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트완 드 생텍쥐페리
Antoine de Saint-Exupery
생텍쥐페리는 1900년 프랑스 리옹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4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친척들의 성에서 시를 쓰거나 작은 모험들을 하면서 자유분방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12 살에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나는 경험을 하고, 기숙사에서 독서와 고독을 즐기며 문학에 눈뜨기 시작했다. 1921년 제2 전투비행 연대에 소속되어 군 복무를 시작했는데, 처음엔 정비부대 소속이었으나 개인 교습으로 조종 면허를 취득하여 조종사가 된다.
1926년 민간 항공사에 입사한 생텍쥐페리는 프랑스와 아프리카에서 다양한 항공 업무를 경험 했고, 이 시기에 항로 개척자들의 노력과 희생을 기록한 『남방 우편기』를 집필한다. 1929년 아르헨티나의 항공사로 이직하여 파타고니아 노선 확장에 참여하고, 1931년 『야간 비행』으로 페미나상을 받으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어 1936년 <파리 스와르> 신문의 마드리드 특파 원으로 스페인 내전을 취재하는데, 이를 계기로 『인간의 대지』를 쓰고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소설 대상을 받는다.
전쟁이 임박했음을 직감한 생텍쥐페리는 공군에 입대하여 여러 작전에 참여했으며, 『전시 조종사』를 발표한다. 그리고 1940년에 미국으로 이주하여 『어느 인질에게 보내는 편지』, 『어린 왕자』, 『성채』 등을 집필한다.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자, 프랑스 공군으로 모로코에 있는 항공 부대에 복귀했는데, 연합군의 프로방스 상륙작전을 앞두고 1944년 7월 31일 정찰 비행에 나섰으나 영영 돌아오지 못한다. 훗날 생텍쥐페리 이름이 새겨진 팔찌와 정찰기의 일부 잔해들이 남프랑스 마르세유의 지중해 연안에서 잇달아 발견되었다.

야간 비행 : 세계문학그림책 | 이산호 저자(글) · 구남훈 그림/만화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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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목숨이 가치를 매길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고 해도 우리는 항상 그것보다 더 가치 있는 뭔가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비행기 아래로 보이는 야산들은 황금빛 노을 속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들판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빛으로 반짝였다.
조종사 파비앙은 남쪽 끝 파타고니아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를 향해 갔다.
이따금 그는 인적 없는 대초원 위를 날다가 외딴 농가를 만나면 날개를 흔들어 인사를 보내곤 했다.
그는 행복한 정박지로 들어가고 있었다.

칠레와 파라과이발 우편기들도 오고 있었다.
이들이 도착하면 오늘도 마무리될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비행기를 출발시켜야 하는 총책임자 리비에르는 쉴 수가 없었다.
리비에르는 처음으로 자신이 늙고 지쳤다고 느꼈다.
그는 삶에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들을 노년에 시간이 날 때로 조금씩 밀쳐내고 있었다.
언젠가는 정말로 시간이 날 것처럼.

‘규칙이란 부조리하게 보이지만 인간을 만드는 종교 의식과 같다.’ 정당하냐 부당하냐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리비에르에게 인간이란 새로 빚어야 할 밀랍과 같았다.
그는 이 재료에 영혼을 불어넣었고, 의지를 창출해냈다.
그 결과 직원들은 날씨가 호전되기만을 기다리는 것을 수치로 여겼다.
그들은 구름의 틈새라도 발견하면 서로 소리쳤다.
"북쪽이 개었다. 자, 출발!"

리비에르는 조종사 펠트랭과 외출했던 감독관 로비노를 호출했다.
"펠트랭과는 좀 가까워졌나?"
그는 입가에 서글픈 미소를 띠며 호통치듯 말했다.
"자네는 그 조종사에게 위험한 비행을 하도록 명령을 내릴 수도 있네.
그 조종사는 자네에게 무조건 복종해야 하네.
만약에 그가 우정 때문에 자네의 명령에 복종한다면 자네는 그를 기만하는 것과 다름없어."
그는 당부했다.
"부하들을 사랑하게. 그러나 그것을 결코 입 밖으로 내선 안 되네."

리비에르는 나이 든 정비사 로블레를 해고했다.
아르헨티나 노선 초창기에 비행기를 조립한 20년 경력의 정비사였지만, 그가 책임을 다하지 못해 비행기 고장을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한번만 다시 생각해 주십시오. 저는 평생을 바쳐 일했습니다."
리비에르는 나이 든 정비사의 쭈글쭈글한 손이 덜덜 떨리는 것을 바라보았다.
"본보기입니다. 본보기로 희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가 매정하게 내쫓은 것은 그 정비사가 아니라, 그로 인해 발생한 잘못이었다.
그것은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질 것이 분명했다.
‘잘못의 매개자를 발견했는데도 그냥 넘어간다면 그것은 범죄 행위이다.’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깬 조종사의 아내는 그를 좀 더 자게 두었다.
남편의 휴식은 곧 돌격해야 할 예비군의 불안한 휴식 같은 것이었다.
한 시간 후면 남편은 유럽행 우편 항공기의 운명을 짊어지게 될 것이다.

비행에 나가기 전, 머리를 손질하는 남편에게 아내가 말했다.
"당신 참 멋있어. 별들에게 잘 보이려고? 질투가 나네요."
그는 웃으며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그는 집을 나섰고, 그녀는 남겨진 꽃, 책, 온기를 슬프게 바라보았다.

