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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 이야기 (특별판, 양장)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김선형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시녀 이야기』 속 배경이 되는 상상 속의 나라 혹은 미래 사회 ‘길리어드’는 성경의 가르침 중 남성에게 유리한 부분에 근거해 가부장적, 전체주의적 원칙과 신념이 지배하는 사회다. 영문판 『The Handmaid’s Tale』의 헌사 다음 페이지에 적혀 있는 성경 구절이 『시녀 이야기』에는 없다. 본문에 나와 있기 때문에 뺀 것 같은데, 내 생각으론 소설의 모티브가 되는 이 구절이 중요한 부분 같다. (이 자리를 빌어, 관심과 애정 그리고 『The Handmaid’s Tale』을 함께 보내주신 ㅇ님께 감사드린다.)
아브라함의 손자이자 이삭의 아들인 야곱은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멀리 사는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친다. 양치기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기 전, 야곱은 사촌 라헬과 결혼하고 싶은 마음에, 그녀를 위한 7년 무임금 노동을 라반에게 제안한다. 사랑하는 마음에 7년을 하루 같이 기다린 야곱. 하지만, 결혼식 다음날 아침, 술 깨고 정신차리고 보니, 신부는 라헬이 아니라, 언니 레아. 야곱은 라반에게 이게 무슨 경우냐며 크게 화를 내고, 라반은 이 동네는 언니 먼저 시집가야 한다며, 라헬도 아내로 주겠으니 7년 더 일하라고 한다. 7 더하기 7은 14. 그렇게 야곱은 자매를 아내로 맞는다. 야곱이 사랑한 건 라헬 Rachel이지만, 아들을 낳은 건 그의 언니 레아 Leah. 남편의 사랑 없이도 레아는 연거푸 아들을 넷이나 낳는다. 이 부분은 그 때 라헬이 한 말이다.
1.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2. 야곱이 라헬에게 성을 내어 이르되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3. 라헬이 이르되 내 여종 빌하에게로 들어가라 그가 아들을 낳아 내 무릎에 두리니 그러면 나도 그로 말미암아 자식을 얻겠노라 하고 (창세기 30:1-3)
『시녀 이야기』에서도 지체 높은 남자들은 ‘파란 드레스’의 아내를 ‘공급’받고, 아내가 아이를 낳지 못할 경우 ‘빨간 드레스’의 ‘시녀’를 ‘배급’받는다. 시녀는 인격으로서 대우받지 못 한다. 시녀는 인간이 아니다.
우리는 종족을 번식시키기 위해 존재한다. 우리는 첩이나, 게이샤나 창녀가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우리를 그 범주에서 배제시키기 위해 가능한 한 모든 조치를 취했다. 우리들에게서 쾌락의 요소를 철저히 제거했고, 은밀한 욕망이 꽃필 여지도 전혀 없다. 특별한 총애 따위는 그쪽이나 우리 쪽에서 미리 알아서 정리할 테니 사랑이 싹틀 발판조차 있을 수 없다. 우리는 다리 둘 달린 자궁에 불과하다. 성스러운 그릇이자 걸어다니는 성배다. (236쪽)
아내들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들은 남편의 아이를 낳게 될 시녀들을 증오한다. 시녀들은 아이를 낳자마자 눈 앞에서 아내들에게 아이를 빼앗긴다. 시녀의 존재 가치는 ‘출산’으로써만 증명될 수 있기에 시녀는 아이 갖기를 소망한다. 남편은, 지체 높은 남자들은 의례의 밤마다 ‘아이 만드는 의식’에 참여한다. 시녀와 함께. 아내의 손을 잡고 있는 시녀와 함께. 그렇게 셋이 함께.
폐쇄적인 지배체계가 도래하는 방식 또한 놀랍다.
대재앙 직후, 그들은 대통령을 쏘아죽이고 의회를 기관단총으로 쓸어 버렸고, 군대는 계엄령을 선언했다. 당시 그들은 이슬람 광신주의자들에게 책임을 돌렸다.
침착하십시오. 그들은 텔레비전에 나와 말했다. 상황은 완벽히 통제되고 있습니다. ...
그 때가 바로 그들이 헌법의 효력을 정지시켰을 때다. 그들은 한시적인 조치라고 했다. 거리에선 소요조차 없었다. 사람들은 밤마다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지시를 기다렸다. (298쪽)
대통령 사살(체포/감금), 의회 강제 해산, 계엄령. 너무 익숙한 광경이라 눈물이 날 지경이다. 괜찮다, 걱정하지 마라, 동요하지 마라, 일상의 생활을 계속하라. 가만히 있으라.
‘그들’은 거짓으로 사람들을 속이면서 철저하게 물리력에 근거해 자신들의 지배를 확고히 한다. 가임 여성, 임신이 가능한 기혼과 미혼의 여성들을 ‘시녀’로 차출해 가는 과정 또한 의미심장하다.
그들이 동결시킨 거야. 그녀가 말했다. 내 것도 마찬가지야. 여성 단체의 카드도 마찬가지야. M(남성, male)이 아니라 F(여성, Female)라는 글자가 박힌 계좌는 전부 그래. 몇 번 단추만 누르면 되는 일이야. 우리는 철저히 차단당한 거야. (306쪽)
‘그들’은 여성의 은행 잔고를 ‘동결’시킨다. 여성의 돈을, 여성에게서 빼앗으면서부터, 여성의 돈을 남편에게 귀속시키면서부터 비극이 시작된다. 특별 조치를 필두로 여성에 대한, 여성의 몸에 대한 통제가 시작된다. 이제 여성은 돈을 가질 수 없고, 재산을 소유할 수 없고,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될 수도 없다.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 행복한 일인지, 행복했던 과거를 흔적 없이 잊어버리는 것이 절망적인 현재를 사는데 더 나을 것인지 생각했다. 이건 꿈일거야,라고 말하며 악몽에서 현실로 돌아오지 못하고, 또 다시 지옥 같은 현실을 살 때의 절망에 대해 생각했다. 사랑 없는 섹스에 대해 생각했다. 질투에 사로잡힌 여자와 아이 낳는 그릇으로서의 여자, 그리고 그 와중에 여자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남자에 대해 생각했다. 사람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대했을 때,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분노와 슬픔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읽는 시간 내내 무겁고 힘들었다. 무겁고 힘들었는데, 다시 알라딘에 들어가 검색창에 커서를 놓는다. 그리고는 자판을 두드려 이렇게 쓴다.
마거릿 애트우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