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꿍은 여러 짝꿍이 있다. 책 짝꿍이 있고, 페미니즘 짝꿍이 있고, 커피 짝꿍이 있고, 패션 짝꿍이 있고, 아멘 짝꿍이 있고, 피아노 짝꿍이 있다. 인생 짝꿍도 있고. 그리고 영어 짝꿍이 있다.
영어를 못해 한결같이 슬픈 나. 영어를 더 잘하고 싶은 영어 짝꿍. 한마음 한 뜻으로 야심찬 계획을 세워서는 ‘원서 함께 읽기’를 진행 중이다. 달팽이와 비슷한 속도이기는 한데, 아무튼 진도라는 게 있기는 하다.
Josh points the remote control at me and says, “If people knew you, they would love you.” He sounds so matter-of-fact.
Josh, you break my heart. And you’re a liar. Because you know me, you know me better than almost anybody, and you don’t love me. (223)
나, 라라 진은 언니의 전 남친 조시를 아직 좋아하고, 나의 가짜 남친 피터는 아직도 전 여친 제너비브에게 휘둘리는 상태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하고 있는 사람이 다른 복잡한 상황.
어떤 사람을 잘 알고 있고, 그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이 편안하고 두 사람 모두 행복한대도 불구하고 그 사람과 연인이 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비슷한 배경, 비슷한 취향, 비슷한 감성임에도 두 사람의 만남이 꼭 사랑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물론 눈빛이 빛나고 격정적인 사랑을 불태웠던 두 사람이 서로간의 케미가 물과 불 같음을 깨달을 수도 있다. 그렇게 사랑은 눈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버린다. 카를로 로벨리는 『모든 순간의 물리학』에서 열은 뜨거운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이동한다고 말했다. 이것이 과거와 미래를 구분하는 기본적인 현상이라고 했다. 김동률은 이소라와 함께 부른 <사랑한다 말해도>에서 “난 네 앞에 서 있어/ 너는 생각에 또 잠겨 있네/ 함께 있어 더 외로운 나/ 어쩌다 이렇게”라고 노래했다.
영원하지 못할게 확실한 유한의 존재 앞에, 변해버린 사랑은 죽음에 대한 확실한 예고다. 사랑은 떠났고 그리고 나 역시 그러할 것이다. 너는 나를 아는데도, 나를 그렇게 잘 아는데도, 날 사랑하지 않잖아. 나를 알게 되면 날 사랑하게 될 거라니, 넌 거짓말쟁이야. 넌 날 사랑하지 않잖아. 라라 진이 되어 말해 본다. 넌 날 사랑하지 않잖아.
읽기는 계속하고 있는데 한동안 놀아서 그런가 쓰기가 잘 안 된다. 이 모든 것은 다 『제2의 성』 때문이다. 『제2의 성』은 충분히 길고,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훌륭하며, 완벽하게 완벽한 책이다.
일단은 라라 진에게 돌아간다. 넌 날 사랑하지 않잖아, 바로 이 지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