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 -상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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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의 움베르토 에코 그의 이름만으로 구미가 당기는데 그의 나이 76세, 방대한 지식을 자랑하는 그의 백과사전식 지식이 총망라한 것과 같은 형식의 백과사전적이며 삽화가 첨가된 소설이라 읽는 종종 보는 재미가 있어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처음엔 조금 딱딱한듯 하면서도 갸웃뚱 거리게 만드는 이야기로 밋밋한것 같지만 심장혈관 계통의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난 후 역행성 기억 상실증을 앓으면서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하여 어린 시절을 보낸 솔라라에서의 이야기는 흥미롭다.
 
세상의 모든 백과사전적 기록들은 모두 기억하면서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기억하지 못하는 주인공 얌보,밀라노의 손꼽히는 고서적 전문가 잠바티스타 보도니는 고혈압으로 인하여 쓰러졌다가 깨어나지만 자신에 대한 기억은 몽땅 잊은 상태이다.자신의 아내인 파올라나 고서점에서 함께 일하는 시발라에 대한 기억들이며 딸이나 손주들에 대한 기억들마져 모두 잃어버렸지만 자신의 이름대신 이름과 관련한 세계문학의 유명한 문장들이며 그가 토해내는 것들은 에코 자신의 지식을 말해주듯 백과사전을 펼쳐든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자신이 운영하는 고서점에 가서 시빌라를 보고는 무언가 아내가 모르는 둘만의 비밀이 있을듯하여 궁금증이 생기기도 하고 그런 그의 의문에 대답하듯 결혼을 앞두었다는 시빌라의 말을 듣고는 아내인 파올라의 권유로 어린시절을 보내었으며 할아버지의 집이 있는 솔라라로 여행을 떠난다.솔라라는 자신이 태어나기도 하고 2차대전을 피하여 2년여 할아버지 집에서 살았는데 헌책방을 운영하던 할아버지의 온갖 수집품들이며 얌보의 어린시절의 물건들이 다락방이며 예배당에 잘 보관되어 있다.장난감, 판화, 만화, 동화, 통속 모험소설, 고전소설, 대중가요, 교과서, 파시스트들의 정치 선전 등 온갖것들을 망라하여 아말리아와 잔니의 도움을 받아가며 이탈리아의 가장 파란만장한 시대의 시간여행을 시작한다.
 
하지만 이런 기억들은 '종이로된 기억'일뿐 자신이 느끼는 생생한 기억이 아닐뿐더라 무언가 '신비한 불꽃'이 일듯 하지만 얌보의 기억은 되살아나지 않는다.그러다 자신이 고등학교 시절 좋아하던 소녀 '릴라'가 있었다는 사실과 '벼랑골'이 스쳐 지나간다.벼랑골에서의 남다른 기억을 찾아내지만 자신이 좋아하던 소녀의 얼굴은 기억이 날듯 하면서도 가물가물 하다. 그러면서 잔니로 부터 들은 그녀의 이야기,그녀가 18살이 되던 해에 죽었다는 자신의 생애동안 찾던 여인이 영혼이 되었다는 것에 그 소식을 듣던 날 얌보가 쓰러졌다는,그러면서 더이상 솔라라에서 찾아낼것이 없다고 여기며 솔라라를 떠나기로 한 마지막 날 지성소를 찾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세익스피어의 초상'. 그 놀라운 보물을 발견하고 엄청난 충격에 그는 잃어버린 기억들을 되찾지만 다시 코마상태에 빠져든다.
 
코마상태에서 자신이 모아 놓은 '안개'에 대한 자료들처럼 지난 기억들은 안개처럼 모호한 상태로 그의 삽화와 더불어 만화와 같은 형태로 이어진다.그토록 찾던 여인 '릴라'의 얼굴이 나타날듯 하지만... '그런데 계단 꼭대기로 옅은 잿빛이 퍼지더니 현관문을 가려 버린다.나는 한 줄기 서늘한 바람이 건듯 불어오는 것을 느끼며 올려다본다. 왜 태양이 검게 변하고 있지?... 그가 찾고자한 기억은 모호한 상태로 끝을 맺는다.
 