리비에르가 그 조종사를 맞이했다.
"지난번 비행에서 큰 실수를 했더군. 무서웠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회오리바람까지 몰아쳤고, 엔진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아니. 날씨는 좋았고 엔진도 아무 문제가 없었네. 자네 상상이 지나쳤어."
리비에르는 야간 비행에 대한 공포심을 없애 주기 위해 매몰차게 조종사를 다그쳤다.
그는 모든 사태에 대응하도록 직원들을 엄하게 단련시켜야만 했다.
‘남에게 사랑받으려면 동정심을 보여 주는 것으로 족하다.
그러나 나는 동정심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정부 관료들은 폭풍우와 안개, 밤의 온갖 장애물 속에서 비행하는 것을 군용 비행기나 할 수 있는 모험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야간 우편 비행이 실패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리비에르는 조종사들을 설득했다.
"우리에게 야간 비행은 사활이 걸린 문제이다.
우리가 낮에 기차와 배보다 앞섰던 거리를 밤마다 까먹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의 의지와 결단력 때문에 성공했다고 평가했으나, 그는 자신이 올바른 방향으로 전진했기 때문이라고 자평했다.
해 뜨기 한 시간 전에 비행기를 출발시키고, 해지기 한 시간 전에 무조건 착륙하게 하면서 야간 우편 비행을 정착시킨 것이다.

파타고니아 우편기는 폭풍우에 다가가고 있었다.
비행기는 난기류에 요동치며 곤두박질쳤다.
파비앙은 위험을 감지하고 회항하려 했으나 비행 각도를 1도도 바꿀 수 없었다.
무전사가 무전을 쳤다.
"사방이 막혔음. 1천km에 걸쳐 폭풍우가 발생하여 회귀 불가능."
파비앙은 삼십 초마다 나침반을 들여다보았지만, 비행기의 위치조차 파악할 수 없었다.
암흑 속에 완전히 포위되어버린 것이다.

"응답이 없나요?"
무선국에서 정비사들은 실험하듯 기기를 만졌다.
"응답 없음."
파비앙의 목소리, 그의 웃음이 사라진 것이다.
연료가 바닥나서 더 이상의 비행은 불가능해졌을 것이다.
리비에르는 온몸에 힘이 풀리는 듯했다.
하지만 그는 로비노에게 지시했다.
"파타고니아 우편기를 기다릴 수만은 없네.
유럽행 우편기의 이륙을 준비시키게."

파비앙의 아내는 새벽 1시쯤 남편이 가까이에 와있는 것처럼 느꼈다.
하늘 위가 추웠을 거라 생각한 그녀는 식사와 따뜻한 커피를 준비했다.
그리고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파비앙 씨 착륙했나요?"
"악천후 때문에 늦어지고 있습니다."
"연착인가요? 그럼 몇 시에 도착하나요?"
침묵이 흘렀다.

"아! 날씨가 많이 나쁜가요?"
"무언가 소식이 오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이군요!"
비극적인 사건에서 감정적인 요소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사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사람의 목숨이 가치를 매길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고 해도, 우리는 항상 그것보다 더 가치 있는 뭔가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것이 진짜 존재한다면 과연 무엇일까?
리비에르는 사랑보다 더 중대한 의무가 있다고 느꼈다.
그것을 영원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

그는 잉카의 태양 신전을 떠올렸다.
‘산 위에 세워진 돌기둥이 없었다면 이 문명에 무엇이 남아 있겠는가?’ 옛 지도자는 개인의 고통보다 종족의 소멸에 대해 연민을 느끼고 사람들에게 사막에 매몰되지 않을 돌기둥을 세우게 했을 것이다.

파비앙은 심하게 진동하는 비행기를 통제하는 데 집중했다.
주변은 하늘과 땅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한 암흑이었다.
결국 그는 고도 감각을 상실하고 말았다.
덫 속의 치명적인 미끼처럼 별들이 폭풍의 찢긴 틈 사이로 반짝였다.
그쪽으로 올라갔다가는 다시는 내려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결국 별을 향해 솟아올랐다.
보름달과 밤하늘의 별들이 아름다운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파비앙은 뒷좌석의 무선사를 돌아보았다.
"이제 우리는 끝났어."
그들은 보석이 가득 찬 방에 갇혀서 다시는 그 방을 빠져나올 수 없는 동화 속 도둑 같은 처지가 되고 말았다.

파비앙의 아내가 회사로 왔다.
리비에르는 그녀에게 기다리는 것 외에 달리 어쩔 도리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어깨를 살짝 들썩였다.
그것은 마치 ‘집에 가서 다시 보게 될 램프, 저녁 식사, 그리고 꽃들…….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겸손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갔다.
"그들은 결혼한 지 6주밖에 되지 않았답니다……."
로비노가 말했다.
그녀가 남편의 죽음을 내일에서야 실감할 거라고 생각하며 리비에르는 울적한 기분으로 의자에 앉았다.
로비노는 리비에르를 위로할 적당한 말을 찾지 못했다.
"지시할 것이 있으신지요?"
"유럽행 우편 항공기를 이륙시키게."
리비에르가 손목시계를 보더니 딱 잘라 말했다.

조종사들은 파비앙의 행방불명에 대해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리비에르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다른 우편 항공기의 안전한 비행을 확인했다.
우편물들이 유럽행 비행기에 실렸다.
"다 실었나? 그럼, 출발!"
엔진에 시동이 걸렸다.
비행기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상공을 지나갈 것이다.
리비에르는 비행기의 엔진 소리를 듣고 싶어 유리창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그가 한 번이라도 출발을 중지시켰더라면, 야간 비행을 계속할 명분은 사라졌을 것이다.
오직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중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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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네덜란드는 빛과 어둠이 극명하게 교차한 시기였습니다. 스페인과 치열한 독립전쟁을 벌여 엄청난 경제적 성장을 이루었지만, 투기 열풍이 불어 파산자도 속출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네덜란드의 국민화가 렘브란트도 이 시기 네덜란드에서 활동했습니다. - P421

드디어 렘브란트군요. 그의 작품 야간순찰이 라익스 뮤지엄 한가운데 멋지게 걸려 있다고 말씀하셨잖아요.
맞습니다. 그는 격동의 시대를 지나온 네덜란드를 누구보다 생생하고 깊이 있게 그려냈죠. 덕분에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 세계 미술 애호가와 네덜란드 국민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습니다. - P421

