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7년 7월
평점 :
저어 해가 저무는 서천 서역에 가믄 세상 끝에 약숫물이 있다구 그랬지비. 병든 나라 지나 물 건너고 산 넘고 가는 동안에 신령님들이 도와주고, 왼갖 사람 빨래 해주고, 밭 매주고, 시키는 천한 일 다해주고, 귀신 물리치고, 지옥에두 다녀오지. 지옥에 갇힌 죄인들 구제해주고 서천에 당도하니 장승이 기달리구 이서. 장승하고 내기 시행에 져서 살림해주고 아 낳아주고 석삼년을 일해 주어야 약수를 내주갔다구 허는 거이야. 저어 세상 끝이서 온갖 고난을 겨끄다가 돌아오는데 저승 가는 배들을 구경하지. 황천으로 흘러가는 배 위에 가즌 업보를 걸머진 혼백들이 타구 있대서.
할마니 생명수 얻은 거는 빠쳈다.
오오 기래, 할마니가 깜박했다. 생명수 약수를 달랬더니 그놈에 장승이가 말허는 거라. 우리 늘 밥 해먹구 빨래허구 하던 그 물이 약수다.
기럼 공주님이 헛고생 한거라?
바리야, 기건 아니란다. 생명수를 알아볼 마음을 얻었지비.
거 무슨 말이웨?
이담에 좀 더 살아보믄 다 알게 된다. 떠온 생명수를 뿌레주니까니 부모님도 살아나고 병든 세상도 다 살아났대. 그담부턴 바리 큰할미는 우리 속에 살아 계신다누. 내 속에 네 속에두 있댄하지.’
청진에서 태어난 소녀 바리는 위로 딸만 여섯이라 태어나면서 숲에 버려진것을 집에서 키우던 흰둥이가 데려와 개집에서 데리고 있어 살아났다.이름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가 할머니가 '바리공주'에서 바리라고 짓게 되었다. 늘 할머니가 들려 주던 이야기 '바리공주'처럼 소설속 주인공 바리도 바리공주와 똑같은 여정을 걷듯 그녀의 삶도 생명수를 찾아 헤매이듯 험난한 삶을 산다.
청진에서 살다가 무산으로 옮겨 와 미꾸리 아저씨 박소룡의 도움으로 어려움을 헤쳐나가며 살다가 외삼촌의 행방때문에 식구들은 뿔뿔히 흩어지게 된다. 현이 언니와 흰둥이의 일곱째 새끼 칠성이와 할머니와 함께 두만강을 건너 소룡아저씨가 소개해준 과수원의 창고에서 지내다 아버지와 재회를 하지만 그도 잠깐,아버지는 나머지 식구들을 찾아 북으로 들어가고 현이 언니는 겨울을 나지 못하고 죽고 할머니 마져 산에서 죽고 만다. 주인집에 준 칠성이를 마지막처럼 한번 보고 북으로 떠나려는데 칠성이가 줄을 끊고 바리를 따라 나선다. 한편 바리는 어려서 앓고 일어난후 집안대대로 내려오는 신기를 물려받듯 영혼들과 대화를 한다.
그들이 살던 무산의 집과 예전에 살던 청진으로 식구들을 찾아 떠나며 겪는 칠성이와의 험난함 속에 핏박 속에서 죽어간 슬픈 영혼들과의 만남이 현실과 환상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면서도 북한의 어려운 실상이 잘 들어난다.영혼들과의 만남에서 식구들이 모두 죽었음을 알고 청진으로 향하던 중 산불현장에서 칠성이마져 잃고 바리는 중국으로 향한다. 그녀의 곁에는 늘 좋은 사람들이 함께 한다. 중국에서 샹언니를 만나 발마싸지를 배워 마싸지를 하던중 샹언니네가 따로 가게를 차려 나간다 하여 함께 가서 일을 하던중 동업자의 배신으로 모두를 날리고 바다를 건너 뱀단에 의해 영국으로 가게 된다.
