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라 스미스는 설득력 있는 한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이성애 특권은 흑인여성이 누릴 수 있는 유일한 특권이다. 우리 중 그 누구도 인종이나 성에 따른 특권을 누리지 못한다. 우리들 거의 모두가 계급특권을 누리지 못한다. ‘동성애자가 아니라서 똑바른 처지를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최후의 보루다.” (223)

 


이성애자 흑인여성들이 흑인 레즈비어니즘에 대해 침묵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정상성으로 인정받는 창구가 단 하나, 이성애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성애 여성이라는 사실이 다른 불합리를 상쇄시키지는 않았다. 여성이라는 점, 흑인이라는 점, 여성인데다가 흑인이라는 건, 그들이 속한 세계의 제일 밑바닥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백인남성이 흑인여성에게 가한 성폭력의 역사를 고려하자면, 백인 파트너를 선택하는 흑인여성 개개인은 집단적인 차원에서 흑인여성에게 이 고통스런 역사를 상기시킨다. 이러한 관계를 역사적인 주인/노예 관계를 상기시키기에 흑인집단의 아픈 곳을 다시 헤집는 것이다. (282)

 


백인남성은 백인여성을 선호했고, 흑인여성을 착취했다. 백인여성은 백인남성을 선호했고, 새로운 욕망의 대상으로 흑인남성을 선택하기도 했다. 흑인남성은 백인여성을 한없이 숭배했고, 흑인여성 중에서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선택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마약, 범죄 행위, 구금 등의 이유로 젊은 흑인남성의 숫자가 한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흑인여성은 백인남성을 파트너를 선택할 경우 흑인공동체에서 인종배신자또는 창녀로 비난받았고, 흑인남성은 백인여성이 손짓만 해도 뛰쳐나갔다. 그러니, 고된 노동의 현장에서 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면에 있어서도 흑인여성들은 이 세계의 밑바닥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골라 둔 책은 이렇게 3권이다. 『빌러비드는 내용은 알고 있지만 반드시 읽어야할 책으로 말하자면 고전 중의 고전이고, 『컬러 퍼플』 역시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책이다.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라고 한다면, 이 책을 읽은 후에 이 여성을, 이 작가를, 마야 안젤루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다. 그녀의 솔직함과 용기, 그리고 도전정신은 그녀의 단어와 문장, 문체 속에 물고기처럼 팔딱팔딱 살아있다. 같은 세계를 사는 인간으로서 그녀에게 무한한 애정과 존경의 마음을 갖게 된다. 올해의 책 후보라 할 수 있겠다. 『딸에게 보내는 편지, 『엄마, 나 그리고 엄마도 찾아 보려고 한다. 그리고 또 다른 흑인여성의 서사인 린다 브렌트 이야기.  















흑인 노예여성 해리엇 제이콥스는 린다 브렌트라는 가명으로 자서전을 출간했다. 노예 여성들이 겪는 성적착취와 학대 문제를 다룬 책으로 탈출과 유폐 생활, 자유주로의 재탈출까지의 과정을 세세히 기록했다. 특히 그녀의 할머니가 판매되기 위해 경매장에 세워지는 모습에서는 노예제도의 비극 뿐 아니라 의 잔인함이 엿보인다.

 

백인에 가까운 밝은 피부색의 할머니는 오랜 세월 크래커와 통조림을 만들어 판매할 정도로 수완이 좋았고, ‘마사 아주머니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평생 동안 백인 가족에게 충실한 하녀였기에, 이전 주인은 유언으로 할머니에게 자유를 약속했고 이미 많은 사람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사위 플린트씨는 이제 그의 재산이 된 할머니를 개인적인 거래로 판매하려고 한다. 할머니는 그의 비열한 제안을 거절하고, 공개 경매대 위에 선다.

 

 

말도 안 돼! 마사 아주머니를 판다니 말도 안 돼! 어서 내려와요! 거기는 아주머니가 있을 자리가 아니에요!” 할머니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조용히 운명을 기다리고 서 있었다. 아무도 그녀를 사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마침내 어디선가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50달러.”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독신으로 살아온 일흔 살 된, 할머니 주인의 언니였다. 40년 가까이 할머니와 한 지붕 아래 살았기 때문에 할머니가 주인 가족들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녀가 자신의 권리를 얼마나 잔인하게 빼앗겼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할머니를 보호하기로 나선 것이다. 경매사는 더 높은 경매가가 나오는지 기다렸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녀의 바람을 존중했다. 아무도 더 높은 가격을 부르지 않았다. 그녀는 글을 읽고 쓸 줄 몰랐기 때문에 매매계약서에 십자가를 그어 서명했다. 그런 다음 인간다운 정이 넘치는 넓은 가슴으로 어떤 일을 했겠는가? 그녀는 할머니에게 자유를 주었다. (23)

