는 인생을 산 듯 하다. 하지만 현재도 그런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평생을 바치는 사람들도 있다. 가까이엔 내 이웃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 반대로 부모가 아닌 자식이긴 하지만 십여년이 넘는 세월을 팔팔하던 이십의 그 꽃같은 나이로 아들을 바라보고 있는 부부가 있다. 그들은 황우석박사의 줄기세포가 한참 난리를 피울때 얼마나 큰 희망을 가졌었는지 모른다. 한줄기 빛처럼 십여년이 넘는 세월동안 교통사고 이후 식물인간이 된 아들을 살릴 수 있는 길이 열렸다면서 정말 좋아하셨다. 다 큰 자식이 식물인간이고 그런 아들 때문에 아줌마는 한시간도 집을 비우지 못하니 살림은 뒷전이다. 온통 언젠간 깨어날지 모르는 아들을 위해 헌신을 하듯 모든 삶을 다 바치고 계시다. 여행한번 아니 하루의 반시간도 어디 마음 놓고 외출을 못하신다. 그런 아줌마의 가슴엔 알 수 없는 벽이 가로막고 있듯 가끔 만나면 달관한 자신이 삶을 토로하며 한숨 짓는다. 그런 아줌마가 안되셔서 환자를 보살피는 것을 내가 배워 가끔 아줌마의 시간을 내 드리겠다고 말을 하니 다른 사람들은 할 수 없는 일이라며 부부동반 여행도 가고 싶은데 평생 한번도 못가보셨다며 한숨을 지으셨다. 그래도 아저씨 아줌마는 늘 밝으시다. 긴 시간동안 환자는 욕창한번 걸리지 않고 버텨왔다며 자랑을 하셨다. 그분들에겐 이제 남은 삶은 그 아들이 전부가 된 것이다. 언젠가 희망이 함께 하길 바라며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내내 그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17년간 식물인간이 된 아버지를 위해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간병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또 그런 삶으로 인하여 자신은 '암' 이라는 치명적인 병이 갏아 먹고 있어도 그 또한 알지 못하고 고스란히 '죽음' 을 받아 들여야 했던 그사람, 용준아재가 내 가슴을 후려쳤다. 다른 무엇보다 제일 어려운 것이 '환자돌보기' 인 듯 하다. 집안에 환자가 한 명만 있어도 '긴 병에 효자 없다' 라는 말처럼 우환이 들었다고 하기도 하며 가산을 탕진하기도 쉬운 일인데 '형인지... 아버지인지...' 모르게 집안 살림을 아버지가 되어 잘 이끌어간 한사람, 왜 하느님은 그를 그렇게 심한 벌을 내리시며 데려 가셔야만 했을까 의문이 든다. 그가 잘못한 것이 뭐가 있다고,아버지만 위하고 가족만 위하고 자신을 돌보지 않은 죄일까.
'철이 없어 인생이 별건 줄 알았어요. 옴치고 뛸 수 없다고 생각했고요. 그런데 이제야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삶에서 가장 소중한 건 책임지는 일이라는 걸 말이에요. 제가 옴치고 뛸 수 없다고 생각했던 건 무엇이 소중한 줄 몰랐기 때문에 엄한데 떠넘긴 제 답답함이었다는 것도요.' 아버지에 대한 책임,가족에 대한 책임,그리고 자신 또한 세 아이의 아버지라는 책임, 그토록 그에겐 무거웠던 것일까.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 가지면 조금 수월했을것을 왜 혼자서 그 무거운 짐을 다 짊어지려 했던 것인지,정말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없이 살려 한 그가 미워지기도 했다. 자신을 좀더 돌아보고 자신을 좀더 자유롭게 놓을 수는 없었던 것일까. 그는 그만큼 아름다운 사람이고 순수한 사람이고 정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석과도 같은 사람인듯 하다.