나이가 어려 업소에서 일을 못하여 식당으로 가게된 바리는 식당에서 마음씨 좋은 루아저씨를 만나 식당에서 일하는 것보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기술인 발마싸지 기술을 쓸 수 있는 통킹네일숍으로 일자리를 옮긴다.그곳에서 만난 탄 아저씨와 루나언니와 압둘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안정을 되찾던중 네일숍의 손님인 사라 아줌마의 소개로 에밀리 아줌마를 만난다. 그녀의 삶은 다 가진듯 하면서도 젊은 여자에게 남편을 빼앗겨 고난의 삶을 살고 있음을 알고는 그녀에게 마사지를 해주며 안정을 되찾아 주던중에 남편의 애첩이 남편에게 세 방의 총을 쏴 남편을 죽이고 감방에 가게 되어 그들의 아이를 데려다 키우게 됨으로 해서 에밀리 아줌마는 어둡던 삶이 아이와 함께 함으로 생명수를 찾듯 삶이 밝아진다.
한편 압둘 할아버지의 손자인 알리와 바리는 결혼을 하게 되는데 바리가 임신을 한것도 모르고 알리는 파키스탄으로 동생을 찾으러 떠난다. 모두가 죽었다고 여겼지만 바리만은 남편이 살아 있고 동생이 죽었다는 것을 영혼들과 대화를 함으로 알게 된다. 하지만 남편은 고초에 시달리고 있어 그녀도 괴로워 하던중 중국에서 함께 영국으로 온 샹언니가 바리처럼 자리를 못잡고 마약에까지 손을 댐으로 그녀의 삶은 구겨질때로 구져진 상태로 바리를 찾아 온다. 바리에게 돈도 얻어가지만 그때뿐이고 다시 바리를 찾은 그녀는 바리가 세탁소에 간 후 집안을 뒤져 돈을 가지고 달아난다.그 시간 집에 혼자 있게 된 바리의 딸 홀리야는 집을 나서다 굴러 변을 당한다.딸의 죽음으로 집안에 틀어박혀 있는 바리에게 딸을 알라신에게 보내라는 할아버지의 말처럼 바리는 딸을 보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동생을 찾아 떠났던 알리도 거짓말처럼 다시 바리에게 돌아오고 그들은 작은 가게를 차려 새로운 삶을 산다.
삶에 필요한 생명수는 무엇일까? 우리가 늘 밥해 먹고 빨래허구 하던 그 물이 약수이듯이 생명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삶에 늘 함께 존재한다.험난한 삶을 살면서도 주인공이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현실에 맞게 대처하면서 이겨 내었기에 자신에게 맞는 생명수를 찾지 않았나 싶다.현실이 고통인데 그 고통은 욕망에서 오는것,모든 것들을 '용서'함에서 진정한 생명수를 찾아가듯 그녀의 딸을 죽게한 샹언니를 용서함으로 그녀는 생명수를 얻게 되는지도 모른다.
바리와 함께 한 여정이 할머니가 늘 이야기 해주던 바리공주의 이야기와 겹치듯 험난한 길을 걸으면서도 영혼들과 만나는 환상의 세계와 우리말만이 가지는 진솔한 사투리의 맛이 어우러져 소설은 더욱 재미를 주는듯 하다.아시아에서 분단국으로 사회체제의 어려움에 처한 북한의 실상과 전쟁이 끊이지 않는 파키스탄의 만남이 사상과 신을 떠나 하나가 되어 새로운 삶으로 거듭나 그 속에서 죽어간 불쌍한 영혼들을 달래듯 바리는 진혼굿을 하며 여정을 펼친듯 하다.그러면서도 그녀가 마지막 까지 놓치 않은 '희망'이 있어 생명수를 찾을 수 있지 않나 싶다.
희망을 버리면 살아 있어도 죽은 거나 다름없지.네가 바라는 생명수가 어떤 것인지 모르겠다만,사람은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서도 남을 위해 눈물을 흘려야 한다.어떤 지독한 일을 겪을지라도 타인과 세상에 대한 희망을 버려서는 안된다.ㅡ286p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희망'이다.이 소설에서도 희망이 없었다면 바리의 험난한 여정도 영혼들과의 대화도 모두가 무의미 했을터,그들을 용서하면서 희망이라는 단어를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았음으로 인해 바리의 생명수도 온전한듯 하다.우리가 살아 가면서 희망이 없다면 그 삶은 죽은거나 마찬가지일터 실낱같은 희망마져 밝게 키워 가짐으로 바리의 삶 또한 더욱 빛날 수 있었고 <바리데기>를 읽은 독자들 뇌리속에 '바리'는 영원히 숨쉬고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