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에 빠져서 하지도 못하던 등산을 하던 그런 시기가 있었다.남들은 산의 정상을 향해 무슨 나무가 있는지 무슨 꽃이 피었는지 보지도 않고 정상을 향해 힘차게 걸어 갈 때 난 천천히 내 호흡에 맞추어 걸으며 꽃을 찾고 이름을 찾아 보고 나무의 표피를 보고 만지며 작은 것에 힐링을 하며 펀러닝이 아닌 펀등산을 하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그러다 한번은 야생화도 많이 찾기도 하고 사진도 찍고 힘이 넘처 난다고, 내 한계보다 더 높이 올랐다고 내 최고점을 넘어 섰다고 생각하는 순간, 아차하는 순간에 하산시에 바위계곡에서 미끄럼사고가 일어나 크게 다치고 한 해를 꼬박 병원신세를 지기도 했고 부러진 손등뼈엔 핀도 박고 정말 큰 사고를 당해서 고생을 많이 하기도 했고 지금까지도 후유증처럼 고질적인 허리병을 얻게도 되었다.그래서 뒷산도 못 가던 시간이 있었지만 그 트라우마를 지우고 다시 낮은 산부터 시작해서 조금 오르다가 저질체력 때문에 산과 멀리한것이 오랜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책을 읽으며 알았다.야생화에 관심이 있던 시절에는 알던 꽃 이름도 뭐지 하면서 다시 한번 보게 되고 꽃은 그렇게 이름과 함께 저자의 기나긴 인생과 맞닿아 있어 '너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꽃이 되었다.'가 아니라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것은 시간의 점들이 되어 모여서 선이 되고 꽃이라는 형체를 보여 주었다.꽃을 만나는 순간은 지나는 길에서 우연히 만날 수도 있지만 사람이 찾지 않는 높고 험한 곳에서 오래 시간을 들여야 만날 수 있는 꽃도 있을 것이다.그렇게 만나는 순간은 희열이고 힐링이다.꽃도 피는 계절이 다르 듯 사람의 인생도 피는 시기가 다 다르다.책을 읽다보니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 라는 시도 생각이 났다.'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볼품 없는 꽃이라 하지만 어느 시인의 글처럼 자세히 보아야 이쁘고 낮추어 보아야 보이는 꽃들도 있다.그의 이름을 모르고 있다가 그 꽃의 생태와 의미등에 대하여 알게 되면 정말 환희일 때가 있는데 저자의 글은 꽃에 대하여 보다는 자신이나 인생을 엿볼 수 있음이 더 좋았다.차 한 잔 타서 마시며 나도 그 꽃을 마주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내 지난날들을 되새겨 보기도 했다.하나의 꽃은 무수한 꽃으로 한 장의 시간은 저자의 뒤안길을 들여다보는 프리즘처럼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은 다시 모여서 꽃이라는, 한 사람의 인생이라는 형체를 보여주는 것과 같아서 아껴서 보고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내 인생을 통 틀어서 책을 쓴다면 이렇게 쓰는 것도 좋겠다는 나름의 생각도 하게 되었다.어느 꽃을 보면 그 꽃과 함께했던 사람이며 시간이며 그때의 모든것들이 담긴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라 생각한다.추억이 슬프건 기쁘건 자연과 함께 했다는 것은 나쁘지 않은 인생이라 생각한다.인생을 살면서 얼마나 많은 꽃을 만날 수 있을까? 그 꽃의 이름을 다 불러주지는 못하겠지만 얼마 알지 못하는 꽃을 책 속에서 만나는 것도 행복이고 힐링이었다.함께 여행하는 것처럼 행간을 걷다보니 막지막 장은 아쉽기도 했고 더불어 삶을 통틀어 한 권의 책도 내지 못하는 삶도 있을 터인데 기나긴 시간의 데이터를 알토란 같은 책으로 만나 나의 봄은 더 행복한 시간이었고 지난 가을에 너무 좋았던 평창에 있는 국립한국자생식물원을 올 봄여행에서 다시 가려하다 못 가게 된것이 아쉬움이었다.저자도 그곳을 다녀왔다는 챕터를 읽으며 같은 공간에 있음을 잠시 느끼게 된, 그런 곳들의 이야기가 나오면 괜히 반갑고 친근감이 느껴졌고 여행에서 보았던 꽃들을 되새김질 하듯 한번 더 들추어 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앞으로 더 많이 '너의 이름을 ' 을 불러 주어 꽃이 되게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