않은 곳에서 방앗간을 운영했는데요. 렘브란트를 중등 교육기관인 라틴어학교와 대학에 진학시킨 것으로 미루어 교육 열정이 대단했던 듯합니다.
정작 렘브란트는 공부에 흥미가 없었나 봅니다. 대학을 금방 그만두고 그림 공부에 전념했거든요. 어릴 적부터 미술에 소질을 나타낸 렘브란트는레이던에서 선배 화가들에게 3년간 그림을 배웁니다. 그리고 암스테르담으로 옮겨 6개월간 기본기를 다지죠. 1625년 렘브란트는 레이던으로 돌아와 작업실을 열고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을 걷습니다. 그의 나이 19살이었습니다. 공방을 연 이듬해에 그린 그림을 볼까요. 다음 페이지에 있는그림입니다. - P423

렘브란트,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1632년, 마우리츠하위스
 암스테르담 외과 의사 조합은 매년 해부학 공개수업을 열고, 5~10년에 한 번씩 유능한 초상화가에게 그림을 의뢰했다. 렘브란트가 26세에 그린 이 작품에서그의 초기 초상화 실력을 엿볼 수 있다. - P425

렘브란트는 젊은 시절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50대 들어 재산을 몽땅 잃고 요즘으로 치면 신용불량자 같은 신세가 됩니다. 노년기의 자화상을 보면 젊었을 때의 자신감은 온데간데없고 초라한 노인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때 그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우선 전성기 시절의 렘브란트부터만나보겠습니다. - P432

암스테르담에서 유명해진 젊은 렘브란트는 1634년 전직 시장의 딸 사스키아 오일렌부르크와 결혼합니다. 성공 가도를 달린 렘브란트의 삶은 선술집의 탕자라는 작품에 그대로 드러납니다. 결혼 이듬해에 그린 다음 페이지의 작품에서 렘브란트는 성경에 등장하는 돌아온 탕자를 주제로 삼있습니다. - P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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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번째 전사
마이클 크라이튼 외 감독, 안토니오 반데라스 외 출연 / 키노필름 / 2015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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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보고서] 『13번째 전사』
― 야만인의 땅에서 전우를 만나다

“내 이름은 아메드 이븐 파할란, 이븐 알라바스, 이븐 라시드 이븐 하마드.”

1999년 존 맥티어난 감독의 『13번째 전사』는 오래전에 처음 보았을 때는 그저 거칠고 묵직한 바이킹 액션영화였다. 안개 속에서 나타나는 벤돌, 곰가죽을 뒤집어쓴 전사들, 산등성이를 거대한 불의 용처럼 내려오는 횃불의 행렬, 그리고 죽음을 앞두고 발할라를 이야기하는 불바이와 북구 전사들의 모습이 강하게 남았다.

그런데 다시 들여다보니 이 영화에는 생각보다 많은 것이 들어 있었다. 실제 10세기 아랍 여행가 아흐마드 이븐 파들란의 기록을 출발점으로 삼고, 그 위에 고대 영웅서사시 『베오울프』의 이야기를 얹었다. 실존 인물을 전설 속으로 밀어 넣고, 신화 속 괴물을 인간으로 바꾸고, 서로 말조차 통하지 않던 아랍인과 북구인들을 열세 명의 전사로 묶는다.

한쪽에는 세계 최고의 도시라고 자부하는 바그다드에서 온 시인 아메드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그가 처음에는 야만인이라고 여겼던 북구의 전사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 앞에는 사람인지 괴물인지조차 알 수 없는 벤돌이 나타난다.

그러면서 영화는 단순하지만 꽤 묵직한 질문 하나를 던진다.

서로 말도 통하지 않고, 믿는 신도 다르고, 살아온 방식도 전혀 다른 사람들이 과연 서로를 이해하고 목숨까지 맡길 수 있는가.

『13번째 전사』는 그 답을 열세 명의 전사들에게 맡긴다.


1. 바그다드의 시인, 사실상의 유배길에 오르다

아메드 이븐 파들란에게 세상의 중심은 바그다드다. 글을 읽고 시를 쓰며, 예법과 문명을 알고 살아온 사람이다. 그러나 권력자의 아내와 불륜 관계를 맺은 것이 문제가 되면서 머나먼 북쪽으로 사절 임무를 받아 떠나게 된다. 명목은 외교사절이지만 영화 속 아메드의 처지에서 보면 사실상 추방이고 유배다.

그렇게 문명의 중심에서 살던 시인이 자신이 ‘야만인의 땅’이라고 여기는 곳으로 밀려난다.

아메드가 처음 만난 북구인들은 자신이 살아온 세계와 너무 다르다. 술을 마시고, 큰소리로 웃고, 싸우고, 죽은 왕을 불태우며 죽음을 삶의 일부처럼 받아들인다. 식사와 위생에 관한 습관조차 아메드의 눈에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당연히 그에게 북구인들은 야만인처럼 보인다.

그러나 북구인들에게도 아메드는 별로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자기들보다 작은 몸집에, 그들이 보기에는 개만 한 아라비아 말을 타고 나타난 남쪽 사람이다. 커다란 북구식 검 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 말도 통하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를 우습게 본다.

영화는 바로 그 거리에서 시작한다. 그래서 마지막에 아메드가 북구인들을 바라보는 모습을 생각하면 처음의 이 거리감이 더욱 중요하다.

처음에는 문명인과 야만인이었다.

마지막에는 전우가 된다.


2. 열세 번째 전사는 북구인이 아니어야 한다

불바이가 등장하면서 아메드의 개인적인 유배 이야기는 갑자기 영웅서사로 넘어간다.

불바이는 북구 전사들 가운데에서도 특별한 존재다. 그가 말이 많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불필요한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자신이 얼마나 용감한지 떠벌리지도 않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따르라고 끊임없이 명령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의 판단을 기다리고, 싸움이 시작되면 그가 가장 먼저 앞으로 나선다.

그런 불바이에게 흐로스가르의 나라에서 전령이 찾아온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적이 마을을 습격하고 사람들을 죽이고 있으며, 자신들의 힘만으로는 더 이상 막아낼 수 없으니 도와달라는 것이다.

