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상에서 흔들리지 않고 오로지 과녁을 향한 화살처럼 직선으로 꽃힐 수 있다면 결코 외롭지 않을 것 같다.’ 그들의 사랑을 운명적인 만남이라 해야 할까? 소설을 잡은 순간부터 손에서 놓지 못하고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꿈꾸는 마리오네뜨> <꽃게 무덤> <붉은 비단보>를 읽어보려고 몇 번 잡았다가 놓았는데 이 작품으로 작가를 확실하게 기억하게 되었다.소설은 연애소설에서 추리소설로 발전하여 뒷부분은 섬뜩하다고 해야할까 연애소설로 이어지길 바랬는데 추리소설이 되어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전반부의 서인과 선우의 연애는 아릿하면서도 무언가 벽이 그들사이에 가로막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아픔을 간직한 그들의 사랑이 아름답게,해피하게 끝나길 바랬는데 바람과는 다르게 전개되고 영화의 제목인 ’지금 만나러 갑니다.’ 나 ’천사와 악마’의 다중인격등이 나와서일까 많은 것들을 믹스한 기분도 들었다. ’결국 만나야 할 운명은 언젠가는 만난다.’ 진부하던 연애소설은 한남자의 다중인격으로 인한 살인이 들어나면서 추리소설로 반전을 거듭하면서 서인과 선우의 불우한 과거 유년기의 삶이 들어난다. 어린시절 아버지의 죽음과 엄마의 떠남을 죽음으로 간주하던 소녀가 몽유병을 잠시 앓으면서 만나게 된 남자, 하지만 그녀의 기억은 지워지고 없다. 자신의 아이가 ’엄마’ 라고 부르지도 못하는 그녀에겐 되찾아야 하는 기억이 있고 그 기억의 스멀스멀 수면으로 떠오를때 서서히 들어나는 선우의 정체. 그 또한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쌍둥이였지만 의붓아버지때문에 여동생을 자신의 손으로 죽여야만 했던 그, 그의 정체모를 ’악마’ 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자신안에 ’천사와 악마’를 간직하고 살아가야 하는 남자 선우, 그런 그의 선한 천사의 면만 바라보던 서인은 부표처럼 떠오르는 선우의 악마기질을 보게 되고 자신의 사랑에 물음표를 가지게 된다. ’사랑은 행복한 우연이고 불행한 우연은 죽음이다.’ 그녀가 그릴려고 한것은 연애일까 심리일까. 흡입력이 강한 소설이었지만 우연이 너무 많이 노출이 되고 꼭 사랑이 죽음으로 치달아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사랑의 끝을 죽음으로 처리하려 한 것일까. 그래야만 악마의 기질이 구제를 받는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그녀에게 남겨진 ’사랑의 씨앗’ 이 행복보다는 남자에 대한 복수,사랑에 대한 복수처럼 느껴져 안쓰럽다. 소설이 비극으로 끝나 더 느낌이 안좋았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지만 힘들고 운명적인 사랑이었으면 극복하여 다른 결과를 보여주었더라면 하는 감이 있지만 이 소설을 계기로 작가는 다른 세상을 노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더불어 어린시절 가정환경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새삼 느꼈다. 아이들 성장에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큰 몫을 하는지 좀더 내 아이들에게 ’사랑’ 을 베풀어야 겠다는 생각을 가져보기도 했다. 아이들은 부모의 거울처럼 보고 느낀대로 따라하는 것 같아 사랑이 충만한 울타리 안에서 삐뚫어지지 않고 올바른 길로 나아가는 지식인으로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가져보며 이 작품을 계기로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과 함께 4월과 호수를 생각하면 이 작품이 떠오를듯 하다. 작은 보랏빛 제비꽃에 앵글을 맞추던 선우처럼 이제 봄이 되면 보랏빛 제비꽃을 찾으러 다녀야 할텐데 보랏빛 세상에 갇히게 만든 남자 선우, 그를 잊지 못할 듯 하다. ’보랏빛 저녁이 깊어지고 있었다. 속죄와 보속을 상징하는 보라색 제의의 옷소매처럼 노을이 하늘을 뒤덮기 시작했다. 그 색깔은 순결했던 한 어린 소녀의 이생에서의 마지막 얼굴빛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