에코는 자신의 백과사전과 같은 지식들과 수집품들을 그가 창조해낸 인물 '얌보'를 통하여 역행성 기억상실증이라는 병을 통하여 지난날을 다시 되집어 나가듯 이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에 모두 쏟아낸듯 하다.이 소설은 그러니 에코 자신의 지난날을 보여주는 자서전적인 소설이다.하지만 너무 책에만 일관된 것들이 나오다보니 지루한 감도 있고 너무 나열식인 문제점도 있다.자신의 지난날 텍스트가 모두 책,그리고 책이다. '장미의 이름'이라는 소설에 매료되었던 나는 겉표지의 '움베르토 에코의 최후의 걸작'이라 했지만 에코의 최후의 자서전처럼 그가 읽어 나갔고 그가 수집한 수집품들을 찾기 위하여 솔라라의 다락방과 예배당을 뒤진 기분이 들었다.부주제처럼 나왔던 '안개'속에 빠졌다 나온것처럼 뭔가 끝맺음이 깔끔하지 못한 에코를 본것 같아 조금 아쉽다.하편 중반부까지는 재미있게 읽었는데 마지막 삽화가 나오는 부분부터는 애매모호한 기분이 들었다.그가 제목을 만화책에서 따왔듯이 이 소설은 만화로 끝을 맺는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또다른 '장미의 이름'을 기대했던 기대감이 사라졌다.하지만 소설을 읽어 나가며 그가 어린시절을 이렇게 방대하게 정리를 해 놓았는데 나의 어린시절은... 하면서 뒤돌아 보게 만들었다. 독자들에게 자신의 책을 읽어가며 자기자신에게 '신비한 불꽃'을 일으켜 보라는 충고처럼 책은 그렇게 다가왔다.그 불꽃을 찾기에 아직 늦지 않았다고 말해주듯이...
 
 
'깊은 코마에 빠진 뇌는 활동의 징후를 보이지 않는다. 나는 생각하고 느끼고 기억하지만 외부에서 나를 관찰하는 사람들은 내 뇌가 화동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내 뇌는 과학의 현 수준에 맞춰 평평한 뇌전도를 보여 주고 있지만 과학이 인체에 신묘한 기능에 관해서 무엇을 알겠는가? 모니터에 나타나는 뇌파가 평평하다 해도 내장이나 발끝이나 고환으로 사고 작용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내 뇌가 활동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아직 내면의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 500p
 
마틴 이든은 <알게 된 순간에 앎을 끝냈다>고 하지 않는가? 나는 아직 마지막 순간에 다다르지 않았고 죽어 가는 사람들보다 유리하다. 나는 깨달음을 얻고 무언가를 알아 가고 있으며 그 사실을 의식하기까지 한다.나는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일까? ㅡ 524p
 
이제까지 내가 추억하고 있다고 믿었던 것들이 대체로 안개와 연관되었던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안개 역시 내 삶이 한바탕의 꿈이었음을 말해 주는 징후였다. 삶이 한바탕의 꿈이라는 말은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을 인용한 것이다. ㅡ 683p
 
우리는 우리가 어떤 심술궂은 귀신에게 속아 허깨비를 보고 있다고 가정할 수 있음에도 마치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현실인 것처럼 행동한다.그래야 계속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ㅡ685p
 
로아나 여왕이 아니라면 내가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겠는가? 나는 내가 다시 종이로 된 기억에 의지하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만화 속의 로아나 여왕이 아니라 나 자신의 로아나 여왕을 생각하는 것이다.내 마음속의 로아나 여왕은 훨씬 숭고하다.그녀는 부활의 불꽃을 간수하고 있다.돌로 변해 버린 지가 아무리 오래된 시신이라도 이 신비한 불꽃이 닿으면 다시 생명을 얻는다. ㅡ687p
 
이제 비로소 잔니가 했던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듯 하다.그의 말대로 나는 평생에 걸쳐 어떤 여자와 만나든 릴라의 얼굴을 찾고자 했장면을 연기할 수 있는 그 날을 기다렸다.그 장면이 나에게 영원히 찾아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아마도 그 때문에 첫 번째 사고가 일어났을 것이다. ㅡ 679p
 
 
이 책이 에코의 마지막 책이 아니길 바란다.전작들처럼 그의 유머와 해박한 지식이 잘 들어난 다음 작품이 곧 나와주길 바랄뿐이다.이 책을 읽다보니 오래전에 읽었던 '장미의 이름'과 '푸코의 진자'를 다시 읽고 싶어졌다.그 작품들에서 에코의 진면목을 다시 만나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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