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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 하늘 길
한승원 지음 / 문이당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귀양살이를 온 것이 아니고 천국이나 무릉도원에 와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소흑산도는 지옥의 땅이 아니다. 지옥은 피비린내 나는 한양 땅 안에 있다...
정조임금께서 연신들에게 ’약전은 준수하고 뛰어남이 그 아우보다 낫다.’ 고 하신 적도 있었다. 뱁새가 어찌 구만리장천을 날아가려고 나서는 붕새의 마음 한구석을 짐작이나 할 수 있을 것인가... 손암 정약전 그는 ’소흑산도’ 지금의 우이도에서 9년 대흑산도에서 7년의 16년을 갇혀 살면서 기어이 그 섬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곳에서 명을 달리했다. 한승원이라는 작가는 ’아제아제 바라아제’라는 소설로 만나고 정말 오래간만에 만났다. 왜 그를 잊고 있었을까. <흑산도 하늘 길>이란 소설을 접하고 작가의 다른 책들에 관심을 가져 몇 권 구매를 해 놓았다. 아제아제 바라아제에서도 보면 한과 불교에 대한 것을 다르고 있는데 그는 ’한’을 ’생명력’이라 표현했다. 이 소설에서도 정약전은 어쩌면 섬을 벗어나기 보다는 그 섬에서 섬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력’을 담고 있는 것 같다.
아우 약용은 강진으로 유배를 가고 본인은 흑산도로 유배를 가게 되는 약전, 천주학으로 바로 밑 동생 약종과 그의 친구들을 잃고 흑산도로 들어가 관인들과 섬사람들의 감시를 받아가며 자신을 감추고 살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육지생활과 양반이었던 그가 상민과 섬에 적응하기란 얼마나 큰 고통이 뒤따랐을까. 흑산도에 처음 도착 하던 날 그는 의문의 처녀를 만나고 첫눈에 반한다. 그녀 거무 또한 천주학으로 부모를 잃고 고아로 물질을 하며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었던 것. 이장의 가교역할로 둘은 함께 살게 되고 육지와 가족에 대한 갈증을 해갈하려 그는 술을 즐긴다. 좌랑 자리까지 올랐던 그는 섬아이들을 가르치며 처녀를 첩으로 얻어 두 아들 무와 공까지 두고 살지만 감시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소흑산도행을 한다.
소흑산도에서도 훈장질을 하며 생활하던 그는 흑산도에서의 뻣뻣하던 양반의 자존심을 버리고 상민들처럼 행동하고 말하고 그들과 융해되어 살아가기 위한 발버둥을 친다.그 길로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해산물과 그외의 것들을 조사해서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창대와 주위사람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하나하나 정리해 나간다. 그러던중에 동생 약용이 강진에서의 유배생활이 해박이 될거란 이야기를 듣고는 대흑산도로 갈 생각에 야밤에 섬을 빠져 나가려 하지만 섬사람들의 성화에 다시 눌러 앉게 되고 그의 병세는 짙어가게 된다. 섬사람들의 마음을 돌려 놓고 대흑산도로 향하였지만 그의 병은 너무 깊어 동생 약용을 만나지도 못하고 해박이 되어 섬을 벗어나지도 못하고 그곳에서 생을 달리하고 만다.
책을 끝머리에는 ’손암 정약전의 인터뷰’ 라는 코너가 있다. 작가 자신이 우이도로 건너가 약전이 죽던 그 나이의 그를 만나 인터뷰를 하는 형식으로 소설에서 다루었던 강조하고 싶은 내용과 작가가 이 소설을 쓰게 된 배경과 작가의 생활과 글쓰기등을 다루고 있어 더 현실감이 있게 읽을 수 있다. 정약전이 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자산어보>는 한자와 뜻으로 볼 때 자산어보가 아닌 <현산어보>가 맞는다는 작가의 말과 어쩌면 동생 약용보다도 더 뛰어났지만 동생의 그늘에 가려져 빛을 보지 못한 그를 작가는 소설로서 그를 살아 숨쉬게 만든것 같다.
짙푸르고 거친 바다 물결 속에 떠 있는 섬 흑산도는 거대한 조개껍데기이고 나 정약전은 그 속으로 들어온 한 마리 파랑새이다. (승률조개를 보며..) 그 새는 머지않아 거대한 검은 껍데기를 열어젖히고 훨훨 날개를 저으며 뭍으로 날아갈 것이다. 세상의 모든 껍데기가 알맹이르 정말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껍데기는 자기를 가두면서 동시에 자유를 누리게 하는 현묘한 방이다... 바닷가에서 만난 승률조개를 보며 약전은 자신이 승률조개와 같다고 생각한다. 조개 껍데기 속에 감추어진 파랑새, 껍데기를 벗어나 날개를 훨훨 저으며 가족이 있는 육지로 날아가려던 파랑새는 자신의 꿈을 다 이루지도 못하고 섬에서 생을 마감하고 마는 껍데기 속 파랑새로 남는다.
섬과 육지의 미묘한 차이, 섬사람들만의 섬에서 살아나가는 방법들이 육지인의 눈으로 볼 때 물위에 걷도는 기름처럼 여겨지던 그가 섬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면서 순박하면서도 거짓이 없는 그들의 본심을 만나며 다시 육지를 그리워 하는 울렁증에 시달리는 섬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그에게 섬은 어쩌면 껍데기로 존재하였는지도 모른다. 질박하고 순박한 듯한 면과 감시자의 이중적인 면을 간직한 섬사람들은 어쩌면 그 시대를 이겨내고 살아가야 하는 방법처럼 작가는 표현해 낸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을 총애하던 정조의 의문의 죽음과 이어 정권을 잡은 사람들이 자신들을 신뢰하지 않아 마음에서는 미리 해박을 포기하기도 한 약전의 고뇌와 몸부림이 그가 말하는 <현산어보>에 모두 담겨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늦게나마 좋은 작품과 꽉 찬 작가를 만나 행운이었던 것 같다. 그의 다른 작품인 <다산>도 읽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