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ad 라캉>을 읽고 지젝에게 반한건 사실인데, 잘 쓰는 거다. 이건 동의의 범위를 넘어서는 건데, 친구가 즐겨 쓰는 말로 하면 ‘잘 쓰면 된다!‘의 ’잘 쓰면~‘이 적용되는 상황이다. 잘 쓰면 읽게 되고, 결국 어느만큼은 설득된다는 것이고. 지젝에게 설득되어 그의 다음책으로 고른 건, 바로 이 책. 현재 품절 상태여서 집에서 좀 떨어진 도서관의 책을 상호대차로 받았는데, 일단 만나자마자 기죽어버리는…
저기 너머에 웅크리고 있다가 반납일 다가온대서 2챕터를 읽었다. 챕터 02 “아무 것도 없거든 내가 당신을 사랑한는 말로 읽어라”. 내가 쪼금 안다고 생각하는 기독교와 십자가, 예수님 이야기 나와서 읽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어려웠다. 그러니깐, 내 생각은 틀렸다. 이해할 수 있을거라는, 그런 생각은 다 틀려. “아무 것도 없거든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말로 읽어라.” 당신이 날 사랑하는 걸, 사랑한다는 걸, 전 알아요.
챕터 06은 ‘실체로서뿐만 아니라 주체로서도’였는데, 그 중에 섹스에 대한 부분에서는 결혼과 연결해 설명하는 부분이 많다.
˝누군가와 너무 많이 사랑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과도한 열정적 애착을 치유하기 위해, 그것을 따분한 일상의 관습으로 대체하기 위해 결혼하고, 너의 관계를 의례화해라. 그리고 만약 열정의 유혹을 이길 수 없다면 항상 혼외정사가 있을 것이다…. ˝이다. 따라서 결혼은 사랑에 빠지는 것의 폭력으로부터 치유해주는 재정상화 수단이다. 바스크어로 사랑에 빠지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는maitemindu인데, 직역하자면 ‘사랑에 의해 상처받는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결혼에서 희생되는 것은 대상이다. 결혼의 교훈은 모차르트의 <여자는 다 그래>의 교훈이다. 다른 것으로 대신할 수 있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797)
낭만적 결혼을 따르는 결혼의 교훈은 이렇다. 즉 그 사람과 열정적으로 사랑에 빠졌다고? 그렇다면 결혼하라. 그러면 천박한 경련, 옹졸한 쩨쩨한 짓, 더러운 속옷, 코 고는 소리 등 일상생활 속에서의 그/그녀의 본모습을 볼 수 있을것이다. 여기서 반드시 아래와 같은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즉 결혼은 성을 통속적인 것으로 만들고, 성으로부터 모든 진정한 열정을 제거하고, 그것을 지루한 의무로 바꾸는 것을 기능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800쪽)
근대 자본주의에서 발흥하여 21세기 산업화의 결과이자 한국의 토속화를 거친 ‘딸 하나, 아들 하나, 남편 하나’의 핵가족 속 전업 주부인 내가 읽는 결혼 이야기. 이미 기혼이라는 사실이 내 선택을 옹호할리 없고, 과거 나의 선택을 부정할 생각도 없지만, 결혼이 이런 방식, 이런 양태로 존재 가능하다는 혹은 이렇게밖에 존재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기혼 여성인, 내가 읽는다. 다시 한 번 발견하는 보부아르님의 선견지명. 호텔에서 살고 아이를 낳지 않았고 평생 애인이 있었지.
호텔에 (아주) 가끔 가고 집 안의 주인이자 모든 가사노동의 책임자이며, 섹스 상대가 한 명인 사람이 읽는 결혼 이야기. 사랑을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지젝이 말한다.
그 사람과 열정적인 사랑에 빠졌다고?
그녀/그와 결혼해라. 그녀/그의 본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사랑의 지독한 열정과 희열을 보존하고 싶다고?
결혼하지 마라. 절대로.
부모 없는 4일간 고단한 한국의 고3 살살 달래 깨워서는, 간식 챙겨 학교 보내고 우산 챙겨주고 빠이빠이해준 큰아이가 맛있다고 한 타코를 먹으러 일부러 나왔다. 결혼에 대한 지젝의 말에 대부분 동의하는데, 이런 가능성에 대해서는 지젝도 몰랐겠지 싶다. 타코는 딸롱이랑 먹을 때 맛있습니다. 아니, 더 정확히는 딸롱이가 시킨 퀘사디아가 더 맛있다고 하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