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스 기획 총서 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은 1권 『양성평등에 반대한다』이다. 33쪽, 양성은 두 개처럼 보이지만, 여성성 하나만 존재한다. 남성성은 젠더가 아니다.
이분법은 반반으로 분리된 상황을 묘사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주체와 타자가 하나로 묶인 주체 중심의 사고다… 주체(one)가 자신의 경험을 중심으로 삼아 나머지 세계인 타자(the others)를 규정하는 것, 다시 말해 명명하는 자와 명명당하는 자의 분리, 이것이 이분법(dichotomy)이다. 즉 이분법은 대칭적, 대항적, 대립적 사고가 아니라 주체 일방의 논리다. … 젠더(gender)는 남성의 여성 지배를 의미한다. 양성은 두 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성성 하나만 존재한다. 남성성은 젠더가 아니다. 남성적인 것은 남성적인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양성평등에 반대한다』, 33쪽)
신간 『미투의 정치학』은 출판사도 같고 외양도 시리즈 분위기인데 왜 ‘도란스 기획 총서’가 아닌지 모르겠다. 지난주부터 예약판매 중인데, 며칠 전에 책을 주문하면서 이 책은 주문하지 않았다. 이전에 예약판매한 책을 구매한 적이 있는데, 예약판매 기간이 끝난 후 구매할 경우 더 빨리 배송받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대신 매일 ‘수령예상일’을 확인한다. 오늘까지는 2월 12일. 책을 하루 더 일찍 받는다고, 하루 더 빨리 읽는다고 뭐 그리 큰 일이냐 할 수 있겠지만, 그게 또 팬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팬심을 간직하며 선택한 올해의 명절책은 『혼자서 본 영화』이다. 다시 읽기마저 탁월한 명절의 선택. 이 책은 다른 어떤 책보다 ‘개인’으로서의 정희진, ‘인간’으로서의 정희진을 보여준다. 그렇게도 애절하게 ‘보고 싶어요’라고 고백하게 했던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얼마나 힘들게 했던지. 나는 그녀의 독한 어머니를 사랑하고 또 그만큼 두려워한다.
엄마에게 칭찬을 받은 기억이 없다. 칭찬은커녕 지적도 아니고, 엄마는 무슨 기운이 그토록 남아도는지 놀라운 기세로 늘 내게 악담을 퍼부었다. 나는 엄마 말이 진리인 줄 알고 무조건 빌고 노력했다. (139쪽)
영화는 재현(렌즈)를 통해 현실을 보여준다. 렌즈는 다양하기 때문에 각자의 렌즈에 따라 당파적으로, 보고 싶은 것만 볼 수 있는데(15쪽), 이 책의 렌즈는 정희진이다. 그녀의 눈으로, 그녀가 본 영화들을 보여준다. 이와이 슌지의 <릴리 슈슈의 모든 것>에 대한 글의 제목은 ‘지옥에서 탈출하는 법’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주체이자 타자이다. 물론 이것은 곡예다. 주체가 되는 방식은, 여성이지만 남성의 규범을 따르는 ‘주변부 남성’이 됨으로써 가능하다. 타자 되기는 전략적 선택일 수도 있고 낙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성폭력과 성매매라는 제도에 강제당함으로써 성적 타자로 만들어진 상태에서는, ‘반여성’이 되어야 한다. 남자들이 원하지 않는 여자가 되어야 한다. 이 영화에서는 삭발, 즉 자원으로서 외모를 버리는 것이다. (106쪽)
남자들이 원하지 않는 여자가 되는 것. 이론적 설명과 난해한 독해 없이도, 그 영화를 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다움, 아름다움을 버림으로 얻게 된 자유, 피해자 역할을 거부하는 저항의 힘, 그리고 쓸모없는 여자가 됨으로써 살아남는다는 것의 의미를(104쪽).
홍광호-서인국-조인성-송중기-노아 센티네오-베네딕트 컴버배치-박보검을 지나 다시 홍광호로의 긴 여행. 아무런 공통점없는 매력남들의 잦은 내왕은 스스로를 자책하게 하는데, 아, 나는 그녀의 이런 문장을 읽는다.
‘실은’, 마크 러팔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다. 좋아하는 배우가 한둘이 아니지만, 나는 정말 지조가 없지만, 이 배우 정말 멋있다. (46쪽)
기회가 된다면, 기회가 주어진다면, 언젠가 나는 이 문장을 똑같이 써보고 싶다. 나는 정말 지조가 없지만 이 배우 정말 멋있다. 이런 식으로. 기회는 기다리는 자를 기다려주지 않기에 지금 바로 응용해 본다. 나는 정말 지조가 없지만 박보검 정말 멋있다. 이런 식으로.
내가 사랑하는 건 박보검이 아니라 정희진이라는 걸, 나는 안다.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