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광란의 도가니..... 그녀가 전해주고 싶은 진실.....


'한 소년이 철길을 걷고 있었다. 안개는 아직 육지를 완전히 점령하지는 못했지만 가느다란 그물을 펼지듯이 서서히 사물들을 지워가고 있었다. 철길 가에는 때이르게 피어난 코스모스 무리가 팡백하고 불안하게 그 안개의 그물에 덮인 채 몸을 떨고 있었다... 철로는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소년은 뒤돌아 보았다. 크게 휘어진 선로를 돌아 기차가 오고 있었다... 소년의 눈꺼풀이 마지막으로 파르르 떨리고 이어 안개가 점령한 유백색 허공에 고정되었다.' 안개와 소년 그리고 무진시, 도입부분을 읽으면서 무언가 안개에 커다란 것이 싸여 있는 것 같은 무거움에 몇 번 읽으려다 내려 놓은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떠올려본다. 이 작품을 읽고나면 '무진기행'을 꼭 읽어봐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늘 안개에 덮여있는 무진시, 그곳의 장애학교에 기간제로 자리를 얻어 내려가는 강인호, 아내가 마련한 자리에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고 들어섰지만 그를 반긴것은 '안개' 였다. 서서히 안개가 걷히면서 하나 둘 들어나는 무진시의 거짓과 위선 그리고 광란. 큰걸로 다섯장으로 자신의 자리를 굳히며 얻은 담임의 자리는 결코 자신의 자리같지 않으며 청각장애아이들이 있는 곳에 수화를 하지 못하는 선생님들 속에 자신은 하나의 '섬' 처럼 학생들에게 진실을 전달하고 그들 속으로 들어가려 했던 자신. 첫날부터 모든이에게 냉대를 받아가며 하루하루 적응하던 그에게 그동안 안개에 휩싸여 감추어졌던 거짓이 베일을 벗듯 들어나며 그도 모르게 진실의 선봉에 서게 된 강인호, 그와 함께 광란의 도가니를 잠재울 씩씩함으로 무장한 선배 서유진. 

교육청이며 시청이며 산부인과 의사며 경찰이며 모두가 하나가 '거짓'으로 하나가 되어 청각장애학교이며 시설인 자애학원을 거짓으로 그럴싸하게 포장해 놓은 것을 어쩌다 용감하게 된 강인호가 양파의 껍질을 벗기듯 하나 하나 벗겨나간다. 그 속에 감추어졌던 어마어마한 사실들. 잘 포장된 거짓과 진실밖에 모르는 청각장애아들의 진실, 어느 쪽이 진실인지 판가름한다는 것은 처음엔 계란으로 바위치기처럼 느껴졌으나 진심이 통했을까? 아님 막혀있던 봇물이 터진 것일까? 그들속에 꼭 꼭 감추어 두었떤 진실들이 세상사람들을 발칵 뒤집어 놓으며 그곳은 <광란의 도가니> 였음이 들어난다. 하지만 사실을 부인하는 모든 사람들, 그들과 맞서 싸워야 하는 세상의 소리와 단절된 아이들과 강인호 그리고 서유진. 세상은 결코 힘 있고 돈 많은 자들의 것이 아님을, 거짓이 아닌 진실된 자들의 것임을 도가니 속을 한바탕 헤매다 나오면 만나는 희망처럼 후련하게 해주는 책.

그녀의 다른 책들을 읽다가 사실은 약간 실망감이 있어 몇 권 읽지 않았는데 이 소설에서 다시 강한 그녀의 힘을 느낀다. 소외된 자들을 위한 편에서 그들의 진실을 읽었다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고 무진시의 안개를 거두어낸 것처럼 환한 세상을 만들어 준것 같아 기분이 좋은 소설이다. 처음 도이부분은 내가 살던 시골 동네가 철도건널목을 지나야 하고 그 건널목에서 도입부와 같은 사고가 있어서 더 끔찍하게 읽으며 시작을 해서인지 남다르게 다가왔다. 그들의 손짓 하나 하나 헛되지 않고 진실을 규명할 수 있었고 돈과 학벌이 지배하던 무진시의 안개가 맑게 걷치어 좋았지만 좀더 강인호가 마지막까지 아이들곁에 남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간만에 공지영식 시원한 소나기를 만나것 같아 흡족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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