 

 

이 모든 것은 돈의 문제다. 흑인은 인간이라기 보다는 동물에 가까운 존재라는 거짓말로 노예제를 옹호했던 것도, n번방 때문에 온 나라가 그렇게 떠들썩했는데도 트위터에 이와 유사한 영상이 유포되는 것도. 모두 마찬가지다. 돈 때문이다. 다른 사람은 상관 없고, 다른 사람의 고통이나 괴로움은 상관없고 돈벌이가 되는 일이라면 나는 할 수 있다,라는 그 천박하고 잔인한 생각이 이런 끔찍한 장면을 만들어냈다. 흑인여성이 소나 말처럼 경매대에 세워져 고통받던 그 시간부터 바로 지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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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6-04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나의 책을 읽고 다른 책이 읽고 싶어진다는 건 참 근사한 일인 것 같아요. 책을 읽는 기쁨 중에 하나이기도 하고요. 저는 [빌러비드] 사두었는데 그걸 읽고 싶은 마음보다는 [컬러 퍼플]을 읽고 싶은 마음이 더 커요. 아직 사지도 않앗지만요 ㅎㅎ 컬러 퍼플 아주아주 오래전에 영화로 보면서 되게 기막혀했던 감상이 남아 있거든요.

맨 위에 인용하신 223쪽의 글이요. 저 부분은 저도 인상적으로 읽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흑인 여성 레즈비언은 가장 밑바닥일 수밖에 없겠구나. 여성이면서, 흑인이면서, 동성애자라니. 여성도, 흑인도, 동성애자도 무엇하나 잘못된 것도 그릇된 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밑바닥에 위치하는 비정상성이라니, 이 얼마나 잔인한 세상인가요.


그건 그렇고, 저는 참 좋으네요, 단발머리님.
오늘 이 글을 읽으면서 문득, 내가 알라딘을 통해 단발머리 님이라는 친구를 사귈 수 있었던 건 얼마나 행운인가 싶어요. 단발머리님에 대한 애정이 폭발합니다...넘쳐흘러요.....

저는 최근에 읽고 쓰기에 대한 욕망이 사라지고 있는데, 단발님은 멈추지말고 읽고 써주세요, 아셨죠?

단발머리 2020-06-04 14:22   좋아요 0 | URL
[빌러비드]는 사실 오랜 숙제같은 책이지요. 전 요즘 그런 생각을 해요. 이미 내용을 알고 있으니까요. 내가 좀 더 일찍 [빌러비드]를 읽었더라면 나는 그 선택에 동의할 수 있었을까. [흑인 페미니즘 사상]을 읽고, [린다 브렌트 이야기]를 읽은 후에 나여야 비로서, [빌러비드]를, [빌러비드]의 선택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요. 그니까 [빌러비드]를 전 최강으로 생각하고 있답니다^^

맥락 없는 글인데도 읽어주시는 다정한 다락방님이 계셔서 저도 참 좋아요.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우리가 친구가 된 것이 행운이라 말해줘서 감사하구요. 알라딘서재에서 혼자 낄낄대며 다락방님 글을 찾아읽고, 새 글이 올라오기를 기다리던 그때부터 한결같이 전 다락방님의 팬이에요. 팬으로서 친구로 여겨진다는 건 진짜 대단한 성공 아닙니까? ㅎㅎㅎㅎㅎㅎ

그래서 팬의 입장으로 말씀드리자면, 기다리는 수많은 팬들을 위해, 다락방님도 멈추지 말고 읽고 써주세요!! 저도 그렇게 할께요!

다락방 2020-06-04 14:28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 2020-06-04 14:33   좋아요 0 | URL
😍

잠자냥 2020-06-04 14:38   좋아요 0 | URL
아니 왜요? 왜! 읽고 쓰기에 대한 욕망이 사라지고 있습니까????
비밀이에요?? 잡아봐도 말 안해주실 건가요? ㅋㅋㅋㅋㅋ
좀 쉬시다가 그 욕망이 다시 생기길 바랄게요~

다락방 2020-06-04 14:47   좋아요 0 | URL
지극히 사적인 이유로............... 하아-
다시 쓰고싶어지겠죠? ㅠㅠ

단발머리 2020-06-04 14:50   좋아요 0 | URL
이제 잠자냥님과 제가 다락방님 쫓아가고 다락방님이 ‘나 잡아봐라~~!!’ 할 때인가요? ㅠㅠ 쪼금만 아주 쪼오금만 쉬시고요 다시 읽고 쓰기의 욕망이 불타오르리라 믿쑵니다! 🔥🔥

2020-06-04 17: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6-04 19:0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