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미국 서부 5대 캐니언 - 셀프투어 그랜드캐니언 여행
이루다 / 인사이트랩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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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준비하려고 샀더니, 여행을 준비하란다

— 이루다, 『미국 서부 5대 캐니언』을 읽고

1. 여행 정보를 얻으려고 구입한 책

지난 9월 미국 서부 여행을 준비하면서 이 책을 구입했다. 그랜드캐니언을 비롯한 미국 서부의 장대한 자연을 직접 눈으로 보기 전에, 어디를 어떻게 돌아봐야 할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얻고 싶었다. 인터넷에도 여행 정보는 넘쳐나지만, 책이라면 그 많은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았으리라 기대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완전히 헛짚었다.

책 어디에도 여행 안내서라고 명시돼 있지는 않다. 제목과 ‘셀프투어 그랜드캐니언 여행‘이라는 부제, 그리고 여행 준비와 각종 팁을 다룬 목차를 보고 내가 실용적인 여행서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다고 그 기대가 터무니없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책장을 넘길수록 실망을 넘어 화가 났다.

2. 다섯 캐니언, 남는 것은 감탄사뿐

전체 166쪽 가운데 다섯 캐니언을 소개하는 내용은 약 50쪽이다. 그마저도 사진과 함께 어디에 갔고, 무엇을 보았고, 자연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를 이야기하는 수준이다.

여행의 감동을 전하는 글도 좋다. 여행기가 반드시 관광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그곳에서 무엇을 경험했고, 어떤 생각을 했으며, 무엇이 그렇게 감동적이었는지를 자신만의 언어로 들려줘야 하지 않을까.

브라이스캐니언을 소개하는 부분을 보자. 48쪽부터 55쪽까지 여덟 쪽에 걸쳐 사진과 감상이 이어진다. 셔틀버스를 탔다고 하지만 어디서 타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브라이스 포인트, 인스퍼레이션 포인트, 선셋 포인트를 방문했다고 하면서도 각 전망대의 특징이나 이동 동선은 알려주지 않는다. 하이킹 코스가 다양하다고 하지만 어느 코스를 걸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는 없다.

여행자가 알고 싶은 것은 아름답다는 감탄사만이 아니라, 그 아름다움을 어디에서 어떻게 만날 수 있느냐는 것이다.

3. 알맹이 없는 여행 정보와 추천 없는 추천 코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여행 준비와 각종 팁을 소개하는 부분이다.

여행경비를 절약하는 방법이라며 일찍 예약하라, 성수기를 피해라, 현지 식당을 이용하라, 대중교통을 이용하라고 한다. 이 정도 상식이라면 굳이 책을 사지 않아도 누구나 알고 있지 않은가.

식당과 카페의 위치, 메뉴, 운영 시간을 알려준다면서 정작 식당 이름 하나 제시하지 않는다. 공원 입구나 방문자센터 근처에 식당이 있고, 운영 시간은 계절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 확인하라는 식이다.

압권은 추천 하이킹 코스다.

초보자는 2∼5km, 중급자는 5∼15km, 상급자는 15km 이상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실제 하이킹 코스의 이름은 하나도 없다. 어느 국립공원의 어디서 출발하는지, 얼마나 걸리는지, 무엇을 볼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

추천 하이킹 코스를 소개한다면서 정작 추천하는 코스가 없다는 사실이 황당할 따름이다.

가이드 투어 예약 방법도 마찬가지다.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공식 홈페이지를 확인하고, 궁금하면 업체에 문의한 다음 예약하라고 한다. 이런 내용을 네 쪽에 걸쳐 설명한다. 그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책의 곳곳에는 편안한 신발을 신고, 충분한 물을 준비하고, 날씨를 확인하고, 안전수칙을 지키라는 조언도 등장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미국 서부 캐니언에 관한 특별한 정보라기보다 어느 여행지에나 적용할 수 있는 일반적인 주의사항이다.

틀린 말이 없다고 해서 유용한 정보가 되는 것은 아니다.

4. 내가 직접 걸었던 그랜드캐니언 1.3km

나는 이번 여행에서 그랜드캐니언의 매더 포인트에서 야바파이 포인트까지 협곡 가장자리를 따라 1.3km를 걸었다. 실제 이동 시간과 관람 시간을 기록했고, 걸으면서 마주한 풍경을 사진으로 남겼다.

그 짧은 경험만 정리해도 두 전망대의 위치와 이동 경로, 소요 시간, 중간에 만날 수 있는 풍경을 다른 여행자에게 알려줄 수 있다.

내가 이 책에서 기대한 것이 바로 그런 정보였다. 어디가 좋다는 이야기만이 아니라, 그곳을 찾아가는 사람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경험과 지식 말이다.

그런데 이 책에는 그런 구체성이 보이지 않는다. ‘셀프투어‘라는 부제가 무색할 정도다.

여행 정보가 부족하다면 여행기로서의 매력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그마저도 아쉽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자연과 교감하고, 마음의 평화와 치유를 얻었다는 이야기가 반복된다. 정작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킨 특별한 경험이나 저자만의 시선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5. 별 하나조차 아까운 책

서점에는 이 책을 극찬하는 독자평도 몇 건 올라와 있다. 나와는 전혀 다른 평가지만, 누가 어떤 감상을 남기든 그것은 각자의 몫이다. 다만 실제로 책을 구입하고 읽은 내 판단은 분명하다.

나는 웬만하면 책에 별 네 개 아래의 평점을 주지 않는다. 기대에 미치지 못한 책이라도 한 권을 쓰기 위해 들였을 저자의 시간과 노고를 존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만큼은 별 하나조차 아깝다.

책을 쓴 사람의 노고를 존중하는 것과 그 결과물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적어도 내가 읽은 이 책은 그동안 지켜온 관대한 평가 기준마저 무너뜨렸다.

여행기는 저자가 어디를 다녀왔는지 이야기할 수 있다. 여행 정보를 다루는 책이라면 독자가 어디를 어떻게 여행할 수 있는지도 알려줄 수 있어야 한다.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해낸다면 책으로서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여행을 준비하는 데 필요한 구체적인 정보가 부족하고, 여행기로서도 상투적인 감상과 표현을 반복하는 데 그친다.

아름다운 자연을 다룬 책이라고 해서 그 책까지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장대한 풍경을 사진으로 담았다고 해서 그 자체로 훌륭한 여행서가 되는 것도 아니다.

책을 덮고 나서 남은 것은 여행 정보도, 여행에 대한 감동도 아니었다. 왜 이 책을 구입했을까 하는 후회와 허탈함뿐이었다.

여행을 준비하려고 책을 샀는데, 책은 그저 여행을 잘 준비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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