무녀가 뼈를 던져 점을 친다.

그곳으로 갈 전사는 열세 명이어야 한다.

전사들이 하나씩 정해진다.

그리고 마지막 열세 번째.

열세 번째 전사는 북구인이 아니어야 한다.

그 한마디 때문에 아무 상관도 없던 아메드가 갑자기 전쟁에 끌려 들어간다. 아메드는 전사가 아니다. 불바이나 다른 북구인들처럼 전투를 찾아다니는 사람도 아니고, 죽음을 명예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사람도 아니다.

그런 사람이 열세 번째 전사가 된다.

그래서 『13번째 전사』는 처음부터 강했던 영웅들이 괴물을 무찌르는 이야기만은 아니다. 오히려 전사가 아니었던 아메드가 어떻게 그들 사이의 한 사람이 되고, 마침내 서로 목숨을 맡기는 전우가 되는가를 보여주는 영화다.


3. 벤돌, 괴물의 얼굴을 한 인간

흐로스가르의 사람들에게 벤돌은 평범한 적이 아니다.

안개와 함께 나타난다. 사람을 죽이고 머리를 잘라 가져간다. 시체를 먹는다. 곰가죽을 뒤집어쓰고 공격한다. 산등성이를 따라 수많은 횃불을 들고 내려오는 모습은 거대한 불의 용처럼 보인다.

더 무서운 것은 싸움이 끝난 다음이다.

분명히 죽였는데 벤돌의 시체가 남아 있지 않는다. 자기편의 시체를 모두 가져가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니 살아남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벤돌은 점점 인간이 아닌 존재가 된다.

칼에 맞아도 죽지 않는 놈들.
안개 속에서 나타났다 사라지는 놈들.
죽은 사람을 먹는 놈들.
곰인지 사람인지조차 알 수 없는 놈들.

공포는 실제보다 더 큰 적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불바이와 전사들이 벤돌을 상대하면서 그 공포의 껍질이 하나씩 벗겨진다. 그리고 결국 확인하게 되는 사실은 너무나 단순하다.

벤돌은 인간이다.

곰가죽을 벗기면 사람의 얼굴이 나온다. 칼에 맞으면 피를 흘리고 죽는다.

나는 이 순간이 영화에서 아주 중요한 전환이라고 생각한다.

괴물이라고 믿는 동안에는 싸울 방법이 없다. 인간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부터 싸울 수 있다.

『베오울프』에 등장하는 초자연적 괴물 그렌델을 영화는 이런 식으로 다시 만들었다. 진짜 괴물을 등장시키는 대신 사람들이 두려움 때문에 괴물이라고 믿게 된 인간 집단을 등장시켰다.

괴물의 정체를 밝히는 순간은 곧 공포의 정체를 밝히는 순간이다.


4. 아메드는 귀로 배우고, 불바이는 눈으로 배운다

이 영화에서 내가 특히 좋아하는 장면이 있다.

처음에는 북구인들의 말을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하던 아메드가 모닥불 주변에 앉아 그들의 말을 계속 듣는다.

처음에는 아무 의미도 없는 소음이다. 하지만 아메드는 말하는 사람의 표정과 행동을 보고, 반복되는 말을 듣고, 같은 상황에서 사용되는 단어를 연결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하나의 단어가 들린다.

조금 뒤에는 문장이 들린다.

마침내 자신과 자기 어머니를 두고 농담하는 북구인의 말을 알아듣고 그들의 언어로 받아친다. 놀란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말을 배웠느냐고 묻자 아메드는 간단하게 대답한다.

들었다고.

실제로 그렇게 짧은 시간에 외국어를 완벽하게 습득한다는 것은 영화적 과장이다. 하지만 이 장면은 현실적인 어학학습을 보여주려는 장면이 아니다.

아메드가 북구인들의 세계 바깥에서 구경하던 사람에서 그들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영화가 아메드만 배우는 사람으로 만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메드가 자기들의 말을 알아듣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불바이가 아메드의 글에 관심을 가진다.

불바이는 아메드에게 소리를 글자로 그릴 수 있느냐는 식으로 묻는다. 말을 소리로만 기억하는 사람의 눈에 문자는 ‘소리를 그려놓은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아메드가 땅에 글을 쓴다.

불바이는 그것을 유심히 본다.

그리고 나중에는 자신도 그 모양을 기억해 바닥에 써본다. 아랍어를 유창하게 익힌 것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아메드가 사용하는 문자를 보고 그것을 스스로 따라 써본 것이다.

이 장면이 참 좋다.

아메드는 귀로 북구인의 세계에 들어갔고, 불바이는 눈으로 아메드의 세계에 들어가려 한다.

한쪽만 배우는 관계가 아니다.

아메드가 북구인이 되는 것도 아니고 불바이가 아랍인이 되는 것도 아니다. 서로의 문화를 완전히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다만 상대의 세계가 어떤 곳인지 조금씩 들여다본다.

나중에 두 사람이 서로 목숨을 맡길 수 있는 사이가 되는 출발점은 어쩌면 칼을 함께 휘두른 순간보다 이런 작은 장면들이었을지도 모른다.


5. 벤돌보다 먼저 무너져 있던 나라

그러나 벤돌이 강한 이유를 벤돌에게서만 찾으면 안 된다.

흐로스가르의 나라는 이미 내부에서 약해져 있다.

마을은 제대로 된 방어 준비도 되어 있지 않고 사람들은 겁에 질려 있다. 더 답답한 것은 밖에서 벤돌이 사람을 잡아먹고 있는데도 안에서는 권력과 후계를 둘러싼 의심과 다툼이 계속된다는 점이다.

자기 힘으로 해결하지 못해 불바이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런데 정작 불바이가 도착해 백성들의 신뢰를 얻자 이번에는 불바이를 경계한다.

저 사람이 우리를 구하러 온 것인가.
아니면 왕국을 차지하려는 것인가.