'욕심부리지 마, 뭐든 ,바다의 거친 파도는 파도처럼, 잔잔한 호수의 물결은 그처럼, 그렇게 저마다의 운명으로 사는 거야. 최선을 다하면 그걸로 행복한 거라고는 당신이 얘기해 놓고서...' 아버지를 돌보는 것이 자신의 운명이었을까. 정말 고개가 숙여지고 내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내 아버지 또한 작년에 암선고를 받으셨다. 그순간에는 하늘이 무너지는듯 부모님을 뺀 가족 모두가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했고 서로가 아버지를 위하기 위하여 나섰지만 아버지가 지금은 고통을 호소하지 않아서인지 나부터 조금은 헤이해졌다. 안부전화 한통 제대로 하지 않고 가까이 계셔도 자주 찾아뵙지를 못하고 있다. 그런 나에게 용준아재는 정말 대단한,내리사랑이 아닌 부모님을 향한 사랑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들은 그런 아버지와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자연적으로 '사랑'을 배우게 된다는 것 또한 이 책이 주는 가르침이다. 가족간의 사랑은 누군가 한사람 아프게 되면 더 깊어진다. 흩어진 모래알이 뭉치듯 '화합' 하여 난관을 극복하려 노력한다. 가족애가 더 깊어지고 서로의 사랑이 더 깊어진다. 하지만 혼자서 모든것을 떠 안으려는 것은 무모하기도 하다.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듯 모두 함께 나눈다면 좀더 수월한 시간을 보낼 수도 있는데 혼자서 모든것을 떠안으려했던 그가 내내 내 가슴을 후벼판다. 사랑은,효도는 이런것이라고...
아버지의 그 모든것을 고스란히 '존재' 하게 하려 했던 그, 고향사진관은 그렇게 고향의 사랑방이 되고 아버지가 이 땅에 존재했음을 일깨워 주는 장소이면서 우리에겐 우리자신을 뒤돌아 보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이 소설을 읽으며 야사다 지로의 '가스미초 이야기' 도 떠올랐다. 오래된 추억의 장소인 사진관을 끝까지 지키려했던 할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진솔하게 묻어났던 소설이 잔잔하게 '고향사진관' 함께 오버랩되어 슬픔이 밀물처럼 내 가슴에 밀려들었다. 돈이 되지 않아도 '아버지' 의 모든것 이었기에 그에겐 힘이 되고 삶의 의미가 되었던 그에게 희순씨,그의 아내는 정말 '지기知己' 였던 것 같다. 아내의 변함없는 내조가 있었기에 그 또한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정말 그들은 '효부,효자' 로 명색이 없지만 그 또한 마다했던 그들이었으니 소설로나마 재탄생 되었다는 것이 정말 다해한 일이다. '어깨를 나란히, 두 손을 꼭 잡고, 희마한 가로등 불빛에 비슷한 그림자를 길게 끌며, 걸음조차 똑같이, 골목길을 타박타박... 밤하늘의 별을 보며, 불어오는 바람을 가슴으로 느끼며... 아픔을 위로하고, 고민을 달래주고,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고, 사랑의 이야기를, 정겹게 도란도란... 아! 참으로 아름다운 부부였다. 친구였다. 지기였다. 그쯤이면 무엇도 부럽지 않을, 아니 더 이상의 위로가 무엇이 있을 텐가!' 부부도 오래살면 닮아 간다더니 서로에게 수줍음이 많았던 그들은 어느새 이십여년의 삶속에 똑같이 닮아간 삶을 살았다. 혼자서 아버지를 지킨것이 아니라 그의 곁에 그를 무던히 뒷수발 들어주던 아내가 있었고 그런 부모의 사랑을 내리사랑으로 받은 아이들이 있었고 그리고 친구와 가족이 있어 긴 시간 아버지를 모실 수 있었던 것 같다. 슬프고도 가슴 따듯한 소설을 만나 내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만들었던 '고향사진관' 좀더 내 아버지의 남은 삶동안 좀더 잘해드리고 그동안 미루며 못해 드렸던 일들 해드리고 싶다.다음에 후회하지 않을 그런 '사랑'을 아버지께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