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이 처음 선거에 나왔을 때는 전화를 돌렸다. 리스트를 작성해서는 한 사람, 한 사람 전화를 했다. 결혼할 때보다 몇 배 더 진심이었고, 몇 배 더 정성이었다. 지금은 전화 돌릴 분위기가 아니어서 그냥 찌그러져서 주위만 챙긴다. 엄마, 아빠, 이모. 엄마랑 이모는 순조로웠는데, 아빠가 걱정이다. 화내고 달래고, 싸우고 절하고. 아빠의 선택이 무엇이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아빠도 엄마도 이모도 사전 투표를 마치셨다.
사전 투표율이 20.54 %로 역대 최고라는 기사를 봤다. 일반적으로 사전 투표는 진보 진영 쪽에서 많이 한다고 알려져 있다. 앞서가던 판세가 사전 투표함만 열면 우수수 쏟아지는 저쪽 민심에 보수 쪽에서는 ‘사전 투표’는 모두 ‘조작 투표’라고 주장하던 때도 있었다. 이건 미국도 마찬가지여서 트럼프 지지자들은 우표 투표보다는 현장 투표를 선호한다는 기사를 봤다. 사전 투표율이 왜 역대 최고일까. 편리성에 더해 사람들이 일찍 투표에 참여하게 하는 동인은 뭘까. 기자들은 이런 걸 취재할 생각은 1도 하지 않고, ‘사전 투표율 역대 최고 – 아직은 오세훈에게 유리’ 같은 기사를 쏟아낸다. 언론을 믿지 못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번 선거는 좀 심하다.
하지만 언론만을 탓하랴. 이명박이 전과 13범이었다는 걸 몰랐을까. 아니다. 전과 13범이어도 괜찮으니 아파트값만 올려다오.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에 투표했다. 광화문에 명박산성이 세워지고 나서도,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걸 지켜보았으면서도 다음 대통령은 박근혜였다. 나의 투표 원칙은 오로지 하나, 더 나쁜 놈 고르기다. 나쁜 놈을 고르기 어려우면 더 나쁜 놈을 고르면 된다. 나쁜 놈 vs 더 나쁜 놈.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이 무려 61년간 싸워서 얻게 된 참정권을 그냥 모른 척하기에는 선배들의 노력이 너무나 찐하고 눈물겹다. 세상을 완벽하게 바꿀 수는 없겠지만 더 나은 세상은 반드시 투표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난, 믿는다.
친구들은 모두 예쁜 벚꽃 사진을 보내줬는데 내 사진은 별로다. 금요일 오후, 사전투표를 마치고 벚꽃이 흐드러진 도로를 걸으며 핸드폰을 내밀었지만, 마음에 드는 컷이 하나도 없다. 정성이 부족한가. 우리 동네 벚꽃들이 유독 안 예쁜가. 친구는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다정하게 위로해줬는데, 그래도 나는 계속 걱정하고 있나 보다. 눈처럼 날리는 벚꽃은 아무 걱정 없이 예쁘기만 한데, 예쁘지도 않은 나는 걱정으로 벚꽃 예쁜 줄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