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포 가는 길 황석영 중단편전집 2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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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 그들의 깊은 속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하는 작가 황석영.


장편뿐만이 아니라 단편에서도 그의 힘은 놀랍다. 맛깔스런 그의 단편의 맛을 볼 수 있는 '삼포 가는 길'에는 11편의 단편들이 있다. 그중 TV 문학관으로 널려 알려진 '삼포 가는 길' 은 오래전 드라마였지만 세사람이 거친 눈밭을 걸으며 황량한 겨울속을 걸어 삼포로 향하던 풍경이 눈에 선하다. '삼포 가는 길' 도 서민들의 삶을 노래했지만 처음에 있는 작품인 '한씨연대기' 는 정말 안타깝고 불쌍하여 눈물이 난다. 

장의사에서 허드레일처럼 미천한 일을 하던 노인 한씨가 자신의 방으로 향하던 중 넘어져 그의 한 많은 삶을 마감하고 만다. 같은 집에서 옹기종기 모여 세를 살던 사람들은 그가 살던 방을 탐낼뿐 한씨의 삶에는 도통 관심이 없어 그가 어떤 노인네인지 모르기에 일터인 장의사로 그와 함께 일하던 노인네를 찾아가지만 그도 딱히 한씨에 대하여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그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청진기와 낡은 수첩에 적힌 세사람의 주소와 이름을 보고 연락을 취하여 달려온 사람들에 의해 그의 한많은 삶은 들어나게 된다. 전쟁이 발발하기전 북에서 산부인과 의사이던 그가 전쟁으로 인해 가족과 헤어져 남으로 혼자 오게 된 사연이며 꼿꼿한 성격때문에 남의 눈에 나서 불행의 길을 걷게 된 질곡의 삶. 자신이 의사라는 것도 발히지 못하고 장의사 일을 했던 그가 소중히 간직한 청진기, 때론 인생이란 둥글 둥글 굴러가기도 해야하는데 너무 반듯한 선으로 일관하여 자신을 비루하게 만든것은 아닌지 하는 안타까움을 주었던 작품이다.

'낙타누깔' 월남전에 참전한 소대장은 남들처럼 번듯하게 돈을 마련하여 돌아온것도 아니고 마지막 군생활도 병원에서 있다가 바로 왔기에 두둑한 주머니를 차고 오지 않았지만 우연히 '낙타누깔' 이란 것을 거리에 나갔다가 사들고 오게 되었다. 몸이 좋지 않았던 그가 병장과 잠깐 나갔던 외출에서 구토증을 느끼며 간신히 참아 가다가 많은 돈을 마련하여 돌아왔다는 자를 만나 하룻밤 즐기려 들어갔던 곳에서 상대에게 주었던 낙타누깔을 그가 그이 입에 넣어주자마자 그동안 참아왔던 구토증과 함께 모두 게워내고 만다. 토사물들과 함께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낙타누깔, 자신의 모습을 닮은 낙타누깔 또한 우리의 아픈 한시대를 대변해 주고 있다. 

밀살, 얼마나 배가 고프고 없으면 남의 것을 탐할까? 서리도 이만저만한 서리가 아니다. 세명이서 나누어 먹을 수 있는 닭 서리라면 괜찮겠지만 그들은 남의집 암소를 밀살하기로 한다. 미리 봐둔 암소를 산으로 끌고 와 밀살하려 하지만 양심은 있었는지 자꾸만 빗겨 맞는 도끼자루, 하지만 그런 도끼자루에 암소의 운명은 끝이나고 그들은 피를 뒤집어 쓰고 암소를 죽이고 만다. 달빛에 허옇게 들어나는 흰살과 함게 뱃속에서 나온 죽은 새끼소, 자신의 아내가 곧 해산이 다가왔으면서도 내일을 위한 밑천을 마련하기 위하여 농가의 소를 탐한 그들에게 내일은 어떤 태양이 뜰까? 아이를 잉태했던 아내는 아무일없이 해산을 한것인지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소설이며 죽음을 느낀 소가 그토록 절박하게 온 산이 울리도록 울었는데도 주인이나 동네사람들은 그 소시를 정말 못들은 것인지. 배고픔 앞에서는 그 무엇도 용서를 해야 하는 것인지.

나이가 어려서는 고향을 떠나고 싶지만 철이 들고부터는 고향으로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마음, 여기 그런 두명의 남자와 여자가 있다. 떠돌이로 막일을 하는 영달과 정씨 그리고 술집 작부일을 하다가 몰래 도망가는 백화, 그들은 누구의 고향인지 그곳에서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조차 잘 알지 못하며 길을 떠난다. 삼포, 먼 기억속의 삼포는 열집도 안되는 가구가 모여사는 정말 그림같은 고향이다. 하지만 우연히 만난 노인에게서 전해 들은 그곳은 관광호텔이 들어서고 여기저기 벌어지는 공사판으로 예전의 그곳이 아니다. 영달과 정씨와 헤어져 기차를 타던 백화가 자신의 이름을 크게 외치며 자신의 존재를 처음 밝히는 것을 보며 우리는 어쩌면 내 이름도 고향도 알지 못하며 무언가에 쫒기듯 허겁지겁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안식을 취할 수 있는 '고향' 이 있다는 것은 어쩌면 든든한 언덕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행복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곳까지 가는 길이 눈밭이거나 험한 길이라 하더라도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불행중 다행이지만 그마져도 없다는 것은 삶의 희망이 사라진것처럼 절망적이다. 

그의 단편들을 읽고 있다보면 맛깔스럽고 정갈한 우리네 토속음식을 먹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어느 티비 프로에 나와 구수한 입담을 자랑하던 그가 한동안 이슈가 된것처럼 그의 입담처럼 맛깔스런 작품들은 장편이건 단편이건 '읽는 맛' 을 느끼게 해준다. 너무 오래된 작품들이라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를 쓸어버리기라도 하듯 그의 언어들은 그의 입담만큼이나 찬물에 헹구어낸 것들처럼 반들반들 윤이 난다. 우리네 삶에서 사각지대에 있어 관심을 받지 못하던 사람들의 삶을 한번 더 돌아보게 하는 작품들은 연말이라서 그런가 자신의 피를 팔아 하루하루를 살던 '이웃 사람' 이란 작품처럼 어느 티비광고문구처럼 한방울의 피가 생명을 살릴 수도 있지만 한방울의 피로 삶을 유지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이 단편외에 다양한 이야기꾼 황석영을 만날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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