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은 사람을 보는 건 이 동네뿐이다. 이 동네만이 죽은 사람이 나타날 수 있는지,내가 볼 수 있는 범위가 이 동네에 한정돼 있는 것인지는 나도 모른다.' 아내를 잃고 대필작가로 살아가는 무료하면서도 따분한 삶을 살아가는 한 중년의 남자,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달라며 의례를 해 왔던 지난밤의 술자리의 남자는 그에게 이야기도 풀어 놓기전에 심장마비로 죽고 만다. 그 자리에 가야할까 말아야 할까. 그는 한번 우연히 만난 남자의 장례식장에 가서 그의 이야기들을 종합해 나간다. 그의 이야기를 자신의 이름으로 소설로 탄생할 수 있을까. 그의 사무실은 따분하기 그지없다.걸려오는 전화 또한 셀 수 있으며 그가 즐겨 먹는 라면은 그의 초라한 삶을 말해주듯 하지만 그는 유일하게 '죽은자들과 대화' 를 하고 그들을 만난다. 그가 <소통>을 할 수 있는 것은 유일한 '죽은자'들이다. 죽은자들을 통해 '과거와의 소통'을 하는 남자. 그의 쓸쓸한 인생을 말해주듯 그가 만나는 단조로운 사람들,포장마차 작은언니와 큰언니 그리고 아내를 통해 알게된 사람등 소설은 현재 그의 주변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 죽은자들의 과거와 함께 하며 따스하게 녹아난다. 어느날 우연히 아내의 유품을 보다가 발견한 아내가 만든 문패인 <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은 그도 아내가 의도한 뜻을 모르겠듯이 소설속에서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안개처럼 뿌옇기만 하다. 과거 그의 삶이 순탄하지 않음을 보여주듯 아홉번째 사무실에서 살고 있는 남자, 출판사를 전전하다가 대필작가로 거듭난 그지만 상처가 많았던 아내와의 삶이었고 아내와 살면서 함께 키웠던 진돗개들중에 특히 태인이에 대한 기억은 아내와 함께라 더 쓸쓸하다. 아내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목을 메어 죽은 태인이라는 진돗개의 죽음, 그 죽음도 알지 못했던 아내와의 대화를 하며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 그. 그 또한 죽은자나 다름없는 삶을 살고 있고 그가 만나는 사람들 또한 그런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 삶을 탈피하듯 벗아나는 삶을 잔잔하게 그려주는 따듯한 소설이다. 처음엔 제목인 '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이 무얼까 하며 의문을 가지며 읽어서인지 왜, 제목에 대한것이 나오지 않지 하는 실망을 않기도 했는데 읽어나가다 보니 일상적인 잔잔한 삶속에 녹아 나 있는 따듯함이 마음을 평온하게 해 준 소설인듯 하다. 가진것이 많이 않지만 자신이 가진것만으로도 만족한 주인공, 대필작가라는 자신의 삶을 자신있게 받아 들이는 그에게 응원을 해주고 싶다. ' 나는 문득 느꼈다. 죽은 자에겐 욕망이 없다고. 산 자와 죽은 자의 가장 큰 차이가 그것이라고.' '자식, 외로웠구나.많이 막막했구나.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아이가 오래도록 그 말을 기다려왔다는 것을 나는 느꼈다.' 느낌이 남달랐던 소설, 나의 하루는 어쩌면 그와 같을지도 모른다. 죽은자의 삶처럼 막막할때도 있는데 내가 소통하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자신이 어떤 삶을 살든 '소통' 할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