나라가 망하게 생겼는데 왕자리 걱정부터 한다.

나는 이 대목이 단순한 곁가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벤돌은 단결해 있다.

흐로스가르 쪽은 갈라져 있다.

벤돌은 자신들의 지도자와 신앙을 믿는다.

흐로스가르 쪽은 서로를 믿지 못한다.

그 상태에서 벤돌의 정체조차 인간인지 괴물인지 모르니 공포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결국 불바이가 상대해야 했던 것은 벤돌의 칼만이 아니었다.

괴물에 대한 사람들의 공포, 서로를 믿지 못하는 내부의 불신까지 함께 상대해야 했다.

외부의 적 앞에서도 버리지 못하는 권력욕과 의심.

어쩌면 벤돌보다 먼저 이 나라를 약하게 만든 진짜 적은 그쪽이었는지도 모른다.


6. 모두 죽일 수 없다면 뿌리를 친다

불바이는 벤돌을 한 명씩 모두 죽여 전쟁을 끝내려 하지 않는다.

애초에 불가능하다.

열세 명의 전사가 아무리 강해도 수적으로 압도적인 벤돌족 전체를 칼로 베어 없앨 수는 없다. 첫 전투부터 동료들이 하나씩 죽어간다.

그러자 방향이 달라진다.

벤돌을 움직이는 뿌리를 찾아야 한다.

정신적 중심인 ‘어머니’, 그리고 뿔을 쓴 군사적 우두머리.

그 둘을 없애야 한다.

불바이 일행은 벤돌이 숨어 사는 동굴까지 들어간다. 폭포 뒤에 감춰진 동굴 안에는 그동안 사람들이 두려움 속에서 상상했던 벤돌의 세계가 실제 모습으로 펼쳐져 있다. 뼈와 시체, 식인의 흔적, 그리고 그 집단의 중심에 있는 벤돌의 어머니.

불바이는 마침내 그녀를 죽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독에 당한다.

전쟁에서는 이겼지만 불바이 자신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없다.

그런데 벤돌의 어머니를 죽였다고 끝난 것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 벤돌을 전투로 이끄는 우두머리다.

그리고 마지막 공격에서 불바이는 죽어가는 몸으로 다시 일어나 그 우두머리와 맞선다.

우두머리가 죽자 재미있는 일이 벌어진다.

벤돌의 전사들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그런데 싸움을 멈춘다.

그리고 물러난다.

열세 명의 전사가 벤돌족을 몰살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싸움을 계속할 수 있게 만들었던 정신적 중심과 군사적 중심을 무너뜨렸다.

그래서 이 전쟁의 승리는 숫자의 승리가 아니다.

적의 뿌리를 찾아 끊어낸 승리다.


7. 두 개의 기도, 그리고 불바이의 마지막

마지막 전투를 앞두고 아메드는 자신이 믿는 신에게 기도한다.

예전에 이 영화를 보고 적어두었던 기도문이 지금 다시 보아도 마음에 남는다.

우리가 생각했던 모든 것과
생각하지 못한 모든 것,

우리가 말했던 모든 것과
말하지 않았던 모든 것,

우리가 행했던 모든 것과
행하지 않았던 모든 것을,

신이시여, 부디 용서하소서!

아메드의 기도에는 자신이 살아온 삶을 돌아보는 마음이 있다.

그리고 바로 곁에서는 전혀 다른 신을 믿는 북구 전사들이 자신들의 방식으로 죽음을 맞을 준비를 한다.

보라, 저기 나의 아버지가 보인다.
보라, 저기 나의 어머니와 자매들, 형제들이 보인다.
보라, 태초까지 이어지는 내 민족의 혈통이 보인다.
보라, 그들이 나를 부른다.
그들은 내게 그들 가운데 자리를 잡으라 한다.
발할라의 전당에서,
용감한 자들이 영원히 살아가는 그곳에서.

나는 이 기도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이 살려달라는 말이 없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살아 돌아오게 해달라고 하지 않는다.

적을 모두 죽이게 해달라고 빌지도 않는다.

죽음을 이미 받아들인다.

대신 죽은 뒤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를 말한다.

아버지가 있고, 어머니와 형제자매가 있고, 태초부터 이어져 온 조상들이 기다리는 곳.

발할라의 전당.

죽음을 피하려는 기도가 아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기도다.

이슬람교도인 아메드는 발할라를 믿지 않는다.

북구인들은 아메드가 믿는 알라를 믿지 않는다.

그런데 마지막 전투를 앞둔 순간 두 기도는 이상할 정도로 닮아 있다.

자기 앞에 놓인 죽음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믿는 신과 죽은 자들에게 마음을 맡긴다.

같은 신을 믿어서 전우가 된 것이 아니다.

믿는 신이 다른 상태 그대로 서로를 위해 싸운다.

그리고 불바이는 이미 죽어가고 있다.

벤돌의 어머니에게 당한 독이 몸에 퍼져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들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워서 죽음을 기다렸을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 공격이 시작되자 불바이는 다시 몸을 일으킨다.

나는 이 장면 때문에 불바이를 단순히 힘센 바이킹 전사로만 볼 수가 없다.

그에게 지도자는 뒤에서 사람들에게 싸우라고 명령하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이 죽을 것을 알면서도 가장 마지막까지 앞에 서는 사람이다.

불바이는 벤돌의 우두머리를 쓰러뜨린다.

그 순간 벤돌들은 싸움을 멈추고 물러난다.

나라를 구한 뒤 불바이도 조용히 죽는다.

왕좌처럼 보이는 자리에 앉아 숨을 거두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조금 전 전사들이 읊었던 기도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발할라의 전당에서,
용감한 자들이 영원히 살아가는 곳.

실제 바이킹들이 저 기도문을 그대로 읊었는가 하는 역사적 문제와는 별개다.

영화 속 불바이에게만큼은 그 기도가 너무나 잘 어울린다.

