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장소, 맥락은 기억나지 않지만 또렷이 기억나는 “20세기의 교양이 도스토예프스키라면 21세기의 교양은 뇌과학”이라는 문장. 교양하고는 거리가 멀지만 아는 것이 없어 알고 싶고, 아는 것이 없어 궁금한 ‘뇌’에 관한 책을 펼친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 이렇게 새 책일 때, 게다가 상호대차한 책이 이렇게 새 책일 때, 쾌재를 부르는 나 이 사람. 진정한 ‘독서가’가 되기는 아직도 한참 멀었나 보다. 진정한 독서가는 책을 읽는 사람이 아니라, 책을 사는 사람이라고, 그래서 다른 책, 또 다른 좋은 책이 ‘나오게끔’ 해주는 사람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내게는 아직도 움베르트 에코식 강박이 강렬해 아침에는 집중이 필요한 책, 밑줄을 그으며 읽는 책, 공부라는 느낌이 나는 책, 일테면 성경, 페미니즘 관련 도서, 영어책 등을 읽고, 오후나 저녁, 주말에는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 책상 혹은 식탁이 아니라 소파에 앉아서/누워서 읽을 수 있는 책, 소설, 에세이류를 읽는 게 보통인데, 오늘 아침엔 왠지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를 읽고 싶다. 새 책이라 그렇다.

의식은 명료했지만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다. 저절로 손과 팔이 앞뒤로 흔들리고 몸통과 엇갈리는 것을 보고 있자니 내 몸이 정상적인 인식 기능을 잃어버린 듯했다. 긴밀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던 몸과 뇌의 연결에 문제가 생긴 것이 분명했다. (참고로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그림은 왼쪽이 뇌의 앞부분이다.) (23쪽)
도서관 3층 커피숍 이전 사장님은 너무 친절하셨는데 설명하기 어려운 오묘한 맛의 카페모카를 연달아 내놓으시더니 가게마저 금방 내놓으셨다. 새 사장님은 친절하신데다가 커피와 샌드위치, 파니니 등이 하나같이 모두 맛있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게 아니라서, 아침, 점심, 오후 어느 때든지 도서관 3층은 항상 사람들로 북적댄다. 커피를 좋아하되 종종 카페인 부작용 증세가 있는 나는, ‘반샷’만 넣고 싶어 ‘샷, 반만 넣어주세요’라고 부탁드린다. 내 의도는 ‘샷을 반만 넣어주세요!’인데 사장님은 ‘네, 그럼 우유를 더 넣어 드릴께요’라고 응대해 주셔서 커피값도 저렴한데 매번 죄송하다.
오늘도 카페라떼를 받아들고 “고맙습니다” 대신 “잘 먹겠습니다”를 할 뻔했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어떤 말이 더 적합한 말인지 모르겠다. 두 문장 다 내 마음을 표현한 말이기는 하다.
고맙습니다, 사장님. 잘 마실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