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밭에 달 뜨면
백동호 지음 / 밝은세상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충격 그 자체이다. 소록도에서 나환자를 대상으로 자행된 일제의 생체실험을 낱낱이 고발한다.


<실미도>의 작가 백동호, 그이 이력을 읽다 깜짝 놀랬다.의무교육은 물론 문교부 혜택을 하나도 받지 않은 그가 교도소에서 8년6개월여 기간 동안 삼천여권이 넘는 책을 읽었다니 대단하다. 처음엔 낯선 작가라고 생각했는데 <실미도>가 그의 작품이란 것을 알고는 작가의 대단한 약력을 기대했던 난 선량하게 미소짓고 있는 그의 사진과 함께 무너지고 말았다.한센인과 소록도를 다른 다큐를 언젠가 본 기억이 있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묻힌, 가슴 아픈 역사가 너무도 많다는 것을 알고는 관심이 가기도 했지만 그때뿐이었는데 나환자들의 애환과 소록도의 역사를 소설로 만나니 다행스럽기도 하다.

일제시대 우리가 알게 모르게 묻힌 역사는 정말 많다. 하지만 지금도 파헤치기 보다는 어쩌면 쉬쉬 덮어 놓으려고만 하고 있는 것같은 아쉬움이 남는데 누군가 역사를 바로 잡는 이가 있다는 것은 우리 역사가 그리 어둡지만은 않은것 같다. 내가 어릴때에 장날 장에 나가보면 꼭 몇 명의 나환자들을 만나곤 했었다. 발가락이며 손가락이 너덜너덜하고 옷마져 다 헤져서 사람들이 모두 기피하기도 하고 울면 문둥이가 잡아 간다는 말에 얼마나 무서워했는지... 그때는 생각지 못했던 그들의 생사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소설을 읽는 동안...

오대산 타잔이라 불리는 한상혁은 소록도를 탈출하여 오대산에 들어와 남의 눈을 피해가며 살아 가고 있었는데 어느날 뜻하지 않은 횡재처럼 먹구렁이를 생포하게 된다. 먹구렁이를 잡아 큰돈을 만져 보겠다는 기쁨도 잠시 등산객들과의 마찰에 뜻하지 않은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피해다녀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그의 외모는 금방 알아치릴 수 있어 멀리 피하지도 못하고 잡혀 들어가게 되고 만다. 하지만 교도소마져 그에겐 편한 휴식처가 되지 못하고 모두가 그를 기피하며 '죽어라 죽어라 죽어라' 하고 그에게 외치기만 한다. 그의 옆방에 있던 정환채는 그의 방으로 건너가 그에게서 진한 지난날의 질곡같은 삶과 함께 소록도의 역사를 듣게 된다.

나환자들의 천국이라 일컫던 '소록도', 진짜 낙원이며 천국이었을까? 주민들에게서 섬을 빼앗듯 사들여 나환자들의 병원을 짓고 그들이 묵을 요양소를 짓고 육지에서는 평범하게 대해보지 못했던 음식들을 먹을 수 있고 눈치보지 않고 살게 된 나환자들은 그곳이 천국인양 양의 탈을 쓴 일본인들이 시키는 일을 성하지 못한 몸으로 모두 이겨내며 천국이 될 그 날을 기다리며 산다. 하지만 태양을 삼키듯 먹구름이 서서히 소록도를 지배하듯 한사람 한사람 의문의 죽음을 당하게 되고 가혹한 매질과 감시,소록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들의 손아귀에서 차츰차츰 희망을 잃어가는 사람들. 상혁은 평택부자집의 사대독자였기에 넉넉한 돈을 가지고 들어가 그나마 그의 생을 연장하고 풍요롭게 살 수 있었지만 하루하루가 힘들기만 한 나환자드라, 그들을 상대로 원장이며 원장의 양아들인 사토는 그들을 마루타로 생체실험을 한다. 파상풍균과 괴저균을 실험하면서 넘쳐나는 나환자들을 인간이 아닌 자신들의 업적과 전쟁을 위한 실험도구로 취급한 사람들, 하지만 그들보다 더한 사람들은 그들의 밑에서 그들에게 충성을 다하는 끄나풀들이다. 

서로 죽고 죽이며 자신이 살기 위하여 다른 사람을 밟고 올라가야 하는 계급사회처럼 나의 목숨을 위하여 남의 목숨을 담보로 잡고 살아가는 불쌍한 사람들. 영원한 비밀도 없고 영원한 역사의 매장도 없는 것 같다. 쉬쉬하며 실험을 나환자들의 목숨을 앗아가던 감금실의 비밀도 쉬쉬하며 퍼져나가게 되고 살인마를 죽이기 위한 처절한 응징을 하게 되기도 하고 섬을 탈출하게도 되는 나환자들의 애환. 배추벌레 보다 못한 목숨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이 나병에 걸린 것도 서러운데 너무도 가혹하면서도 처참하게 죽어간다. 그런 일들을 왜 우린 강건너 불구경하듯 보고만 있었던 것일까? 정부의 너무도 단단한 입단속과 귀단속에 그동안 <실미도>의 그들처럼 잊혀져만 간 것인지.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소설보다 더한 일들이 그곳 <소록도>에서 자행되었으리라. 숨겨진 역사속에 불행하게 묻혀버린 영혼들, 이 소설로 그나마 그들의 한을 듣는 듯 하여 가슴이 아리지만 위로를 얻는다. 

작가가 오랜동안 수감생활을 해서인지 글속에 들어난 그들의 생활이 사실적이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을 더 깊이 읽어나가며 자신의 맘까지 표현해 놓은 듯 하다. '마음은 안에서만 문을 열 수 있는 감옥이다. 마음이 닫힌 사람은 아무리 많은 것을 보여주어도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애기만 듣는다.' 처럼 마음에 와 닿는 글들이 자주 보인다. 그가 이 글을 쓰기 위하여 참고한 문헌들을 보니 알게 모르게 나환자와 소록도에 대한 역사와 그들의 이야기가 있긴 있다. 하지만 그동안 관심부족이었을까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마져 읽어보려 했지만 읽지 않아 나병환자와 소록도에 대한 이야기인줄 몰랐다. 작가를 통하여 나환자들과 소록도에 대하여 알게 되어 소중한 기회가 되기도 했지만 대단한 작가를 만난 기쁨도 있다. 그의 다른 작품인 <실미도1,2>를 언제 기회가 되면 읽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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