처음에는 북구인들을 야만인이라고 바라보던 아메드도 이제 그들을 다른 눈으로 본다.

먹을 것을 나누어주고, 자신을 위해 피를 흘리고, 결국 목숨까지 내놓은 사람들이다.

종교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살아온 세계도 달랐지만, 이제 그 차이보다 함께 흘린 피가 더 중요해졌다.

바그다드의 시인은 그렇게 열세 번째 전사가 되었다.


8. 볼가강의 롱십, 그래도 이것만은 못 넘어가겠다

영화를 재미있게 보다가도 지도를 한번 펼치면 도저히 그냥 넘어가기 어려운 문제가 하나 있다.

불바이의 배다.

실제 이븐 파들란이 10세기 볼가강 유역에서 루스인들을 만났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스칸디나비아계 사람들이 발트해에서 동유럽의 강과 호수를 이용해 러시아 내륙으로 들어왔고, 볼가강 유역까지 교역했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다.

문제는 영화 화면에 실제로 등장하는 배다.

불바이가 타는 것은 몇 사람이 어깨에 둘러메고 옮길 수 있는 작은 카누나 하천용 조각배가 아니다.

분명 롱십 계열이다.

긴 선체에 여러 개의 노가 있고 돛대가 서 있다.

그리고 불바이 주변의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데 볼가강은 스칸디나비아반도까지 흐르는 강이 아니다.

발트해와 볼가강을 오가려면 여러 강과 호수를 이어가야 하고 수계가 끊기는 곳에서는 육상을 넘어야 한다.

흔히 바이킹의 동방교역로를 설명하면서 “배를 육지로 끌어 옮겼다”고 간단하게 말한다.

말은 쉽다.

배를 끌었다.

하지만 실제로 배를 물에서 육지로 꺼내는 순간부터 일이 시작된다.

짐을 내려야 하고, 선체를 물 밖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통나무나 썰매 같은 운반수단도 마련해야 한다. 사람이나 가축의 힘으로 배를 끌어 분수령을 넘어야 하고, 다른 수계에 도착하면 다시 배를 물에 내려 띄워야 한다.

아무리 바이킹 배가 흘수가 얕고 다른 대형 선박보다 가볍다고 해도 영화에 나온 것은 분명 롱십이다.

나는 이 장면을 볼 때마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 공략 당시 메흐메드 2세가 함선을 육지로 넘겨 골든혼에 집어넣었던 일을 떠올린다.

오스만 제국은 국가였다.

군대가 있었다.

많은 인력과 물자, 가축과 장비를 동원할 수 있었다.

그런 국가가 비교적 짧은 육상구간을 넘기는 것조차 대규모 작전이었다.

그런데 불바이는 제국의 황제가 아니다.

동인도회사처럼 곳곳에 지점과 인력과 물류망을 갖춘 거대한 상단의 주인도 아니다.

영화 화면에서 그 주변을 따라다니는 전사도 많지 않다.

그 인원으로 저 롱십을 몰고 볼가강과 발트해 사이의 수계를 오간다?

나는 이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물론 바이킹이 볼가강까지 왔다는 역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올 수 있다.

물건도 올 수 있다.

실제로 교역망도 존재했다.

구간마다 배를 갈아탈 수도 있었을 것이고, 화물을 내려 육로로 옮긴 뒤 다른 강에서 다른 배에 실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현지의 인력과 현지 운송수단을 이용했을 수도 있다.

그런 복합적인 장거리 물류망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과 물자가 이동했다는 사실과 영화에 보이는 저 롱십 한 척을 소수의 불바이 일행이 그대로 끌고 다녔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길이 있다는 것과 저 배로 그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내게 이것은 단순한 옥의 티가 아니다.

실제 이븐 파들란이라는 인물을 끌어오고, 그가 실제로 볼가강에서 루스인들을 만났던 역사적 사실까지 이용한 영화라면 정작 그곳에서 다시 북유럽으로 이동하는 과정도 조금은 생각했어야 한다.

이 부분만큼은 지리와 수송에 관한 고증을 제대로 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커다란 허점을 알고 난 뒤에도 『13번째 전사』가 싫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왜일까.

아마 이 영화가 결국 배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 여행가 이븐 파들란을 『베오울프』의 세계로 데려간 발상은 여전히 재미있다. 신화 속 괴물을 벤돌이라는 인간 집단으로 바꾼 것도 흥미롭다. 괴물의 공포를 벗겨내고 인간임을 확인한 뒤 그들의 정신적·군사적 중심을 무너뜨리는 과정도 좋다.

무엇보다 서로를 야만인과 이방인으로 바라보던 사람들이 함께 싸우면서 전우가 되는 과정이 좋다.

아메드는 북구인들의 말을 귀로 듣고 배운다.

불바이는 아메드가 쓰는 글자를 눈으로 보고 배운다.

아메드는 마지막까지 자신이 믿는 신에게 기도하고, 불바이는 마지막까지 발할라를 향한다.

어느 누구도 상대에게 자기 신을 버리라고 하지 않는다.

같은 신을 믿어서 친구가 된 것이 아니다.

같은 길을 걷고, 같은 음식을 나누고, 같은 적과 싸우고, 서로를 위해 피를 흘렸기 때문에 전우가 된다.

그래서 『13번째 전사』를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지도를 펼치면 롱십 앞에서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지만, 불바이가 죽어가는 몸을 일으키는 순간 다시 영화를 보게 만드는 이야기.


발할라의 전당.

용감한 자들이 영원히 살아가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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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바로크
비로소 쟁취한 평화를 새기다 - P267

네덜란드 곳곳을 수놓는 색색의 튤립은 17세기 네덜란드 황금기의 유산이다. 그 시절 네덜란드는 오랜 투쟁 끝에 거머쥔 자유와 구슬땀으로 일궈낸 풍요로 활기가 가득했다. 안락하고 편안한 일상의 틈에서 움튼 자본주의 아래 화가들은 각자의 시선을 캔버스에 담았다. 네덜란드 미술은 그렇게 피어났다.
ㅡ튤립밭, 네덜란드 - P268

나는 낡은 붓을 들고 홀로 서서.
하나님께 영감을 구하는 단순한 사람일 뿐이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 - P270

북유럽 바로크를 이끈루벤스

#북유럽 바로크 #루벤스 #안트베르펜
#궁정화가 #외교관 #사업가

17세기 화가 중 바로크 미술처럼 다채롭고 화려한 인생을 살다 간 화가가 있습니다.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에너지, 탁월한 그림 솜씨에 사업 수완까지 좋았던 인물이죠.
화가라고 하면 외롭게 살다가 죽고 나서야 유명해지는게 아닌가요? - P271

화가라고 하면 외롭게 살다가 죽고 나서야 유명해지는 게 아닌가요?

이 화가는 그런 삶과 거리가 멀어요. 살아있을 때부터 그림을 통해 국제적인 명성을 얻어서 화가들의 왕‘이었고, 유럽의 여러 왕이 그의 그림을 너무나 갖고 싶어 해서 왕들의 화가‘이기도 했습니다.
이 화가는 바로 루벤스입니다. 북부 유럽 출신이지만 알프스산맥을 오가며 바로크 미술을 유럽 전체로 확산시킨 주인공입니다. - P271

안트베르펜 대성당에 전시된 십자가를 세움 
루벤스가 안트베르펜에 돌아와서 그린 첫 번째 대규모 작품이다. 성 발부르가 성당의 중앙 제대화로 제작되었지만, 나폴레옹 시대에 약탈당했다가 1815년 반환되어지금은 안트베르펜 대성당에 자리한다. - P276

이 그림 이전에는 교훈적인 내용을 크게 그리고 사물은 배경에 소품처럼집어넣었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은 전통적 화면 배치를 완전히 뒤집어 교훈이 되는 이야기를 배경에 넣고 사물을 앞자리에 내세운 겁니다. - P287

맞습니다. 안트베르펜을 비롯하여 플랑드르의 도시들은 루터파보다 강경한 칼뱅파 교리를 따르며 종교미술을 비판합니다. 급기야 플랑드르에있는 성당 곳곳에서 성상 조각이나 종교화가 제거되거나 폐기되는 일이벌어지죠. 그중 가장 대규모 성상 파괴 운동이 1566년 8월 안트베르펜에서 일어납니다. 아래 삽화에는 신교도들이 안트베르펜 대성당에 들어가밧줄로 성상을 끌어내리고 사다리로 부수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16세기안트베르펜은 경제적으로는 부유했지만 정치·종교적으로는 아주 혼란스러웠습니다. - P295

프란스 호헨베르흐, 칼뱅주의자의 성상 파괴, 1566년

 1566년 8월 안트베르펜 대성당뿐만 아니라 네덜란드 곳곳에서 칼뱅파 신도들이 교회의 성상을 파괴했다. - P295

80년 전쟁 또는 네덜란드 독립전쟁이라고도 합니다. 기나긴 전쟁을 통해 네덜란드를 구성하는 17개 주 중 북쪽의 7개 주가 독립에 성공해 공화국을 세웁니다. 이들은 1581년 독립을 선포하고 계속 저항하다 결국 1648년 최종적으로 독립을 인정받습니다. - P298

나머지 10개 주는 독립하지 못했나요?
플랑드르 남쪽 지역의 10개 주는 계속 스페인의 지배를 받습니다. 안트베르펜은 반란의 중심지였지만, 스페인 군대가 이곳을 잔혹하게 진압해서계속 스페인의 지배를 받습니다. - P298

루벤스의 활동 지역 루벤스는 지겐에서 태어나 쾰른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12세에 안트베르펜으로 돌아간다. 이탈리아 유학 시절 만토바에 살며 로마 등지를 여행하고, 만토바 공작의 명으로 스페인 바야돌리드에서도 일한다. 또한 마리 드 메디시스의 연작을 위해 프랑스 파리를 방문했으며, 스페인과 영국 외교 사절로서 런던과 마드리드를 오간다. - P299

설마 한복을 입은 건가요?
글쎄요, 학계에서는 이 인물의 국적과 관련하여의견이 분분합니다. 중국인으로 보기도 하고, 한국인으로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의복이 중국식도포인지 한복인지 다소 애매하기 때문이죠.
정확히 어느 나라라고 단정하기 어렵지만, 저는 한국인으로 볼 수 있는 가능성도 열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물이 쓴 모자가 우리 전통 모자탕건과 비슷하고, 남자를 그리기 위한 루벤스의 준비 드로잉도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루벤스가 한국의 복식과 외양을 구전으로듣거나 간단한 스케치를 보고 나서 그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P307

앞쪽 배는 사람들을 질서 있게 구해내지만 바로 오른쪽 뒤의 배는 위태로워 보입니다. 사람을 잘 구하는 앞쪽 배는 개신교를 상징하고, 위태로운뒤의 배는 가톨릭을 상징합니다. - P329

1670년대에 전성기를 누린 동인도회사는 상선 150척, 군함 40척, 직원 5만 명, 군대 1만 명을 보유했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했습니다. - P344

전성기를 누렸던 네덜란드와 영란전쟁의 흔적을 살피려면 암스테르담국립미술관을 찾아야 합니다. 라익스 뮤지엄으로도 불리는 곳입니다.
이곳에는 네덜란드의 국보급 미술품이 가득합니다. 이중에서도 한 점을뽑아야 한다면 주저하지 않고 렘브란트의 야간순찰입니다. 17세기 네덜란드 명화를 한자리에 모은 2층 정중앙에 당당히 자리할 정도로 네덜란드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작품이죠. - P345

그림의 대상이 일상적인 소재에서 점점 사치품으로 바뀝니다. 이처럼 16세기에는 소시민의 소박한 삶을 나타내는 정물화가 대부분이었다면, 17세기에 들어서 정물화는 부유층의 고급스러운 삶을 우아하게 보여줍니다. - P358

그러나 만개한 해바라기 사이로 병들어 시든 꽃이 눈에 띕니다. 삶을 예찬하는 동시에 죽음을 이야기하는 네덜란드 정물화의 전통이반 고흐 같은 19세기 인상주의 화가에게까지 이어진 셈이죠. 반 고흐역시 네덜란드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일찍부터 전통적인 네덜란드 정물화의 특성을 알았을 겁니다. - P365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를 세계 최초로 보는 구체적 근거는 무엇인가요?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가 1602년에 설립되었다고 말씀드렸죠. 동인도회사는 최초로 기업공개를 통해 주식을 발행하여 만든 회사였습니다. 따라서 기업이 발행한 주식 역시 공공장소에서 거래했는데요. 바로 이 목적에 맞게 새롭게 지은 건물이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였습니다. - P377

경제학자들은 이 현상을 튤립 버블이라고 부릅니다. 사람들이 희귀한 튤립을 갖기 위해 돈을 있는 대로 끌어다 쓰면서 튤립 가격이 천정부지로솟구칩니다. 가장 귀한 품종이었던 셈퍼르 아우휘스튀스는 구근 하나가격이 20배 가까이 오릅니다. 1633년에 500 길더였던 구근이 불과 4년 만에 1만 길더가 된 거죠. 1636년에 배 한 척이 500 길더였음을 고려하면 엄청난 수치인 셈입니다. - P386

그게 문제였어요. 이런 상황이 사람들의 조바심을 불러일으켰고, 너나 할것 없이 꽃 재배 사업에 뛰어듭니다. 하지만 극에 달한 기현상도 결국 끝을보입니다. 1637년 2월, 오를 대로 오른 튤립 가격이 상승을 멈추거든요. 불과석 달 만에 수요가 급격히 줄고 가격은 순식간에 폭락합니다. 이 여파로파산자가 속출하자 네덜란드 정부까지 개입해서 간신히 위기를 넘깁니다. - P387

당시 유럽 국가 중 사회 전 계층이 미술품을 거래한 곳은 네덜란드뿐입니다. 힌트는 부의 분배에 있습니다. 네덜란드는 비교적 부가 고르게 주어진 사회였습니다. 대부분의 사회 구성원이 투자나 투기를 할 수 있는 잉여 자본을 갖고 있었죠. 일찌감치 거래 문화에 익숙했던 네덜란드 사람들이 미술품을 투자 대상으로 인식한 겁니다. - P392

힌트는 오른쪽 아래 계단에 놓인 칠판에 있습니다. ‘풍요 속 사치를 조심하라‘는 속담이 적혀 있는데요. 그림 속 집주인처럼 눈 감은 채로 손을 놓으면 힘들게 쌓은 재물이 순식간에 사라진다는 경고를 담은 겁니다. 천장에 달린 바구니 속 목발, 지팡이, 회초리는 사치로 재물을 몽땅 잃었을 때얻게 될 질병과 빈곤을 의미합니다. - P401

그림 오른쪽 요리하는 두 하녀 앞에 깨진 달걀 껍데기가 마구 널려 있습니다. 당시 달걀 깨기는 성관계를 암시하는 표현이었습니다. 특히 속이텅 빈 달걀은 아버지로 보이는 인물이 생식 능력이 없음을 뜻하죠. 아니나 다를까 아이를 안은 아버지 뒤에는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리고 있는남성이 있습니다. 짓궂은 웃음이 마치 자신이 진짜 아버지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 P403

네덜란드의 김홍도 
이렇듯 얀 스테인은 세속적인 블랙 코미디를 즐겨 그렸습니다. 그의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그림을 더 소개할게요. 다음 페이지에 있는 마을 학교라는 작품입니다. - P403

얀 스테인, 마을 학교, 1670년경, 스코틀랜드 국립미술관 
남자 선생은 술에 취해 있고 여자 선생님만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치려고 한다. 그러나 학생들은 제각각 소란스러운 모습이다. - P404

당시 네덜란드 교육 체계의 문제점을 풍자한 그림일지도 모릅니다. 동시에 네덜란드에서 초등 교육이 얼마나 활발하게 운영되었는지 엿볼 수 있죠 네덜란드는 시민사회였는데요. 부르주아를 중심으로 노동자와 평민이 이끄는 사회여서 교육의 역할이 아주 중요했습니다.
학교 풍경을 담은 얀스테인은 한국에서 특이한 별명으로 불립니다. 바로네덜란드의 김홍도인데요. 얀 스테인이 그린 또 다른 마을 학교를 보면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거예요. - P405

왼쪽 페이지의 그림은 간척 사업 전1300년대 네덜란드 지형입니다. 군데군데비어 있죠? 그러나 15세기에 접어들며 오늘날 국토의 약 20퍼센트에 해당하는 땅을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들었습니다. ‘신은 세상을 만들었지만, 네덜란드는 네덜란드인들이 만들었다‘라는 유명한 속담이 있을 정도죠. 수 세기에 걸쳐 국토를 직접 일군 노력은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만합니다. - P409

좋은 지적입니다. 이 인물은 언제든지 군인이 될 수 있습니다. 당시 네덜란드는 전쟁을 치르며 용병을 동원했지만, 병력의 핵심은 시민군이었습니다. 민병대가 잘 짜여 있어서 생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비상시에는 전쟁터로 나갔죠. 여기서 의기양양한 사냥꾼은느긋하게 사냥길에 나서지만 국가에 위기가 닥치면 언제든지 조국을 위해 싸우는 군인이 되었을 겁니다. - P418

이번에도 단순히 아름다운 경치만 담은 게 아니네요.
국토에 대한 인식을 치밀하면서도 친절하게 그림으로 표현한 장르가 풍경화였던 거죠. 평범해 보이는 자연과 생활의 터전이 네덜란드인들에겐정성껏 일군 세계였습니다. 풍경을 화폭에 담는 과정은 그 의미를 되새기는 일이었을 거예요. - P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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